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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인터넷 물 흐려져…초기 노사모가 좋았다”

진중권 “인터넷 물 흐려져…초기 노사모가 좋았다”
“정치평론 신뢰 잃어…노빠가 황빠된것, 초동판단 실수”
입력 :2006-07-30 13:22:00   이응탁 (et-lee@dailyseop.com)기자
‘논객’ 진중권은 이제 정치 평론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걸까?

한번 논쟁이 붙으면 치열하게 싸우고야 마는, 그래서 ‘싸움닭’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진중권씨가 “앞으로 공적인 성격의 글쓰기는 하지 못할 것 같다”고 자신의 저서에서 밝혔다.

그는 최근 ‘진중권의 SBS 전망대’를 진행하던 시절 썼던 칼럼들을 묶어 책으로 냈다. 정확히 말하자면 라디오 방송을 진행할 때 썼던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들이다.

‘첩첩상식’(새움)이란 이 책은 ‘가해자’부터 ‘황우석’까지 161개 키워드로 구성돼있다. 그는 처음 책 발간을 제안 받았을 때 “이미 방송을 통해 흩어진 말들을 책으로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회의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니 생명력이 짧은 말들에 ‘시간적 지속성’을 더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래서 책 서문의 제목이 ‘흩어진 말들의 무덤’이다.

26일 늦은 오후에 서울 신촌의 한 오래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맥주에 계란말이를 곁들여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에 그는 “비행하는 재미로 살고 있다”고 답했다. 비행(非行)?, 비행(飛行)?

“일주일에 몇 번 화성에 내려가서 비행기를 탄다”고 말한 그는 방송 진행할 때 번 돈으로 자동차 대신 경비행기 한 대를 샀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 경비행기의 이름은 ‘포르코 로소’(Porco Rosso·붉은 돼지)라고 밝혔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만화영화 ‘붉은 돼지’의 그것이다.

‘까칠한’ 오프닝·클로징 멘트 사이의 ‘밋밋한’ 인터뷰…“진행의 공정성과 색깔 사이에 충돌”

▲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지료사진)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지난 1년간의 라디오 방송 진행에 대한 자평을 부탁했다.

“초보자였죠.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논객으로서 색깔을 가지고 진행하는 것과 방송의 공정성 사이에 충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정하기 힘들었죠.”

그의 방송은 앞뒤의 명확한 색깔을 가진 멘트들에 비해 정작 인터뷰는 다소 ‘밋밋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제가 인터뷰를 좀 해봤는데요, 인터뷰어가 자신의 견해를 가지고 논쟁을 걸면 피곤하더라고요. 전에도 한 인터뷰에서 그래서 ‘지금 내 의견 들으러 온 거냐, 아니면 논쟁하러 온 거냐’며 말한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프닝과 클로징 멘트 자체가 주관적 견해가 들어가기 때문에 인터뷰 자체는 상대가 하는 말을 들어주자는 개념으로 갔습니다.”

그는 ‘밋밋한 인터뷰’에 대해 이같이 해명하며 “판단은 청취자가 하게끔 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고 덧붙였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 앞뒤에 논평을 넣은 것에 대해서는 “색깔을 드러내는 방법이 그것 밖에 없었다”며 “논객으로서 제일 좋은 것이 칼럼 쓰듯이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거의 매일 칼럼 쓰듯 멘트를 쓰는 것에 대해 “힘들었다”고 토로하며 “전날 시사를 점검하고 그 가운데 쓸 것을 선택해서 견해를 세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 답했다.

특히 그는 ‘글말’인 칼럼과 ‘입말’인 방송 멘트의 차이가 있어서 더욱 쉽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사람이 글을 읽는 것과 말로 듣는 것은 차이가 있는데, 글은 늘 시간을 가지고 읽지만 말은 한번 지나가면 끝이죠. 그래서 난이도에서 더 쉬워져야 하죠. 마음껏 수사학을 발휘할 수도 없고... 또 한편 청취자의 무차별성도 고려해야 합니다. 글 같은 경우에는 글을 찾아 읽는 사람들이 저와 생각을 공유한 사람들인데, 방송은 그렇지가 않거든요. 그래서 어느 말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어느 정도 많은 부분 공유가 돼야 가능합니다.”

도올 김용옥의 막말 사고, “황당하고 아찔했다”… 강정구 교수와 논쟁 “역사관의 충돌”

‘SBS 전망대’는 생방송이다 보니 간간이 방송사고(?)도 있었다. 그 중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이 도올 김용옥 씨의 막말 파문이었다. 김 씨는 지난 3월 새만금 사업과 관련 방송에 출연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이라고 표현해 물의를 일으켰었다.

“황당했죠, 그렇게 해버리니까. 어떻게 수습이 안 되잖아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요. 그런데 좀 이따가 쪽지가 하나 들어오더라고요. 마지막에 끝날 때 사과 멘트를 날리라고. 그래서 그래야 되는구나 하고 했죠. 정말 황당했습니다.”

진씨는 그날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며 김 씨에 대해선 “퍼포먼스의 성격이 짙다”며 “김용옥 씨 경우는 삶이 반, 연극이 반인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연출도 잘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그것이 대의가 걸려있었기 때문에 나쁜 것은 아니다”고 평했다.

▲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이외에 허태열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과의 일화도 있었다.

지난해 9월 방송 인터뷰 중 진씨는 허 전 사무총장에게 “2000년 총선 때 ‘부산의 자녀들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사업 수완이 있어도 이제는 틀렸다. 앞으로 우리 딸들이 비굴하게 남의 눈치나 살피며 종살이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누가 자신할 수 있는가’라며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을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당황한 허 전 사무총장은 “그것은 시민단체에서도 ‘이것은 허태열 의원의 문제가 아니다’고 해서 낙천·낙선 대상 후보에서 빠졌다”고 답했다. 그러나 허 전 사무총장은 방송 후에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진씨는 “당시 그것은 사고였다”며 웃으며 답했다.

“작가가 전날 우리만 보는 게시판에 인터뷰 문항을 올려놓습니다. 그러면 그걸 보고 제가 질문을 하는데, 제가 문제의 질문을 추가로 올렸습니다. 그런데 그게 상대방에게는 반영이 되지 않았던 거죠. 전 그게 반영된 줄 알고 질문을 했죠. 그러다보니 그게 돌발질문이 된거죠.”

진씨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정치인들이 그 정도는 변명을 해내지 않느냐”며 “그 정도 변명을 들어줄려고 가볍게 한 것인데, 상대가 당황을 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방송 중 일화로 ‘GP 총기 난사 사건’ 때 피해를 입은 병사의 부모와 전화통화를 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 부모와 통화를 하는데 말을 하지 못하시는 겁니다. 감정이 격해지니까. 거기에 저도 동조가 되고 울먹울먹 목이 메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사회자는 멘트를 날려야 하는데, 그게 안되더라고요. 그런게 기억에 남습니다. 가슴이 아프죠.”

진씨는 이외에 강정구 동국대 교수와 논쟁한 일 등도 기억에서 끄집어냈다.

그는 “‘통일전쟁’이 가지는 의미는 평가적 의미와 기술적 의미 2가지가 있다”며 “평가적 의미에서는 통일은 해야 하고 그래서 전쟁은 정당하다는 의미가 있고, 기술적 의미에서는 통일을 하려고 전쟁을 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 교수는 이 양자를 섞어놓으면서 배후에 당연히 해야 하는 전쟁이란 전제가 깔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당시 논쟁이 서로의 역사관이 충돌한 것이라고 평했다.

“황우석 박사 독하더라”…‘추적 60분’과 ‘PD수첩’ 비교 발언 유감 표명 “내 사과 아니다”

진씨는 “방송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황우석 사태였다”고 책 서문에서 밝힌 바 있다. 그에게 황우석 사태에 대해 묻자 대뜸 “스트레스 많이 받았다”라는 답부터 돌아왔다.

“나중에 보니까 2005년 5월에 벌써 황 박사에 대해서 비판적인 코멘트를 했더라고요. 그게 ‘생명과학과 생명윤리는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었죠. 나중에 MBC ‘PD수첩’에서 이 문제를 들고 나왔을 때 ‘PD수첩’을 옹호해야 했습니다. 올바른 지적을 했으니까요. 이후 이 문제가 논문 진위를 검증하는데 까지 간다고 들었을 때, 사실 안 믿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PD수첩이 논문까지 검증하려 해서 짜증난다’고 했는데, 그걸 당시 박기영 보좌관의 허위보고한다고 판단하고 논평을 했습니다. ‘사이언스’에 논문까지 통과됐는데, 그걸 검증한다는게 황당하더라고요. 그런데 뉴스에 나오는 걸 보니까, 앞이 깜깜해지더라고요. 이거 잘못하면 다 작살나는구나 싶고 대책이 안서는 겁니다. 그래서 ‘여기서부터는 PD수첩이 혼자 가야 한다’고 형식논리를 내세워 논평을 냈습니다.”

그는 당시를 이야기하며 사태를 길게 보고 파악할 만한 정보도 없었다면서 상당히 헷갈리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진씨는 논객이 예언자가 아니기에 드러난 사실을 가지고 논평을 해야 하는데 논문조작 여부를 판단할 ‘팩트’(fact)가 없었다고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2005년 12월 15일,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이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폭로를 했다. 진 씨는 “그때 살았다 싶었다”고 털어놓았다.

“황우석 박사 독하더라고요. 전 그때 게임이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더 끌지 않았습니까. 그 다음에 한 사람이 죽고. 저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는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님만이 판단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 보도를 접하고 나니까 이 사람 나쁜 사람이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진 씨는 지난 4월 경남 창원에 강연을 하러 갔다가 황우석 지지자들에게 감금을 당했다. 이에 앞서 진씨는 방송에서 “MBC ‘PD수첩’과 KBS ‘추적 60분’ 수준이 차이가 나도 너무나 난다”고 말했다가 이틀 후 방송에서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다.

“방송 후 전화가 왔는데 첫 마디에 ‘글을 참 싸가지 없이 쓰셨네요’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러면서 고소를 하겠다는 겁니다. 사과를 하라고 하는데 사과를 할 이유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방송에서도 동업자 의식은 있는가 봅니다. ‘그 발언은 그쪽(KBS 추적 60분)에서 들으면 기분이 나빠할 것이다’고 ‘SBS 전망대’팀에서 말해서 ‘그럼 하나 써달라’고 해서 써준 대로 (사과문을) 읽었습니다. 내 사과는 아닙니다.”

지난 4월 감금당했을 때 어땠는지도 물었다.

“그 때는 솔직히 상황을 즐겼습니다. 11월 초부터 12월 초까지는 힘들었고 이후에는 사실 아무리 난리를 쳐도 팩트가 있는데 어떡할거냐는 생각을 했죠. 그 때 전투경찰의 호위를 받아보는 호사(?)도 누려보고……. 강연장에는 한 스님이 들어와 목탁을 치고 있었는데, 그걸 보자니 살바도르 달리도 만들어내지 못할 그런 초현실주의적 상황이 벌어지더라고요.”

그는 이른바 ‘황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대해 “아마 종교적 욕구가 강한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 ⓒ2006 데일리서프라이즈 
소위 ‘노빠’와 ‘황빠’가 일정부분 겹치는 것이 국익, 애국심, 국가적 자존감이란 부분에서 겹쳐서 그런가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에 대해 “‘박빠’(박근혜 지지자)가 ‘황빠’가 된 것도 그런 걸로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노빠는 그게 아니다”라며 “‘박빠’와 ‘노빠’는 코드가 약간 다른데, 이 사람들은 초동 판단을 잘못했다”고 설명했다.

초동 판단의 실수가 무엇인지를 물었다.

“황우석을 믿어버린 것이죠. 딱 보다가 이에 아니다 싶으면 수정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된겁니다. 그러다보니 ‘박빠’보다 더한 ‘황빠’가 된 거죠. 코드가 달랐는데, 결과적으로는 코드가 같아졌습니다. 참여정부가 내세운 정책 중에 IT, BT 육성이 있었는데, IT가 진대제라면 BT는 황우석이었죠. 그런데 이게 어그러지니까…….”

그는 “또 하나 문제가 ‘논객’이나 ‘먹물’들의 역할인데, 그 때 누군가가 몰매를 맞아도 ‘이 길로 가면 죽는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었어야 하는데 그게 안됐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에서) 내부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잘못됐다”며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동질화되다 보니 수정이 안된다”고 꼬집었다.

진씨는 또 “자꾸 그러다 보니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음모론과 같이 주관적으로 무엇을 자꾸 만든다”면서 “현실과 동떨어진 자기들만의 판단의 틀을 만들고 주관성의 세계에 스스로 빠졌다”고 비판했다.

“정치평론과 인터넷 문화, 옳은 이야기해도 먹히지 않는 느낌이 든다”

그에게 ‘공적인 글쓰기를 못할 것 같다’고 밝힌 부분에 대해 물었다.

“정치적인 글쓰기, 정치적 공동체(의 일원)로서의 글쓰기를 안 한다는 겁니다. 글쓰기는 거의 10년 가까이 충분히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게 주장한대로 되는 것도 아니고, 말하고 나서 또 해야 되고 하는 부분에서 지칩니다. 밀린 작업도 많고요.”

그는 또 “인터넷의 물이 많이 흐려졌다”며 “옳은 이야기를 해도 먹히지 않는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그는 “초기 노사모와 안티조선 운동할 때가 인터넷 문화 전성기였다”며 “그 때 인터넷은 토론과 오락의 마당이었고, 즐거웠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그는 정치 평론에 대해서도 “정치 평론이 신뢰를 잃은 것 아니냐”며 ‘카산드라’(Cassandra)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예언자로, 태양의 신이자 예언의 신인 아폴로에게 예언능력을 받았지만 이후 아폴로는 그녀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자 않자 아무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만들었다.

그녀는 트로이에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 기울이지 않았고, 결국 트로이는 그리스군에 의해 함락됐다.

“정치 평론을 하는 사람들이 정치세력에 많이 이용당하는 거 같습니다. 진보든 보수든 자기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하는데……. 매체의 입맛에 맞게 쓰고, 매체가 불러주는 대로 쓰는 경우도 많고요. 이런 것이 문제입니다.”

맥주 1병과 계란말이로 시작된 이날 인터뷰는 제육볶음으로 안주가 바뀌고 맥주 몇 병을 더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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