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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논증 이론과 실전(LEET 시험대비) 저자

 

 

 

 

추리논증 이론과 실전(LEET 시험대비) 무료배송

저자 이창훈 , 정유석 | 출판사 형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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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2월 25일 출간 l 753쪽 l 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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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BN-10 : 8956433720 l ISBN-13 : 9788956433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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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독자대상 : LEET 시험 준비 수험생
    - 구성 : 핵심 이론 및 기출문제
 

  • 공부방법론

    PART 1 언어추리와 논리
    Chapter 1.논리학의 의의
    Chapter 2.연역논증
    Chapter 3.귀납논증
    Chapter 4.함축된 정보 파악

    PART 2 논증
    Chapter 1.분석 및 재구성
    Chapter 2.비판 및 반론
    Chapter 3.판단 및 평가

    PART 3 기출 실전문제
    기출 실전 문제 1회 ~ 9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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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전원 과거 기득권 체제 부활 절대 반대

 

용감한 무식에는 약도 없다.

지난번 섹검 스캔들을 보면서 그렇게 지롤하던 인간들이 그 대안인 로스쿨/메디컬스쿨 제도에 대해서도 반대 개거품 무는 꼴을 보고 있자니

도대체 이 나라 교육이 얼마나 '암기'에 치중돼서 정상적인 추리/논리적 사고를 막는건지 머리 속에 무슨 개념이 있는건지 원...(글쓰는 중에 더 흥분하게 된다)

 

1. 메디컬 스쿨

학부 졸업 후 대학원 격인 4+4 메디컬 스쿨 제도를 도입한 이유는 보다 전인적인 지식과 소양을 갖춘 이들이 의사가 될 수 있게 하고, 대입 단계에서 (인문계는 법대,) 자연계는 의대로 쏠리는 지나친 입시 과열을 분산하자는 취지에서였다.

 

그렇다. 이 제도의 비젼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4년제 화학과/생물학과 학부 정상적으로 졸업한 '전인적인 지식 및 소양 갖춘 대학생'들이 4년제 대학원 더 밟아 의사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메디컬 스쿨 제도를 공격하는 이들의 '논거'는 이 제도가 돈있는 자들의 돈잔치 놀이터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 개인이 '개천에서 용나는' 계급 상승의 환상이 이 제도 때문에 원천봉쇄되고 있는 자들의 계급 대물림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참으로 웃기는 소리다. 2+4 학부제든 4+4 메디컬 전문대학원 제도든 간에 그 엘리트들이 개인적으로 출세하는 것이 옆에서 구경하는 우리 범부들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무슨 소린가 하면 개천에서 용나는 엘리트 개인의 출세와 의료 서비스 수요자인 우리 같은 일반인들과는 아무 관계가 없단 말이다.

 

그렇다. 우리는 그냥 의료 서비스 소비자들일 뿐이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더 나은('더 친절한' 포함) 의료 서비스를 구매해서 받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박정희 이래 2+4(예과+본과) 체제 하에서 양육된 기득권 의사 엘리트들의 오만방자함에 오바이트가 쏠린다(반말 지꺼리 찍찍하는 불친절함 포함).

 

개인을 비난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따위 행태에는 구조적 필연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자 한다. 있는 집 자식들이 공부도 잘해 18-19살에 미래가 나름 보장된 의대에 지원하는 것이 기존 체제이다. 나이 18-19세에 미래를 확정한단 말이다. 그 나이18/19는 의료인으로서 인간에 대한 성찰, 사회에 대한 성찰 같은 것이 기대될 수 있는 나이가 절대 아니다. 지옥같은 오직 서열화 대한민국 대학 입시제도가 18-19세 이전에 자원봉사 등 사회적인 성찰적 활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냥 국영수 암기 잘해서, 사명감 이런거 아무 상관없이 성적/돈으로 학부 의대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인턴/레지 밟아 목에 힘주고 거들먹거리고 다닌다.

 

물론 4+4 메디컬스쿨 지원하는 화학과/생물학과 대학 졸업생으로부터도 또한 그런 '완벽한' 사회적 소양, 인간에 대한 성찰 등을 요구할 수 없을 수도 있다. 대학 4년 내내 화학과/생물학과 돈뿌리고 다니면서 개인 입신양명 출세만 지향하고 다니는 인간인들 왜 없겠나?

 

그래도 나같은, 우리같은 의료 서비스 수요자 입장에서 보면,

18-19살 아무 개념없는 핏뎅이들이 오로지 성적,돈으로 예/본과 밟고 나중에 싸가지 없는 엘리트주의 의료 짓꺼리 하는 꼴을 보는 것보다는 차라리 24-25세의 사회 경험 있는, 기본 대학 지식 쌓은 졸업자들로부터 의료 서비스 받는 게 위험부담risiko이 더 적다. 최소한 남자들 같은 경우 장교가 아니라 100군대가서 뺑이치고 와서 메디컬 스쿨 지원한다.

 

돈잔치에 대한 비난은 증말 무논리적이다. 기존 기득권 2+4 체제나 현행 4+4 체제나 결국 모두 돈있는 자제들이 가는 코스이다. 아니, 기존 2+4 체제 때에는 서민들의 아들딸들이 의대 예과/본과 진학했는데 4+4 메디컬 대학원 체제 하에서는 돈잔치로 바뀌었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에서 그런 적이 어디 한번이라도 있었나? 이런 현실 곡학아세는 정말 아니지 않나?

 

물론 과거 2+4 체제 하에서 서민들의 아들딸들에게 장학금 혜택 등 지원 제도가 더 잘되어 있었는지는 모르나 과거에 정말 그랬다면 현 4+4 체제 하에서도 장학금 제도를 과거에 준해 확충하면 되지 않가? 상황이 이런데 부분적 조정이 아니라 의치학전문제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목욕물 버리며 아기까지 같이 버리는' 주장 오류에 다름없다.

 

본좌의 요지를 다시 정리하면 그렇다. 내 주위 좀 가난한 이들이 2+4 제도 의대에 입학해 계급 상승의 꿈을 이루는 것을 보는 게 관객인 우리와 무슨 상관이 없다. 정작 우리 수요자에게 필요한 것은 '싸가지'있는 의료 서비스이다. 의료 소비자인 본좌가 보기에는 18-19세 핏덩이들이 의사하겠다는 것보다 24-25세 이상 덜떨어진 인간들이 의사 하겠다는 것이 좀더 안전해 보인다.

 

현 의치학 전문대학원 입시 논구술 면접에서는 현행 건강보험제도 민형화 어떻게 볼 것인가 이런 문제들도 나오고(물론 질문하는 기존 2+4 체제 하는 출제 교수들은 대부분 건강보험폐지/건보 민영화 찬성론자들이겠지만) 학생들은 그런 그와 같은 여러 쟁점들 사전에 준비하고 고민하여 시험에 임한다. 과거 2+4 예/본과에 지원하는 18-19 핏덩이들에게 누가 민영화 같은 것을 문제 삼으며 공부만 하던 핏덩이들 또한 건보 민영화 이런거 고민이나 해보겠나?!(기존 2+4 체제 하에서 전국 11등 하여 서울의대 들어간, 교양있고 점잖아 보이는 우리 사촌 의사형의 사회/인간에 대한 전무한 식견을 잠재적 의료 서비스 소비자로서 정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째고 꿰매는거다).

  

어차리 2+4나 4+4나 돈드는 문제는 거기서 거기고,

논리비약인지 모르겠으나 이웃집 서민 아들이 고3때 공부 열심히 하여 의예과 입학한 후 인생 확뜨는 출세 광경에 옆집 사람으로서 희열을 느낀다면 아예 건보 민영화하여 그 고3 독식하고 확 피게 제대로 함 밀어주자는 것도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2. 로스쿨

 

3. 비즈니스 스쿨(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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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 the Beatles didn't do

 

 

Songs the Beatles didn't do: meaning, songs they wrote while the Beatles existed, but which did not appear on official EMI Beatles records. This list is limited to songs that might be considered finished, which we'll define as one of: published; recorded by someone else; registered for copyright; or attempted at EMI for release. Composer credit is shown only where established by publisher or copyright documentation. Comments mention the probable composer in other cases.

 


Songs

  • In spite of all the danger (McCartney--Harrison)
  • You'll be mine (Lennon--McCartney)
  • Cayenne (McCartney)
    Pre-Beatles recordings issued on the CD "Anthology 1" in 1995.

     

  • Cry for a shadow (Harrison--Lennon)
    Recorded 22 June 1961 (probably), by the Beatles with Pete on drums and released many times over. Of course this is the Beatles, so I'm breaking my own rule, but since it is the only original that was not originally on an EMI Beatles record, here it is. An instrumental. It appeared on the "Anthology 1" CD in 1995.

     

  • I'll be on my way (Lennon--McCartney)
    Single by Billy J Kramer with the Dakotas, April 1963. The Beatles did it on BBC radio 4 April 1963, and that version is available on the 1994 CD set "Live at the BBC".

     

  • Bad to me (Lennon--McCartney)
    Single by Billy J Kramer with the Dakotas, July 1963. A demo by John alone (I think) has been bootlegged. The B-side of Kramer's single, "I call your name" was a "song the Beatles didn't do" for almost a year.

     

  • Tip of my tongue (Lennon--McCartney)
    Single by Tommy Quickly, July 1963. The Beatles attempted to record it, November 1962, but the tape is not at EMI (per Lewisohn) and has not been bootlegged.

     

  • Hello little girl (Lennon--McCartney)
    Single by the Fourmost, August 1963. A very similar Beatles version with John lead vocal is on the so-called Decca Tape of 1962, bootlegged, and included on the CD "Anthology 1" in 1995.

     

  • Love of the loved (Lennon--McCartney)
    Single by Cilla Black, September 1963. A Beatles version with Paul lead vocal is on the so-called Decca Tape of 1962, bootlegged, but vetoed by Paul from "Anthology 1".

     

  • I'll keep you satisfied (Lennon--McCartney)
    Single by Billy J Kramer with the Dakotas, November 1963.

     

  • I'm in love (Lennon--McCartney)
    Single by the Fourmost, November 1963. A version of this by John has been bootlegged as the demo, but now is believed to be post-1975. A previously unissued version by Billy J Kramer with the Dakotas has recently appeared on the CD "Best of Billy J Kramer and the Dakotas".

     

  • A World without love (Lennon--McCartney)
    Single by Peter and Gordon, February 1964.

     

  • One and one is two (Lennon--McCartney)
    Single by the Strangers with Mike Shannon, May 1964. A Beatles demo has been bootlegged.

     

  • Nobody I know (Lennon--McCartney)
    Single by Peter and Gordon, May 1964.

     

  • Like dreamers do (Lennon--McCartney)
    Single by the Applejacks, June 1964. Last-released of the three originals on the so-called Decca tape of 1962, and the second of the two appearing on the CD "Anthology 1". Paul lead vocal.

     

  • You'll know what to do (Harrison)
    Known for some years only as a demo recorded at EMI 3 June 1964, and a UK copyright registration. No recording of any sort appeared even on bootlegs until the CD "Anthology 1" in 1995. However, George scat-sang the first line of it in an Australian interview that is on LP, possibly the one called "The Beatles Talk Down Under".

     

  • From a window (Lennon--McCartney)
    Single by Billy J Kramer with the Dakotas, July 1964.

     

  • It's for you (Lennon--McCartney)
    Single by Cilla Black, July 1964.

     

  • I don't want to see you again (Lennon--McCartney)
    Single by Peter and Gordon, September 1964.

     

  • If you've got troubles
    Attempted by the Beatles 18 February 1965; the one take has been bootlegged. Ringo lead vocal, written Lennon--McCartney. On the CD "Anthology 2".

     

  • That means a lot (Lennon--McCartney)
    Single by P J Proby, July 1965. Attempted by the Beatles 20 February 1965 and again 30 March 1965; some takes have been bootlegged. Paul lead vocal. On the CD "Anthology 2".

     

  • 12-Bar original
    Attempted by the Beatles 4 November 1965; it has been bootlegged. Long instrumental. Shorter edit on the CD "Anthology 2".

     

  • Woman (Webb)
    Single by Peter and Gordon, January 1966. Songwriter Bernard Webb is Paul McCartney, revealed later, but reissues still say Webb. In the US for some reason the fake credit was "A. Smith" instead.

     

  • Everywhere it's Christmas
  • Orowanya
  • Please don't bring your banjo back
    Recorded 25 November 1966 as part of "Pantomime: Everywhere It's Christmas", the 1966 Christmas record. By all four and Mal Evans.

     

  • 'Carnival of Light' Rave
    A very long tape of sound effects made 5 January 1967 and used once for a festival.

     

  • Catcall (McCartney)
    On an album by the Chris Barber Band, October 1967, with Paul in a group of voices at the end. A Beatles version is on an undated tape, possibly November 1962, that has been bootlegged. Instrumental. Said to be the same as Catswalk, which appears on early Beatles song lists.

     

  • Shirley's wild accordion (Lennon--McCartney)
    Recording made 12 October 1967 by Shirley Evans, Reg Wale, Paul and Ringo for the "Magical Mystery Tour" film, but not used in it. Shirley Evans does play some accordion in the film.

     

  • Jessie's dream (McCartney--Starkey--Harrison--Lennon)
    Made at an unknown date by "one or more of the Beatles" (Lewisohn) and used in "Magical Mystery Tour" as Jessie eats tons of spaghetti.

     

  • Christmas time (is here again) (Lennon--McCartney--Harrison--Starkey)
  • Plenty of jam jars
    Recorded 28 November 1967 as part of "Christmas Time is Here Again!", the 1967 Christmas record. A longer version of the title song has been bootlegged, and some of it was finally in general release on the "Free as a bird" CD single in 1995.

     

  • Step inside love (Lennon--McCartney)
    Single by Cilla Black, March 1968. An extremely poor-quality copy of a demo by Paul has been bootlegged.

     

  • Thingumybob (Lennon--McCartney)
    Single by John Foster and Sons Ltd Black Dyke Mills Band, 26 August 1968 (one of the first 4 Apple singles), produced by Paul. Instrumental.

     

  • Sour milk sea (Harrison)
    Single by Jackie Lomax, 26 August 1968 (another of the first 4 Apple singles), with George playing guitar and producing. A demo by George has been bootlegged.

     

  • Circles
    Demo by George, recorded at the same time as many demos for songs heard on the white album. This one was never heard again.

     

  • Not guilty (Harrison)
    Attempted by the Beatles 7 to 12 August 1968. Bootlegged, and an edited version (made for the unreleased "Sessions" LP) is on the CD "Anthology 3". A demo by George has also been bootlegged. Recorded by George years later.

     

  • What's the new Mary Jane
    Attempted by some of the Beatles 14 August 1968, with more added to the same recording 26 November 1969. Came close to being a Plastic Ono Band single with "You know my name". John lead vocals. A specially edited version is on the CD "Anthology 3".

     

  • Etcetera
    Demo made by Paul at EMI, 20 August 1968, and taken away. No version has come out, including bootlegs.

     

  • Badge (Harrison--Clapton)
    On an album by Cream, February 1969, with George on rhythm guitar as L'Angelo Mysterioso.

     

  • Paul piano intro (Lennon--McCartney)
    Slow piano piece by Paul, used at the beginning of the "Let it be" film, recorded January 1969. The entire soundtrack has been bootlegged.

     

  • Jazz piano song (McCartney--Starkey)
    Fast instrumental by Paul and Ringo on one piano, used in the "Let it be" film, recorded January 1969.

     

  • Suzy Parker (Lennon--Starkey--Harrison--McCartney)
    Rock guitar song with John lead vocal, used in the "Let it be" film, recorded January 1969. Suzy Parker was a celebrity; the song lyric really sounds more like "Suzy's parlor".

     

  • Teddy boy (McCartney)
    A Beatles rehearsal version of 24 January 1969 was on the "Get Back" album compiled in May 1969. Paul recorded it on his first album.

     

  • All things must pass (Harrison)
    George recorded a demo of the complete song in February 1969, which is on the CD "Anthology 3". The Beatles had tried it in January but never got back to it. George of course recorded it in 1971.

     

  • Goodbye (Lennon--McCartney)
    Single by Mary Hopkin, March 1969, produced by Paul. A demo by Paul has been bootlegged.

     

  • Come and get it (McCartney)
    Single by Badfinger, December 1969, produced by Paul. A nearly identical demo version by Paul has been bootlegged.

     

  • Penina (McCartney)
    On obscure recordings by Carlos Mendes (Portugal, 1969) and Jotte Herra (Holland, 1970). Paul sings part of it during the "Get Back" sessions, bootlegged.

     

 

Get Back tapes

This is the morass of any project attempting to list unreleased Beatles songs. Firstly, do you want to call rehearsals and partial, off-the-cuff renditions Beatles versions? And then there's the problem that more Get Back stuff is still leaking out, and who can keep up with it. But I'll toss out a few lists of songs more or less performed. I'll skip the fact that much of "Abbey Road" appears here too. For much more detail, see the book "Drugs, Divorce and a Slipping Image".

 

  • Known or possible old Lennon--McCartney originals: all are fragments and the titles are speculative in most cases
  •  
  • Hot as sun [with words],
  • I lost my little girl,
  • I fancy me chances [?],
  • If tomorrow ever comes (I'll wait till tomorrow),
  • Just fun,
  • Thinking of linking,
  • Too bad about sorrows,
  • Wake up in the morning (Because I know you love me so),
  • Won't you please say goodbye

     

  • Improvisations or work songs never finished
  •  
  • Commonwealth/White power/Can you dig it medley (Paul and John),
  • How do you tell someone (George),
  • I look out the window (George),
  • I'm going to pay for his ride (Paul),
  • Madman (John),
  • Negro in reserve (John and Paul),
  • Pillow for your head (Paul),
  • Shakin' in the sixties (John),
  • Taking a trip to Carolina (Ringo),
  • There you are Eddie (Paul),
  • Watching rainbows (John)

     

  • Songs Paul finished later
    Another day, Back seat of my car, Every night, Suicide, Teddy boy  
  • Songs John finished later
    Child of nature [as Jealous guy], Give me some truth  
  • Songs George finished later
    All things must pass, Let it down, Hear me lord, Isn't it a pity

     

    Note, on the unreleased "Get Back" albums, "The Walk" is the Jimmy McCracklin hit written by McCracklin--Gorlic, and the opening instrumental sometimes called
  • "Rocker" is pretty much "Down the road apiece" by Raye and recorded by Chuck Berry.

 

others would eventually end up on Beatles solo albums, including

Lennon's "Jealous Guy" (called "Child of Nature" at the time and originally written and rehearsed for the White Album) and "Gimme Some Truth",

Harrison's "All Things Must Pass", "Isn't It a Pity" and "Hear Me Lord", and

McCartney's "Teddy Boy" and "Junk" (originally written for the White Album). Much of the band's attention was focused on extended jams on 12-bar blues as well as a broad range of covers. These included classical pieces such as Samuel Barber's "Adagio for Strings", jazz standards such as "Ain't She Sweet", and an encyclopaedic array of songs from the early rock and roll era such as "Stand By Me", "Words of Love", "Lonely Sea", "Bésame Mucho" by Mexican composer Consuelo Velázquez (a song that was part of The Beatles repertoire in the early days) and "Blue Suede Shoes". Only a handful of these were complete performances; the vast majority were fragmentary renditions with a verse or two of misremembered lyrics. The rehearsals and recording sessions were filmed and formed the basis of the Beatles' film of the same name. A song not included was

Watching Rainbows.

 

Although most of the songs on any given Beatles album are usually credited to the Lennon/McCartney songwriting team, that description is often misleading, and rarely more so than on The Beatles. With this album, each of the four band members began to showcase the range and depth of his individual songwriting talents, and to display styles that would be carried over to his eventual solo career. Indeed, some songs that the individual Beatles were working on during this period eventually were released on solo albums. These include

Lennon's "Look at Me" and "Child of Nature", eventually reworked as "Jealous Guy";

McCartney's "Junk" and "Teddy Boy"; and

Harrison's "Not Guilty" and "Circles".
Lennon also indulged his love of rock and roll with "Crippled Inside" and "It's So Hard." "Gimme Some Truth", originally heard in the Let It Be sessions, appears on the album with a new bridge. The politically-themed "I Don't Wanna Be a Soldier" closes the first half of Imagine in a cacophonous manner.

 

Revolution
The Ballad of John and Yoko
Come Together

 

1969 Cold Turkey
Besides Lennon, this recording features Eric Clapton on lead guitar, Klaus Voormann on bass and Ringo Starr on drums. It was recorded in Abbey Road Studio 2.

 

1969
"Yer Blues" (Lennon/McCartney) – 4:12
"Cold Turkey" (John Lennon) – 3:34
"Give Peace a Chance" (Lennon/McCartney) – 3:41

 

1970 John Lennon/Plastic Ono Band
"Look At Me" dates from The Beatles period- Ringo Starr: drums

 

1971 Imagine
2"Crippled Inside" – 3:47 dobro
5"I Don't Wanna Be a Soldier Mama I Don't Wanna Die" – 6:05 slide
6"Gimme Some Truth" – 3:16 elec
7"Oh My Love" (John Lennon, Yoko Ono) – 2:44 elce
8"How Do You Sleep?" – 5:36 slide
George Harrison – electric guitar (6, 7), slide guitar (5, 8) dobro guitar (2)

 

1972 Some Time in New York City #2 (live jam) live at the Lyceum Ballroom in London, England on 15 December 1969, for a UNICEF charity concert
Eric Clapton - 'Derek Claptoe': guitar., George Harrison - 'George Harrisong': guitar.

 

1973 Mind Games
Mind Games (with its "love is the answer" refrain and call to "make love not war") was begun during the Beatles' Let It Be sessions

 

@
Sour Milk Sea
Badge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 4:53
"Something" – 3:59
"Here Comes the Sun" – 2:59

 

1970 All things must pass

Harrison had been accumulating the songs he recorded for the album as far back as

1966; both "The Art of Dying"[1] and "Isn't It a Pity"[2] date from that year. In bootlegged conversation from the Get Back sessions, Harrison revealed that John had rejected "Isn't It a Pity" three years before, and that he (Harrison) had considered offering the song to Frank Sinatra.[2] Harrison picked up several more songs in late 1968 while visiting Bob Dylan and The Band in Woodstock, New York. He and Dylan co-wrote "I'd Have You Anytime" and "Nowhere to Go" (also known as "When Everybody Comes to Town") at this time, and Dylan showed him "I Don't Want to Do It."[3] All three songs were attempted at some point in the sessions for All Things Must Pass, but only "I'd Have You Anytime" made the album.

 

The January 1969 "Get Back" sessions saw early appearances of several other songs that would be considered for

All Things Must Pass, including the title track,

"Hear Me Lord",

"Isn't It a Pity",

"Let It Down", and

"Window, Window",[4] but nothing came of them at the time. The tense atmosphere fueled another song, "Wah-Wah", which Harrison wrote in the wake of his temporary departure from the band.[5] He began writing "My Sweet Lord" while touring with Delaney & Bonnie in late 1969,[6] and would later utilise their backing group "Friends" as an important part of the All Things Must Pass sound. He made one last detour before beginning work on All Things Must Pass, visiting Dylan while the latter was starting sessions for New Morning in May 1970, learning "If Not For You" and participating in a now-bootlegged session.

 

Bob Dylan, a close friend of Harrison's, co-wrote "I'd Have You Anytime" with him, while Harrison covered Dylan's "If Not For You", which had been recently released on Dylan's New Morning album.

 

The album features the talents of Ringo Starr

 

Let It Down"   Written and performed during the Get Back sessions 4:57
It's Johnny's Birthday" (Based upon "Congratulations" - Bill Martin/Phil Coulter) Recorded in August 1970 with Ringo Starr and presented to John Lennon on his 30th birthday

 

1973 Living in the Material World- Ringo Starr on drums

 

1974 Dark Horse- Ringo Starr on drums
"Love Comes to Everyone" – 4:36 Guitar intro played by Eric Clapton, who would go on to cover the song on his 2005 album Back Home. Song was performed live only once during Harrison's Japanese tour in December 1991

 

"Not Guilty" – 3:35 Originally written by Harrison for The Beatles in 1968 for inclusion on The Beatles album. It did not however appear on that album.

 

1981 Somewhere in England
All Those Years Ago" – 3:45 Harrison's tribute to John Lennon, featuring Ringo Starr on drums, as well as Paul and Linda McCartney and Denny Laine on backing vocals

 

@
Sentimental Journey (1970)

 

Beaucoups of Blues (1970)
It Don't Come Easy- producer George Harrison "co-wrote" the song
Back Off Boogaloo- Ringo wrote and composed the song himself and George Harrison produced it.

 

Ringo" (1973)
"Photograph" (George Harrison/Richard Starkey) – 3:56 Features George Harrison on guitar and harmony vocal  #1
"I'm the Greatest" (John Lennon) – 3:21  Featuring Starr, John Lennon on piano and harmony vocal, George Harrison on guitar, Klaus Voormann on bass and Billy Preston on organ
"Sunshine Life For Me (Sail Away Raymond)" (George Harrison) – 2:45 George Harrison on guitar and backing vocals
"You're Sixteen" (Bob Sherman/Dick Sherman) – 2:48 Features Paul McCartney on mouth sax solo and Paul McCartney, Linda McCartney and Harry Nilsson on backing vocals
"Six O'Clock" (Paul McCartney) – 4:06 Features Paul McCartney on piano and synthesizer, as well as backing vocals with Linda McCartney and Klaus Voorman on bass guitar
"You and Me (Babe)" (George Harrison/Mal Evans) – 4:59 Features George Harrison on guitar, arranged by Jack Nitzche
"It Don't Come Easy" (Richard Starkey) - 3:02 Bonus track on the 1991 CD reissue, originally released as a single in 1971.
"You're Sixteen"  #1

 

Goodnight Vienna (1974)
"(It's All Da-Da-Down To) Goodnight Vienna" (John Lennon) – 2:35 Featuring John Lennon on opening count-in and piano and Billy Preston on clavinet.
"All By Myself" (Vini Poncia/Richard Starkey) – 3:21 Featuring John Lennon on guitar
"Only You (And You Alone)" (Buck Ram/Ande Rand) – 3:26 Featuring John Lennon on guitar, Steve Cropper on guitar, Billy Preston on electric piano and Harry Nilsson on backing vocals.
"Goodnight Vienna (Reprise)" (John Lennon) – 1:20 Featuring John Lennon's intro, 'OK, with gusto, boys, with gusto!'
"No No Song"/"Snookeroo"  #3

 

Ringo's Rotogravure (1976)
"Pure Gold" (Paul McCartney) – 3:14 features background vocals by Paul and Linda McCartney
"Cookin' (In the Kitchen Of Love)" (John Lennon) – 3:41 features John Lennon on piano, Dr. John on guitar and organ and Melissa Manchester on backing vocals
"I'll Still Love You" (George Harrison) – 2:57
"This Be Called A Song" (Eric Clapton) – 3:14 features Eric Clapton on guitar and background vocals by Melissa Manchester

 

Stop and Smell the Roses (1981)
"Private Property" (Paul McCartney) – 2:44 Produced by Paul McCartney - features Paul McCartney on bass and piano, as well as backing vocals with Linda McCartney, Laurence Juber on guitar, Howie Casey on saxophone, and Lloyd Green on pedal steel guitar
"Wrack My Brain" (George Harrison) – 2:21 Produced by George Harrison - features George Harrison on guitar and backing vocals and Ray Cooper on piano, percussion and backing vocals, Herbie Flowers on bass and tuba, Al Kooper on piano and guitar
"Attention" (Paul McCartney) – 3:20 Produced by Paul McCartney - features Paul McCartney on bass and piano, as well as backing vocals with Linda McCartney


Stand by Me
Luccille

 

Free as a Bird
Real Love
Now and T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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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경제이야기

 

 

노무현의 경제이야기
 
번호 72389  글쓴이 志亨 (isky2002)  조회 3951  누리 866 (939/73)  등록일 2009-7-14 14:03
대문추천 78
 
 
 
 

 


노무현의 경제이야기

(라디오21 / 자연 / 2009-07-13)


노무현 참여정부가 5년 동안 국민을 위하여 일한 수 많은 노력을 색안경을 벗고 노무현 대통령을  다시 평가해 주었으면 해서 작성하였습니다. 시골에서 오리농사를 짓고 있던 한 촌부를 둘러싸고 있는 오해와 고정관념, 그리고 잘못된 인식을 국민 모두는 아니지만 네티즌만이라도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벗어 던졌으면 합니다. 노무현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노무현 경제에 대한 외국의 평가

1.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테크놀로지와 자동차, 제철, 조선기업 등의 본고장”
(미국 TIME지 아시아판: 05-11-14)

2.
"한국을 배워라 - 그들은 대국이 될 것이다"
이태리의 유력일간지 <꼬리에레 델라 세라 (2007년 2월26)>

3.
"한국은 SF가 현실이 돼가는 곳" "미국에서는 수년 뒤에나 소개될만 한
첨단 기술을 한국인들은 이미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다"

4.
아시아는 이미 한류에 젖은 지 오래다.
무엇보다도 일본·타이완과 태국에서는 청소년들이
한국 대중가요, 한국 연속극, 한국 배우들과 만화에 열광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2005-10-19, 사설)

교육면에서도 한국은 이미 다른 나라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으니, 한국 학생들은 자녀들이 최고의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열성적으로 지원하는 부모들 덕분에 피자(PISA)테스트 : OECD 국가 중심 전세계 고교생 학력 테스트에서도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 (2005-10-19, 사설)


5.
한국은 1인당 GDP가 2030년 독일을 넘어서고, 2035년에는
일본을 넘어서고 2050년에는 미국 다음이 될 것이다 - 미국의 <골드만 삭스>
(<도깨비뉴스>: 2005년 5월1일)

6.
"한국은 네트워크로 연결된 하이테크 국가"
"한국만큼 미래 경제를 새로운 정보기술(IT) 산업과 밀접하게 결부시키고 있는 나라는 없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2006. 4.24)

7.
"韓 1인당 소득.. 2050년 美 이어 세계 2위" - 미국의 골드만 삭스
(연합뉴스: 2007-03-29)

8.
'한국은 IT 세계챔피언' 세계 언론 앞다퉈 소개
르몽드 특집..."IT 코리아 뒤엔 한국정부 열정있다"
(연합뉴스: 2006-07-09)

9.
“한국, IT · 혁신 · 한류로 일본을 앞지르는 중”
(프랑스의 <르몽드: 2006년 6월 5일>)

10.
“인터넷강국 한국에 로봇시대 온다”(In a Wired South Korea,
Robots Will Feel Right at Home). “2010년 '1가정 1로봇'” (NYTIMES지)

11.
"여기에도 한국, 저기에도 한국, 어딜가나 한국(Coree ici, Coree la, Coree partout)"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인 한국의 스위스 수출은 지난해 20%가
늘어나 유럽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고 말했다.
(스위스의 『르 탕』지: 2006-4-21)

12.
'미국이라는 제국이 몰락하고
한국이 세계 11대 강국이자 아시아 최대의 경제국으로 부상한다'
-미래예측학자이자,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 (YTN: 2007-04-15 )

13. "한국은 시대를 따라가는 나라일 뿐만 아니라 미래를 창조하는 나라"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테크놀로지, 자동차, 제철, 조선기업들의 본고장이다.
한국은 이제 초고속열차와 컴퓨터로 통제되는 김치 냉장고의 나라가 되었다"
미국의 <타임> 아시아판 (05.11.14)

14.
獨 언론, "한국 기업들 질주 무섭다"
"2004년 한국의 531개 상장기업들은 평균 2배의 수익을 올렸다.
이러한 성장 다이나믹은 늙은 유럽으로서는 꿈을 꿀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독일의 (노컷뉴스: 2005-4-9)

15.
"미국인구의 6분의 1에 그치는 인구를 가진 한국에서
배출되는 기술 인력이 미국과 맞먹는 상황"
(뉴스위크는 2006 10대 이슈 특집에서)

16.
˝한국, 구매력 기준 국민소득 10년내 일본 추월˝-영국 바클레이즈증권 발표
(연합뉴스: 2002-07-04)

17.
"한국은 최근 IT분야에서 막강한 신기술을 보유한 하이테크
이미지를 구축해 가고 있다" -킴 루오또넨 주한 핀란드 대사
(머니투데이: 2005-12-07)

18.
‘앞으로의 세계는 IT와 BT가 이끌어갈 텐데
전 세계적으로 이것을 가장 잘 할 민족이 바로 한민족’-엘빈 토플러 (미국의 미래학자)
(데일리서프라이즈: 2005-10-08)

 

해외 유력 신문인 인터네셔널 헤럴드 트리뷴이
"역사는 2월 퇴임하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존경을 안겨줄 것"이라고 논평하였다.

아래는 원문입니다.
http://www.iht.com/articles/2007/12/28/news/letter.php?page=2

 

 

Shuffled off to history, veneration of Roh Moo Hyun will follow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갈 노무현 대통령에게 존경 따를 것'

By Howard W. French Published: December 28, 2007


In recent years, South Korea, the prosperous, democratic half of a country once known as the Hermit Kingdom, has provided us with as good a reminder of this as anyone. When Roh Moo Hyun was elected president in 2002, few would have predicted that the ballot choices of his country's 35 million registered voters would have played a determining role in international affairs over the next several years. And yet that is exactly what transpired.

Roh is leaving office as a deeply unpopular leader, a man lampooned as ineffectual, undisciplined and, for some, even mischievous. Seen narrowly, such a reputation would suggest the slimmest of legacies.

At least one thing that Roh believed in deeply will prove to have mattered greatly and will very likely stand the test of time, however, lending unexpected importance to his role and to the role of his country well into the future.

The South Korean leader was strongly attached to the idea of rapprochement with the estranged northern half of his country. In the end, this meant holding his ground under the most trying of circumstances, including a gale of hostile language directed at Stalinist North Korea from Seoul's most important ally, the United States, whose president, George W. Bush, branded it a member of the "axis of evil."

Few Americans outside of the small community of specialists in East Asian affairs have any sense of the role played by Roh. Indeed, exasperated with Roh over other issues, South Koreans appear not to give him much credit, either.

What we do know now, however, is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spent the new few years, following the famous 2002 State of the Union speech in which he first pronounced the words "axis of evil," fighting a war in one of the constituent countries, Iraq, and steadily ratcheting up pressure on another, Iran.

For a time, tensions rose strongly with the third country, North Korea, too, especially after its leader, Kim Jong Il, expelled international atomic inspectors and exploded a nuclear device. Pyongyang's nuclear breakout surely helps explain why the United States has not chosen a more confrontational approach, as it did with the other so-called axis members, but one could argue that the behavior of the supposedly feckless Roh was equally important.

Under the circumstances, avoiding conflict and enhancing engagement required a huge dose of determination and considerable diplomatic skill. At times, Washington was furious at what it perceived as Seoul's appeasement of the North, so much so that people in both countries worried about irreparable damage to the alliance.

At considerable cost to his popularity back home, Roh, who was elected 11 months after the "axis" speech, bought diplomatic maneuvering space for himself, if not outright credibility in Washington, by becoming an early joiner of the "coalition of the willing" and sending troops to Iraq.

It is, of course, impossible to know what might have happened had South Koreans elected a more hawkish leader, or simply a more compliant one. It is not far fetched to imagine, however, that the Bush administration could have taken a more confrontational approach toward North Korea than the path it ultimately settled upon.

What is certain, however, is that with an elected leader in South Korea insisting that his country would oppose any military solution to the North Korean crisis, Washington had few practical options other than to gradually reconcile itself to diplomacy.

North Korea profited from the interlude of saber-rattling to strengthen its negotiating hand, and in the end it was negotiations that eventually produced a rare diplomatic understanding between Washington and Pyongyang about nuclear proliferation and eventual normalization of relations.

South Korea has just elected a new leader, Lee Myung Bak, and it is far too soon to say what sort of impact he might have on this region's complicated diplomatic geometry.

For his part, Roh will soon shuffle off into history, reviled, belatedly celebrated, or perhaps simply largely ignored. And yet his was the kind of example that we must start being more accustomed to: the leader of a peripheral, medium-sized state having an outsized impact on the shape of our world.

 

[해석]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갈 노무현 대통령, 존경받을 것

(Shuffled off to history, veneration of Roh Moo Hyun will follow / 미국 International Herald Tribune 인터넷판, 12.28, Howard W. French, 상하이發)

언제쯤 한 국가의 선거가 유권자 본인에게 더 이상 중요치 않은 사안이 될까?

미국의 선거장정이 막을 올리기 직전, 미국인들은 위의 질문을 자문해볼 법도 하다. 무엇보다 세계 각 지역 사람들은 여러 해 동안-물론 선거권은 없지만-미국의 정치를 따르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고, 미국의 선택이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더더욱 잘 알고 있다.

미국주도의 이라크 전쟁과 對테러 전쟁이 국제정치무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무역 및 재정적자가 글로벌 시장을 좌우하는 시대에, 이와 관련된 예시들은 선뜻 생각나게 마련이다.

 

그러나 강력한 의제를 만들어 내기 위해,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 될 필요는 없다. 다수 전문가들은 그 초강대국마저도 상대적 세력이 퇴조하고 있다고 믿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또한, 국제문제의 조류에 큰 영향을 행사하기 위해 굳이 중국처럼 빠르게 떠오르는 강대국이 될 필요도, 러시아처럼 외견상 재기하는 국가가 될 필요도 없다.

 

우리는 상호 맞물린 세계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진부하게 여겨질 만큼 그런 세계에 관해 논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양극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대칭적 질서와 불분명하기는 하나 더욱 복잡해질 것이 분명한 미래를 사이에 둔 과도기적 순간에, 중요한 정책들이 공백상태에서 결정되는 일이 좀처럼 없다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때 은둔의 왕국으로 알려지기도 했던 한반도의 한쪽 절반인 풍요로운 민주국가 한국은, 지난 몇 년간 우리에게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상기시켜주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002년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3천5백만 유권자들의 선택이 향후 몇 년간 국제문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정확하게 그런 일이 일어났다.

 

노 대통령은 무력하고 규율도 모르며 언행이 방정치 못한 사람으로까지 풍자되며 국민들의 지지를 얻지 못한 지도자로서 퇴임하게 된다. 이러한 평판을 편협한 시각으로 본다면, 노 대통령이 남긴 유산이 지극히 적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노 대통령의 신념 한 가지는 대단히 중요했다는 것이 입증될 것이며 분명 시간의 시험을 견뎌낼 것이고, 앞으로 먼 미래에 이르기까지 노 대통령과 한국의 역할에 기대치 않았던 중요성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지도자 노 대통령은 소원해진 북한과의 화해노선을 강력하게 고수했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한국의 맹방인 미국이 독재국가 북한에게 대놓고 적대적 발언을 쏟아내는 등 극도로 지치는 상황에서 자신의 기조를 유지하는 것을 뜻했다.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바 있다.

 

소수 동아시아 문제 전문가들을 제외하면, 노 대통령이 했던 역할이 무엇인지 인식하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북한을 제외한) 다른 문제들로 노 대통령에게 격분해 있는 한국인들 역시 그를 신뢰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것은 부시가 “악의 축”이라는 단어를 처음 사용했던 저 유명한 2002년 국정연설 이후 몇 년간을, 악의 축의 일부인 이라크와 전쟁을 하면서 그리고 악의 축의 또 다른 일부인 이란에 대한 압력의 수위를 꾸준히 높이면서 세월을 보냈다는 점이다.

 

북한 지도자 김정일이 국제 핵 사찰단을 추방하고 핵무기를 실험한 뒤로, 한동안 북한과의 긴장이 크게 고조되기도 했다. 북한의 핵 돌파구는, 미국이 다른 “악의 축”들을 대하는 것과는 달리, 왜 북한에 대해서는 대결적 접근을 지양하게 됐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는데 분명 도움이 된다. 일각에서는 무능하다고 했던 노 대통령의 태도도 마찬가지로 주요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등을 피하고 포용을 강화하는 것은 엄청난 결단과 상당한 외교적 수완이 요구됐다. 이따금씩 미국이 한국의 대북 유화정책에 격분한 나머지, 양국 국민들마저 동맹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해를 입지는 않을까 우려했다.

 

“악의 축” 발언이 나온 지 11달 후에 선출된 노 대통령은, 고국에서의 지지율에 상당한 타격을 입으면서, 미국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는 아니더라도, 유지동맹(有珍盟)에 동참하고 이라크에 군을 파병함으로써 외교적인 여지를 얻어냈다.

물론, 한국인들이 더욱 호전적인 지도자 혹은 더욱 고분고분한 지도자를 선택했다면 어땠을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해, 이미 닦아놓은 노선보다 더욱 대결적 접근을 할 수도 있었다는 상상을 해보는 것이 그다지 억지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북한 위기에 대한 군사적 해결을 반대하겠노라 고집하는 지도자가 선출된 이상, 미국은 점차 외교적으로 타협을 보는 수밖에 달리 현실적인 방도가 없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북한은 협상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위협으로 막간을 두어 득을 보았고, 미국과 북한 간에 핵확산과 관계정상화에 관한 외교적 이해를 이끌어낸 것은 결국 협상이었다.

 

한국은 이제 막 새로운 지도자 이명박을 선출했으며 이 당선자가 복잡한 역내 외교구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하기는 시기상조다.

 

노 대통령으로 말하자면, 곧 역사의 뒤안길로 들어가 매도되고 뒤늦게 축하를 받든지, 아니면 그저 묻혀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는 우리가 더욱 익숙해져야할 선례였다. 세계의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친, 고만고만한 주변국가(peripheral, medium-sized state)의 지도라라는 점에서 말이다. (언)

 

저는 이 사진을 매우 좋아합니다. 두 분의 눈높이를 한번 보세요. 노인의 순한 눈빛과 그의 노인에 대한 공경의 눈빛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노인과 그의 악수는 다사다난했던 한 시대를 살아온 두 촌부의 공감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 이 나라에서 낮은 위치라 여겨지는 서민과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이의 장벽없는 모습에 괜히 흐믓해집니다. 그래서 전 이 사진을 좋아합니다.

썰매 타시는 노간지

*출처 : http://www.radio21.tv/new0904/zboard.php?id=onair07&page=1&page_num=90&select_arrange=headnum&desc=&sn=off&ss=on&sc=on&keyword=&category=&no=10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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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0>_719448

... from the Ed Sullivan show (Aug 14, 1965) (14.2 MB, mpeg, b&w)
The Beatles taped 6 songs for the September 12 Ed Sullivan Show,
including this performance of Help! in which John messes up the lyrics.

[PLAY]
460>_719449

... at Twickenham film studios, London (Nov 23, 1965) (22.5 MB, mpeg, b&w)
This one is that third promo filmed of I Feel Fine in which The Beatles were
on the set of the first promo eating newspaper wrapped fish and chips.

[PLAY]
460>_719450

... at Twickenham film studios, London (Nov 23, 1965) (7.27 MB, mpeg, b&w)
Two versions were mimed for TV shows. This one has John, Paul and George wearing turtlenecks while Ringo rides an exercise bike. The other has clips of
The Beatles backstage and in dressing rooms. A third promo was filmed of The Beatles on the set of the first promo eating newspaper wrapped fish and chi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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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 Twickenham film studios, London (Nov 23, 1965) (8.89 MB, mpeg, b&w)
For this one The Beatles were in turtleneck sweaters and overcoats and mimed playing. Ringo stood behind, disinterested in miming his drumming with just sticks. The backdrop was a train ticket blowup. An orchestral version is barely audible in the fadeout at the very end of newer CD issues of the Pink Floyd album The Dark Side of the Moon. Probably a mistake in remastering: coincidentally both groups were well-known patrons of Abbey Road Stu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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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 Twickenham film studios, London (Nov 23, 1965) (3.99 MB, wmv, b&w)
A combination of three different takes: 1) wearing their Shea Stadium jackets and turtlenecks. Train and plane facades are in the background and foreground and Ringo saws out part of a train window; 2) in suits and ties, on a construction site and 3) similar to the second one except for Ringo's actions. They are dressed in suits and ties and mime the song in their standard performance l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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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 Twickenham film studios, London (Nov 23, 1965) (3.74 MB, wmv, b&w) This clip is a combination of four different versions they made: 1) wearing turtlenecks and jackets, John playing the organ and making faces and whistling at the camera, Ringo looking completely bored and never smiled and George sitting down half way through on the drum stand; 2) wearing their Shea Stadium outfits; 3) in suits and ties and 4) that is almost the same as the 3rd except for the opening with a still of John with a sunflower over his e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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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 Twickenham film studios, London (Nov 23, 1965) (7.62 MB, mpeg, b&w)
That day The Beatles mimed some versions of some of their last songs for TV shows such as U.S.'s "Hullabaloo", BBC's "Top Of The Pops" and "Thank Your Lucky Stars". This version of Help! has The Beatles sitting on a sawhorse, all holding instruments except Ringo who holds an umbrella to shield them from 'snow', which was actually confetti. They wear turtlenecks and jack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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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 different locations while filming Help! (Spring 1965) (31.4 MB, wmv, colour) This footage shows The Beatles at several exotic foreign locations (the Bahamas, Switzerland) while they were filming Help!. They can be seen with the crew and Richard Lester, among others. Afterwards they were hesitant to begin another film project, and indeed Help! was their last full-length scripted theatrical fi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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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 Twickenham film studios, London (April 22, 1965) (22.9 MB, mpeg, b&w)
Among the film's original working titles were 'Beatles Phase II' and, what would have been Walter Shenson's suggested title, 'Eight Arms To Hold You'. The Beatles said the film was inspired by the Marx Brothers' classic Duck Soup; it was also directly satirical of the James Bond series of films. The Beatles did not particularly enjoy the filming of the movie, nor were they overly pleased with the end product. John said in 1970 they felt "like extras in their own mov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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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이혼(합의이혼) 일때 위자료, 재산분할은 어떻게 하나요?

http://www.happyend.co.kr/sub000/Study.aspx?LeftTabId=12

 

http://kin.naver.com/detail/detail.php?d1id=6&dir_id=60503&eid=1vVEMjX4Ds7vcftZDX1r3jvl+QMABrB7&qb=x/nAxyDAzMilILrQx9IgtOu78yDA57vq&enc=euc-kr&pid=fkzOodoi5UCssb0XdVNsss--088946&sid=SbzdECrEvEkAAGx46go

 

 

협의이혼(합의이혼) 일때 위자료, 재산분할은 어떻게 하나요?

jung25

답변채택률 52.8%

2005.12.22 10:41

질문자인사 감사합니다.

  위자료란?
 
@ 위자료란?


위자료란 이혼을 할 경우에 혼인관계를 파탄상태에 이르게 한 유책배우자로 인하여 입게 된 정신적 고통을 위로하기 위한 것으로, 말하자면 이혼으로 인하여 심리적으로 받게 된 충격. 번민. 슬픔. 불명예 등 ‘이혼 그 자체로 인한 고통’과 부정행위. 부당대우 등 ‘이혼원인인 개별적 유책행위로 인한 고통’을 위로하려는 것입니다.

우리 민법은 이혼의 경우 당사자의 일방은 과실이 있는 상대방에 대하여 재산상의 손해 외에 정신상의 고통에 대하여도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민법 제843조, 제806조).

 

  위자료의 산정기준
 
@ 위자료의 산정기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이혼 등의 불법행위로 인하여 상대방에게 입힌 정신적인 고통을 위자하기 위한 금액의 산정은 재산상의 손해와 달라서 반드시 이를 증거에 의하여 입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법원은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여 직권에 의하여 그 액수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인 즉,

책임 있는 배우자(유책배우자)에 대한 위자료 액수를 산정함에 있어서도 유책행위에 이르게 된 경위와 정도, 혼인관계 파탄의 원인과 책임, 배우자의 연령과 재산상태 등 변론에 나타나는 모든 사정을 참작하여 법원이 직권으로 결정할 수 밖에 없다"라고 밝히고 있는 바,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혼인파탄의 원인(이혼 사유)

2) 유책정도(잘못을 저지른 배우자로부터 받은 정신적 고통의 정도)

3) 혼인기간 및 혼인생활의 실정

4) 당사자의 학력, 경력. 연령, 직업 등 사회적 신분사항

5) 재산상태 및 생활정도

6) 자녀 및 부양관계

7) 이혼의 가능성


결국 위자료의 산정은 법원이 직권으로 결정할 사항이지만, 실무상으로는 이혼사유. 유책정도, 재산상태 및 생활정도, 동거기간 등이 위자료 산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재산분할이란
 
@ 재산분할이란


재산분할청구권이란 이혼한 부부의 일방이 혼인 중 부부가 협력하여 이루어놓은 재산(공유재산)을 나누어갖자고 법원에 청구하는 것(민법 제839조의 2)을 말합니다.

이러한 재산분할 청구권은 협의상 및 재판상 이혼 시(843조), 혼인취소 시{가사소송법 제2조 제1항 나(2)4호}에 인정되고 있습니다.


@ 재산분할의 취지


재산분할 청구권은 부부가 이혼하여 생활공동체를 해산하고 재산관계를 청산하는 경우, 이때 혼인 중에 취득한 재산이 일방의 명의로 되어 있는 경우 혼인생활에 협력하여온 타방의 기여도(예를 들면, 처의 가사노동)를 반영하여 공유재산을 실질적으로 청산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이혼 후에 생활능력 있는 쪽이 없는 쪽을 부양하도록 하는 것이 공평할 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 경제적 약자인 일방이 이혼후의 경제생활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강자인 상대방의 학대 등 부당한 대우를 받도록 용인하는 것은 혼인생활의 실질에 반하므로, 이혼 시 부부가 협력하여 이루어놓은 재산을 분할함으로써 양성의 평등을 기하고자 하는 제도입니다.

@ 재산분할과 위자료의 상관성

위자료 액수는 위와 같은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여 법관이 재량으로 결정하나, 1991.1.1 재산분할청구권이 도입된 이래 종래의 재산 분할 적 요소를 배제하고 순수하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 적 요소만 고려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부부공동재산이란?
 
@ 부부 공동재산이란?


재산분할의 대상이 되는 것은 ‘혼인 중 부부가 협력하여 이루어 놓은 공유재산’을 말합니다.

따라서, 1. 혼인 전부터 부부 중 일방이 가지고 있던 재산, 2. 혼인 중에 일방이 상속, 증여 등에 의하여 취득한 재산, 그리고 일방이 전유물이라고 할 수 있는 장신구. 의류 등(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분할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부부가 합의하여 공유로 한 재산, 부부 공동명의로 취득한 재산, 혼인 중에 공동생활을 위하여 취득한 가재도구 내지 재산은 분할의 대상이 됩니다.

또한, 소유의 명의는 일방에게 있지만 실질적으로 혼인 중에 부부가 협력하여 취득한 재산, 예금, 주식, 부동산 등은 재산분할의 대상이 됩니다. 다만, 부부일방의 명의로 된 재산은 명의자의 특유재산으로 추정되므로 분할을 청구하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부부의 공유재산임을 주장하고 입증하여야 합니다.

또한, 부부의 일방의 특유재산은 원칙적으로 분할의 대산이 되지 않으나, 공유재산은 없고 오로지 이러한 특유재산만 있는 경우, 그 타방이 위 특유재산을 유지. 증가 등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고 보는 경우에는 공평의 관점에서 재산분할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위와 같은 기여도를 얼마로 평가하느냐는 법원이 여러 가지 사정을 참작하여 재량적으로 판단합니다.


참조1) 퇴직금은 일방이 이미 받았거나 가까운 장래에 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부부의 협력에 의한 재산으로 보아 청산의 대상이 됩니다.


참조2) 공동재산은 없으나 상대방이 혼인 중에 장래의 고액의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의사, 변호사 등의 자격을 취득한 경우에는 장래의 재산취득예상액도 청산의 대상이 됩니다.


참조3) 당사자 일방이 제3자에게 부담한 채무는 그것이 일상가사대리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한 채무를 분할하지는 않으나, 주택융자금이나 혼인생활비 등 과 같이 부부생활에 소요된 비용은 개인채무라도 분할의 대상이 됩니다.

 

  재산분할의 기준
 
@ 재산분할의 내용


이혼과 함께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당사자들의 대부분은 이혼보다 얼마 정도의 재산분할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가장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일반적으로 재산분할의 비율은 결혼 생활 동안 재산형성에 있어서 부부의 기여도를 기준으로 하게 되는데, 이러한 기여도도 수량화한다는 것이 어려우나, 실무상으로는 혼인기간, 혼인 중 생활정도, 유책성, 현재의 재산정도(자산, 수입, 직업), 장래 전망(연령, 취업가능성, 건강상태, 재혼가능성, 자활 능력 등), 요 부양자 유무 등을 고려하게 됩니다.

재산분할은 재판상이혼이 되는 경우에 주로 문제되는데, 부부관계가 파탄에 이르고 난 후 현실적으로 재산분할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소요되는바, 재산증감, 물가변동등으로 아니하여 언제의 재산을 기준으로 분할할 것인가에 대하여, 대법원 재판상 이혼을 전제로 한 재산분할에 있어 분할의 대상이 되는 재산과 그 액수는 이혼소송의 사실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하여 정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0.5.2. 선고, 2000스13 판결 등 참조)

출처 : 해피엔드 이혼상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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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집회=폭력화” “평화적 촛불집회 많아”

야간집회=폭력화” “평화적 촛불집회 많아”

한겨레 | 입력 2009.03.12 20:00 | 수정 2009.03.12 23:10

 

 




[한겨레] 헌재 '야간 옥외집회 금지' 공개변론…'합헌' '위헌' 대립 팽팽

"야간 옥외집회이기 때문에 폭력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 아니면 야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단속을 하다보니 폭력 문제가 발생한 것인가?"(송두환 재판관) "촛불집회는 초기에는 평화적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폭력적으로 된 것을 보면 단속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이귀남 법무부 차관)

12일 헌법재판소에서는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조항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공개변론이 열렸다. 이날 변론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의 재판 개입 파문의 중심 사건 격인 안진걸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팀장 사건과 관련해 제기된 위헌제청에 따른 것이다. 특히 법무부는 이례적으로 이귀남 차관이 변론에 나섰다.

송 재판관의 질문에 앞서 이 차관은 "촛불집회가 규모가 커지고 장기화되면서 과격화·폭력화된 사실, 야간이 되자 익명성에 기대 전경버스를 전복하고 청와대 진격까지 시도했던 사실 등을 보면 우리나라의 야간 옥외집회의 위험성이 얼마나 심각한지 쉽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송 재판관은 "(폭력 발생의) 원인과 결과가 악순환된 점은 없는지"를 확인하려 했지만, 이 차관은 '폭력적이어서 폭력적이었다'는 식으로 답변했다. 이 차관은 또 "강력한 표현수단인 인터넷"의 등장으로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미네르바 사건을 언급했지만, '미네르바' 박아무개씨가 구속된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위헌제청 신청인 쪽 대리인인 김남근 변호사는 "정부는 평화로운 촛불집회조차도 야간에 이뤄졌다는 이유로 처벌했다"며 "일몰 이후에 집회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것은 주간에 생업과 학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박주민 변호사도 "전체 집회 가운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것은 0.5%에 불과하다. 폭력이 발생하는 경우도 법무부 의견서에도 나오듯이 경찰이 과도한 병력을 투입해 해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법무부는 야간 집회의 폭력 사례를 부각시키는 동시에 2002~2008년 야간 옥외집회 40건이 허용된 점을 들어, 야간 옥외집회가 원천적으로 금지됐다는 청구인 쪽 주장을 반박했다. 하지만 헌재 관계자는 "법무부 등이 제출한 자료에서도 주간과 야간의 폭력 발생에 의미 있는 차이가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종대 재판관은 집회의 사전 허가를 금지한 헌법 21조2항이 '87년 체제'의 산물임을 거론하며 이 조항이 신설된 취지를 법무부 쪽에 물었다. 이에 김희준 법무부 공판송무과장은 "집회의 자유를 다른 기본권보다 좀더 강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답하기도 했다.

한편, 법무부 차관이 변론에 참여한 것을 두고 법무부가 '정치적' 사건에만 관심을 보인다는 지적이 나온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평소 법무부가 교통사고처리특례법 등 중요한 민생법안의 위헌 여부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것과는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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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집회 허용되면 큰 혼란" - "과잉규제로 전과자 양산"

오마이뉴스 | 입력 2009.03.12 21:34

 

 




[오마이뉴스 손병관 기자]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현행 법의 위헌 여부를 둘러싼 법무부와 참여연대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12일 헌법재판소에서 펼쳐졌다.

논란이 되는 법 조항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하 집시법) 10조. 집시법은 "누구든 해 뜨기 전이나 해진 후에는 옥외집회를 해서는 안 된다. 다만, 부득이한 상황에서 미리 신고하면 관할 경찰서장이 질서유지 조건을 붙여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 21조2항과 모순된다는 것이 위헌신청 변호인단의 주장이다.

집시법 10조에 대한 헌법소원은 작년 10월 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 판사가 안진걸 참여연대 사회경제국장의 신청을 받아들여 헌재에 제청함으로써 이뤄졌다. 헌재는 94년 4월 동일한 안건에 대해 8대 1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날 공개변론에는 정부 측 대리인으로 이귀남 법무부 차관이 참석해 정부 논리를 설파했다. 헌재의 공개변론에 정부의 실·국장급 실무자가 아니라 차관이 직접 나선 것은 이례적인 일로 풀이된다.

이 차관은 "우리나라의 집회문화는 선진국보다 더 격렬하고 폭력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야간집회의 정도는 더 심하다"며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2~3시에 구호를 외치며 심야의 평화를 깨뜨리는 소란스러운 집회 상황을 생각해보면, 왜 규제가 필요한 지 쉽게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차관은 "특히 지난 주말에 열린 용산참사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관 16명을 폭행하고 무전기 6대를 빼앗는 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한 시간이 오후 9∼11시였다"며 "이는 집회 참가자들이 야간이 되면 어떻게 변모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또한 이 차관은 "미네르바 사태에서 보듯 인터넷의 등장으로 사회적 소수자들도 강력한 표현수단을 새로이 획득했으므로 집회의 자유에 여타 기본권보다 우월적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는 전대미문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데, 야간 집회·시위를 허용하면 우리나라는 과격폭력시위로 큰 소란에 빠지고 막대한 사회 비용을 치를 것이다. 헌정 질서는 작은 혼란에도 쉽게 동요되어 붕괴되기 쉽지만, 이를 다시 세우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재판관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란다."

경찰청장을 대리한 서규영 변호사도 "지난 촛불집회는 당초 기대와 달리 폭력·불법 집회로 변질됨으로써 헌법상 집회·시위의 자유를 인정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며 "이는 역설적으로 야간 옥외집회 규제가 필요한 대표사례가 되어버렸다"고 주장했다.

서 변호사에 따르면, 2002~2008년까지 야간집회 신고 건수는 52건으로 이 중에서 허용된 게 40건(약 77%). 집회주관단체의 폭력시위 전력 등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현행법에서도 야간집회를 융통성 있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위헌 결정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서 변호사는 "심각한 국론분열과 장기간의 대립·반목, 소모적 논쟁을 야기한 촛불집회로 인해 우리는 엄청난 대가를 치렀다"며 집시법 '합헌' 결정을 강력히 주문했다.

반면, 안 국장의 형사재판 변호인을 맡고 있는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는 "일몰 기준으로 야간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현행 집시법은 평일 퇴근시간 이후가 아니면 집회에 참여할 수 없는 시민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처럼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독일과 프랑스도 각각 '주거지역'과 '주요 간선도로' 등으로 특정장소에서의 집회를 제한하고 있을 뿐이지, 야간 옥외집회를 전면금지하는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고 한다.

"야간집회라고 해도 작년 5월 말 이전의 집회는 평화롭게 치러졌고, 일부 시민들의 폭력에도 대다수 시민들은 이를 말리며 비폭력 기조를 견지했다. 그런데 야간 집회에 단순히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50만원의 벌금형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잉 규제로 인해 전과자가 대량 양산되고 이것이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낳는 셈이다."

박주민 변호사(박주민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운영위원)도 "야간집회를 허용하면 폭력충돌이 늘어난다는 법무부의 주장은 억측에 불과하다"며 "야간집회 금지를 뒷받침하는 법무부 의견서에조차 '시위대 해산을 위해 대규모 경찰병력을 투입했을 때 오히려 물리적 충돌이 늘어나고 있다'고 되어있다"고 말했다.

박 변호사는 "법무부·검찰·경찰 모두 우리나라 집회문화의 폭력성을 강조하는데, 집회·시위를 엄격하게 관리하는 독일에서 97~99년 전체 집회 중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발생하는 비율은 2.7%에 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0.6%에 불과하다"는 말도 했다.

참고인으로 나온 연세대 김종철 교수(위헌)와 부산대 김승대 교수(합헌)의 입장도 팽팽했다.

김종철 교수는 "과거 헌법에서 '집회의 자유를 법률로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가 1987년 민주화 이후 헌법을 개정하면서 이를 삭제한 것은 헌법이 '집회의 자유를 법률로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사 출신의 김승대 교수는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현재에 이르러 타인의 기본권을 무시하는 무제약적인 집회와 시위는 더 이상 용인되어서는 안된다"며 "야간집회를 금지하면서도 부득이한 경우 야간집회가 가능하기 때문에 현행 허가제를 위헌으로 볼 수 없다"고 맞섰다.

헌법재판관들의 질문은 주로 폭력과 야간집회의 상관성에 집중됐다.
송두환 재판관은 "법무부는 '야간집회일수록 폭력성이 더 하다'고 주장했는데, 법무부의 1993~2004년 통계자료를 보니 폭력집회의 주간 대 야간 발생비율이 68.9% 대 31.1%로 나왔다"며 "야간이라 폭력 집회가 많은 것인지, 야간 집회에 대한 경찰 단속에 따라 폭력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인과관계가 불명확 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 김희준 송무국장은 이에 대해 "(주간보다) 야간의 폭력 건수가 적은 것처럼 보이지만, 심각한 폭력 행사는 야간에 늘어나는 추세"라고 답했다.

이동흡 재판관이 "야간에 심리적으로 난폭해지고 범법행위 채증도 어렵다는 우려가 있다"고 견해를 묻자 청구인측 김남근 변호사는 "시위대가 과격해지는 것은 시간대보다는 집회내용으로 더 좌우된다"고 설명했다.

이귀남 법무차관 "집회 자유는 제한 가능"

연합뉴스 | 입력 2009.03.12 15:19 | 수정 2009.03.12 15:38 | 누가 봤을까? 30대 남성, 광주

 

 




헌재 `야간 옥외집회 금지' 憲訴 공개변론
김남근 변호사 "야간 집회 금지는 기본권 침해"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이귀남 법무부 차관은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한 법률의 위헌 여부를 따지는 공개변론에 출석해 "집회의 자유는 절대적 기본권이 아닌 상대적 기본권으로 법률상 제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12일 오후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위헌법률심판 제청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어 찬반 의견을 들었다.

이 차관은 "야간 옥외집회는 폭력 집회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고 시민들의 수면권 등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어 규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야간 옥외집회의 경우에도 추가적 허용 규정을 두고 집회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며 "제한에 예외를 두고 집회의 자유를 넓게 인정해주는 단서 규정을 사전허가제라고 주장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집시법 10조는 `누구든 해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 집회를 해서는 안되지만 부득이한 상황에서 미리 신고하면 관할 경찰서장이 질서유지 조건을 붙여 허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 제21조에 따르면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규정해 사전허가 금지 원칙을 취하고 있다.

쟁점은 야간 옥외집회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부득이한 상황에 한해 허가하는 관련 법률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여부이다.

경찰청장 대리인인 서규영 변호사도 "야간 옥외집회는 주간 집회보다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침해할 개연성이 높다. 평화적ㆍ합법적 시위문화가 정착됐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야간 옥외집회 금지는 공익 달성을 위한 정당한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김남근 변호사는 "위험성이 현존하지 않는데도 폭력 시위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야간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라며 "게다가 대부분의 시민은 퇴근 시간대에 집회에 참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몰 기준으로 저녁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또 "외국의 경우 주거지역이나 도로 등 특정 지역에서의 집회를 금지하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옥외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경우는 없어 이 또한 기본권 제한"이라고 설명했다.

박주민 변호사도 "법무부는 야간 집회가 허용되면 사회혼란이 가중될 것이라고 말하지만 전체 집회 가운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 경우는 0.5%에 불과하다"며 "야간집회가 허용되면 폭력집회가 난무한다는 것은 억측"이라고 밝혔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재판 개입 의혹을 촉발한 이번 사건은 지난해 10월13일 박재영 전 판사가 해당 법률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후 일부 촛불재판 판사들이 헌재의 판단을 기다려보자며 재판을 중단하자 신 대법관은 조속한 재판을 촉구하는 취지의 이메일을 보냈고 이로 인해 신 대법관이 재판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편 헌재는 1994년 4월 해당 법률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고 박 전 판사는 올해 2월 정기인사를 앞두고 사표를 냈다.

jesus786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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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옥중에서도 ‘한국경제 먹구름’ 보고서 제출

 

 

미네르바, 옥중에서도 ‘한국경제 먹구름’ 보고서 제출
 
19쪽분량 판사에 제출 “경기는 후퇴, 성장은 마이너스” 예측
 
입력 :2009-03-12 07:42:00  
 
 
   
[데일리서프] 포털사이트 다음의 토론방 아고라에서 ‘미네르바’란 아이디로 활약하다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전기통신기본법 위반)로 구속수감 중인 박 모(31)씨가 세계 금융 위기와 한국 경제를 분석, 전망하는 19쪽짜리 보고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그의 변론을 맡고 있는 김갑배 변호사(전 대한변협 법제이사)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 11일 A4용지 19쪽 분량의 옥중보고서를 자필로 작성해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유영현 판사에게 제출했다.

박 씨는 보고서에서 세계 및 아시아 각국의 경제 위기 등과 환율 폭등을 비롯한 최근 우리나라 경제 상황 등에 대해 분석했다. 박 씨는 이 글을 서적이나 인터넷 도움 없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씨는 보고서에서 “80%에 육박하는 무역의존도와 IMF로 인한 높은 대외 개방도로 인하여 외국인 투자감소와 자금이탈과 무역금융 감소에 따른 수출부진과 무역위축과 그에 따른 환율불안 등의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한국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내려서 유동성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생각”이라며 “이미 지금 상황은 통화정책으로는 소비와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무리인 부분적으로 유동성 함정의 리스크 징후들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또 “미국, 일본, 중국은 디플레이션 초기 대응전략으로 기조가 가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는 디플레이션이 아닌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상황 인식하에 경기 하강과 –2~-4%이하의 성장률을 겪는 이색적인 체험을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 씨는 “이런 상황에서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구매 여력은 과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상쇄시켜 주느냐에 따라 경기 회복속도가 2009년 연내일지 2011년으로 대폭장기침체로 빠지는지가 결정된다”면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정지출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는 2009년 3/4분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 리싸이클의 회복 속도가 결정된다. 그에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경기방어전략이 달라진다”고 내다봤다.

김갑배 변호사는 “박씨가 구치소에서 다른 수용자에게 빌린 신문을 읽거나 하루에 한 시간가량 TV를 시청하는 것 외에 별다른 경제 서적이나 인터넷의 도움 없이 쓴 글”이면서 “그동안 작성했던 글에 관한 세간의 의문점을 해소하고, 그가 외부와 차단된 상태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민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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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미네르바 박 모씨가 법원에 제출한 보고서 전문.

현재 글로벌 경제 위기에 따른 한국 경제의 위기라는 걸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1997년 제1차 IMF 사태가 왜 발생하게 되었는가 하는 데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 이유는 지금의 한국 경제 상황이라는 것은 1997년 제 1차 IMF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IMF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그 후의 한국에서의 IMF사태, 그리고 현재 동유럽 사태에 대한 상호 연관성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IMF 탄생 배경

1997년 하반기 한국경제는 IMF 사태라는 특수한 경제 위기 상황을 겪게 된다. 그래서 한국 국내에서는 IMF사태라는 것이 일종의 고유명사로 사용된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상황의 뿌리와 그 근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IMF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약간 진부한 이야기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때는 1929년 미국 대공황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1930년대 대공황 이전에는 미국과 유럽간의 통제 받지 않는 무제한적인 자본의 상호 이동이 가능하였다. 그 당시에는 이런 상호 자본 이동에 제한이 없을 때에만 비로소 그에 따른 시장이윤 창출이 극대화 될 수 있다는 것이 종교적 신앙처럼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브레튼우즈 체제의 모태가 되는 케인즈는 그렇게 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기인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초토화 된 유럽에 투하된 자본이 당시 무역 흑자국이던 미국에서 → 유럽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고, 유럽에서 → 미국으로 역류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하여 실물경제 재건에 사용되어야 할 자본이 미국시장으로 역류하게 되는데 이를 케인즈는 투기자본이라고 불렀다.

이런 문제점들을 지켜보면서 1944년 미국 뉴햄프셔에서 소위 브레튼우즈 체제라는 것이 만들어 지게 된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핵심은 모든 회원국들의 통화는 달러에 대한 고정환율로 정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막대한 유동성 자본에 대한 족쇄로 제약과 통제가 따랐지만, 이것은 자본왕래에 따른 이윤 창출의 제한이 엄청난 성장률을 보이는 국제 상품 무역으로 보완이 되는 결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하여 파생된 보완장치 성격의 기관이 IMF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것이다. 즉 케인스가 유도하고자 하였던 국제 자본 유동성에 따른 폐해를 고정 환율의 안정적인 통화시스템 하에서 상품교역으로 보완하고, 이 과정에서 IMF(국제통화기금)는 대규모 무역적자와 국제 수지적자를 겪는 나라에 다시 신용대출을 해 줌으로써 무역 당사자간 국제 무역 수지의 불균형 밸런스를 조정하는 완충기구로써 만들어진 기구였다.

이로써 이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25년간 G7내의 주요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3 ~ 4%대를 육박하고 경제 규모는 3배 이상 확장하게 된다.

그래서 1953년 전후 한국경제가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파기 시점까지 폭발적인 수출 신장세와 고도의 경제 성장률을 구가할 수 있었던 뿌리가 시스템적 관점에서 브레튼우즈 체제로 인한 유동성 자본 규제에 따른 상품교역의 보완이라는 측면이 적용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GATT체제 하에서 이른바 개도국 특권에 따라서 한국, 대만과 같은 나라는 고도의 경제 성장을 구가하게 되는데, 이는 1995년 WTO 체제 이후 그 성격을 달리함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 모델에 기반한 아시아적 모델을 가리키는 말로 재포장되어 불리게 된다.

체제의 붕괴

1969년 베트남 전쟁의 발발로 인한 막대한 전비지출의 필요성으로 미국 중앙은행은 결국 전비 지출을 위해서 대대적인 발권력을 동원하게 된다. 그로 인하여 전 세계적으로 달러 유동성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러한 과잉 통화 유동성으로 미국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유발시킴과 동시에 달러 가치는 하락하게 된다.

달러 가치의 하락으로 은행은 유럽 내 주요 기업에 싼 이자로 달러를 빌려주게 되었고, 기업은 고정환율로 달러 → 마르크를 교환했다. 그 결과 독일의 마르크, 프랑을 비롯한 유럽 내 주요국 통화는 달러 대비 통화 절상 압력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그 당시 서독 연방은행은 계속 마르크로 달러를 사들여 달러 대비 마르크화의 통화 절상 압력을 상쇄시키려고 했으나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압박요인과 재정적 지원을 더 이상 충당하기 불가능해지게 되는 단계가 오자,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는 공식 파기 된다.

그 당시 서독 중앙은행 차원에서는 인플레이션 상승 부담 때문에도 파기가 불가피했다. 전통적으로 독일은 1920년에 살인적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의 피해를 당한 당사국이기 때문에 서독 중앙은행 차원에서의 제1차 정책목표가 물가 안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위기의 시작

1973년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 이후 그 전까지 제한을 받던 유동성 자본이 수면위로 올라오게 된다. 기존 금융권 내에 있던 은행, 보험, 펀드를 포함한 최일선 기업들까지 총망라한 모든 경제 주체들에 대한 외환, 채권지대의 제약이 전면 해제되었다.

그로인하여 1998년 기준으로 채권거래는 1973년 대비 230배가 증가한 20조~24조 달러, 외환거래는 1일 기준 1조 2천억 달러의 유동성 자본으로, 금융산업 분야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 하에 1973년 ~ 1982년 사이에 총 1조 달러를 넘는 해외 대출이 발생하게 된다. 이중 전체 포지션의 50%가 남미로 가게 되는데 이를 기반으로 산업화 플랜을 단행하게 된다.

하지만 1982년 문제가 터지게 되는데 당시 1982년 미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기준 금리를 20% 이상 올리게 된다. 그 이유는 제 '2차 오일쇼크'의 여파에 따른 비용증가, 인플레이션을 상쇄시키기 위한 조치로 이 조치로 인하여 해외 대출이 투입된 남미를 포함한 이머징마켓은 일대 타격을 받고 경기 후퇴를 하게 된다.

이러한 고이자율 정책은 주요 달러 채무국들의 이자비용을 3배 이상 증가 시켰는데 미국의 이러한 조치로 인하여 주요 유동성 화폐 자산이 투입된 곳은 기존 통화 포지션이 달러로 교체된다.

그 결과 1980년대 초반 미국 달러 통화는 G7내 주요국 통화대비 평균 35% 절상된다. 동일기간 멕시코 폐소화는 반년만에 -60% 폭락하게 된다.

결국 남미 부채위기의 핵심 원인은 80년대 초반 미국 통화정책의 고이자율로 3배 이상 커진 이자 부담과 달러포지션 변경에 따른 자본의 해외 도피 → 그로 인한 미국 통화의 급격한 환율 인하에 기인한다.

1982년 당시 미국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와 미 재무부는 미국 국내은행의 남미 크레딧 라인에 문제가 생기면서 발생한 멕시코 사태 수습을 위한 즉각적인 재정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예산 집행에는 반드시 미 의회의 사전승인 없이는 불가능해지자 IMF를 간접 이용하여 브리지론(Bridge Loan)이라는 IMF 고유기능을 IMF 가맹국이 아닌 범위로 확장을 통해 지원 프로그램을 하게 된 배경이 이것이다.

원래 IMF의 기존 역할은 창설시 가맹국에 공여하는 브리지론 (Bridge Loan)을 중재하는 것이었으나, 고정 환율제가 변동환율제로 바뀌면서 브리지론 중재 필요성은 상실 되었다. 그 후 멕시코 사태가 터지면서 브리지론의 필요성이 미국 FRB와 미 재무부의 필요에 따라 상황에 맞게 용도가 리모델링이 되어 변경된 것이다.

문제는 멕시코에 IMF 지원을 해주면서다. 멕시코의 자본시장 국유화, 국영기업 민영화, 국내시장 개방 → 국가 지출의 극단적인 삭감 → 변동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달러보다 폐소화에 투자하는 것이 이익이 될 정도로 폐소화의 이자율 상승, 결국 이러한 극단적인 이자율 상승은 국내 산업 붕괴와 은행 시스템 붕괴를 동반하면서 독자적인 자본시장 형성이 불가능해졌고, 고이자율에 따른 → 해외자본유입 = 해외 자본 종속으로, 결론적으로 경제 발전은 정체되고 부채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1980년대 이후 많은 남미, 아프리카 국가들이 IMF 지원 프로그램을 받게 되는데 미국은 IMF를 이용하여 자본의 접근 통로를 장악하고 IMF의 영향력 확대를 노릴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사회 간접 자본(SOC) 건설을 위해서는 해외 차관이나 개발원조금은 IMF 조건과 연계시키면서 승인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본 통제력으로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IMF가 주체가 되는 것이다.

IMF 구제 금융을 통한 IMF 체제에 있을 경우 해외자본을 유지하려면 차관 제공자는 상대국가와의 계약체결에 앞서서 반드시 IMF나 세계은행의 사전 승인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부 차관』이 문제가 되기 때문에 2008년 하반기 IMF 지원을 한국 먼저 받으라는 제안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미국 국채 보유국의 달러 국채 물량이 시장에 나오는 걸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FRB 달러 스왑 국가가 아닌 나라도 임시 달러 스왑 지정국으로 지정해서 각 보유 국가의 달러 국채 보유 물량 비용 대비로 인출을 해 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100억, 500억 달러도 아닌 300억 달러인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인 것이다.

아시아 위기

한국이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아시아 이머징마켓들은 높은 수입 관세를 통해 국낸 산업을 보호 육성하고 외국과의 자본지대는 무역을 위한 결제에만 국한 시켰다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 조달한 차관을 배당하고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폭발적인 성장률을 구가하게 되었다.

1994년 한국은 OECD 가입을 통해서 유럽, 일본, 북미 시장에 쉽게 진입을 하려 했으나 일반 무역 통상 부분 이외에 금융시장 부분은 정부의 통제 하에 두려고 했다.

이는 국내 저축된 재원만으로도 산업개발을 위한 재원 도달에는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시 김영삼 정부는 정치적 이유로 그 당시 대통령 본인이 OECD 가입을 기정사실처럼 떠들고 다녔다.

그 후에는 OECD내에서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인해 금융시장 개방 부분의 문제는 미국의 의도대로 해외 차관 수용과 유가증권의 거래 등에 대한 국가 통제는 붕괴된다.

그로 인하여 1994년 3/4분기 이후부터 3개월 만기 달러차관 도입을 허용하게 되는데 한국의 높은 경제 성장률상 그로인해 수반되는 인플레이션 상승 압력에 대해서 한국의 중앙은행은 통화 긴축 정책을 유지해서 인플레이션을 통제 하고자 하였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하게 된다. 높은 이자율에 도달되고 통제 받던 원화 크레딧보다 그 당시 달러 크레딧이 역으로 더 싸지면서 (조달비용 = 원화 크레딧 > 달러 크레딧)인 상황에서 그 당시 유럽에서의 조달비용에 0.3% ~ 0.5%미만의 가산 금리로 계속 달러 크레딧을 기업에 제공하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이 단기 차관을 기업들은 대규모 시설 투자가 동반되는 5년 ~ 10년 만기의 장기리스 산업에 단기차입금으로 동원하게 된다.

왜냐하면 1997년까지는 국내에 있는 단기 달러 차입금은 매달 규칙적으로 롤오버가 되면서 만기 연장도래가 있었고 이미 국내에 충분히 많은 달러가 돌고 있었던 상황에서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 때 태국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한국, 대만을 포함한 동아시아 이머징마켓들은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유지, 확보하기 위해서 태국의 바트화 공격으로 인한 환율 폭락 즉시 주변국가의 자국 통화 절하 압력을 받게 된다.

이는 달러 채무에 대한 금융비용이 극단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한국을 포함한 신흥 국가들이 달러 크레딧 가운데 60%정도가 단기 채무였다. 이 경우 크레딧 라인(신용한도)철회시 달러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하여 정부 차원에서 IMF에서 달러 크레딧을 조달해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으나 IMF는 82년 멕시코 사태의 경우와 똑같은 해결책이 제시되었다.

그 중 하나가 고이자율 정책이었다. 결국 각국 중앙은행의 국내 이자율은 20% 이상 유지되었다.

이것은 IMF의 의도대로 신규달러 차입을 유도하지 않고 역설적으로 기업과 은행 파산을 동반하면서 내수 시장 붕괴에 따른 대대적인 경기 침체를 불러오게 된다.

대량해고와 투자 설비, 소비재 판매가 수직하강하게 된다. IMF는 고이자율과 국영기업 민영화 국내기업에 대한 외국인 지분 참여 제한 철폐,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포함한 모든 규제 철폐, 특히 자본투자자들에 대한 규제철폐가 핵심이었다.

이것이 현재 한국 시장이 이머징 마켓 중에서 가장 외국인 자본거래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다.

문제는 대외 시장 변수에 국내 경제가 연동된다는 것이다. 태국과 멕시코,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IMF지원 프로그램의 문제점이 노출되던 상황에서 그 의심스런 처방은 한국에 그대로 적용하게 된다. 즉 한마디로 알고 했다는 것이다.

그 후는 모두 알고 있는 IMF프로그램이라 불리는 고통스러운 진행과정이 진행되게 된다. 한국 국내의 만기 달러 차관의 상환은 미국 FRB와 미재무부의 중재를 통해서 3년 이상 상환이 연장되게 된다.

그 당시 IMF는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한국에 지원프로그램이 발표될 당시 한국의 경우는 510억 달러의 크레딧 원조를 해 주겠다고 하였으나 이 금액을 모두 지원할 필요도 없었다.

이것은 표면상의 발표수치이고 일본+독일 중앙은행이 그 후 즉시 한국에 100억 달러의 유동성 자금을 공급하고 미국은 만기연장만 해 주면 자동으로 끝날 일이었다. 극히 간단한 일이였다.

그 후 환율에 따른 수출도 들어온 달러와 외국은행들이 신용 대출금 회수를 중단하면서 위기는 종식이 되었다. 이때 채권은행들은 만기 연장된 모든 신용 대출에 대해 국가 보증을 요구하면서 추가 이자 부담요구안이 나오게 된다.

3년 기한의 상환 연장의 경우는 리보 +2.7~3%가산 금리의 이자 부담을 지게 되면서 저렴하게 차입된 단기 달러 채무가 고금리의 3년 기한 미만으로 롤오버 되면서 연장된다. 이것은 매력적인 장사가 되었다.

그 후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가 채무를 갚기 위해서는 달러나 엔화를 계속 차입해 와서 채무를 갚는 길 뿐이었다. 이를 위해서 남은 마지막 수단은 그 동안 수십년 동안 산업화 과정을 통해 조성한 국내 자본재를 해외 기업이나 투자자들한테 파는 길 뿐이었다. 그에 따른 세금 인하를 포함한 모든 특혜조치들이 이루어 졌다.

그로 인하여 산업계와 금융계를 포함한 은행, 보험 쪽을 비롯해서 외국인 투자 제한 철폐를 통한 싼 매물 수집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결국 한국 국내에서는 글로벌 스탠다드로 포장되고, 미국 상무부와 월스트리트에서는 10년 동안의 수익을 단 1년 안에 한국에서 뽑았다느니, 아시아 외환위기는 평생 한번 올까 말까한 포트폴리오 투자 기회라는 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현재 S & P나 무디스나 한국 국내 은행들의 신용등급을 국가 신용등급에 맞추어 조정을 하는 이유는 이와 같은 과거에 학습된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그래서 IMF사태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정책적 실패로 합리화되고 잊혀 지면 끝나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와 똑같거나 유사한 일이 순환 반복이 된다.

결국 1997년 제1차 IMF 사태의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뿌리는 OECD가입 당시부터였다. 한창 민감한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 부분협상을 할 경우 마지막으로 제시할 수 있는 카드가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목적에 따른 발언으로 OECD가입을 지정 사실화 시키는 바람에 최종 협상은 거기서 끝이 난 것이다. 그 후 과정을 거치면서 IMF단계를 거치게 되고 IMF는 82년 멕시코 사태부터 그 IMF 고유 기능의 변화와 확정을 거치면서 97년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거쳐 한국으로 전이되면서 유동 자본에 따른 이윤 극대화라는 것을 보여주게 된다.

동유럽 사태의 발생

동유럽에 대해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이 지역의 특수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동유럽의 전략적 중요성은 과거 냉전체체 하에서의 군사적 측면에서의 나토 군사 안보적 측면에서의 대립을 통한 동.서방간의 유럽지역내의 완충지역이라는 성격에서 이제는 석유, 가스송유관의 중간 경유지로써의 경제적 관점으로 그 포커스가 옮겨지게 된다.

현재 유럽 연합내 서유럽에서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가스의 90%가까이 소비가 되는 상황이며 2020년까지 50%이상 증가추세 속에서 유럽연합은 중동지역내의 에너지 의존도 축소와 북해에서 생산되는 원유.가스 생산량의 감소분을 메워줄 새로운 대안을 찾게 되는데 이것이 러시아다.

에너지 접근권에 대한 전략적 문제에서 동유럽의 정치.경제적 불안정은 곧바로 서유럽의 경제적 타격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속적인 EU 편입노력과 그에 따른 차관제공을 통해 동유럽의 경제적, 전략적 가치는 올라가게 된다.

2006년 현재 러시아는 유럽에서 소비하는 가스의 25%, 2020년까지 70% 가스를 공급해 주는 주요공급원이기 때문이다.

총 조달 수요의 80% = 러시아 - 우크라이나 - 슬로바키아 - 체코 - EU공급라인(드 루바 라인), 20% = 러시아 - 벨로루시 - 폴란드- EU공급라인으로 통행료를 받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른 추가적인 복합적인 요소들과 맞물려 동유럽은 서유럽 자본의 대거 유입으로 연 10%에 가까운 고도성장을 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2008년 3/4분기 이후 제 1차 금융위기가 진행이 된다. 2007년 4,010억 달러의 자본유입액이 2008년에 오면서 670억 달러로 축소되면서 유가 폭락이 겹치면서 동유럽 주주의 주요통화 가치는 50% 이상 폭락하게 된다.

이것은 결국 일반외환자금으로 대출을 받았던, 가계의 부채로 직결되면서 금융시스템이 붕괴하면서 IMF에 헝가리, 우크라이나, 라트비아가 구제 금융을 요청하게 되었으며 폴란드와 체코가 검토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동유럽에 대출된 1조 5천억 달러가 서유럽 내 주요은행에서 대출이 된 구조가 최대 40배까지의 레버리지(Leverage: 대출금/자본금)를 높여서 대출이 이루어진 상황에서 대규모 부도 리스크 압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에 대규모 구제자금을 쏟아 부을 수 없는 이유 중 하나는 유로론 내의 독일내의 금융시장 안정화, 은행 국유화가 검토가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유럽 은행의 총 부채 규모는 1조 5천억 달러 이상의 90%가 서유럽과 해외자본으로 구성된 상황에서 달러 대비 유로화 하락 압력은 유럽내 동시하락으로 이어지고 이는 선진국 증시를 거쳐 신흥시장으로 전이된다.

그 핵심적인 이유는 현재 2008년 9월 기준 한국의 총 외채의 60%가 유럽계 은행 포지션이다. 이 상황에서 동유럽에서 막대한 손실을 볼 경우 한국론이 만기연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추가 가산 금리를 요구하게 된다.

또한 대규모 선박 금융 제공을 하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이 자금압박을 받게 되면 자금 압박으로 인한 선박 주문 취소와 대금지급 지연에 따른 만기 환율 하락요인이 발생한다. 또한 동유럽에 대한 한국의 수출 비중이 7~8% 내외인 상황에서 수출감소로 이어지는 상황이며 동유럽에 한국직접투자 FDI 비중이 90% 내외인 상황에서 동유럽내의 환율변동에 환차손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CDS 프리미엄의 상승과 기준금리 인하에 따른 단기 채권으로의 집중현상과 국내 미청산 엔케리 청산 압박으로 인한 자본유출로 환율의 추가 상승 압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달러는 대규모 재정지출을 위해서 발권력을 동원해 돈을 찍어 내면 다른 준기축 통화인 엔화나, 유로화, 금 가격에 연동을 하여 달러 약세로 돌아서게 된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정상적인 시장 작동 상황에서만 그렇다.

극히 간단하게 말하자면 세계의 주요 경제 권역인 미주, 일본, 유럽연합의 통화 경제권에서 한쪽 경제권이 침체기거나 통화 정책 조정으로 통화 약세일 경우는 달러 약세 ↔ 엔화 강세가 성립이 되지만 미국, 일본, 유럽의 주요 경제란이 동시에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는 상황에서는 기축 통화인 달러가 안전 자산으로 달러강세로 돌아서는 것이다.

이것이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2008년 3/4분기 이후 제1차 금융위기 당시 달러를 찍어 낼 때는 미국 경제에 대비해 일본 경제와 유로론은 상대적으로 경제 펀더맨탈이 견고하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달러 발권력 동원에 따른 달러 약세는 당연하였으나, 2009년으로 바뀌면서 유로론의 동유럽 사태와 일본의 경제 성장률 하락과 1조엔에 달하는 무역수지 적자로 인하여 상대적으로 금과 달러가 안전자산의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은 인플레이션 방어성격의 자산이지만 현재 경제 성장률이 3대 경제권의 동시 다발적인 마이너스 성장으로 인한 디플레이션 압력이 달러를 찍어내면서 달러 화폐 유동성이 증가함에 따른 인플레이션을 상쇄시켜 버리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금값이 올라가면서 달러강세가 지속되는 원인 중 하나가 이것이다.

결국 시장불안으로 인하여 안전 자산인 금과 미 국채로 자금 수요가 집중이 되는 상황에서 10년 만기 미 국채 수익률은 지속적인 하락세로 돌아서게 된다.

현재의 엔화 변동에 대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1995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1995년 당시 엔화는 79엔의 달러 대비 초강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일본 재무성 차관인 사카키 바라 에이스케는 미국에 가서 미국 달러 국채 매각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논의를 하게 되었다. 통상적으로 1달러=85엔대 밑으로 떨어질 경우 일본 은행들은 신용 대출 결손으로 타격을 받는 구조였다.

이 상황에서 시장에 미국 국채 매물이 나올 경우 미국 국채 가격은 떨어지면서 채권가격 하각은 이자율 상승을 동반하게 된다. 그러면 미국 전체 자본 시장의 이자율이 올라가면서 미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 일본, 유럽 중앙은행들의 공조하에 대규모의 달러 매입을 통한 환율 조정의 노력으로 1달러 = 100엔이 그해 4/4분기 이후 돌파되었고, 97년 까지 -60% 엔화가 평가 절하 되었다.

이는 2003년으로 넘어가면서 반전하게 된다. 장기간의 무역흑자에 따른 주적으로 엔화가치가 급등하면서 2002년 130엔 → 2004년105엔 대로 급상승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본 정부는 정부 차원에서 35조~40조엔을 투입하여 대대적인 달러 매수를 하여 엔화를 평가절하시킨다. 이때 매수한 달러가 미국 국채에 그대로 재투자 되었으며 2002년 - 2004년까지 매입한 미국 국채가 3,500억 ~ 4,000억 달러 수준으로 이때부터 일본에서 미국 국채를 사 모은다는 소리가 나오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현재 5,800억 달러 상당의 미 국채 보유량의 상당부분을 사 모은 이유가 이것이다.

현재 80엔대에 육박하는 엔화가 97엔대 후반으로 절하되는 이유중 하나가 일본 경제 자체에도 있지만 현재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 국채물량을 소화시키기 위해서는 국가간 공조가 필요하기 때문에 미 주무장관인 힐러리가 일본 방문시 이 이야기부터 꺼낸 이유가 이것이다.

이는 향후 두가지 변수에 따라 작용하는데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기간에 맞춘 추가 엔화 평가 절하와 미국 GM-크라이슬러의 자동차 구조조정에 따른 미국 국내 자동차 노조의 압력에 따른 추가 엔화 절하 타이밍을 잡는 것이다. 그래서 티모시 가이트너 미재무장관이 취임전부터 ‘강한달러’를 떠들고 다닌 이유가 이것이다. 그것은 1995년 당시 미 재무장관이 로버트 루빈이 취한 액션과 똑같은 것이다. 강한 달러의 달러 강세를 만드는 것은 두가지 측면에서 봐야한다.

국제공조와 통제가 가능한 일본과는 다르게 달러 약세와 그로인한 달러대비 자산손실이라는 측면이 중국에서 심각하게 제기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의 총외환보유고는 1조 9천억 달러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중국에서는 닥치는대로 달러자산에서 실물자산으로 옮기는 이른바 자원외교도로 불리는 작업을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자원확보 측면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부족한 천연자원을 싼 값에 확보하고 글로벌경기회복에 따른 차익기대측면도 있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미 부채 등 달러자산에 편중된 외환보유고 투자의 다변화가 핵심이다.

현재의 천문학적인 미 국채발행의 압력으로 미 국채수익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상황에서 달러약세로 달러표시 자산의 폭락은 중국입장에서는 재앙이다. 그래서 최소한 2009년도에 관해서는 자의든 타의든 달러강세기조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배경을 깔고 단기 달러강세가 기정사실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경제에 새로운 도전으로 작용하게 된다. 달러강세에 따른 국제원자재가격의 하향안정세는 단기적으로는 물가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부담요인을 덜어준다. 그래서 한국은행에서 금리를 2%대까지 끌어내릴 수 있었던 핵심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다.

하지만 달러강세 기조 속에 2조 달러에 달하는 미국국채발행과 중국, 일본의 자국경기부양을 위한 추가 국채발행은 한국을 포함한 주요 이미 이머징 마켓에 외환달러자금유동성에 심각한 제약을 가하게 된다.

이로 인하여 80%에 육박하는 무역의존도와 IMF로 인한 높은 대외 개방도로 인하여 외국인 투자감소와 자금이탈과 무역금융 감소에 따른 수출부진과 무역위축과 그에 따른 환율불안 등의 피해를 발생시킬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로 금리를 내려서 유동성을 증가시키겠다는 것은 극도로 위험한 생각이다.

이 경우는 CP 매입을 통한 개입이나 회사채매입을 통해서 개입을 하는 선에서 조정이 되어야지, 이 상황에서 추가 금리인하는 환율상승의 추가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미 지금 상황은 통화정책으로는 소비와 투자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무리인 부분적으로 유동성 함정의 리스크 징후들이 보이기 때이다.

금리를 내리면서 CP금리가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일부 우량회사채를 제외한 회사채 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있다.

그와 더불어 금리인하에 따른 생산과 투자위축은 금리정책의 한계가 왔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일반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경기부양을 시도하게 되는데 국채를 발행해서 재원을 조달할 경우 금리를 내려 원화유동성을 늘린 화폐 유통량이 국채발행을 통해서 유동성이 다시 역으로 흡수가 돼버린다.

그러면 회사채발행에 따른 기업운영자금 조달에 제약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 이유는 정부가 대규모 국채들 발행하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높은 회사채 불량은 시장에서 소화가 거의 불가능해진다. 이래서 중앙은행의 국채직접매입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이는 부차적인 최소한 부작용을 최소화시켜준다.

우량회사채의 발행물량은 시장에서 소화가 되지만 비유량회사채의 경우는 매수세가 몰리지 않으면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결국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을 통해서 자금조달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환율급등에 따른 일방적 납품단가 인하요구와 발주취소, 납품업체변경 등을 통한 피해 부분에 대해서도 소규모기업은 열외대상이며 고용보험료 연체에 따른 소액압류가 있어도 사실상 대출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결국 구조조정 지연을 통해서 2008넌 3/4분기 ~ 4/4분기에 걸린 3개월 ~ 6개월의 시간 소요를 통해서 선제대응 타이밍이 늦어짐에 따라 은행 자체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대손충당금과 경기하강에 따른 기업, 개인연체율 상승에 따른 BIS비율하락에 대비한 자본적립을 통해 자금시장이 사실상 경색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금리를 추가로 낮추어도 자금이 돌지 않는 유동성함정에 빠질 공간이 커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대외적으로는 미 국채발행과 그로 인한 미국경제 경기부양을 통한 달러강세는 최소 2009년 하반기 ~ 2010년 1/4분기까지는 재원도달을 마련하기 위해 불가피한 상황이며 단기적으로 이와 연등하여 동유럽 리스크로 인한 달러 조달 금리 상승압력과 환율상승압력은 불가피한 상황에서 금리는 동결, 금리 추가 하락시 환율상승압박요인에 따른 자산포트폴리오의 부분적 변경으로 방어하는 전략이 유효하며 현재 한국 경제는 미국, 일본과 같은 디플레이션 방어성격의 통화정책이 아니기 때문에 이점은 각별히 주의해야한다.

미국, 일본, 중국은 디플레이션 초기 대응전략으로 기조가 가고 있지만 한구의 경우는 디플레이션이 아닌 디스인플레이션이라는 상황적 인식하에 경기하강과 -2% ~ -4%이하의 성장률을 겪는 이색적인 체험의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질소득 감소에 따른 소비구매 여력은 과연 정부가 어떤 식으로 상쇄시켜 주느냐에 따라 경기 회복속도가 2009년 연내일지 2011년으로 대폭장기침체로 빠지는지가 결정되기 때문에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의 재정지출을 통한 가시적인 효과가 나오는 2009년 3/4분기와 맞물려 국내 경기 리싸이클의 회복 속도가 결정된다. 그에 따라서 개인적 차원에서 경기방어전략이 달라진다.

중국의 경우도 경기부양자금으로 800조원이 풀렸다. 그로 인하여 중국증시가 올라가는 이른 바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서 유동성장세에 따른 증시부양이라는 착시현상이 벌어졌다. 중국 역시 수출이 총 GDP의 40%를 차지하고 상당기업의 60%가 영업이익 적자를 통한 적자기업이었음에도 2009년 1월 기준 수출(전년대비): -17%, 수입: -43%로 수입감소량 ≫ 수출감소량을 능가하면서 대규모 무역흑자구조가 나는 것은 한국과 동일하다. 이는 결국 수입감소율이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소비가 급감하면서 내수가 망가지고 있다는 징후로 밖에 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생존플랜이 나오면서 개개인이 준비를 해 나갈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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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의 복수?…한국판 <식코>를 찍으려는 그들

 

 

강만수의 복수?…한국판 <식코>를 찍으려는 그들

[기고] 의료 민영화 이념의 섬뜩함

기사입력 2009-03-10 오전 9: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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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초에 많은 사람들이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를 보았다. 필자는 제주에서 그 영화를 보았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마지막 날에는 영화관 복도까지 관객으로 넘쳐났다. 결국, 연장 상영을 결정하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식코>를 볼 수 있었다. 기대 이상의 흥행이었다.

영화 <식코>를 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먼저 "미국 의료제도가 저렇게 엉망인가"라는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우리나라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있어 천만 다행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에 비하면, 국민소득이 한참 낮은 우리나라가 의료 이용 문제로 인한 고통만큼은 의외로 그리 크지 않음을 우리는 일상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영화 <식코>의 참혹함이 사실을 과장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 사회시스템 전반에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더욱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영화 <식코>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약이 이를 공식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다음의 글은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 중 일부다.

"미국의 의료보험료는 지난 8년 동안 두 배 올랐고, 지난 8년 동안의 임금 인상보다 3.7배나 더 올랐다. 미국에서 파산자의 절반 이상이 의료비에 기인한 것이었고, 미국 총 의료비의 25%는 행정비용과 오버헤드 비용으로 지출된다. 현재 45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은 의료보험이 없으며,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80%는 현재 일을 하고 있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것이다. 치솟는 의료비는 특히 중소기업 고용주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의료보험을 구입해주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의료 체계는 예방과 공중보건에 지나치게 투자를 적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6%를 국민의료비로 사용하면서도 국가의료제도의 성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캐나다의 컨퍼런스 보드가 실시한 이 평가에서 한국은 5위를 기록하였음). 미국 의료 체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높은 의료비가 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도를 넘었다. 결과적으로 보험회사, 제약회사, 일부 의료자본을 제외한 미국 전체가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어쩌다가 의료제도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누가 언제부터 이렇게 만들었을까? 미국의료제도가 이렇게 잘못되어 있다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을까? 개혁의 시도는 없었을까? 많은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답은 이렇다. 1946년 트루먼은 유럽형 의료보장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이후에도 몇 차례 개혁의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미 거대자본과 시장이 지배하는 미국의 시장주의 의료제도는 '혁명에 준하는 상황'이 전개되지 않고서는 유럽형의 공적 의료보장제도로 개혁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 미국 의료제도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한 영화 <식코>. 분명히 실패한 이 미국의 의료제도를 모방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국내에서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
그래서 우리나라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은 미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된 정부의 의료 민영화를 줄기차게 반대해왔던 것이다. 2008년은 큰 위기였으나 다행히 촛불의 힘 덕택에 의료 민영화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의료 민영화 추진 세력이 다시 시동을 걸고 나섰다. 연초부터 제주특별자치도 김태환 지사가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도입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하더니, 이제 이명박 정권이 범정부 차원에서 의료 민영화의 추진을 공식 선언하고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하고 있다.

세계적 경제 위기를 맞아 어려운 나라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어 놓은 '실패한'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 씨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수장으로 간 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 의료 민영화가 본격 추진되고 있다. 그 첫 작품은 2009년 3월 6일(금요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의료제도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것인데, 이는 의료 민영화 추진을 위한 일종의 세몰이이자 의료시장주의자들의 시위였다.

의료 민영화의 강력한 추진 또는 지지 세력인 두 명의 교수가 발표를 하였고, 역시 의료 민영화를 지지하는 5명의 각계 전문가가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그들만의 어이없는 토론회 잔치였다. 필자는 이런 일방적인 토론회 구성은 난생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 다음은 섬뜩함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의 공포가 엄습해왔다. 자본 주도의 시장주의 의료제도에 대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진 저들의 이념과 의료 민영화를 밀어붙여 달라며 이명박 정부의 결단을 압박하는 저들의 목소리는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자본 주도형 의료제도에 대한 이들의 집착은 거대한 이념이었고, 의료공공성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의료공공성을 주장하며 현행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를 발전시켜온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은 합리적 논리가 아니라 '이념'적 주장만 펴는 '이념' 세력으로 매도되었다.

이들은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시민사회 등 진보개혁진영과 이를 지지하는 다수 국민의 목소리에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낙인을 찍고 정부가 결단해서 '이념'을 진압하고 의료 민영화를 관철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2008년 촛불의 힘에 굴복한 허약한 정부를 질타하며, 이번에는 '이념'적 반대의 목소리를 반드시 넘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얼마나 섬뜩한 장면인가.

무시무시한 의료시장주의 이념 앞에선 진실도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 '시장의 과소와 정부 역할의 과잉'을 공격한다. 정부 역할을 줄이고 의료 규제를 풀자는 시장만능주의의 교리를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의료시장에 자본 주도의 날개를 달아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진단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공공성의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과소'로 인한 시장실패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 제도는 의료 재정의 공공성 수준이 53%에 불과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평균인 72.3%에 비하여 20% 포인트 낮고, 프랑스나 스웨덴 등 유럽의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는 약 30% 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의료 공급을 담당하는 병원 중 공공병원의 비중도 우리나라는 10%에도 미달하여 유럽 선진국의 50~90%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낮고, 미국의 25%보다도 낮은 실정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의료 재정과 의료 제공 체계 양 측면에서 의료 제도의 공공성 수준이 낮다보니, 의료 재정에서는 민간의료보험이 엄청나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으며, 의료 공급에서는 민간병원이 주를 이루면서 불필요한 병상 및 시설 경쟁으로 자원의 낭비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병원의 대형화, 고급화, 상업화는 이미 의료 시장의 과열 경쟁을 촉발하여 중소병원은 도산하거나 파행적 의료 행태를 보이고 있다. 머지않아 지방의 대학병원은 물론이고 서울의 일부 대학병원들도 동네병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시장 과잉'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의료 시장주의자들은 정반대의 주장을 펴며, 여론의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미국식 의료 시장주의 이념이 뼛속까지 침윤한 이유 때문일까, 혹시 필자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결국,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제도적으로 촉진하여 자본 주도의 의료 민영화를 이 땅에서 완성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배후에는 보험회사의 엄청난 힘, 이들 자본과 뜻을 같이하는 정관계의 엘리트 집단이 버티고 있다. 우리는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한다. 저들은 뭉쳐있고, 우리는 흩어져 있으니 말이다. 흩어진 힘을 결집할 계기와 기획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들 의료 민영화 옹호자들은 어처구니없게도 "김대중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계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을 달성했다"는 비유를 들며, 이명박 정부가 강력하게 의료 민영화를 밀어붙여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어이없는 일이다. 약물의 오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의약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취지의 의약분업이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고 국민의료를 망칠 의료 민영화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이념적 반대'로 규정하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장면은 섬뜩함 그 자체였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부처는 의료 민영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여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의료 분야에 자본이 투자되면 당연히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고, 부가가치도 증대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에 의한 의료 투자는 국민 의료비를 높이고 의료 이용의 양극화를 유발하는 등의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키므로, 유럽 선진국들은 공적 의료 투자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국고에서 연간 5조 원을 추가 투입하고, 건강보험료를 인상하여 5조 원을 추가로 마련하여, 이 재원을 의료서비스에 투입하자. 병원이 확 달라지고 서비스가 좋아지며, 고용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당장 대부분의 병원을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만들 수 있고, 간호사 등 병원서비스 인력을 2배로 늘릴 수 있다. 당장에 최소 20만 개 이상의 좋은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돈으로 중증 질환자의 본인부담 진료비를 절감할 수 있고, 이러한 공적 지출은 서민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높여 서민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자본에 의한 의료 투자를 인정하고 있는 미국 보다 정부에 의한 공적 의료 투자를 하고 있는 스웨덴이나 영국 등의 유럽 선진국들이 고용의 양과 질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부재정에 의한 공적 의료 투자를 하는 스웨덴은 영리적 자본 투자를 하는 미국보다 병상 당 고용된 인력의 수가 더 많고 고용의 질도 더 높다. 엄청난 부작용으로 사실상 실패한 '미국의 시장주의 의료제도'를 옹호하는 우리나라 의료시장주의자들은 자본을 이익을 옹호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정제된 논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편협한 시장 '이념'으로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의 해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깊이 명심할 일은 한 번 '자본 주도의 시장주의 의료제도'가 우리 사회에 착근하면, 이를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 개혁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내걸고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 개혁의 깊이와 폭은 매우 얕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이미 전문가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20년에 걸쳐 국민적 지지 속에서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이 성취해 놓은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를 획기적 재정 확충을 통해 더욱 발전시켜 나가느냐, 아니면 의료 민영화를 통해 미국식 시장주의 의료제도로 바뀌느냐의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프레시안>은 앞으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칼럼을 공동 게재합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회원이 돌아가며 쓰는 각 분야의 깊이 있는 칼럼을 <프레시안>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 바로 가기)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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