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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수의 복수?…한국판 <식코>를 찍으려는 그들

 

 

강만수의 복수?…한국판 <식코>를 찍으려는 그들

[기고] 의료 민영화 이념의 섬뜩함

기사입력 2009-03-10 오전 9:3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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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초에 많은 사람들이 미국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를 보았다. 필자는 제주에서 그 영화를 보았는데,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지 마지막 날에는 영화관 복도까지 관객으로 넘쳐났다. 결국, 연장 상영을 결정하였고 더 많은 사람들이 <식코>를 볼 수 있었다. 기대 이상의 흥행이었다.

영화 <식코>를 본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먼저 "미국 의료제도가 저렇게 엉망인가"라는 것이었고, 다음으로는 "우리나라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있어 천만 다행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렇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국들에 비하면, 국민소득이 한참 낮은 우리나라가 의료 이용 문제로 인한 고통만큼은 의외로 그리 크지 않음을 우리는 일상의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영화 <식코>의 참혹함이 사실을 과장하는 것이라고 의심하기도 한다. 특히, 미국 사회시스템 전반에 우호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분들은 더욱 그럴 수 있겠다. 그런데 영화 <식코>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지난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약이 이를 공식적으로 입증해주고 있다. 다음의 글은 오바마 대통령 후보의 대선 공약 중 일부다.

"미국의 의료보험료는 지난 8년 동안 두 배 올랐고, 지난 8년 동안의 임금 인상보다 3.7배나 더 올랐다. 미국에서 파산자의 절반 이상이 의료비에 기인한 것이었고, 미국 총 의료비의 25%는 행정비용과 오버헤드 비용으로 지출된다. 현재 4500만 명 이상의 미국인은 의료보험이 없으며, 의료보험이 없는 사람들의 80%는 현재 일을 하고 있지만 의료보험이 없는 것이다. 치솟는 의료비는 특히 중소기업 고용주가 자신의 노동자들에게 의료보험을 구입해주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의료 체계는 예방과 공중보건에 지나치게 투자를 적게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국내총생산(GDP)의 16%를 국민의료비로 사용하면서도 국가의료제도의 성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거의 꼴찌 수준이다(캐나다의 컨퍼런스 보드가 실시한 이 평가에서 한국은 5위를 기록하였음). 미국 의료 체계에 대한 미국인들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높은 의료비가 기업의 경쟁력에 미치는 악영향은 이미 도를 넘었다. 결과적으로 보험회사, 제약회사, 일부 의료자본을 제외한 미국 전체가 막대한 손해를 입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어쩌다가 의료제도가 이 지경이 되었을까? 누가 언제부터 이렇게 만들었을까? 미국의료제도가 이렇게 잘못되어 있다면 왜 그토록 오랫동안 방치해 두었을까? 개혁의 시도는 없었을까? 많은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답은 이렇다. 1946년 트루먼은 유럽형 의료보장제도를 도입하려 했으나 실패하였고, 이후에도 몇 차례 개혁의 시도가 있었으나 번번이 실패하였다. 이미 거대자본과 시장이 지배하는 미국의 시장주의 의료제도는 '혁명에 준하는 상황'이 전개되지 않고서는 유럽형의 공적 의료보장제도로 개혁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 미국 의료제도의 끔찍한 현실을 고발한 영화 <식코>. 분명히 실패한 이 미국의 의료제도를 모방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국내에서 진행 중이다. ⓒ프레시안
그래서 우리나라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은 미국을 반면교사로 삼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추진된 정부의 의료 민영화를 줄기차게 반대해왔던 것이다. 2008년은 큰 위기였으나 다행히 촛불의 힘 덕택에 의료 민영화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의료 민영화 추진 세력이 다시 시동을 걸고 나섰다. 연초부터 제주특별자치도 김태환 지사가 내국인 영리법인 병원 도입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공식화하더니, 이제 이명박 정권이 범정부 차원에서 의료 민영화의 추진을 공식 선언하고 본격적인 행동에 돌입하고 있다.

세계적 경제 위기를 맞아 어려운 나라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들어 놓은 '실패한' 초대 기획재정부 장관 강만수 씨가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의 수장으로 간 후,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 의료 민영화가 본격 추진되고 있다. 그 첫 작품은 2009년 3월 6일(금요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의료제도 선진화를 위한 토론회'를 개최한 것인데, 이는 의료 민영화 추진을 위한 일종의 세몰이이자 의료시장주의자들의 시위였다.

의료 민영화의 강력한 추진 또는 지지 세력인 두 명의 교수가 발표를 하였고, 역시 의료 민영화를 지지하는 5명의 각계 전문가가 토론하는 형식이었다. 북 치고 장구 치고, 그들만의 어이없는 토론회 잔치였다. 필자는 이런 일방적인 토론회 구성은 난생 처음 보았다.

그런데 그 다음은 섬뜩함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기가 힘들 정도의 공포가 엄습해왔다. 자본 주도의 시장주의 의료제도에 대한 신념으로 똘똘 뭉쳐진 저들의 이념과 의료 민영화를 밀어붙여 달라며 이명박 정부의 결단을 압박하는 저들의 목소리는 가히 공포 그 자체였다. 자본 주도형 의료제도에 대한 이들의 집착은 거대한 이념이었고, 의료공공성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의료공공성을 주장하며 현행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를 발전시켜온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은 합리적 논리가 아니라 '이념'적 주장만 펴는 '이념' 세력으로 매도되었다.

이들은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를 지키고자 노력하는 시민사회 등 진보개혁진영과 이를 지지하는 다수 국민의 목소리에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며 낙인을 찍고 정부가 결단해서 '이념'을 진압하고 의료 민영화를 관철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2008년 촛불의 힘에 굴복한 허약한 정부를 질타하며, 이번에는 '이념'적 반대의 목소리를 반드시 넘어 줄 것을 요구하였다. 이 얼마나 섬뜩한 장면인가.

무시무시한 의료시장주의 이념 앞에선 진실도 보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의료제도에서 '시장의 과소와 정부 역할의 과잉'을 공격한다. 정부 역할을 줄이고 의료 규제를 풀자는 시장만능주의의 교리를 반복적으로 주장한다. 의료시장에 자본 주도의 날개를 달아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진단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우리나라 의료제도는 공공성의 '과잉'이 아니라 오히려 '과소'로 인한 시장실패로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의료 제도는 의료 재정의 공공성 수준이 53%에 불과하여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 평균인 72.3%에 비하여 20% 포인트 낮고, 프랑스나 스웨덴 등 유럽의 주요 선진국에 비해서는 약 30% 포인트나 낮은 수준이다. 의료 공급을 담당하는 병원 중 공공병원의 비중도 우리나라는 10%에도 미달하여 유럽 선진국의 50~90% 수준에 비하면 턱없이 낮고, 미국의 25%보다도 낮은 실정이다.

이렇듯, 우리나라는 의료 재정과 의료 제공 체계 양 측면에서 의료 제도의 공공성 수준이 낮다보니, 의료 재정에서는 민간의료보험이 엄청나게 시장을 넓혀가고 있으며, 의료 공급에서는 민간병원이 주를 이루면서 불필요한 병상 및 시설 경쟁으로 자원의 낭비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병원의 대형화, 고급화, 상업화는 이미 의료 시장의 과열 경쟁을 촉발하여 중소병원은 도산하거나 파행적 의료 행태를 보이고 있다. 머지않아 지방의 대학병원은 물론이고 서울의 일부 대학병원들도 동네병원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시장 과잉' 현상임에도 불구하고, 의료 시장주의자들은 정반대의 주장을 펴며, 여론의 왜곡을 시도하고 있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미국식 의료 시장주의 이념이 뼛속까지 침윤한 이유 때문일까, 혹시 필자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결국,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영리법인 병원의 허용'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를 제도적으로 촉진하여 자본 주도의 의료 민영화를 이 땅에서 완성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배후에는 보험회사의 엄청난 힘, 이들 자본과 뜻을 같이하는 정관계의 엘리트 집단이 버티고 있다. 우리는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한다. 저들은 뭉쳐있고, 우리는 흩어져 있으니 말이다. 흩어진 힘을 결집할 계기와 기획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들 의료 민영화 옹호자들은 어처구니없게도 "김대중 정부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의료계의 파업에도 불구하고 의약분업을 달성했다"는 비유를 들며, 이명박 정부가 강력하게 의료 민영화를 밀어붙여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어이없는 일이다. 약물의 오남용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고, 의약질서를 바로 세우자는 취지의 의약분업이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고 국민의료를 망칠 의료 민영화에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 민영화를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이념적 반대'로 규정하고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는 장면은 섬뜩함 그 자체였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부처는 의료 민영화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여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한다. 의료 분야에 자본이 투자되면 당연히 일자리는 늘어날 것이고, 부가가치도 증대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에 의한 의료 투자는 국민 의료비를 높이고 의료 이용의 양극화를 유발하는 등의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키므로, 유럽 선진국들은 공적 의료 투자 방식을 사용한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획기적으로 확충해야 한다. 국고에서 연간 5조 원을 추가 투입하고, 건강보험료를 인상하여 5조 원을 추가로 마련하여, 이 재원을 의료서비스에 투입하자. 병원이 확 달라지고 서비스가 좋아지며, 고용이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당장 대부분의 병원을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만들 수 있고, 간호사 등 병원서비스 인력을 2배로 늘릴 수 있다. 당장에 최소 20만 개 이상의 좋은 일자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 돈으로 중증 질환자의 본인부담 진료비를 절감할 수 있고, 이러한 공적 지출은 서민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높여 서민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을 준다. 자본에 의한 의료 투자를 인정하고 있는 미국 보다 정부에 의한 공적 의료 투자를 하고 있는 스웨덴이나 영국 등의 유럽 선진국들이 고용의 양과 질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정부재정에 의한 공적 의료 투자를 하는 스웨덴은 영리적 자본 투자를 하는 미국보다 병상 당 고용된 인력의 수가 더 많고 고용의 질도 더 높다. 엄청난 부작용으로 사실상 실패한 '미국의 시장주의 의료제도'를 옹호하는 우리나라 의료시장주의자들은 자본을 이익을 옹호하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정제된 논리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면서도 이들이 편협한 시장 '이념'으로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의 해체를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깊이 명심할 일은 한 번 '자본 주도의 시장주의 의료제도'가 우리 사회에 착근하면, 이를 돌이키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의료 개혁을 최우선 정책 과제로 내걸고 추진하고 있지만 의료 개혁의 깊이와 폭은 매우 얕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이미 전문가들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20년에 걸쳐 국민적 지지 속에서 시민사회와 진보개혁진영이 성취해 놓은 '국민건강보험 의료제도'를 획기적 재정 확충을 통해 더욱 발전시켜 나가느냐, 아니면 의료 민영화를 통해 미국식 시장주의 의료제도로 바뀌느냐의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프레시안>은 앞으로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칼럼을 공동 게재합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회원이 돌아가며 쓰는 각 분야의 깊이 있는 칼럼을 <프레시안>을 통해 만날 수 있습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홈페이지 바로 가기)

/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제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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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만방에 'B급 국가' 선포하려나&quot;

 

 

세계 만방에 'B급 국가' 선포하려나"

[기고] 무식한 '인권위 축소', 당장 중단하라

기사입력 2009-03-05 오전 1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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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차원에서 추진된 특정정책에 대해 이렇듯 한목소리로 반대론만 쏟아진 경우가 과거에도 있었나 싶다. 행정안전부, 아니 청와대가 추진 중인 국가인권위원회 축소방침은 적어도 공론의 장에선 찬성론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반면 반대하는 소리는 크고 절박하다. 국제사회, 야당, 시민사회, 인권단체, 법학교수, 전임 인권위원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일제히 '아니오'를 합창하며 '인권위 구하기'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애들 장난도 아니고…"

누구보다 인권단체들이 치열하게 투쟁 중이다. 그중 제일 속이 타는 건 장애단체들이다. 인권위 인력을 축소하면 천신만고 끝에 제정한 장애차별금지법이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권위 지역사무소 폐쇄방침을 접한 부산, 광주, 대구의 시민사회는 부글부글 끓고 있다. 개소식에 참석한지 2~3년도 안 됐는데 폐소식을 하라니. "애들 장난도 아니고 이게 뭐냐"는 볼멘소리가 절로 나온다. 당연히 강도 높은 상경투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평소 인권위와 적당히 거리를 두며, 이른바 협력 속의 긴장 관계를 유지해 온 인권단체들이 '인권위 지킴이'를 자임하며 똘똘 뭉친 셈이다.

국제사회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움직인다. 지난 2월 25일 유엔인권최고대표(인권고등판무관)은 직접 외교통상부장관과 행전안전부장관에게 편지를 보내서 심각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공개되지 않아서 내용은 잘 알 수 없지만, 인권위에 거는 국제적 기대와 인권위가 획득한 국제적 위상을 거론하며 인권위 축소강행은 인권위와 정부의 국제적 평판에 치명타가 될 것이라는 강력한 경고를 담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한국 인권위를 모범기구로 칭송하며 벤치마킹을 주문해온 아시아 각국의 주요 인권단체와 아시아 중심의 국제인권단체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활발히 움직이고 있다. 이들은 조만간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International Coordinating Committee)에 한국 인권위 사태를 조사할 다국적 진상조사단 파견 및 한국정부의 독립성 침해시도에 대한 특별심사절차 회부를 공식 요청할 태세다. 이렇게 되면 한국정부는 향후 국제 인권사회에서 독립성 침해사례의 악명 높은 주인공으로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 인권단체연석회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등 인권단체는 지난 2일 서울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행정안전부의 국가인권위원회 축소방침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뉴시스

인권위 축소론은 건전한 법리와 상식에 반한다

법학계가 집단적으로 1개 국가기관의 축소에 대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밝힌 점도 몹시 이례적이다. 유엔인권최고대표의 항의서한이 전달된 날은 무려 252명의 법학교수들이 인권위 축소 반대 성명서를 발표한 날이기도 하다. 인권법 전임교수가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은 한국법학풍토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법학교수들이 참여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인권위 축소론은 건전한 법리와 상식에 반한다.

법학교수들은 특히, 인권위법 제18조에서 '조직에 필요한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위임한 것은 인권위 자체의 법규 제정권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일 뿐, 대통령이나 정부가 제멋대로 인권위 조직과 인원을 감축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권위 직제를 대통령령으로 규정해놓은 취지는 인권위가 헌법기관이 아니기 때문일 뿐, 인권위의 직제와 인력을 대통령이 마음대로 손대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인권위의 독립성은 조금도 기대할 수 없다. 정부한테 밉보이는 순간 인권위의 인력과 예산이 바로 반토막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서 지난 3월 2일에는 16명의 전직 국가인권위원들이 긴급호소문을 발표했다. "선진화를 추구하는 현 정부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선진화의 핵심목표 중 하나가 인권보장에 있느니만큼 인권위를 축소해서는 안 된다"는 절절한 호소를 담았다. 이들은 내년도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 의장국으로 추대될 한국 인권위의 국제적 위상을 정부가 앞장서서 깎아내리는 일을 해서야 되겠느냐는 은근한 질책도 곁들였다.

싸움의 승부는 이미 나있다

국내외 다양한 구성원들이 이렇듯 인권위 축소방침에 일제히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걸 보면 인권위가 지난 7년간 국내외에서 상당히 괜찮은 평가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한국 인권위는 초기부터 국제인권공동체에서 독립성과 진정성을 인정받아서 국제인권 외교무대에서도 한몫을 단단히 수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인권위는 벌써 아시아태평양 국가인권기구포럼(APF)의 의장국을 역임한데 이어 현재 국가인권기구국제조정위원회(ICC)의 부의장국이자 국제조정위원회 승인심사소위의 아태지역 대표위원국으로 활동 중이며, 내년에는 기구축소와 같은 특별한 사정만 없으면 ICC 의장국으로 피선될 것이 확실시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안부, 아니 청와대는 3월 중 국무회의에서 인권위직제 개정안을 통과시켜 인권위 축소방침을 밀어붙이겠다고 공언한다. 특히 이달곤 행안부 장관이 지난 19일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강행의지를 밝힌 점이 매우 우려된다. 어물쩡 넘어가도 그만인 청문회에서 이렇게 답변한 이상 청와대의 강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3월 중 이명박 정권과 국내외 인권공동체가 인권위 축소여부를 둘러싸고 정면으로 충돌할 가능성이 높다.

싸움의 승부는 이미 나있다. 정부 방침에 찬성의견을 밝히는 사람은 국내외를 통틀어 단 한 사람도 없는 반면 국내외에서 반대의견이 쏟아지고 있다면 승부는 보나마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 혼자서 법령상의 형식적 권한을 알량한 핑계 삼아 축소방침을 강행한다면 이보다 더 반지성적이고 반인권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이명박 정권이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도대체 민생경제가 도탄에 빠진 상황에서 할 일 많은 정부가 이렇게 승산 없고 실익 없는 싸움에 매달려도 되는지, 한숨만 나온다.

아무리 미워도 이러진 않았다

왜 국내외가 다 자랑스러워하는 인권위를 유독 이명박 정권은 미워하는가. 아마도 가까이는 촛불시위에 대한 경찰의 과잉진압을 인정해 정권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고 멀게는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소극성, 공권력 행사에 대한 엄격성 등 인권위의 접근방식이 체질적으로 거슬리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인권위가 정부의 입지를 난처하게 만든 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더 심했다. 대표적인 예로, 인권위는 김대중 정부 시절 테러방지법 제정을 무산시키고 교육정보시스템(NEIS) 도입에 반대했으며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비정규직법안에서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주고 여의도 농민집회 사망사고와 관련해 경찰청장의 징계를 권고했다. 당시의 정권도 이명박 정권 못지않게 인권위에 미움과 분노를 보였지만 인력감축을 겁주진 않았다. 인권위가 독립성을 지키는 이상 인권위는 어느 정권에게나 눈엣가시같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다.

설령 인권위의 업무수행방식에 대한 현 정부의 불만과 부담에도 일리가 있다 치자. 그렇다고 해서 대규모 인력감축을 단행해 팔다리를 자르는 보복성 방식으로 불만을 해소하여야 하는가. 이것이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정권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것인가. 도대체 이런 방침을 세우면서 인권의 실질적 주체인 약자와 소수자의 처지를 한순간이라도 헤아려본 적이 있는가. 이래서는 안 된다. 시간이 흐르면 위원장과 인권위원의 임기가 종료돼 자연스레 인권위를 재구성할 것 아닌가. 인권위의 인력을 대폭 줄여서 무력화하면 이명박 정권이 임명할 인권위원장은 어떻게 일하라는 말인가. 어떻게 이토록 단견일 수 있으며 이토록 자가당착일 수 있는가. 이건 누가 봐도 벼룩 잡으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다.

향후 경제공황상태에서 쏟아질 실업자, 사회경제적 약자의 열악한 지위를 생각하면 정부는 이 '연약한 지체들'의 인권을 지켜줄 책무를 갖는 인권위에 인력감축이 아니라 더 정력적으로 일해줄 것을 주문하며 필요하면 인력증원도 마다않겠노라고 약속해야 옳다. 구구하게 말할 것 없다. 법학교수들이 성명서에서 날카롭게 지적한대로, 다른 국가기관의 인력은 2%도 감축하지 않으면서 유독 인권위만 30% 감축하라는 건 촛불시위 '과잉진압' 결정에 대한 보복성 표적감축이 아닐 수 없다.

▲ "다른 국가기관의 인력은 2%도 감축하지 않으면서 유독 인권위만 30% 감축하라는 건 촛불시위 '과잉진압' 결정에 대한 보복성 표적감축이 아닐 수 없다." 국회에 출석한 이달곤 행안부 장관. ⓒ뉴시스

1년 새 유엔에서 항의서한 두 번 받는 '불명예 기록'

이명박 정권은 인수위 시절의 인권위 장악시도와 최근의 인권위 무력화 시도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한껏 망신살이 뻗쳤다. 이렇게 가면 이명박 대통령이 국제인권공동체에서 기피인물로 낙인찍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이미 당시 루이스 아버 유엔인권최고대표의 항의서한을 받은 바 있다. 인수위가 인권위의 위상을 대통령 직속으로 변경하려고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이 대통령은 필레이 유엔인권최고대표로부터 다시 한 번 인권위의 인력감축에 항의하는 공식서한을 받음으로써 불과 1년 동안 유엔인권최고대표에게 두 번이나 항의서한을 받는 불명예스러운 기록을 세웠다.

국가인권기구는 좀 별난 구석이 많은 이색적인 국가기관이다. 무엇보다도 헌법기관이 아니면서도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기관이라는 점이 그렇다. 인권위의 독립적 위상은 인권단체들이 입법과정에서 무려 3년 넘게 법무부와 혼신의 힘을 다해 싸워 획득한 국민들의 귀중한 공유재산이다. 덕분에 현재 대통령, 총리, 장관은 인권위에 대해 어떤 지시나 명령도 할 수 없다. 반면 인권위는 대통령, 총리, 장관에게 인권관련 법제와 정책의 개선을 권고하는 것은 물론 인권침해에 책임이 있는 장관, 청장, 기타 공무원에 대한 해임 기타 징계 조치를 권고할 수 있다.

두 번째 특징은 인권위의 활동을 지켜보는 국제기관이 유난히 많다는 점이다. 인권위는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유엔원칙, 일명 파리원칙(Paris Principles)에 대한 부합여부를 정기적으로 심사받는다. 전세계의 모든 국가인권기구들은 파리원칙이 요구하는 독립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고 있는지 매5년마다 심사받는다. 파리원칙의 이행수준에 따라 등급을 부여받고 그에 따라 발언권과 의결권이 달라진다. A등급 인권기구만이 유엔인권이사회 발언권과 국제조정위원회 의결권을 갖는다. 매년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1~2개 국가인권기구는 A급에서 B급으로 하향 조정되는 수모를 겪는다. 독립성이나 실효성을 침해한 자국정부의 형편없는 조치들 때문이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아시아 인권단체들은 곧 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에 한국인권위에 대한 특별심사 회부를 요청할 것이다. 만약 국제조정위원회가 특별심사 회부결정을 내리면 한국인권위의 A등급 지위는 조만간 B등급으로 격하될 것이 틀림없다. 인권의 관점에서 B급 정부를 만난 탓에 A급 인권위가 B급 인권위로 강등되게 생긴 셈인다. 해서 이명박 정부에 묻는다. 이러한 상황을 뻔히 알고도 축소고집을 부릴 것인가. 하루속히 축소방침 철회 방침을 세워서 국제사회에 알려야 한다. 그래야 위와 같은 수치스런 시나리오가 작동하지 않는다.

인권위에 대한 무지는 더 이상 변명이 되지 못한다

한국인권위는 현재 국제조정위원회의 부의장국이자 국제조정위원회 등급심사소위의 아시아태평양지역 대표국이다. 등급심사소위는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미주에서 각1개국씩 모두 4개 인권기구대표로 구성된다. 최근에 특별심사절차에 회부된 경우는 네팔, 스리랑카, 나이지리아, 말레이시아 등인데 모두 정부의 독립성 침해조치 때문이었다. 예컨대, 나이지리아에선 정부가 정당한 이유 없이 사무총장을 경질한 것이 문제됐다. 스리랑카의 경우 대통령의 무리한 인권위원 임명이 화근이었다. 네팔에서는 친위쿠데타 직후 국왕이 인권위원 모두를 친쿠데타 왕당파로 교체한 데 대해 국제사회가 딴지를 걸었다.

한국 인권위는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독립성과 실효성이 훨씬 뛰어나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아시아의 모범적 인권기구가 인력과 업무를 1/3이나 줄여야 하는 새로운 사태 앞에서 아시아의 주요 인권단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나마 한국 인권위가 있어서 모범과 위안을 삼을 수 있었는데 이제 이것마저 형편없이 쪼그라들면 아시아의 국가인권기구 중에 반듯한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는 한탄이다. 그래서 국가인권기구 감시를 위한 아시아 인권단체네트워크(ANNI, Asian Network on NHRIs)는 지금 초비상이다. 한국 인권위를 살리는 일은 이처럼 비단 한국의 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시아의 일이자 세계의 일로 인식되고 있다.

아마도 이명박 대통령, 정동기 민정수석, 이달곤 행안부장관은 자신들의 보수적인 성향과 어긋나는 인권위의 결정 몇 개를 기억하고 있을 뿐 인권위가 과연 무엇을 하는 기관이며 어떤 점에서 위상과 역할이 독특한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의 정책에 대해 국제사회와 시민사회가 일제히 심각한 이의를 제기하는 작금의 상황에서 인권위에 대한 무지는 더 이상 변명이 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는 인권위 축소방침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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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스캔들' 주인공은 바로 이용훈 대법원장"

[기고]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고함

기사입력 2009-03-11 오전 9:5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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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벨트 대통령은 고심 끝에 내놓은 뉴딜(New Deal)법안들이 번번이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특히 1935년의 경제재건법 위헌 판결에 평소 자신을 지지한 진보 성향의 대법관들마저 가담한 사실을 알고는 충격과 울화를 감추지 못했다. 그는 종신직인 연방법관직의 속성상 연방법원의 노령화가 필연적이라는 사실에서 연방법원, 특히 대법원의 보수화 근거를 찾아냈다. 1936년 말의 대선에서 압도적 승리로 재선된 루스벨트 대통령은 70세가 넘는 고령법관의 수만큼 연방법관 정원을 늘리는 법원재편법안(court packing bill)을 1937년 2월 5일 의회에 제출한다.

법원재편법안이 통과되면 루스벨트는 무려 6인의 대법관과 44명의 연방판사를 자신의 입맛에 따라 신규 임명할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연방대법원이 루스벨트의 개혁 법안을 무효화할 가능성도 사라질 것이었다. 하지만 이 야심찬 법안은 루스벨트에게 불명예와 상처만 남기고 곧바로 폐기된다. 여야를 막론하고 여론 주도층 사이에서 반대와 조롱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민주당 성향의 진보적 대법관들도 공개적으로 비판할 정도였다. 루스벨트의 법원재편법안은 지금도 사법부의 독립성에 대한 가장 대표적인 침해 시도의 하나로 회자된다. 루스벨트의 명예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이 남은 셈이다.

계엄 아래서도 '코드 배당', '코드 배제'는 절대금기

사법부의 독립을 침해하는 입법과 행정 조치는 심지어 비상계엄 상황에서도 허용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된다. 즉, 비상 사태라고 해도 계엄정부가 제멋대로 법원 조직을 뒤흔들고 재판부를 재구성하는 따위의 일은 금지된다는 것이 확립된 비상 사태 통제법리의 일부다. 그나마 이와 같은 법적 제약마저 없으면 모든 쿠데타 정부는 평소 미운털이 박힌 법관들을 마구잡이로 해임하거나 주요 재판에서 배제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특정 판사에 대한 '코드 배당'과 특정 판사에 대한 '코드 배제'는 이처럼 계엄통치 아래서도 금지되는 사법 세계의 절대금기다.

사실 분쟁 당사자 간에 사생결단으로 싸우다가도 법관의 판결이 나는 순간 그것을 고분고분 따르는 걸 당연시하는 재판 제도의 위대한 마술은 법관과 재판의 독립성에 대한 신뢰가 없이는 한시도 유지될 수 없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일반 국민들이 법관의 판결만은 신주단지 모시듯 일단 받아들이는 이유도 법관이 오직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해서 재판할 것이라는 헌법상의 보증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특정 법관에게 특정 사건을 특별히 배당하는 '코드 배당'과 특정사건에서 특정 법관을 특별히 배제하는 '코드 배제'는 법관과 재판의 독립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공적 신뢰의 마지막 보루인 사법 신뢰를 좀먹는 최악의 사법 파괴 행위이자 국기 문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지난해 국민의 가장 큰 관심사였던 삼성 재판과 촛불 재판에서 대법원과 중앙지법이 이러한 절대금기를 정면으로 위배한 사실이 지난 2월 말부터 언론의 집중 취재를 통해 드러남으로써 전례 없는 사법 파동으로 발전할 조짐을 보이는 것이 현 상황이다. 이미 법원행정처 진상 조사단이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영철 대법관을 위시하여 관련 판사들에 대한 진상조사에 돌입했을 뿐 아니라 법원 내부에서도 신대법관의 용퇴촉구 등 자성과 자정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탓에 모두들 현 사태가 과연 제5차 사법 파동으로 비화할 것인지를 예의주시 중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앙지방법원은 지난해 봄·여름의 촛불 시위 관련 사건을 처음에는 특정 성향의 판사에게 몰아주었으나 소장 판사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자 서둘러 전자배당 방식으로 바꿨다. 그 후 박재영 판사의 야간 집회 금지 위헌심판 제청으로 촛불 사건 담당 판사들이 동요하자 당시 법원장이 여러 차례 이메일을 보내 위헌심판 결과를 기다릴 것 없이 야간 집회 금지 법규에 따라 촛불 재판을 계속해 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 '촛불 재판 개입 스캔들'의 요체다.

▲ "지난해부터 이어진 촛불 집회 관련 재판은 촛불 정국에 미치는 정치적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렸다. 대법원의 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현 사태가 과연 제5차 사법 파동으로 비화할 것인지를 예의주시 중이다." ⓒ뉴시스

야간 집회 금지 위헌심판 제청이 낳은 파장

지난해 8월부터 촛불 집회가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검찰과 경찰은 본격적인 처벌 국면에 돌입한다. 촛불 시위 참가자에 대한 법원의 구속여부와 처벌강도는 따라서 촛불 집회의 정당성 및 지속가능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범죄 혐의와 적용 형량만 놓고 보면 단독판사가 처리하면 되는 비교적 간단한 사건들이지만 촛불 정국에 미치는 정치적 파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정치권은 물론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렸던 것이다.

중앙지법도 처음에는 촛불 집회 관련 사건들을 임의배당이 가능한 중요 사건으로 인식해서 보수 성향의 특정 판사에게 몰아줬다. 하지만 다른 단독판사들이 집단 반발하자 곧바로 전자배당 방식으로 바꾼다. 중대 사건에 대한 법원장의 임의배당 권한이 현행법상 인정되는 이상 여기까지는 크게 문제 삼기 어렵다. 단독판사들의 집단적 항의를 받고 지체 없이 기계적 배당 방식으로 바꿨으니 더욱 그렇다.

진짜 문제는 중앙지법의 한 판사가 작년 10월 9일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하면서부터 발생한다. 박재영 판사의 위헌심판 제청은 중앙지법은 물론 전국 법원에서 진행되는 촛불 형사 재판 모두를 중단시킬 수 있는 메가톤급 위력을 가진 것이었다. 형사법규에 대한 위헌심판 제청이 있으면 문제 조항의 적용 여부가 걸려있는 동종 사건들의 재판부들은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판결 때까지 사안 심리를 중단하는 것이 관행이기 때문이다.

물론 동종 사건에 대한 심리 계속이나 문제 조항에 따른 판결 선고를 금하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경우 헌재의 위헌 판결로 문제 조항이 무효가 되면 재심 청구 등으로 사태가 복잡하게 꼬인다. 따라서 어지간히 배포가 좋은 판사들이 아니면 일단 재판 진행을 중단하고 헌재 결정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제 조항에 위헌적 요소가 강하다고 판단하는 판사들은 그 때문에 구속된 피고인을 과감하게 보석으로 풀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일반적 관행에 따라 대부분의 판사들이 촛불 재판의 진행을 중단하게 되면 촛불 집회 시위자에 대한 형사 처벌이 헌재 결정 시점까지 불가능해진다. 더불어 '촛불' 형사 처벌을 통한 위하(威嚇) 및 예방 효과도 사라질 판이었다. 믈론 이러한 상황 전개는 당시 촛불 국면의 조기 진화에 정권의 명운을 걸고 올인하던 1년차 이명박 정권의 심기를 크게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대외비도 모자라 '대내비' 강조한 법원장의 이메일

당시 중앙지법원장의 이메일 내용은 이런 특수 상황을 배경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법원장의 거듭된 메시지는 위헌심판 제청에도 불구하고 재판을 중단하지 말고 현행법(야간 집회 금지조항)에 따라 재판을 진행하라는 것. 법원장의 이런 이메일 지침은 조금만 뜯어보면 내용과 형식에서 모두 문제투성이다.

내용적으로는 판사가 법과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할 위헌심판 제청에 따른 재판 중단 여부에 대해 간섭한 것이다. 더욱이 법원장은 대법원장도 같은 의견임을 강조했다. 마지막 이메일에서는 2월의 정기 인사 이동을 상기시키면서 그 전까지 사건 처리를 마쳐서 후임자의 부담을 덜어달라고 호소했다. 심지어 구속 사건이 아닌 이상 현행법(야간 집회 금지조항)에 따라 유죄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것이 법원 내외부의 거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못 박기까지 했다.

형식적으로는 친전 이메일의 '대내외비' 요구가 걸린다. 기자들이나 국민들에게 대외비로 하자는 뜻까지는 알겠는데 '대내비'는 다소 엉뚱하고 낯설다. 취지는 물론 중앙지법의 다른 판사들, 특히 똑같은 이메일을 받았을 동료 단독판사들한테도 비밀로 해달라는 것. 다시 말해서 동료 단독판사들과도 법원장의 '밀지'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말아달라는 것.

만약 '현행법'에 따른 조속 처리 당부가 법원장의 공식적이고 떳떳한 사법행정 권한의 범주에 속하는 사항이라면 대내비는 물론 대외비를 신신당부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더욱이 법원장의 뜻이 헌재를 포함한 법원 내외부의 일치된 의견, 특히 대법원장의 의견과 같다면 그 방침을 정정당당하게 공표하면 될 일이었다.

짐작 가능한 신 대법관의 '정치 계산'

법조계의 중론은 당시 중앙지법원장이 유력한 대법관 후보로서 정치적 계산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데로 모아진다. 그는 2009년 2월 중으로 고참 대법관이 임기 만료를 맞이해 빈자리가 생긴다는 사실을 당연히 알았을 것이다. 대법관이 되려면 이용훈 대법원장의 제청, 이명박 대통령의 임명, 한나라당과 국회의 인준이 필요하다는 점도 모를 리 없었다. 사회분위기가 보수적으로 바뀌면서 대법원장이 외부 인사를 제청할 가능성이 사라진 상황에서 자신이 0순위에 근접한 내부 인사라는 점도 의심치 않았을 터이다.

아무튼 대법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법원장의 선택을 받는 것은 물론 청와대의 비토를 피해야 하기 때문에 촛불 사건에 대한 대법원장과 청와대의 의중을 거슬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으리라. 그는 삼성 사건과 관련해서 이미 대법원장의 점수를 딴 상태였다. 저가 발행에 대한 무죄 선고 가능성이 큰 민병훈 부장판사에게 삼성 사건을 특별 배당해서 대법원장의 삼성 변호인 시절의 주장을 뒷받침해줬기 때문이다. 이제 눈앞의 촛불 사건만 잘 처리하면 대법관 자리는 따 놓은 당상이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높다. 본인의 예상대로 그는 대법원장의 제청과 대통령의 임명으로 지난 2월 18일 대법관이 됐다.

판사들의 입장에서 보면, 인사평정권을 가진 직속 법원장에게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이나 위와 같은 내용과 형식의 이메일을 받고 노골적인 압력으로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물론 "판사가 그 정도 이메일을 압력으로 받아들여 움츠려들면 판사 그릇이 못되는 것 아니냐"는 이용훈 대법원장과 신영철 대법관의 지적은 백번 타당하다. 그럼에도 촛불 사건을 맡았던 중앙지법 단독판사들 중 법원장의 거듭되는 지침을 거역한 '판사다운 판사'는 고작 서너 명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이 점이 가장 마음에 걸린다.

반면 '촛불 처벌'을 위헌 제청한 박재영 판사는 결국 금년 1월 사표를 내고 법원을 떠났다. 언론의 후속 보도에 따르면 중앙지법원장은 국보법 사건과 관련하여 박 판사에게 선고 연기를 부탁했지만 박 판사가 과감하게 무죄를 선고한 후 사표를 던졌다는 것. 박 판사는 아마도 주변과 동료 중에서 판사다운 판사를 찾아보기 어려운 데 낙담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또한 선배 법원장의 되풀이되는 재판개입에 대해서도 낙담하고 절망했을 것이다. 아마도 박재영 판사를 사직으로 몰아간 주범은 이런 상황이 아닌가 싶다.

대법원의 스캔들은 삼성 재판으로 이어진다

중앙지법원장의 촛불 사건 개입과 본질적인 성격에서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난 2월 18일자 삼성 사건 재배당 및 특정 대법관 배제행위다. 대법원장은 삼성 사건에서 소수 의견을 고집하며 전원합의체 회부를 요구한 특정 대법관을 향후 심의 과정에서 눈 딱 감고 배제함으로써 전례 없는 코드 배제의 주인공이 됐다. 다시 한 번 삼성 사건에 걸려 넘어진 셈이다.

삼성 재판에 관한 배당 관련 스캔들은 대법원의 재배당 스캔들이 처음이 아니다. 심각한 코드 배당 의혹이 삼성특검사건에 대한 중앙지법의 1심에서 이미 제기된 바 있었다. 요체는 사안의 성격상 형사24부나 25부로 가야 마땅한 경제범죄 사건이 이례적으로 형사23부에 배당됐다는 것.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시 형사23부 민병훈 부장판사는 에버랜드의 저가 발행은 배임이 되지 않는다는 법리적 소신을 삼성 사건을 맡기 1년 전에 중앙지법 기자실에서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삼성 사안이 민 부장에게 돌아간 것은 결국 민 부장의 배임 무죄 소신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1심 판결 후에 불거진 코드 배당 의혹의 요지였다.

물론 이러한 의혹은 사실이더라도 입증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검찰이 '미네르바'나 사건을 수사하듯 저인망식으로 철저하게 수사한다면 특별히 밝혀내는 게 어려울 것도 없을 것이다. 기자실에서 공공연하게 거론할 정도로 법리적 확신이 강한 민 부장판사가 각종 모임에서 거침없이 소신을 피력했을 것이고 이를 들은 주변 인사들이 적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만에 하나 이러한 의혹이 사실이라면 정말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민병훈 부장판사가 그런 법리적 소신이 있는 사람인줄 꿈에도 몰랐다. 오히려 1심 공판을 몇 번 방청하면서 민 부장판사의 당당하고 모범적인 재판 진행 방식에 매료돼 재판 결과를 낙관한 편이었다. 만약 중앙지법원장이 민 부장판사의 무죄 소신을 직간접적으로 인지한 상태에서 형사23부에 특별 배당한 것이 사실이라면, 필자를 포함한 방청인들은 이미 결론이 나있는 재판 아닌 요식행위를 구경하며 공연히 마음 졸인 셈이다.

만약 이런 배당 의혹이 사실이라면 여기에 무슨 정의가 있겠는가. 설령 민 부장판사의 법리 이해가 내용적으로 정확한 것이라 해도 특정 결론을 미리 낸 코드 판사에 대한 특별 배당은, 정의는 행할 뿐 아니라 보여줘야 한다는 저 오래된 법언에 위배된다. 게다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건희 회장 등 피고인들과 변호인들도 이런 사실을 알고 일반 국민만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중앙지방법원장에게도 알려진 담당 재판부의 오랜 소신을 관련정보 수집에 혈안이 됐을 삼성측 정보 안테나가 놓쳤을 리 없기 때문이다.

▲ "중앙지법원장의 촛불 사건 개입과 본질적인 성격에서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난 2월 18일자 삼성 사건 재배당 및 특정 대법관 배제 행위다." 법원을 나서고 있는 이용훈 대법원장. ⓒ뉴시스

이용훈 대법원장이 주도한 사법 스캔들

이제 와서 굳이 삼성특검사안에 대한 1심 배당 의혹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는 (준)사법 절차에서는 사건이 누구에게 배당되는지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당연히 사건 배당을 제멋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공식절차가 중요하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사회적 이목이 쏠린 중대사안의 배당 권한을 특정결론을 유도하거나 특정인을 봐주기 위해서 법원장이 남용하기 시작하면 사법부는 머지않아 제 무덤을 파게 된다. 임의배당권의 폐지 등 배당권의 자의적 행사 방지장치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 향후 절대적으로 갖춰야 할 0순위 사법개혁이다.

대법원의 2월 18일자 삼성 사건 재배당 및 코드 배제 스캔들은 하급심에서 발생해도 감당하기 어려운 사법 스캔들이 대법원에서, 그것도 삼성 재판과 관련하여, 더욱이 대법원장의 주도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각 4인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 재판부 3개의 인적 구성을 대폭 변경한다. 부의 재구성 혹은 인적 구성 변경은 대법관의 퇴임이나 신규 임명 등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에 불가피하게 인정된다. 재판부의 구성원이 바뀌면 계류 중인 사건 전부를 처음부터 다시 검토해야 하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의해 확인된 재배당 관련 경위와 의혹은 이렇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 에버랜드 저가 발행 배임 사건에서 허태학 피고인 등 삼성측의 1심 변호인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사건이 2심을 거쳐 대법원에 올라오면서 사단이 벌어진다. 변호인으로서 에버랜드 사건에서 배임무죄 주장을 폈던 대법원장은 에버랜드 사건이 전원합의체로 회부되면 사건 심리 자체를 회피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대법원장이 자신의 전력으로 말미암아 중대 사안의 재판에서 빠지는 사법 사상 최초의 진기록을 세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허태학 피고인의 에버랜드 사건을 맡은 대법원 제2부는 이미 여러 차례 합의 과정을 거쳤으나 그 중 대법관 1인이 소수 의견을 굽히지 않는 바람에 지난 1월 중에 전원합의체 회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주심대법관은 무슨 이유에선가 한 달 이상 필요한 절차를 밟지 않는다. 문제는 이렇게 꾸물거리는 사이 대법원장이 재판부 재구성을 단행했는데 공교롭게도 소수 의견을 고집한 특정 대법관을 배제한 채 삼성 사안을 새로 구성된 두 개의 부에 새로 배당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월말의 언론 보도는 삼성 사안과 에버랜드 사안을 담당한 1, 2부 소속 대법관 총8인이 모여서 몇 차례의 합의 과정을 거쳤는데 1인을 제외한 나머지 7인의 대법관은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전한다. 그렇다면 문제의 대법관이 빠진 현재의 삼성 재판부는 8대0으로 의견 일치를 볼 가능성이 높다. 이때 삼성 사건은 전원합의부에 갈 필요가 없게 된다. 다시 말해서 이용훈 대법원장은 변호사 시절의 전력 때문에 삼성 사건을 회피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반면 문제의 대법관은 삼성 사안에 대해 소수 의견권을 개진할 기회마저 누릴 수 없게 된다.

눈 딱 감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선택

이제 이용훈 대법원장의 삼성 사건 재배당 스캔들의 핵심에 도달했다. 대법원장의 지난 18일자 부 변경권 행사의 백미는 삼성 사안에 대해 소수 의견을 가진 특정 대법관을 삼성 사안 심리에서 밀어낸 데 있다. 에버랜드사건을 심의한 대법원 제2부의 합의결렬사실 및 이 과정에서 특정 대법관의 역할은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모두에게 잘 알려진 대법원 내부의 공지의 사실. 특히 부 구성 권한을 가진 대법원장이 삼성 사안과 같이 중대한 사안의 합의 진행 상황을 몰랐을 리는 없다. 부 변경권 행사로 인한 재판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주요사건의 합의 진행 상황은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까지 밝혀진 모든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이용훈 대법원장은 코드 배제를 결정할 때 최소한 다음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첫째, 특정 대법관의 소수 의견으로 말미암아 에버랜드사안을 심의한 2부에서 의견 불일치가 계속된 사실, 둘째, 그 결과 2부에서 전원합의부 회부를 결정한 사실,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사안의 주심대법관이 전원합의부 회부절차를 밟지 않은 사실, 넷째, 1부에서 다룬 삼성 사안에 대해서도 합의 과정이 끝났다는 사실, 다섯째, 만약 이런 상태에서 부 구성을 변경하면 실질적으로 합의 과정이 종료된 두 개의 삼성 사안을 모두 처음부터 새로 심리해야 한다는 사실, 여섯째, 이것이 쓸데없는 심의 중복과 결정 지연을 초래하고 특검법의 위반 상태를 장기화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훈 대법원장이 공평무사하게 일을 처리하고 불신을 받지 않으려면, 당연히 비서실장을 주심대법관에게 보내서 부 변경 예정일까지 전원합의부 회부 결정 이행을 당부했어야 한다. 문제는 이렇게 해서 전원합의부에 삼성 사건이 오게 되면 막상 재판장인 자신은 재판을 회피해야 한다는 점. 여기서 대법원장은 일대 딜레마에 빠진다. 이미 결론이 난대로 전원합의부에 회부한 후 당당하게 회피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의 대법관을 배제하고 새 부를 구성한 후 그래도 합의가 안 되는지를 지켜볼 것인가. 햄릿의 고민이 시작된다.

논리적으로는 제3의 길, 즉 전원합의부 회부 결정을 이행하지 않되 특정 대법관을 여전히 삼성 재판부 중 하나에 소속시키는 것도 가능하지만 이런 방안은 특정 대법관의 뚝심으로 볼 때 전원합의부 회부시점을 늦추는 효과 이상이 없으므로 폐기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드러난 대법원장의 선택은 눈 딱 감고 문제의 대법관을 삼성 사건 재판부에서 배제하는 것이었다.

사법폭거 자행한 대법원장은 물러나야

이런 자기중심적 선택을 함으로써 이용훈 대법원장은 첫째, 자신의 전력 때문에 대법원 전원합의부 심리 사건을 회피해야 하는 상황에 대해 큰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둘째, 이런 부담 때문에 삼성 사건이 전원합의부로 넘어오지 않기를 바란다는 사실, 셋째, 삼성 사건에 대한 전원합의부 회부를 강제한 특정 대법관을 향후 논의 과정에서 배제하는 무리수를 써서라도 이런 소망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어떤 면에서 대법원장의 속 보이는 행태보다 더욱 절망스러운 건 이번 부 변경 사태의 전말과 함의를 뻔히 알면서도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하며 대법원장의 불법과 전횡을 눈감아주고 있는 대다수 대법관들의 비겁함이다. 특히 삼성 사건을 다뤘던 1부와 2부 소속 대법관들은 주심 대법관의 직무유기 책임을 준엄히 물으며 늦게라도 삼성 사건의 전원합의체 회부를 촉구했어야 마땅하다. 도대체 합의 과정이 다 끝난 삼성 사안을 새로 구성된 재판부에 다시 맡겨서 새롭게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7대1을 8대0으로 바꿔서 전원합의체 회부를 막는 것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법원장의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 동료 대법관에 대한 배제와 모욕을 수수방관하는 셈 아닌가.

이용훈 대법원장은 본인의 권위를 위해서는 물론 사법부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삼성 사안을 더욱 엄정하게 처리함으로써 혹시 모를 세간의 의혹과 우려를 말끔히 불식해야 할 엄중한 책무가 있다. 대법원장이 이렇게 행동해야만 판결 내용과 상관없이 삼성 재판의 결과를 국민들이 승복할 것 아닌가. 다시 말해서 이 대법원장은 삼성 사건 처리 과정에서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 매는 따위의 어리석은 짓은 결단코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걸 못했다. 본인의 체면이 눈에 밟혀서다.

위의 설명이 대체로 맞는다면 자신의 체면치레를 위해서 대법관의 소수 의견 개진 기회 박탈을 서슴지 않은 이용훈 대법원장의 행태는 '사법 폭거'라는 용어 외에 달리 적합한 용어를 찾는 것이 어렵다. 이 경우 이용훈 대법원장은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앞장서서 훼손한 책임을 지고 바로 물러나야 한다. 물론 대법원장을 생각해서 부 변경 예정일을 염두에 두고 전원합의체 회부결정을 불이행한 주심대법관도 함께 물러나야 마땅하다. 껍데기는 가라.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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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가 한국 교육 현실 안다면 '경악'했을 것&quot;

 오바마가 한국 교육 현실 안다면 '경악'했을 것"

방한한 EI 사무총장 "한국 문제 국제사회에 알릴 것"

기사입력 2009-03-11 오후 3: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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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모두 '표준 평가'(일제고사)를 한국과 같은 용도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세계교원단체총연맹(EI·Education International)의 프레드 벤 리우벤 사무총장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 정부가 일제고사를 통해 학교와 교사를 평가하겠다면서 외국도 그렇다고 주장하는데, 어떻게 보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듣고서였다.

리우벤 총장이 재직하는 EI는 전 세계 172개국 400여 개 단체, 3100만 명의 교사가 회원으로 가입된 유일한 국제 교원단체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초청으로 지난 9일 한국을 찾은 리우벤 총장은 3일간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을 비롯해 교사, 학부모, 국회의원 등을 만나며 바쁘게 움직였다.

11일 서울 중구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국제 기준에 비춰 봤을 때 한국 정부의 교육 정책과 교원 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법규, 민주주의 국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경우"

리우벤 총장은 "우선 정부와 교원단체의 관계 악화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정부라도 교육 목표를 달성하려면 교육 전문가인 교사들과의 대화를 제한하거나 억제해선 안 된다"며 "한국 정부는 교육 정책 입안 과정에서 교원노조와의 적절한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리우벤 총장은 "교사는 병원의 의사와 같아서 단 한 명의 의사가 존재해서 모든 환자에 동일한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없는 것"이라며 "일제고사 때문에 교사들을 해직한 것은 명백한 실수"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한국 정부가 국제 기준에 미달하는 정책을 집행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며 "더군다나 최근 한국 정부와 교원노조의 단협 무효화는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 정면으로 위반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리우벤 총장은 "특히 한국 법규는 교원의 노동권 제약과 정치 활동 제약 부분에서 국제 기준에 크게 미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는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라며 "자기의 신념과 일치하는 후보를 도왔다고 해서 해고되고 투옥되는 것은 굉장히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일제고사를 교사 평가 기준으로 하겠다니…"

리우벤 총장은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경쟁과 효율'을 중심으로 가속도를 내는 각종 교육 정책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물론 어느 나라나 자국 정책을 설립할 권리가 있다"며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교육의 상업화가 번성하고 있고, 이처럼 사교육이 급격히 커지는 나라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교육을 본받을 사례로 언급한 것을 두고도 "오바마 대통령이나 그를 수행하는 비서들이 한국의 현실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며 "공교육이 아닌 사교육이 지나치게 확장되고 있는 한국 현실은 우려할 만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리우벤 총장은 "물론 경쟁 자체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그러나 경쟁을 과도하게 강조한 정책은 외국 사례를 봐도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런 정책들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며 "유네스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경고를 발동해서 국제 사회의 관심을 촉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 앞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만났던 리우벤 총장은 "한 여당 의원이 일제고사 때문에 해직된 교사들은 중앙정부와 상관없는 문제라고 하더라"며 "원칙적으로는 맞는 것 같지만, 지역 교육청의 행위가 국제 기준에 어긋나는 사안이기 때문에 중앙 정부가 시정을 촉구하고 개입하는 것이 옳다"고 밝혔다.

리우벤 총장은 일제고사 실시와 이를 통한 교사·학교를 평가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정책을 두고서 "OECD는 적절한 교사 평가 기준을 찾으려 오랜 시간 노력하고 있다"며 "그러나 표준 평가에서 고민해야 할 점은 교육의 내용이지 형식은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편, 리우벤 총장은 이번 방한에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을 만나려 했다. 그러나 교과부는 "단식 중인 정진후 전교조 위원장과 일제고사 해직교사들의 농성장 방문을 취소하지 않으면 면담을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리우벤 총장은 "안타깝게 생각할 뿐"이라며 "(교과부 장관과) 만나진 못했지만 서로 무슨 입장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이현

 

전교조 "청와대, 가만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일제고사 홍보책자 발행…"외국 사례 사실 아니다"

기사입력 2009-03-08 오후 6: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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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치뤄진 일제고사(학업성취도 평가)가 공개된 뒤, 성적 조작 등 문제점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일제고사 시행의 정당성 여부가 또 다시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시험과 채점 방식을 보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실적으로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는 반론이 이어지고 있다. 일제고사 선택권을 안내했던 교사들을 대거 파면·해임하면서 강행하고 있는 시험에 명분이 없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파문이 가라앉지 않자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 지난 2일 청와대 홍보기획관실은 '학업성취도평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라는 제목으로 10쪽에 걸친 홍보책자를 발간했다.

이 책자에는 정진곤 교육과학문화수석의 대국민 편지와 함께 지난해 일제고사 평가 결과와 해외 사례, 향후 계획, 당부의 말 등이 실려 있다. 특정 교육 정책을 두고 청와대가 홍보책자를 직접 발간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8일 반박 자료를 통해 "책자에 나와 있는 주장의 근거로 삼는 내용들이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중 사례로 제시된 외국에 대한 설명은 대부분 거짓이거나 확대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선진국도 일제고사? 청와대가 거짓말"

이 자료에는 "주요 국가에서도 매년 전체 초중등학생을 대상으로 핵심교과에 대한 평가를 실시하고 있으며, 평가 결과를 학생과 일반 국민에게 공개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나와 있다. 이어 미국, 영국, 호주, 일본의 사례를 제시하며 네 국가 모두 '매년 전수평가'를 실시하고 있다고 소개돼 있다.

이에 대해 전교조는 "미국의 학업성취도 평가(NAEP)는 전수평가가 아닌 표집평가"라며 "또 매년이 아니라 적어도 2년에 한 번씩만 보면 되고, 모든 학년도 아니며 4학년과 8학년에서 읽기와 수학만 반드시 실시하고 나머지 과목은 의무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전교조는 "미국의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전수 평가라는 청와대의 주장은 완전히 거짓말"이라며 "또한 표집평가를 받는 학생도 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는 자발적인 시험이며, 학교별, 개인별 성적 산출을 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전교조는 "특히 학생의 참여에 관해 학부모에게 시험 실시 이전에 반드시 어떤 이유로든 시험을 면제(exempted)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며, 시험을 끝까지 치루지 않아도 된다는 점과 모든 시험 문제에 답을 할 것을 요구받지도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도록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영국의 학업성취도 평가 사례 역시 철지난 옛날 이야기"라며 "2000년부터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에서는 일제고사와 학교 순위표(League Table)를 폐지하고 잉글랜드에만 남아 있었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잉글랜드에서도 명문사립학교와 교장들, 영국교원노조 등을 중심으로 일제고사와 학교순위표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높아지고, 심지어 이를 폐지한 웨일즈와 잉글랜드 사이의 학업성취도 결과의 차이가 없다는 보고서가 의회에 제출됐다"며 "결국 영국 교육부는 올해부터 중학교 과정의 일제고사와 학교순위표를 폐지하기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왜 세계 최고 학업성취도 자랑하는 핀란드는 소개하지 않나"

전교조는 "일본의 사례 역시 진실 호도"라며 "일본에서 2007년 전국 단위 일제고사가 전국학력학습상황조사평가라는 이름으로 43년만에 부활했지만 현실에서는 교육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험에 참여하지 않는 학교들이 있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2007년, 2008년 아이치현 이누야마 교육위원회는 '스스로 배우는 힘'을 강조하는 시의 교육 철학과 맞지 않다는 이유로 교육위원회 산하 모든 학교에서 일제고사에 불참하고 정규 수업을 실시했다"며 "2007년에는 전국 사립학교의 40%, 2008년에는 47%가 일제고사에 불참하고 정규 수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 전교조는 "왜 청와대는 세계 최고의 교육경쟁력을 자랑하는 핀란드의 사례는 소개하지 않나"라며 "정부 이야기처럼 학업성취도평가를 전수평가로 실시해야 하는 이유가 학업성취도가 낮은 학생들에 대한 지원이라면 성적도 가장 높고, 상하위권 학생들의 성취도 차이가 가장 작은 핀란드를 모델로 삼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전교조는 "
청와대도 '가만 있으면 중간이나 간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가"라고 덧붙였다.

/강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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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1년] 민주화 20년과 '우리 안의 MB'

 

 

이명박 1년] 민주화 20년과 '우리 안의 MB-노김김노리 부동산 '분류없음 2009/02/24 22:04 손낙구

 1987년 민주화 이후 다섯 번째 대통령으로 이명박 씨가 취임한 지 1년이 지났다. 때가 때인지라 1년을 돌아보고 공과를 따지는 일은 자연스럽다. 다만 어떤 자리에 서서 어느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평가의 목적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은 짚을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이명박 정부 1년이 민주화 20년의 일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부동산 정책을 중심으로 '민주화 20년과 우리 안의 MB'에 대해 살펴보려 한다.


 

 


1. 김대중-이명박 '부동산'이 닮았다


지난 1년간 이명박 정부가 내놓은 여덟 차례의 부동산 대책은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전방위 경기부양 정책이다. 전임 정부의 핵심정책인 종부세 무력화를 비롯한 각종 부동산 부자 감세, 미분양 아파트 해소를 앞세운 건설재벌 지원책,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한 투기규제 장치 해체, 뉴타운 재개발 확대와 10년간 500만채 공급 계획, 그린벨트 완화, 잠실롯데 신축  허용, 광역경제권, 4대강 정비사업과 수십 조 원 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등 가능한 모든 투기촉진 경기부양책이 동원되고 있다.

한국경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이 20%에 육박할 정도로 부동산 의존도가 기형적으로 높은 후진국형 산업구조에 발목이 잡혀왔다. 이른바 토건국가 현상이다. 토건국가 현상이야 말로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였다.


경제위기는 부동산 분야의 구조조정을 자연스럽게 단행함으로써 후진국형 산업구조를 탈피할 절호의 기회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를 극복할 손쉬운 수단으로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선택함으로써 또 다시 부동산의 수렁으로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그런데  경제위기를 부동산 경기부양으로 돌파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매우 낯이 익다. 결론부터 말하면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판박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발발한 가운데 당선되었다. 실물경제가 극심하게 침체하는 가운데 1998년 집값은 무려 -12.4%가 폭락해 정부 주택가격 집계 역사상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역설적으로 외환위기를 계기로 부동산부문을 구조조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의 손쉬운 수단으로 부동산 경기 활성화대책을 사용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김대중 정부는 노태우 정부의 토지공개념제도를 폐지하고, 개발-공급-유통소비-보유-개발이익환수 등 부동산의 생애주기별로 각종 규제를 다 풀었으며 전방위로 경기부양 정책을 폈다. 곧이어 과잉유동성에 투기촉진 정책이 겹쳐 2001년 9.9%, 2002년 16.4% 등 부동산 가격이 폭등했지만 정부는 부동산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수단을 다 놓아버려 속수무책이었다. 그 결과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해체돼야 할 토건국가는 명맥을 유지했을 뿐 아니라 한국경제는 계속 부동산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구하는 부동산 정책의 목표는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떨어지더라도 최대한 빨리 다시 오르게 하려는 데 있다는 점에서 김대중 정부가 만들어놓은 결과와 같다.


민주화 20년에서 김대중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정치적으로 무엇 하나 닮은 게 없는 정반대의 극점에 있다. 남북관계나 인권·복지정책을 보면 두 정부의 차이는 극명하다. 그러나 부동산 정책이 다르지 않은 것은 경제위기 속에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는 가운데 집권했다는 공통점 때문이다. 경제위기가 오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니 투기규제 장치를 다 풀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동산 경기 부양에 나섰다는 점에서 민주화 이후 첫 민주정부와 재집권에 성공한 보수 권위주의 정부는 아무런 차이를 보이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이를 ‘DJ-MB형’ 부동산 정책이라 부르려 한다.


물론 목표와 수단이 같다고 해서 철학까지 같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 철학을 정확히 헤아리기 어려우나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현실화하기 어려운 수준의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2. 노태우-노무현 '부동산'도 닮았다


‘DJ-MB형’과 정반대의 상황 즉 경제위기도 없고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는커녕 폭등하는 상황에서 집권한 대통령들은 어땠을까?

노태우 정부(1988∼1992)와 노무현 정부(2003∼2007)는 집값이 크게 뛰는 가운데 집권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태우 대통령 집권 첫 해 인 1988년 집값은 13.2%나 뛰었고, 이듬해에는 14.6%가 올랐으며, 집권 3년차인 1990년에는 무려 21.0%가 폭등했다. 그런 탓에 노태우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집값을 잡는 데 온 힘을 다 빼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선에서 당선된 2002년은 집값이 무려 16.4%나 치솟아 1990년 이후 가장 크게 폭등했다. 노대통령은 취임 첫 해부터 만사를 제쳐두고 집값을 잡기에 정권의 명운을 걸었지만 2003년 한 해 동안 5.7%가 올랐다. 2004년 -2.1%로 한 숨 돌리는가 싶었지만 2005년엔 다시 4.0%가 올랐고, 2006년엔 무려 11.6%가 치솟았다.

이처럼 노태우-노무현 대통령은 집값이 폭등하는 가운데 집권했기 때문에 임기 내내 집값을 잡기 위해 강력한 투기 억제 정책을 펼쳤다. 노태우 정부는 1988년 1가구 1주택 비과세 요건 강화, 양도세 누진과세, 종합토지세 조기 실시 등을 뼈대로 한 부동산종합대책(8.10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1989년에는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 등 토지공개념의 칼을 빼들고 투기를 잡으려 했다. 1990년에는 대기업의 토지과다보유 억제, 비업무용 부동산 6개월 이내 처분, 기업과 금융기관의 부동산 신규 취득 억제를 내용으로 하는 5.8대책을 내놓았다.

노태우 정부가 토지공개념을 축으로 부동산 과다 소유 제한을 제한하는 방식을 택했다면, 노무현 정부는 종합부동산세를 축으로 한 세제정책과 각종 투기규제 장치의 재도입 그리고 주택담보대출 제한 등을 병행했다. 노무현 정부는 2003년 종합부동산세 도입, 1가구3주택 양도세 중과, 투기지역 주택담보인정비율(LTV) 40% 강화 등을 뼈대로 하는 10.29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2005년에는 8.31대책을 발표해 종합부동산세 대상을 확대하고 2주택에 대해서도 양도세를 중과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2007년 들어서는 투기지역 담보대출을 강력히 제한하는 조치를 취하는 한편 분양가 상한제를 재도입했다.


사실 두 노 대통령은 성이 같다는 것 빼고는 닮은 게 별로 없다. 노태우 대통령은 비록 직선으로 당선되었지만 전두환 군사독재의 뒤를 이은 군인출신이며, 반대로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독재 아래서 변호사 신분으로 노동자를 위해 노동문제에 개입했다 구속된 적이 있을 정도로 민주화 운동의 선두 대열에 섰던 사람이다.

그러나 이 같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 집권했다는 공통점 때문에 각각 토지공개념과 종합부동산세라는 비장의 칼을 꺼내들고 임기 내내 투기와의 전쟁을 벌인 것이다. 민주정부만이 아니라 군사독재의 후신인 권위주의 정부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면 민주정부 이상의 투기억제 정책을 펴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고, 두 정부가 투기를 잡는 무기로 썼던 토지공개념과 종합부동산세가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판정을 받고 후임정권으로부터 사실상 폐기 처분됐다는 점까지 닮았다. 나는 이를 ‘노-노형’ 부동산 정책이라 부르려 한다.


물론 투기를 규제하려는 정책을 편 것이 노태우 정부와 닮았다고 해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폄하할 일은 아니며, 수도권 신도시 개발 등 주택 200만호 공급정책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킨 노태우 정부의 한계도 눈감을 일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보유세제 도입, 실거래가 확립과 거래 투명화, 국민임대주택 공급 확대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남겼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는 결과적으로 집값을 잡는 데 실패해 정권을 넘겨준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무엇보다 부동산 가격 폭등기에 펼친 부동산 정책에서 민주정부 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한 점이 뼈아프다.

사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일면 투기 규제지만, 수십 개의 신도시개발 정책에서 보듯 일면 투기 촉진의 성격을 아울러 안고 있었다. 투기규제정책 조차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구조적 변화를 감지하지 못함으로써 유동성 관리에 실패했다.


이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주거복지 중심으로 펼쳐야 한다는 막연한 철학은 있었지만 변화된 조건에서 부동산 투기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이 준비되지 못함으로써 결국 토건국가를 유지시키고 정권까지 내준 결과가 되었다.


 




3. '부동산'에서 민주정부 다운 면모 보여주지 못했다

민주화 이후 주요 정부가 정치적 성격과 상관없이 집권 당시 부동산 사장 조건에 따라 비슷한 기조로 부동산 정책을 펴는 현상은 87년 이후 민주화 20년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한계와 관련이 있다.


사실 해방 후 한국 현대사 경험으로 보면 부동산 정책은 민주화 이전과 이후 정권 간에 별 구분이 없다. 다만 부동산 값이 너무 오를 때 대통령이 됐느냐, 가격이 너무 떨어질 때 대통령이 됐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국가보안법의 엄호를 받는 ‘사유재산 제일주의’로서의 절대적 토지사유권을 보장하고 ‘해방 후 최초의 부동산 투기’인 귀속재산 헐 값 불하를 단행한
이승만 정권, 공업중심의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각종 개발정책을 추진한 박정희 정권이 그 출발점에 해당한다.

그 뒤 역대정권은 지나친 투기촉진 부동산정책으로 땅값집값이 치솟고 국민의 저항이 격렬해져 정권과 체제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정권 차원에서 이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일시적이나마 투기를 자제시키는 정책을 펴기도 한다. 개발 군부 독재정권이었던 박정희 정부나 전두환 정부 때도 이 같은 현상은 있어왔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대자본을 정점으로 하고 88만 원 세대라 불리는 비정규직을 최하층으로 하는 노동시장의 먹이사슬 뿐 아니라, 건설재벌을 정점으로 하고 무주택 빈곤층을 최하층으로 하는 부동산의 먹이사슬이 동시에 쉴 새 없이 작동되는 토건국가 즉 부동산 계급사회로 나아갔다.


부동산 먹이사슬을 해체하고 부동산 의존도가 높은 후진국형 경제구조를 뛰어넘는 것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해 투기가 하늘을 찌를 때 집권한 두 노대통령의 부동산 정책은 ‘투기와의 전쟁 선포’라는 언술과는 다르게 투기를 잡는 데도 성공하지 못했고, 부동산 먹이사슬을 끊는 데도 실패했다. 오히려 두 노대통령은 각각 연간 54만 채와 51만 채씩 주택을 공급함으로써 건설재벌이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토지공개념이나 종합부동산세를 앞세운 ‘노-노형’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정책 수단의 적절성 문제와 함께 정책의 목표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DJ-MB형’은 말할 것도 없지만 ‘노-노형’ 부동산 정책 역시 부동산 의존도가 지나치게 큰 산업구조 자체를 개혁하려는 데까지는 목표를 두지 못했고, 정권과 체제의 위기를 미봉적으로 해소하는 데 현실적 목표를 두었다고 할 수 있다.


투기국면이 끝나면 다시 투기촉진 경기부양으로 되돌아가는 점은 민주화 이전이나 민주화 이후나 다르지 않았다. 1990년대
세계화를 내세운 김영삼 정권의 준농림지 도입과 난개발정책, 외환위기 극복을 내세운 김대중 정권의 토지공개념 제도 폐기와 다양한 투기규제 완화정책은 정권과 체제의 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 다시 투기 촉진 정책으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특히 ‘DJ-MB형’에서 알 수 있듯이 경기침체나 경제위기가 덮칠 경우 투기촉진 정책은 극단으로 치달아 부동산 경기부양에 한국경제의 승부를 거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결국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보수 권위주의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두 번의 민주정부도 한국사회의 고질병인 부동산 망국병에 대한 진단과 처방이 다르지 않았다. 마음속으로야 어땠는지 알 수 없지만 실제 행한 정치행위로는 차이를 알 수 없다.

이것은 결국 민주화 이후 민주정부를 주도한 세력이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돼온 부동산 문제에 대해 독자적인 철학을 정립하고 이를 바로잡을 제대로 된 정책대안을 준비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민주화 이후 20년 동안 정권은 보수에서 민주를 거쳐 다시 보수로 교체되었지만 부동산 정책을 담당하는 부동산 관벌은 어느 정부에서나 교체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경제가 건설재벌을 정점으로 한 부동산 먹이사슬에 얽혀들게 되고, 한국사회가 부동산으로 계급을 이루는 부동산 계급사회로 빠져드는데 민주정부도 공모해왔거나 최소한 방조해온 셈이다.


민주정부를 주도한 세력 외에 사회단체나 진보정치세력도 조금의 양적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민주정부의 한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정부든 보수 권위주의 정부든 한국경제의 부동산 의존도를 높이고 부동산 먹이사슬을 쉴 새 없이 작동시켜왔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점이야 말로 민주화 20년의 가장 큰 비극이라면 비약일까.


4. MB 1년은 민주화 20년의 일부


돌아보면 노태우 김영삼의 ‘권위주의 10년’의 결과로서 김대중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이 등장했고, 마찬가지로 이명박 정부는 민주정부 10년의 결과로서 출범했다. 이명박 정부는 ‘돌연변이’가 아니라 태어날 이유와 근거가 분명히 있기에 국민의 선택을 받아 태동한 것이다. 그 이유와 근거는 민주정부 10년의 실패이며, 부동산 분야에서도 이 점은 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이명박 정부 부동산 정책 평가는 민주화 20년 특히 민주정부 10년 동안 부동산 정책이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평가로 나아가야 하며,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부동산 철학과 정책대안을 세우는 노력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명박 정부 1년은 많은 문제점을 한꺼번에 드러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1년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남의 집 일로 보고 ‘MB 비판 경연대회’식 평가로 끝낸다면 한마디로 남는 게 없다. 이명박 정부 1년에 나타난 공과는 민주화 20년 속에서 뿌리를 두고 있으며, 따라서 시야를 단순히 ‘MB 1년’이 아니라 ‘20년 속의 1년’으로 넓혀야 한다. 그럴 때만이 '우리 안의 MB'의 뿌리를 찾아내고 극복 방안을 만들 수 있으며, 이 때 비로소 우리는 과거와는 다른 미래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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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민주의 그 이상과 현실

 

 

사민주의 그 이상과 현실
 
번호 20375  글쓴이 귄터반트 (nemesis1827)  조회 1600  누리 301 (311/10)  등록일 2009-2-21 10:52 대문추천 21   참고자료
 
 
 


사민주의, 그 이상과 현실
(서프라이즈 / 귄터반트 / 2009-02-21)


사민주의 시스템이 정착한 국가는 몇 개 나라가 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이 쉽게 관찰할 수 있는 공통점이라면 국민소득이 대단히 높은 나라들이란 점입니다.

사민주의 시스템은 어떠한 성격을 가지며 또 이 시스템이 정착하려면 어떠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하는지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합시다.

사민주의란 민주주의 체제하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형태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사민주의는 탄생한 적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오직 민주주의만이 사민주의 시스템을 생산해 낼 수 있다는 것이죠. 부연해서 말하자면 사민주의는 어디까지나 다당제를 인정하는 민주주의 시스템 내에서 당의 형태로 존재하며 사민주의 체제를 지지하는 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에 그 국가가 사민주의 시스템에 의하여 작동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렇다고 한다면 사민주의 정당이 실각하였을 경우에도 그 국가가 사민주의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는가? 라고 질문한다면 완전히 그렇다고 하기에는 문제가 있으나 '거의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민주의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정당이나 이념을 넘어서 국가 시스템 자체를 불가역성(不可逆性)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육, 의료, 주택, 보육, 노후보장, 에너지부분' 등이 공공재적 성격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일단 이것이 공공재로서 국민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한 이후 다시 사유화시키려면 경제적 하층부를 차지하는 국민들이 엄청난 저항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독일의 경우, 사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는 '의료, 보육, 노후보장, 에너지부분 '등이 개선되었고, 사민당의 반대파인 기민련과 기사련, 자민당의 연합정권하에서는 '교육, 주택'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즉 우파가 좌파가 하는 일의 나머지를 완성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러면서 우파가 하였던 일은 몰래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부터 교란하였습니다.

즉 노동자들을 분열시킨 것입니다. 그 후로 독일을 비롯한 스웨덴 노르웨이 프랑스 영국 등의 나라도 마찬가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우파가 교묘히 분열정책을 쓴 것이라지만 노동자 측에서 미끼를 덥석 물게 된 이상 사민주의 시스템은 그 후로 조금씩 흔들리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사민주의 시스템이 불안하여지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부분적 도입보다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무너지면서부터입니다.

사민주의 시스템은 전선이 명확할 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자본가 vs 노동자 혹은 사측 vs 고용인, 국가 전체에서 이렇게 두 세력이 대결 양상을 띠게 되어 서로 너무나 분명하게 대립할 때 사민주의가 생겨나기 쉽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만약 자본가와는 거리가 먼 즉, 사측과 아무런 대립이 없는 자영업이나 농업 등이 그 국가에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 하면 전선이 불명확해지는 것이죠.

이를테면, 울산 현대차 노조가 파업하면 그 인근의 자영업자들은 파업에 반대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근의 자영업자들이 현대차 노조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입이 적다는 것이죠.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이탈리아의 경우인데, 이탈리아가 1890~1910년 사이 북부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하여 노동운동이 일어나 '근무환경 및 임금인상'을 내걸고 파업을 벌였을 때 남부의 농민들이 대대적으로 이에 저항하게 됩니다. 결국, 이탈리아는 아직도 우파정권이 장기집권 하고 있습니다.

KBS를 예로 들어볼까요?

노동자 단결을 방해하는 것은 '동일노동 동일임금'뿐 만이 아니라 '어용노조'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우파정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특정 분야의 노동자에게만 엄청난 혜택을 주고 그 세력들이 주도권을 쥐도록 만들어 놓습니다. 노동자가 좌파가 아닌 우파의 시녀가 되도록 확실하게 처우를 개선해 주고 처우가 개선된 점에 만족하여 노동자 스스로 '어용노조'인 현 노조집행부 전체를 긍정하도록 만들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동아일보가 극단적인 예입니다. 조선일보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은 현재 받는 임금이며 이상은 항상 저 너머에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깬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파가 교묘히 조작한 것이 아니라 노조 측에서 먼저 깬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하에서, 당시 김대중은 독서광답게 IMF를 극복하고 사민주의는 아닐지언정 적어도 '제3의 길'을 가게끔 하는 방법이 없을까 궁리한 끝에 유럽의 노사정 위원회에서 그 첫 번째 착안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 노사정 위원회를 먼저 탈퇴하여 동일노동에서 엄청나게 서로 다른 임금의 격차가 벌어지게 만든 것은 민주노총에서 한 일이며 이것이 지난 8년여 동안에 벌어진 격차가 너무나 큽니다. 따라서 사민주의 시스템이 일어나기 어렵게 만든 것은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가, 노동자, 기타 직업 모두가 단결하여 방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선이 완전히 불명확해져서 노동자 vs 노동자, 사측 vs 사측, 노동자 vs 자영업 등으로 마구잡이로 총질을 해대는 형상입니다.

더군다나 사민주의를 실행하려면 '교육, 의료, 주택, 노후보장, 에너지부분' 등에서 사유재산과 관련된 이들 부분의 사람들을 설득시켜야 하는데, 알다시피 지난 참여정부에서 '사학법'조차도 통과시키지 못한 것에서 우리나라의 국민의식을 잘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종부세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학법은 사유재산 중 일부를 국가로 귀속시키는 조치가 아닌 이사 몇 명을 사학의 재단 이사장과 관련없는 사람들 중에서 뽑는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좌초 되었단 것이죠.

사학의 뒤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사학의 대부분은 불교 개신교 가톨릭 등의 종교분야에서 대부분 담당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립대학은 또 어떻고요? 황우석 사태를 통해서 우리나라 의료계가 어떠신지는 잘 아실 겁니다. 주택 하면 부동산과 건설분야이며 이 부분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대기업과 현재 우파정권이 죽어도 손아귀에서 놓지 않으려고 하는 분야입니다. 노후보장과 관련된 실버산업은 뭐 이제 막 시작한 분야이기도 하지만 보험업계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분야입니다. 에너지부분 또한 거대 자본이 아니면 불가능한 부분입니다.

사민주의는 시스템인 것이며 국가에서 '교육, 의료, 주택, 노후보장, 에너지부분'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장악하지 않은 채 시작하는 사민주의란 국민의 엄청난 세금을 이들 분야의 민간자본에 넘기는 형태이며 엄청난 세금에 비하여 받는 혜택이란 턱 없이 부족한 것이 되어 버립니다.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종신체제를 향하여 치닫고 있다고 합니다. 그가 종신체제를 향하여 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들 분야의 국유화에 반대한 것에 대하여 좀 더 권력을 강화하기 위한 방법상에서 시도된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독재의 종말은 비참한 것으로 드러났건만 차베스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을 겁니다.

또한, 사민주의 국가의 선언문 등을 보시고 매료된 분들이 몇몇 환상에서 깨어나셔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사민주의는 인권과 세계평화를 외친다지만 미국을 제외한 국가 중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양의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는 대부분 사민주의 국가라는 점입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노르웨이, 스웨덴…

이상과 현실은 항상 이렇게 괴리를 만들어 냅니다.

 

ⓒ 귄터반트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0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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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든든한 지지층, 저소득층

 

 

 

MB의 든든한 지지층, 저소득층
 
번호 20538  글쓴이 한겨레21  조회 5218  누리 898 (898/0)  등록일 2009-2-22 15:04 대문추천 43   참고자료
 
 
 


MB의 든든한 지지층, 저소득층
 - 국정운영에서 가장 후한 점수를 줘…
 - “매우 역설적이지만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현상”

(한겨레21 / 최성진 / 2009-02-20)


이명박 정권을 비판할 때 흔히 ‘강부자 정권’이라는 표현을 쓴다. 서울 강남의 ‘땅 부자’ 정권이라는 뜻이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정책을 보면 ‘강부자 정권’의 면모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정부는 종합부동산세 완화와 부동산 규제 완화를 통해 강남 부유층의 숨통을 트이게 해줬다. 금산분리 완화와 공공부문 민영화도 거대 기업과 일부 부유층에게만 혜택이 집중되는 정책이다. 비정규직법 완화와 최저임금제 개악 시도, 교육 자율화 등은 반대로 저소득층의 경제적 부담을 더욱 증폭시킬 전망이다.

▲ <한겨레21> 여론조사 결과 저소득층에서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가장 높았다.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지지를 보내는 현상을 흔히 ‘계급배반’이라고 한다. 서울 상계4동 양지마을 전경. 한겨레 김명진 기자


못했다, 저소득층 49%-고소득층 59.4%

 

‘강부자 정권’과 서민 사이의 거리는 이렇게 멀었다. 하지만 <한겨레21>이 2월6~7일 서울 시민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 1년간의 경험을 배반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를 묻는 질문에서 이 대통령에게 가장 후한 점수를 준 계층은 저소득층이었다(도표 참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가구당 월소득 250만 원 이하의 저소득층 가운데 42.9%는 이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했다고 평가했다. 못했다고 본 사람은 49%였다. 반면 월소득 251만~400만 원 구간에서는 33.3%의 응답자가 잘했다고 대답했고, 62.7%가 못했다고 지적했다. 401만 원 이상의 고소득자들도 ‘잘했다’가 33.5%, ‘못했다’가 59.4%였다. 조사 결과를 요약하면, ‘서민이 강부자 정권의 가장 든든한 지지층’으로 나타난 것이다.

저소득층은 이명박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현 정부의 교육정책과 종부세 완화, 미네르바 구속 등 거의 모든 평가 항목에서 상대적으로 보수적 견해를 보였다. 양대웅 나우리서치 이사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양극화 심화 이후 저소득층이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을 보이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현 정부가 종부세를 완화하고 복지 지출을 축소해 저소득층의 피해가 예상된다는 지적이 있지만, 한번 형성된 여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더 많이’ 지지하는 흐름은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한겨레>가 1월31일 전국의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실시한 정기 여론조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하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월소득 200만 원 미만의 저소득층(42.3%)에서 평균(34.8%)보다 높았다. 200만~400만 원(33.3%)과 400만 원 이상(31.4%) 계층에서는 잘한다고 대답한 사람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정치인이나 정당에 표를 주는 행위를 흔히 ‘계급배반’ 투표라고 한다. 낮은 임금을 받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비정규직법과 최저임금제 개악을 시도하는 이명박 정부에 지지를 보내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계급배반 투표는 지난해 4월 18대 총선에서도 나타났다. 대표적인 지역구가 서울 노원병이었다. 총선 직전인 3월24일 한국방송 여론조사에서 당시 노회찬 진보신당 후보(32.6%)는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25.6%)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하지만, 월소득 100만 원 이하 저소득층에서는 홍 후보(34.7%)가 노 후보(13.3%)보다 높았다.

▲ 월평균 소득별 이명박 정부 평가


과거 보수 정권은 민생고를 해결했다

지난 수년간 진보개혁 진영을 가장 당혹스럽게 만든 부분도 바로 ‘계급배반의 역설’이었다. 한성욱 진보신당 부집행위원장은 “저소득층이 자신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서민정당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정책을 펴는 한나라당에 지지를 보내고 있다”며 “매우 역설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에서는 매우 일반적 현상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권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성장 위주의 정책을 노골적으로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계급배반’의 역설이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역사적 경험에 원인을 돌렸다.

“서민의 시각으로 볼 때 보수 정권은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 즉 민생고를 해결해줬다. 박정희 정권은 어쨌든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게 해줬고, 전두환 정권은 물가를 잡아 생계 부담을 줄여줬다. 진보개혁 세력은 민주화를 실현해줬을지 몰라도 정권을 잡은 10년간 양극화가 심해졌다. 서민들은 아직 그들을 ‘나라 말아먹은 세력’으로 보고 있다.”

택시 운전을 하는 강아무개(50대 중반)씨도 비슷한 견해를 피력했다. 2월11일 만난 강씨는 중소기업에 근무하다 5년 전부터 개인택시를 운전하고 있다. 이틀에 한 번꼴로 하루 12시간씩 운전대를 잡는 그의 한 달 수입은 200만 원 안팎이다. 강씨는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에게 많은 기대를 했는데 그들이 집권한 기간에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며 “일자리도 갈수록 줄어 아파트 경비 자리라도 얻으려면 얼마나 경쟁이 치열한지 모른다”고 말했다. 강씨는 “우리 같은 서민이 살기에는 요즘 너무 어렵다”면서도 세계적인 불황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기대만큼 경제를 살리지 못하고 있지만 올 하반기가 지나면 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경제적 능력과 학력·연령의 상관관계도 중요하다.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연령은 높고 학력이 낮은 경우가 많다고 본다. 이번 <한겨레21> 여론조사에서도 50살 이상에서는 250만 원 이하 저소득층(47.1%)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연령별 국정운영 지지도에서 50살 이상(55.8%)은 19~29살(18.8%)이나 30~40대(26.1%)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학력별로도 중졸 이하(57.4%)와 고졸(32.2%) 및 대재 이상(30.2%)이 확연히 나뉘었다. 홍형식 소장은 “저소득층은 대개 연령이 높고 학력이 낮기 때문에 인권·민주화·평등·분배 등 진보적 가치를 제대로 ‘학습’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며 “반면 보수 정당이 강조하는 선진화와 법질서, 경제성장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쉽게 받아들여지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이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해주지 않는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는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정보 수준이 낮은 유권자’(LIV·Low Information Voter)이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 LIV는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부족하면서도 강한 정치 혐오증을 지니고 있고, 반면 투표장에는 꼬박꼬박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주로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이 LIV로 분류된다. 미국 여론조사 업계에서는 전체 유권자의 5분의 3인 7,500만 명을 LIV로 보고 있다.

미국에서 정치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김윤재 변호사는 “미국 민주당이 서민을 위한 정책을 더 많이 갖고 있는데 남부의 백인 노동자가 공화당을 더 많이 찍는 이유도 LIV와 일정 부분 관계가 있다”며 “정책적 측면만 주목한다면 계급배반 현상을 LIV로 설명할 수 있지만, 아울러 정치인과 정당이 자신들의 정책을 충분히 홍보하지 못한 책임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 2008년 10월 원혜영 원내대표(왼쪽에서 두 번째)를 비롯한 민주당 당직자들이 종부세 폐지 반대 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번 여론조사에서 오히려 저소득층이 종부세 완화에 가장 높은 지지(56.3%)를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성장 이데올로기의 환상

서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를 전적으로 그들의 ‘오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중산층과 서민을 대변한다고 자처하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이 저소득층을 위해 제대로 역할을 해본 경험도 별로 없기 때문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주간(정치학 박사)은 서민의 이 대통령 지지를 ‘계급배반’으로 이해하는 견해에 반대했다. 여론조사는 언제나 정치적 조건을 고려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박 주간의 주장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 결과나 여론조사 결과를 시민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정당이 형편없으면 유권자의 선택도 형편없을 수밖에 없다. 진보 정당이 대안이라고 생각됐다면 서민이 보수 정권을 더 많이 지지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정치에서 저소득층과 노동자가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정치의 중심은 대개 중산층이었다. 게다가 정당 분포 자체가 보수 편향적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의 정치 성향이 보수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지적이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전문위원은 서민층의 보수화를 사회 안전망의 축소와 연관지었다. 한 위원은 “정부 차원에서 마련해놓은 사회 안전망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보니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가장 안전하고 보수적 선택을 하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게다가 과거 박정희 정권을 통해 성장에 대한 환상을 품게 되면서 서민층이 사회 안전망 확대를 통한 탈출보다 성장주의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서민이 진보개혁 진영을 대안세력으로 여기지 않고, 진보개혁 정당은 서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실에 대해 우위영 민주노동당 대변인은 ‘악순환’이라고 표현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등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 정당의 경우 시의원이나 구의원 활동을 통해 구체적 성과를 보여줬어야 하는데 그런 접근조차 쉽지 않았다는 것이 우 대변인의 말이다.

“서민이 이명박 정부를 지지하는 것은 정권에 대한 지지라기보다 ‘먹고살기 힘드니 경제를 살려달라’는 표현으로 보고 싶다. 우리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노동자와 서민에게 주장하고 싶어도 당장은 힘든 게 사실이다. 현재의 정치 구도만 탓할 게 아니라, 진보 정당 스스로 끊임없이 실력을 키워나갈 필요가 있다.”

 

ⓒ 최성진 기자
(http://h21.hani.co.kr/arti/special/special_general/24383.html)

서민 생활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복지예산은 어떻게 됐을까? 대부분 크게 후퇴했다. 올해 기초생활보장 예산은 7조 1,427억 원으로, 7조 2,716억 원(추가경정예산 포함)이던 지난해 예산보다 1,289억 원이 줄었다. 장애인 수당도 지난해보다 413억 원이 감소했다. 고령자를 위한 노인 돌봄 서비스 예산도 크게 깎였다.


원문 주소 - http://www.seoprise.com/board/view.php?table=seoprise_12&uid=20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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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quot;이명박 정부, 7가지 쿠테타 자행&quot;

 

 

천정배 “MB, 7가지 쿠데타 자행”에 본회의장 ‘아수라장’
 
대정부질문 맹비난에 한나라 “귀 씻고 싶은 심정” 반박도
 
입력 :2009-02-18 11:44:00  
 
 
   
[데일리서프]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18일 “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주권을 짓밟고, 하늘을 거스르는 쿠데타를 자행했다”면서 맹비난했다.

천 의원은 이날 교육사회문화분야에 대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공안, 경제, 언론, 교육, 노동, 환경, 역사의 7가지 쿠데타가 이명박 정부가 꿈꾸었던 747이었음을 나는 이 자리에서 국민을 대신해 자백 받고자 한다”면서 7가지 쿠데타를 열거했다.

천 의원은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모든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공안, 치안쿠데타’를 △다수 국민의 고혈을 소수의 탐욕스러운 술잔에 채우는 ‘경제쿠데타’를 △ 방송을 장악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쿠데타’를 △ 스승을 제자로부터 떼놓고, 불평등한 경쟁으로 우리 아이들을 줄 세우는 ‘교육쿠데타’를 △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알바는 실업자로 만드는 ‘노동쿠데타’를 △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황폐한 공사판으로 뒤바꾸는 ‘생태환경쿠데타’를 △ 마침내는 임시정부와 항일운동의 정통성을 깡그리 부정하고 민족통일의 역사적 대의를 거스르는 ‘역사쿠데타’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천 의원은 “이명박 정부는 쿠데타를 자행할 때마다 항상 ‘법치주의’를 내세웠다”면서 “여대생의 머리를 짓밟고, 유모차에 소화기를 뿌리면서도 법치주의, 벼랑 끝에서 생존권을 요구하는 철거민을 불태우면서도 법치주의, 부자감세, 종부세 폐지를 관철시키면서도 법치주의, 땅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정도는 해야 장관이 될 수 있는 무법천지 내각을 임명하면서도 법치주의 확립을 부르짖었다”고 비판했다.

천 의원은 “법이 입맛에 맞지 않으면 속도전, 직권상정, 강행처리를 불사하며 법 개정을 시도했다”며 미디어악법, 집시법과 사이버모욕죄, 금산분리 완화, 한미FTA 비준동의안 일방적 상정 등을 꼽았다.

천 의원은 “법을 가지고 놀고 법 위에 군림하는 순간 권력은 독재로 전락하는 것”이라면서 “이명박 정권이 말하는 법치주의는 두꺼운 가면 뒤에 숨어서 장기집권, 영구집권을 노리는 소수 기득권층의 권력 논리라는 걸 양식 있는 국민이라면 다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천 의원은 이어 한승수 국무총리와 설전을 벌였다.

천 의원은 “인터넷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가 닮았다고 한다, 한국말을 잘 못 알아 듣는 것이 닮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고 한 총리는 “그분이야 말로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 사람이다”고 답했다. 이에 천 의원은 “총리도 대통령과 닮은 것 같다”고 힐난했다.

천 의원은 또 “용산참사는 정부의 무자비한 폭력이 자행한 국민 학살이다, 광주항쟁 때의 학살에 못지않다”면서 “검찰이 용역직원을 행정보조인으로 인정했고, 행정보조인의 불법적 행위가 인정된다면 그 불법적 행위는 곧 행정주체에 귀속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수사 중이기 때문에 결과를 기다려봐야겠다”고 답한 뒤 “용산참사를 광주항쟁과 동격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반박했다.

한 총리는 용산참사와 관련한 천 의원의 질문에 “청와대 행정관의 이메일 발송 건은 이미 조치가 끝났다”고 동문서답을 해 천 의원으로부터 “총리가 제 발이 저린가 보다”고 힐난을 받았다.

천 의원은 이어 “청와대가 ‘강호순 살인사건’을 ‘용산참사’로 덮고 촛불시위를 막기 위해 활용하라고 이메일로 지시한 사건은 죽음으로 죽음을 덮고자 한 ‘패륜메일게이트’로 규정한다”면서 “국회는 국정조사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 청와대 메일서버를 압수 수색하는 등 성역 없는 수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총리는 “정치권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총리로서 이 자리에서 의견을 밝히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천 의원은 또 “청와대는 27건, 경찰는 5건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는데 대부분이 ‘쥐박이’ ‘땅박이’ ‘2MB’ 등 대통령에 대한 패러디가 대부분”이라며 “이 대통령이 직접 고소하면 창피하니까, 검경을 동원해 탄압하려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한 총리는 “국가 원수를 천박한 용어를 사용해서 비난하는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사이버모욕죄는 사이버 공간의 특성과 피해 증가성을 감안해서 건전한 사이버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며 “정권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거나 인터넷을 통제하려는 뜻은 추호도 없다”고 답했다.

천 의원은 질문을 끝낸 뒤 마무리 발언에서 “쿠데타는 역사에서 종국적으로 승리한 적이 없다, 우리 국민의 민주적 저력은 이를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면서 “이명박 정권은 국민의 심판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의원은 “역사의 법정에서 구차한 모습으로 만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국민에 대한 쿠데타를 멈춰야 한다”고 요구했다.

천 의원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니라”는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한 구절을 낭독하고 질의를 마쳤다.

천 의원의 쿠데타 발언에 한나라당 의원석에서는 “집어치워”라는 고성과 반발이 터져나왔고 다음 질의자로 나선 한나라당 김효재 의원은 “화장실에 가서 귀를 씻고 오고 싶은 심정이다”면서 맹비난했다.

김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2년전 표를 던진 우리 국민이 쿠데타 세력이냐”면서 “말은 한다고 함부로 되는 것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천정배 의원이 대통령도 법앞에 평등하다고 했다, 맞다. 그게 민주주의다”면서 “‘그 놈의 헌법’이라고 말한 게 누구냐.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그 밑에 법무장관을 지낸 분이 천정배 의원이다”고 노 전 대통령을 끄집어내기도 했다.

김 의원은 “‘그 놈의 헌법’이라고 말했을 때 뭐하고 이제 와서 전 국민이 500만표 이상의 압도적인 표 차이로 선출한 대통령에게 쿠데타를 운운하냐”고 비판했다.

김 의원의 말에 이번에는 민주당 의원석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고 이에 맞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고함을 치면서 질의가 중단되는 등 본회의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그만해라, 발언권 신청해서 해라”, “의석에서 큰 소리 치는 사람은 그 다음 회기에 잘 안보이더라”며 상황을 정리했다.

민일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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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정배 "이명박 정부, 7가지 쿠테타 자행"

"오바마와 MB의 닮은 점? 둘 다 한국말 못 알아듣는다"

기사입력 2009-02-18 오전 10: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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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지난 1년 동안 국민주권을 짓밟고, 하늘을 거스르는 쿠테타를 자행했다"

18일 교육사회문화분야에 대한 대정부 질문에서 민주당 천정배 의원은 현 정권을 향해 작심하고 직격탄을 날렸다.

천 의원은 "△검찰, 경찰, 국정원, 국세청 등 모든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공안, 치안쿠데타'를 서슴없이 자행했다 △다수 국민의 고혈을 소수의 탐욕스러운 술잔에 채우는 '경제쿠데타'를 자행했다 △방송을 장악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언론쿠데타'를 자행했다 △스승을 제자로부터 떼놓고, 불평등한 경쟁으로 우리 아이들을 줄 세우는 '교육쿠데타'를 자행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은 알바로, 알바는 실업자로 만드는 '노동쿠데타'를 자행했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황폐한 공사판으로 뒤바꾸는 '생태환경쿠데타'를 자행했다 △마침내는 임시정부와 항일운동의 정통성을 깡그리 부정하고 민족통일의 역사적 대의를 거스르는 '역사쿠데타'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

그는 "공안, 경제, 언론, 교육, 노동, 환경, 역사의 7가지 쿠데타가 이명박 정부가 꿈꾸었던 747이었음을 나는 이 자리에서 국민을 대신해 자백 받고자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천 의원은 "이명박 쿠테타 정권 하에서 서민대중은 신음하고 있다. '고소영 S라인'의 친위부대와 공안세력이 득세하고 있다"면서 "불과 1년 만에 이 나라에 지옥도를 만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천 의원은 한승수 총리와 설전을 벌였다. 천 의원이 "예전에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뭐가 닮았냐"고 묻자 한 총리는 "어린 시절 역경을 딛고 성공한 점 등이 닮은 점"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천 의원은 "아니다. 인터넷에서는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 점이 닮았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비꼬았고 한 총리도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이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받아쳤다.

한편 한 총리는 용산참사와 관련해 철거용역 업체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질문에 "청와대 행정관 이메일 사건은 개인적 사안으로 사표로 조치가 끝났다고 본다"고 동문서답해 실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이에 천 의원은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는 걸 보니 제발이 저린가 보다"면서 "폐륜 메일 게이트를 조사하기 위해 청와대 메일서버 압수수색을 포함한 특검과 국정조사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총리와 설전 이후 천 의원은 "역사의 법정에서 구차한 모습으로 만나길 바라지 않을 뿐이다. 당장 쿠테타를 멈춰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이라며 성경의 한 구절을 낭독했다.

천 의원은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니라"는 신약성경 야고보서의 한 구절을 낭독하고 질의를 마쳤다.

천 의원의 질의가 이어지는 동안 한나랑 의석에서는 "집어치워" 등의 고성이 터져나왔다. 곧바로 질의에 나선 한나라당 김효재 의원도 "말이라고 해서 다 말이 아니다. 귀를 씻고 오고 싶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우리 국민이 쿠테타 세력인가"라고 천 의원에게 공세를 가했다.

이에 여야 의석에서 소란이 이어지자 김형오 의장은 "의석에서 큰 소리 치는 사람 그 다음 국회에 잘 안 보이더라"며 상황을 정리했다.

/윤태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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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부활'이 '사이코패스' 때문이라고?&quot;

 

 

'사형 부활'이 '사이코패스' 때문이라고?"

[기고] 다시 야만의 세레모니를 허락할텐가

기사입력 2009-02-11 오후 2:4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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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 집행 부활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앰네스티)는 2007년,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국가에 부여하는 '사실상 사형 폐지국' 지위를 한국에 부여했다. 그러나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곧바로 사형제 존치와 집행 부활을 들고 나왔다.

최근 정부와 여당은 연쇄 살인 사건을 계기로 사형 집행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정신적 혹은 심리적 이상 상태를 일컫는 '사이코패스(psychopath)'에 대한 불안감을 키우는 여론도 확산되고 있다. 서강대 법대 이호중 교수가 최근 사태를 우려하며 <프레시안>에 글을 보내왔다. <편집자>

최근의 연쇄 살인 사건으로 사형 집행을 촉구하는 여론이 매우 거세게 일고 있다.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한국사회여론연구소)를 보면 사형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69.2%로 나타났으며, 이는 작년 안양 초등학생 살해 사건 당시의 사형 찬성 의견보다 10%포인트 정도 증가한 수치이다. 흉악한 범죄 사건이 주기적으로 발생하면서 여론은 사형제 찬성 쪽으로 점점 더 기울고 있다.

정치권의 대응도 매우 기민하다. 사형 찬성론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사형 집행 논의를 시작하라고 지시한 후 한나라당은 지난 12년간 집행되지 않았던 사형 확정자의 사형 집행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12일에는 사형 집행의 부활을 논의하는 당정협의가 예정되어 있다고 한다. 사형 집행이 정말 목전에 임박했다는 위기감이 싸늘하게 온몸을 휘감는다.

우리나라에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 지 올해 12년째이다. 빠른 걸음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인권 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을 뚜벅뚜벅 진전시켜 왔다. 그 자부심과 인권선진국의 성과를 무위로 되돌릴 만큼 절박한 사정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사형 집행의 잔혹한 의식을 치르지 못해 안달인가?

사형이 강력 범죄를 예방한다는 건 '환상'

▲ 우리나라에서 사형을 집행하지 않은지 올해 12년째이다. 빠른 걸음은 아닐지라도 그래도 우리는 인권선진국을 향한 발걸음을 뚜벅뚜벅 진전시켜 왔다. ⓒ프레시안
일부 네티즌들은 이번 연쇄 살인 사건 피의자에 대해 '악마'니 '짐승'이니 하는 표현을 써가면서 인간으로 대우해 줄 가치조차 없는 존재라고 극단적인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아마도 울분의 격한 심정을 토로하다 보니 다소 거친 표현을 쓴 것이리라 믿고 싶다. 감정적 분노와 흥분에 휩싸여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에 대해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어 함부로 평가하는 일은 삼가야 마땅하다. 국가정책으로서 사형의 존폐를 논할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사형의 엄중한 집행을 촉구하는 여러 의견 중에 그래도 가장 논리적인 주장은 최근 빈발하고 있는 강력범죄를 예방하는데 사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97년 12월 30일 이후 12년 동안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서 흉악범죄가 증가했다는 논리이다. 하지만 이는 통계적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허구이며 시민들을 현혹시키는 무책임한 주장에 불과하다.

실제 사형이 선고되는 범죄는 대개 살인범죄이므로, 살인죄를 중심으로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1998~2007년과 그 직전 10년간의 통계를 잠시 비교해 보자. 법무부의 공식 통계를 보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던 지난 10년간(1998~2007년) 살인범죄의 건수는 1998년 966건에서 2007년 1124건으로 약 16.3%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사형의 집행이 손쉬웠던 시절인 1988년부터 1997년까지 10년 동안 살인범죄 건수는 무려 31% 증가했다. 사형 집행이 비일비재했던 과거에 살인범죄의 증가율이 더 높았음을 통계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살인범죄 다음으로 흉악한 범죄인 강도범죄는 2003년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그러므로 사형의 엄격한 집행을 통해 강력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그 효과가 전혀 입증되지 않는 환상일 뿐이다.

모든 강력범죄에 사형이 필요한 게 아니라 연쇄살인범 같은 위험한 '사이코패스' 범죄자가 사형 부활의 타겟일 뿐이라고 강변하는 주장도 있다.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위험한 욕망을 꺾기 위해서는 사형 집행을 통해 강력한 응징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이코패스 만드는 사회

'사이코패스'란 이제는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말로, 흔히 타인과의 정상적인 사회적 교류와 소통이 결여된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일컫는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자들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죄의식, 동정심 따위는 전혀 없이 자신의 삐뚤어진 욕망을 채우기 위해 흉악한 범죄를 연속적으로 저지르곤 한다.

이런 유형의 범죄자는 재범의 위험이 매우 높고 교정과 치료도 잘 되지 않는다고 한다.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대한 대책은 오늘날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매우 어려운 숙제이다. 그런데 사형이 과연 꼭 필요한 그리고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감정적 분노를 가라앉히고 조금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울분에 찬 덧글을 다는 심정으로 국가의 정책을 결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선 사이코패스 범죄자에 관하여 최근 우리 사회에서 전개되고 있는 논의 양상과 그 사회적 맥락에 대해 몇가지 점을 비판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사이코패스'라는 개념은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위해서 아무런 거리낌이나 죄의식 없이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는 매우 위험한 인물'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다. 흉악한 범죄를 지속적으로 저질렀다고 하여 섣불리 사이코패스로 진단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사이코패스라는 꼬리표를 부착하여 '도무지 치료도 되지 않는 매우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고 그 위험성 때문에 무조건 사회에서 배척해야 한다는 생각은 범죄 정책으로는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 그것은 사람은 누구나 사회공동체의 유대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변화하는 존재임을 부정하는 정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에 대해 사이코패스라는 비난과 낙인을 가하는 데에는 익숙하면서도 정작 그러한 범죄자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적 요인에 대해서는 거의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렇진 않았을 터인데, 한번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되돌아보는 자세도 필요하지 않을까.

잔인하고 끔직한 연쇄 살인 사건이 과거에도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많은 범죄학자들은 신자유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 사회의 치열한 경쟁 시스템이 사이코패스 범죄자를 출현시키는 사회문화적 배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치열한 생존 경쟁만이 끊임없이 강조되는 가운데 건전한 공동체 문화의 기틀이 되는 유대와 소통의 통로는 현저하게 약화된 것이 오늘날 첨단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각박한 각개전투식의 경쟁이 사회를 지배할수록 그 경쟁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낙오한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인격적·정신적 고통의 하나가 바로 사이코패스이다. 치열한 경쟁사회가 사회적응에 실패한 사람을 소외시키고 그 소외가 사이코패스라는 인간형을 낳는 사회문화적 원인이 된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짐승', '악마' 같은 극한 표현으로 그들을 비난하기 보다는 사이코패스라는 인격장애의 유발을 감소시킬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정책을 함께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사이코패스 공포증' 확산시키는 정부·언론

또한 작금의 상황과 관련해 정부와 언론이 대국민 '사이코패스 공포증'을 은연중에 확신시키고 또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적으로 주목할 대목이다.

일부 언론들은 평범한 시민 '누구라도' '언제든지'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무고한 희생양이 될 수 있을 것 같은 불안감을 실제 이상으로 과도하게 증폭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확산된 사이코패스 공포증은 정치 권력이나 정부의 입장에서는 공권력 강화의 호재로 활용된다. 흉악한 강력범죄를 유발하는 사회구조적 요인을 뒷전에 감춘 채로, 그 원인을 오로지 개인의 폭력적 위험성이라든가 정신적 결함 때문으로 쉽사리 치부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법질서 강화'를 내세워 사형 집행을 비롯해 무자비한 응징 정책과 살벌한 통제의 권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여 한나라당은 사형 집행을 강력하게 추진함은 물론이고, 그것으로도 성이 안 차는지 가석방이나 사면이 불가능한 '절대적 종신형'을 추가로 도입하겠다고 하고, 현재 25년인 징역형의 상한을 50년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흉악범죄자의 신상공개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나, 가발이나 마스크를 쓰면 현금자동인출기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 등 전방위적 감시통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위험한 범죄자'로부터 시민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 아래, 결국에는 시민사회에 대한 국가의 억압적 감시 및 통제권한을 본격적으로 강화하려는 정책에 다름 아니다.

뿐만 아니라 언론이 유포한 사이코패스 공포증은 치안부재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교묘히 희석시키기도 한다.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은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했던 순간부터 경찰이 보다 철저하게 수사에 임했더라면 제2, 제3의 추가 범행을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건이다. 사건 초기 그저 그런 실종 사건 정도로 취급했던 경찰이었다. 경찰이 이처럼 안이한 태도를 보이는 사이에 추가 범행이 잇달았다. 그런데도 경찰은 치안부재와 부실한 초동수사에 대해 진심어린 사과 한마디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형 집행을 안 해서 혹은 공권력이 지나치게 물러서 흉악범죄가 판치는 양 여론을 호도하는데 일조하고 있는 형국이다.

'잡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는 말을 주목하라

이런 상황 진단과 문제의식을 토대로 할 때, 사형 집행의 부활이 흉악 범죄를 방지하는데 정말로 유용하고 합리적인 정책 대안인지, 아니면 별반 범죄 예방효과도 없이 그저 한풀이식의 야만적인 세레모니의 부활 내지는 잔혹한 국가권력의 부활로 귀결될런지, 합리적 안목을 갖춘 시민들의 냉정한 판단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몇 가지만 간단히 짚어보자.

첫째, 많은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연쇄 살인 등 흉악범죄자를 사회에서 격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사형 존치의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사형이 흉악범의 사회적 격리를 위한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연쇄 살인 사건 등 흉악범의 위험성이 크다면 무기징역을 선고하는 것으로도 흉악범의 사회적 격리와 재범방지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

둘째, 사형 집행의 부활을 외치는 여론의 한켠에는 사형 집행으로 흉악한 범죄의 욕망을 가진 잠재적 범죄자들의 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도 섞여 있는 듯하다. 그러나 사형 등 가혹한 형벌을 부과하더라도 위험한 범죄자의 잠재적 충동을 억제할 만한 예방 효과가 없다는 것이 지난 수십 년간 학계의 연구결과이다.

셋째,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번 연쇄 살인 사건의 피의자는 '자신은 잡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볼 때 이 말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국내외 범죄학의 연구에 따르면, 사형과 같은 가혹한 형벌 정책은 범죄 예방 효과가 없는 반면에, 검거의 가능성을 높이는 정책은 범죄 예방 효과가 매우 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은 자신이 검거될 가능성에 대해서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사형의 가능성은 체포된 뒤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이 붙잡힐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범죄자에게 사형은 아무런 억제 효과를 지니지 못한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가는 피의자의 그 말에 너무나도 잘 함축되어 있다.

요컨대, 우리는 사형 집행의 부활로, 그리고 사형제의 존속으로 흉악범죄의 예방과 시민의 안전이 담보되는 것이 아님을 직시해야 한다. 간간히 잔인한 연쇄 살인 사건이 시민들의 분노와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기는 하지만, 사형 집행을 다시금 부활시킨다고 해서 그와 같은 흉악범죄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오히려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면 곧바로 검거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사 시스템을 갖추는 정책이 훨씬 현명한 정책이다.

잔혹한 국가권력의 부활이 두렵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정치권에도 한 마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분노하는 여론에 일방적으로 편승해 사형 집행 등 응징과 보복의 권력을 강화하려는 태도는 합리적 정책을 추구해야 할 정부와 정치권이 취할 온당한 태도가 아니다. 국민의 분노와 울분에 눈을 감으라는 것이 아니다. 여론에 귀기울이면서도 그것을 합리적인 정책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정부의 본연의 책무일 것이다. 합리적인 근거도 없이 그저 인터넷에서 흉악범에 대한 분노의 덧글을 다는 수준에서 국가 정책을 급조하는 태도는 하루빨리 버려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을 집행하지 않음으로써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인정받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사형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는 2008년 현재 59개국에 불과하고, '실질적 사형 폐지국'인 우리나라를 포함한 사형 폐지국은 138개국에 달한다. 우리보다 앞서 사형제를 폐지한 영국이나 독일 등에서도 당시 여론은 사형 폐지에 부정적이었다. 그럼에도 인권과 생명의 가치를 위한 용기있는 결단이 있었기에 잔혹하고 야만적인 세레모니를 그만둘 수 있었다는 점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사형 폐지라는 국가적 결단에는 생명과 인권의 소중한 가치 앞에서 국가권력의 겸손함을 약속하는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사형 집행의 잔혹한 의식을 재개하여 한풀이 굿을 치르도록 시민을 부추기는 사이에 겸손을 저버린 잔혹한 국가권력의 부활을 목격하게 될 것이 정말이지 두렵다.

/이호중 서강대 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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