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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의원, 그 무식함에 놀라며

미스테리쥐

 

안상수 의원, 그 무식함에 놀라며
입력 :2005-10-21 14:49   강세준 컬럼니스트  
안상수. 인천시장 말고 한나라당 국회의원 안상수. 그는 필자 같은 80년대 초중반 서울법대생들에게는 작은 영웅이었다. 그 시절 서울법대생들에게 그는 전두환 시대의 파쇼적 억업구조를 온 몸으로 거부하고 인권을 옹호한 용기있는 선배로 각인돼 있다.

그가 있었기에 87년 6월 항쟁이 있을 수 있었다고 믿는 이들도 많다. 그를 사표삼아 사법고시 공부를 시작한 서울법대생도 주위에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군부독재가 판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그래서 고시 공부는 곧 민중에 대한 배신이자 일신의 영달만을 위한 도피행위라고 다른 사람들이 욕을 해도, `안상수 같은 사람도 있지 않느냐’는 방어논리를 서울법대생들에게 만들어 준 사람이 바로 그였다.

다들 알다시피 그는 검사시절 박종철군 물고문 타살사건의 진상을 밝히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그는 그 일로 검사 옷까지 벗었다. 사실 그 시대에 그만한 일을 하려면 본인으로서는 목숨까지 건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전두환이 마음만 먹었으면 실제로 안씨는 무슨 일을 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가 한 일은 전두환 정권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그래서 안 의원이 어느 자리에서, 무슨 정당에서,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저 사람이면 믿어도 된다’는 공감대가 서울법대 출신들에게는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필자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의 좌우명대로 여전히 정의를 지키는 사람, 용기있는 사람으로 후배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안 의원이 20일 밤 100분 토론에서 한 일련의 발언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충격적이었다. 법률을 공부한 사람이라고는, 그것도 검사를 지낸 사람이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무리한 발언을 쏟아내는 것을 보고 밤새 허탈감에 시달려야 했다.

평소 TV를 잘보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필자는 안씨가 그런 수준에서 말하는 것을 처음 봤다.

필자가 충격먹은 그의 발언. “(천정배 장관의 강정구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지휘로 인해) 이제는 광화문 사거리에서 공산당 만세, 김정일 만세를 외쳐도 처벌할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국가 정체성에 대해 국민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비슷한 말을 박근혜 대표도 며칠전 전 소위 `구국투쟁’을 선언하면서 했다. 박대표는 `검찰,경찰이 법에 따라 정당하게 국기문란사범을 처벌하려고 하는데 법무부장관과 현 정권이 이를 가로막았다’는 취지로 말했다.

박 대표의 발언도 법논리로 따지면 말이 안되지만, 사실 그녀가 형사소송법을 제대로 한번 공부해 봤을 리도 없고, 수사절차에 대해 자세히 경험한 적도 없었을 테니, 뭐 저런 식으로 말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 정도였다. 하지만 법대 출신, 검사출신인 안 의원의 입에서 같은 취지의 말이 나오다니,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일일이 법 논리를 들이대는 것이 구차하게 느껴지지만, 한번 보자. 검찰이 강 교수를 불구속수사하면 앞으로 광화문 사거리에서 공산당 만세를 불러도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 이런 사고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한 것인지 잘 파악이 안되지만, 대충 짐작은 이렇다. 법 위반자, 특히 국보법 위반자의 경우 구속수사하면 사람들이 겁을 내서 그 죄를 함부로 짓지 않고 은인자중하겠지만, 불구속 수사하면 법을 우습게 보고 마구 위반할 것이다, 뭐 이런 생각이 아닌가 여겨진다.

짐작이 맞다면, 안 의원은 정말이지 법학전공자로서는 F학점이다. 그런 실력으로 고시에 합격했다는 게 미스터리다. 넓은 의미에서 구속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수사나 재판을 위해 일시적으로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구속이고, 또 하나는 형을 집행하는 단계에의 구속이다.

형 집행단계에서의 구속은 형사처벌의 일종이다. 쉽게 말해 감옥에 가서 죄값을 치루는 것이다. 만약 천 장관이 이 재판단계에서의 구속을 하라 하지마라 했다면 그건 정말 탄핵감이다. 사법권에 대한 불법적인 간섭이고, 정말이지 광화문이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사단계에서의 구속은 처벌이 아니다. 그것은 경찰이나 검찰이 수사를 위해서, 좀더 정확하게는 증거 및 신병 확보를 위해서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라는 특별한 요건이 충족되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것도 일시적으로 법원의 허락을 받아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것은 법 집행을 위한 하나의 수단이지, 죄에 대한 대가로서의 형벌이 아니다. 검사는 범죄를 수사하고 기소할 권한은 있지만, 처벌할 권한은 지니고 있지 않다. 삼권분립에 의해 형사처벌권은 사법부 즉, 법원에만 주어져 있다. 물론 수사단계의 구속에도 처벌의 냄새가 묻어 있지만, 그것은 인신속박이라는 결과가 가져오는 부작용일 뿐이다.

강 교수에 대한 불구속 수사지휘 때문에 앞으로는 반국가사범, 공산주의자들이 공개적으로 설쳐대도 처벌할 수 없게 됐다고 안 의원이 말한 것은 이 두 종류의 구속을 법률적으로 구별하지 못한 탓이 아닌가 여겨진다. 진짜 안 의원이 그렇게 생각하는 지 되묻고 싶을 정도로 한심한 수준의 법률지식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강 교수가 경찰이나 검찰의 소환요구에 응하지 않는다던가 도망가려고 한다던가 하면 지금이라도 긴급체포나 체포영장, 구속영장 청구 등을 통해 신병을 강제로 확보할 수 있다. 천 장관의 불구속 지휘는 증거인멸이나 도주우려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이런 사실관계가 바뀌면 천 장관의 지휘도 효력을 잃게 된다.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느냐 구속수사하느냐 하는 것 하고, 강 교수를 형사처벌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 하고는 아무런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니까 이 틈을 타 광화문에서 누군가 공산당 만세, 김정일 만만세를 외치고 내란을 선동하고 생쑈를 한다고 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법무부 장관이 강 교수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휘했으니까 이들을 사법처리할 수 없는가?

현행범이라고 판단되면 현장에서 체포하면 되고, 도망갈 염려가 있으면 구속수사하면 된다. 그것하고 이번 천 장관의 불구속 지휘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법대 1년차면 알 수 있는 이런 단순한 법논리를 검사출신의 안 의원이 모른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안된다.

안 의원의 발언 가운데 또 하나 놀란 부분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의미를 안 의원이 이해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천 장관 쪽에서 `민주적 통제’ 운운하니까 “도대체 민주적 통제가 뭐요?”라고 묻더니, 나중에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헌법과 양심에 따라 수사하라는 것”이라고 자답했다.

이는 안 의원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이해도가 상식 이하로 낮음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자유민주주의의 제1원칙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검찰의 수사권, 기소권도 마찬가지다. 검찰이 이런 막강한 권한을 가지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국민에 의해 주어졌고 통제받기 때문이다.

이것도 교과서 수준의 말이라 글로 쓰기 민망하지만, 조금만 부연 설명해 보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행정권을 비롯한 모든 국가권력은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 그 방법은 바로 선거다. 선거에 의해 뽑힌 대의기관에 의해 모든 국가권력은 감시와 통제를 받게 됐다. 국민이 직접 스스로 하기에는 여러가지 어려운 점이 많으니까 일종의 대표자를 뽑아서 국가권력을 구성하고 제어하는 것이다.

선거에 의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는 대표적인 국가기관은 대통령과 국회의원이다. 검찰은 대통령과 의회 양쪽으로부터 민주적 통제를 받는다. 대통령은 국무위원인 법무부장관을 통해 검찰을 임명하고 지휘하고 감독하는 등의 행정적 방법으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권을 행사한다. 의회는 국정감사나 국정조사, 법률안 및 예산 심의 등을 통해 검찰을 통제한다.

▲ 강세준 컬럼니스트 
검사가 수사권, 기소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 것은 바로 이런 민주적 통제구조가 전제로 돼있기 때문이다. 사법고시에 합격했거나 개인적으로 똑똑하다는 이유로 수사권, 기소권을 준 것이 아니라 대통령이 임명하고 지휘할 수 있으니까, 필요하면 국회가 제어할 수 있으니까 검찰이 그런 권한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법무부 장관의 검찰에 대한 지휘와 관련해 `민주적 통제’를 거론할 때는 바로 이런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이론적 틀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안 의원은 이를 `헌법과 양심에 의한 수사’ 따위로 이해하고 있으니, 참으로 그 수준이 한심하고 그 속내가 의아스럽기까지 하다.

사실 안 의원이 상황여건상 정치적으로 박 대표를 밀어주기 위해 그런 발언을 했다면 모르겠지만, 진짜 법이론 이해가 그런 수준이라면 자기반성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고언하고 싶다. 안 의원을 믿고 따르고 싶어 하는 법대 후배들을 생각해서라도 더 이상 무지한 모습을 보이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기 때문이다.

비명횡사 당한 박종철을 역사의 주인공으로 되살려준 검사 안상수를 계속 지지하고 싶은 마음을 안 의원이 이해해 줄지 모르겠다. 안 의원의 좌우명 중 또 하나가 `인간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들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불구속 수사원칙이야말로 인간애를 실현하기 위한 인류의 피의 역사가 만든 작품이라는 것을 안 의원이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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