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블로그 공간을 다시 열었을 때, 랑시에르의 정치에 관한 테제를 날림 번역으로 올렸었다. 그게 랑시에르가 한국에 오기 전이었고, 곧 이어 랑시에르의 글이 잇따라 한국어로 옮겨졌었다. 그리고 랑시에르가 한국에 왔을 때, 정말로 할 일이 없었기에, 강연을 다니면서 기록한 간략한 녹취록도 이 공간에 올렸었다. 물론, 양창렬씨 등을 통해 훌륭한 번역들이 나왔고, 개인적으로 저런 뻘짓을 끝낼 수 있었서, 참 고맙게 생각한다.
여하튼, 내가 랑시에르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천4년, 5년 경이었는데, 정확히는 랑시에르가 관심의 대상은 아니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하튼 당시 현장 작업을 하면서, 계급정치와 그에 대한 대안적인 노선들을 넘어서서, 정치(적인 것)에 관해 새롭게 사고하는 게 필요하다, 뭔가 완전히 판을 바꾸는 관점이 도입될 필요가 있다, 는 소박한 생각을 품게되었다. 이런 동기에서 이러저러한 이론들을 유람 -- 맨땅에 헤딩! -- 을 하다가, '급진적' 입장에서 직접적으로 정치(적인 것)을 언급하는 일련의 논자들을 만나게 됐다. 그 과정에서 20-30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밖에 없었는데, 아시다시피, 이미 1980년대 초중반쯤, 광범위한 실천적, 이론적 반성이 있었고, 당시 중요한 논쟁점 중에 일부가 '민주주의'와 '정치(적인 것)'였다. 여하튼, 이 논쟁에 기여한 인물 중 하나가 랑시에르였고, 개인적으로 이 양반에 끌린 이유는 그의 논의 자체도 중요했지만, 일찍부터 그가 아카이브 작업을 했기 때문에, 내가 -- 그리고 우리가 -- '흉내'낼 수 있는 논자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물론, 희망사항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데, 당시에 온라인에서 무조건 랑시에르를 검색해서, 걸리면 무조건 연락해서 같이 세미나나 해봅시다라고, 달려 들었는데, 모두 거절 당했던 기억이 난다.아마 당시에 역사학 관련자들, 이택광 선생, 수유+너머 구성원 일부, 예술과 미학 쪽 인사들 일부가 검토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지만, 검토를 할 수록 제3세계 불가촉천민인 내가 그네들의 사유를 따라잡기에는 너무나도 초라하고, 즉 역량도 안되고, 게다가 이런 논의들이 한국화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2천년대 중반만 하더라도 영어권에서도 이런 논의가 급격히 부상하지는 않았다. 여하튼, 내가 용빼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관심이 좀더 경험연구 쪽으로 이동했기에, 한 동안 정치(이론)에 대해 관심이 시들했었다. 그리고, 2천8년 쯤인가, 랑시에르가 한국에 소개되고 한국에 왔을 때, 내린 결론 역시, 그러한 문제설정이 한국에 수용되려면 10년은 족히 걸리겠다, 는 생각을 했다. 배경이 충분히 소개되고, 재맥락화되고...등등 말이다. 그리고, 철학이나 이론 전공자들이 차츰 소개하니, 나 같이 그네들의 작업에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뇌리를 자극하는 사고나 개념(특히 미학적/감각적 중립화라는 표현의 중량감은 제대로 인식되고 있지 못하지만, 여하튼 멋있다!)은 얻었지만 말이다. 뭐, 나태한 변명이라고 치부하면 할 말이 없지만, 그렇다는 거다.
그런데, 감귤이 장강을 건너면 탱자가 되던 말든 간에, 영어권 국가들의 이론 소화력은 놀랍기 그지없다!!! 지난 주말, 아마존에서 랑시에르를 오랜만에 검색해봤다. 이것도 다른 책을 찾다가 연관검색어로 떴기 때문이다. 분명, 작년 초반에는 2차 문헌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제법 많은 책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로는 2천년대 중반, 영어권에서는 학술대회와 학술지의 특집호로 랑시에르가 유통되었지만, 이제는 랑시에르에 대한 입문서들이 등장할 정도에 이른 것이다. 참고로, 영어권에서, 랑시에르가 수용되는 방향이 여러 가지지만 -- 물론 랑시에르의 논의가 별개로 떼고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 대략 정치, 교육, 역사, 미학과 문학 이렇게 4개 분야로 수용되고 있다. 국내에는 이 가운데 정치, 미학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다. 교육에 관한 논의는 과장을 하자면, 예전에 프레이리에 관한 관심에 비견될 정도로 활발한 것 같다. 여하튼, 국내에서 꾸준히 소화되기는 뭔가 부족한 -- 한국 사정이 그렇다는 거다! -- 인물이지만, 이런 분위기가 뭔가 차분히 소화되기에는 더 좋은 여건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런 의미로, 최근 개론서 몇 권을 링크(클릭하면 아마존으로 연결된다) 해 둔다. 좀 된 책도 있지만, 한 꺼번에 올려둔다. 음, 로쟈식 리뷰의 탈을 쓴 분류라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양해해주시길.(아직 안 나온 근간 도서도 있으니 주의바람!)
이 중에 뭐가 좋으냐는 판단은 유보하겠으나, 간략한 입문서는 3번째와 9번째 책이다. 9번째 책은 정치, 역사, 문학 등 분야별로, 3번째 책은 개인 이력과 문제설정 별로 정리가 되었다. 두 권을 같이 보면 입론은 될 것 같다. 그리고, 1번째와 2번째, 8번째 책은 전문학자들의 글을 모은 것이다(참고로 2번째 책은 Acumen 출판사의 Key concepts 시리즈인데, 이론가들에 관한 좋은 책이 많다. 그런데 이 2번째 책을 포함해, 여기 언급된 많은 책이 국내 도서관에 없다. 랑시에르가 레어 아이템이란 증거인가?). 영어로 된 글 중에서 볼만한 논의는 대부분 포함하고 있다. 4번째는 교육과 관련해서 랑시에르를 논한 것이다. 나머지 중에서 7번째는 바디우, 랑시에르, 발리바르라는 알튀세르 제자들을 다룬 책으로 제법 알려져 있다. (말이 나온 김에, 국내에 있는 알튀세르-발리바르 계열(?)의 논자들이 랑시에르를 '드물게' 언급하지 않는 건 기이한 일이다. 뭐, 꼭 특별 취급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접점이 제법 많은데 이 용감한 '평등주의자'에 대한 취급이 드문 건 신기할 따름이다.) 이 책들 이외에도 몇 권이 있고, 전문 학술지에서 특집호로 다룬 것들도 있는데, 구하기 귀찮으면, 이 정도로도 충분할 것 같다. 내가 만약에 랑시에르에 관한 2차 문헌을 본다면, 1, 2, 8, 3, 9 정도를 재빨리 보겠다. 물론 6번째에 있는 Todd May의 글도 나쁘지 않다(참고로 May도 이런 개론을 재빨리 잘쓰는 사람들, 가령, 존 라이크만이나 크리스토퍼 노리스 같은 사람 중에 하나다.) 덧붙여, 발빠른 역자와 출판사가 있다면 입문서 두 권은 번역하면 될 듯 하다. 얇고 시장성도 있을것 같은데, 실제로 출간될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누가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 아, 또다시 내 속에 타오르는 잉문학도의 열망 -- 이런 건 지양해야 하지만, 랑시에르 2차문헌 독서모임 -- 이 번지누나, 좋은 책은 많고 인생은 짧구나, 이러면 아니 되는데.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