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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멈과의 대화

 

할멈.. 내 자동차 이름이다. 어제까진 할머니라고 불렀는데 할머니보단 할멈이란 말이

더 정겹게 느껴져서.... 후훗~~~

 

우리 할멈은 올해로 9살이다. 주행거리는 18만 6천킬로미터정도 된다.

할멈은 자신의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한다. 때론 자기가 수동인줄 착각하고 자기

맘대로 시동을 꺼트려 먹는다. 오르막길에 들어서면 골골골거리며 힘을 못내고...

누가 가스차 아니랄까봐 무게도 묵직허니 힘도 못쓴다. 켁.

 

지난 3월까지 광주집에서 부모님과 있다가 3월말 나와 함께 서울로 이사왔다.

서울로 이사오자 마자 초보운전 딱지를 붙인 나를 데리고 다니느라 더 폭삭 늙었다.

 

지난 5월에는 급!!경사 주차장에서 다른 차를 사뿐히 박아주시며 앞범퍼가 우그러지는

사고를 당했고. 보톡스를 맞고 때깔좋게 곱게 단장하시고 내 곁으로 돌아왔다.

 

사실 나에게 할멈의 존재는 언제나 부담! 부담! 부담!이었다.

나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나의 곁으로 오기도 하였고.

할멈은 중형차이기 때문에 나의 능력, 나의 나이에 걸맞지 않는 그런 존재이다.

언제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서 할멈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필요할 때만 낼름 타고 뒤도 안돌아보고 내팽개치고 도망다니던 사이였다.

 

그런 할멈에게 얼마 전부터 마음을 열었다. 할멈은 나의 고3시절과 재수시절

이른새벽. 늦은 밤 언제나 나를 싣고 달렸다. 그 때만 해도 어찌나 젊고 힘이 넘쳤는지.

할멈을 보며 지난 시간을 떠올릴 수 있었고.. 그냥 할멈이 가깝게 느껴졌다.

 

아침 일찍 할멈과 함께 아랫집으로 출근하는 날들에는 꼭 세차를 한다.

오전의 아랫집은 언제나 조용하고 평화롭다. (사람들이 없으니까 ^^;;;; ㅋㅋ)

 

윗집 나무그늘 아래 할멈을 세워놓고 라디오를 틀고 물걸레와 마른걸레로 구석구석

닦아준다. 뭐 아는건 없지만 타이어도 봐주고 본네트 열어서 훑어봐주기도 한다.

(봐도 이상이 있는건지 없는건지는 알 수 없지만.... ㅋㅋㅋ)

 

그러면서 할멈과 옛날이야기도 하고.. 어느새 나도 이렇게 나이먹어 사는거 다

부질없다는 것도 알았다고 자랑도 해본다. 그럼 할멈은 나를 그냥 바라본다.

 

할멈과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직은 할멈에 대해서 아는게 별로 없지만...

열심히 공부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할멈과 훨씬 더 친해질 수 있겠지....

 

할멈이 있어 난 예전보다 더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할멈과 있을 땐 조용히 라디오를 들으며 실컷 웃고 울 수도 있다.

 

할멈....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곁에 있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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