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익숙해진 재판에서 울다....

2006년 2월 10일 금요일 상쾌, 맑음 

 

오랜만에 재판장에 갔다.(고동주 1심 심리) 몇 일전 오정록 재판에도 갔었지만 그 날은

선고만 있어서 사실 어떤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은 고동의 재판이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여유롭게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느긋하게 앉아 기다렸다. 고동이 나오고

재판이 진행되는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일까? 한 두 번 보는 재판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 재판이 지겨워질 때도 됐는데....

 

내가 재판에서 울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내 운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병역거부자들의 진심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지겹도록 만나는 얼굴들이

병역거부자들이었지만 사실 평소에 만나는 병역거부자들은 나에게 병역거부자이기보다는

 그냥 같이 일하는 남성!!!! 활동가들에 가까웠다. 아니 그냥 일상에서 만나는 별반 다를바

없는 남성들이었다.(물론 모두가 특별한 문제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다들

자신들의 남성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지 않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물론 일상에서 그들의 신념이나 진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의 영역이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관계에서는 다른 면들을 많이 보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의 남성성에 내가 익숙해져 갈수록 난 내 운동에 많은 회의감들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병역거부자들은 원래 다 남자다. 당연한 이야기다. 새삼스레 내가 그들의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나름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나만의 바람에서만

 끝날 문제가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이 항상 고민하고 가져야하는 마음이라고도 생각하는 것이다. 병역거부자들은 남성성의 문제에 있어 민감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병역거부자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하였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되기를 자처한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받아야하는

차별을 기꺼이 감수하고 국가의 비합리적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기득권을 자신의 신념으로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식도 못할만큼

익숙해진 남성이라는 기득권 문제에 대해서 둔감해지는 것은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또한 더더욱 민감해야하는 이유는 그들이 군대라는 시스템을 통해 재생산되는 군사주의적,

남성중심적 문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군대에 가지 않지만 군대

못지않게 군대스러운 감옥에 다녀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옥에서 총은 들지않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는 강력한 군사문화에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적응하고 지내야만 한다. 그런 그들이 아무리 평화적 신념이 강하다 할지라도 감옥에서 출소한 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그 문화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병역거부자들은 성인군자도 아니고 신의 아들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남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출소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을 군대문화적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음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난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병역거부를 결정하고 다짐하는 시간들 못지않게 항상 자신들이 가진 남성성에 대해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남성이고, 감옥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군대에 다녀오는 남성들은 자신들의 억압적 경험들을 조금은

과장된 그리고 많이 지나치게 썰을 풀어낸다.

 

병역거부자들의 감옥이야기도 공론화 이후의 짧은 병역거부운동의 경험과 감옥인권운동과 관련해서는 이야기되어지고 정리되어질 필요는 있지만 이것은 분명 단순 영웅담적 성격을 가져서는 안된다. 난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상처와 억압의 경험을 인정하고

치유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또 군사문화에 젖어들지 않기 위한 한 가지의 노력이 될 수도 있다.

 

인정과 이해는 비슷하지만 큰 차이를 가지는 말들이다.

인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마음이란다. 그리고 이해는 같은 높이에서 서로 섞일 수 있는

마음이란다. 내가 누군가를 인정하는게 아니고 이해할 수 있을 때 관계의 평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난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군사적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면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