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설레임? 응..설레임^^;;;;

1.

요즘 들어 병역거부자들에게서 날아오는 편지들이 부쩍 늘었다. 나동의 컴백 영향이 좀

있는듯 하다. 한동안은 병역거부자들의 끊임없는 부탁과 요구에 살짝 짜증도 나고 지치기도

했었다. (물론 다 잘 들어주지도 못하고 열라 게을렀었다.) 그럴수록 병역거부자들의

후원회와의 관계설정을 잘하고 이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든다.

 

아마도 일을  분배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만들어가고 이어나가는데 서툴렀던 것이

감옥안에 있는 병역거부자들은 서운하고 답답하게 만들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지치게 만들었던 원인이란 생각이 든다.

 

병역거부자 후원회와의 관계 잘 만들어가기.

플라워파워가 해야할 일의 범위를 잘 만들어가기. 올해는 꼭 성공하자!! ^^;;;;;;;

 

2.

느즈막히 일어나 텔레비젼을 보는데.. 외국인들의 병영체험이 나왔다.

특전부대 병영체험이었는데.. 단지 군기가 빠져보인다는 별 이유같지 않은 이유로

이루어지는 끊임없는 기합들과. 군대에 갔다와야 사람이 된다는 그 말같지도 않은 논리를

외국인들이 몸소 느끼게 되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는 방송인들을 보며 정말 짜증이 났다.

 

밥을 먹는 공간에 걸려져있는 "지금 눈앞에 어머니의 모습이 보입니까?"라는 포스터.

우엑~ 지랄을 하세요. 정말 -_-;;;;;; 희생적인 어머니상은 도대체 언제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자랑스러운 교육관이 되어야한단 말인가????? 으으으으~~~ ㅠ.ㅠ

 

요즘들어 방송에 나오는 그 수많은 군사주의적 이데올로기들이 내 뱃속을 울렁이게 한다.

군대에 다녀온 남성들이 지배하는 방송도 뭐 어쩔 수 없다지만...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3.

많은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고나니 그동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엔 많은 고비들이 있기 마련인데. 짧은 인생이었지만 지난 3년동안 나름대로 큰 고비를

하나 넘어섰다. 그 3년간의 기억은 끔찍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강력한 내공을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그 작은 고비를 넘어선 나를 격려해주는 세상의 선물일까??

 

내가 속해 있는 공간들과 관계들 속에서 많은 러브콜들이 쇄도하고 있다. ^^;; 푸하하하~

보이지 않던 날 향한 사람들의 손길이 보이기 시작했고 보이지 않던 마음도 보인다.

선택하고 결정하는 과정들의 순간순간이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그동안 수고한 내 자신을 맘껏 축하해주고 격려하며 세상이 주는 선물을 열어봐야겠다.

언젠가 만나야할 내 인생의 큰 고비를 또 준비하며 지금 나에게 주어진 많은 기회와

행복들을 맘껏 누릴 생각이다. 하지만 항상 겸손하게....!!!!

 

4.

사랑이 지나가면..이별이 찾아온다. 이별 뒤에도 무언가가 찾아온다는걸 잠시 잊고 있었다.

이별 후엔.... 사랑이 바로 찾아오지 않는다. 이별 뒤엔 가슴 벅찬 설레임이 찾아온다.

설레임 뒤에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아니다. 이별과 사랑보다 설레임이 특별한 이유???

 

설레임은 아무에게나 그리고 매번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설레임은 인생의 행운이다.

세상을 다 가진듯한 그 마음든든함을. 세상 모든 것이 반짝반짝 아름답게 보이는 그 마음을.

두근두근 쿵쿵.. 괜히 웃음이 나는 것. 괜히 가슴이 떨리는 것. 괜히 얼굴이 빨개지는 것.

부끄부끄~ 설레임??? 응... 설레임!!!! 설레임이 날 찾아왔다.

이별의 아픔에 묻혀 일찍 깨닫지 못했던 그것이... 설레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

 

세상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

마음 쿵 닫아버리지 않고. 그.. 이쁜 설레임을 나에게 주었다는 것.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하철 결혼식의 압박 -_-;;;;;

0.

그냥 뭔가 사는게 무기력하고 공허하던 날이었다.

짙은 안개가 온 세상을 무겁게 짓누르고 그 속에서 차분해진 기분과 함께...

예년보단 든것도 없이 비싸기만 한 허무함만 가득한 초콜릿 바구니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문득 줄어들었다는걸 느꼈다. 다행이었다. ㅋ

 

1.

TV에선 가난한 연인들의 사랑이야기가 들려온다. 어인 일인지 마음이 쿵~했다. ^^;;;;

지하철 5호선에서 처음 만난 그 연인은 하객도 드레스도 없이 지하철 5호선에 올라타

낯선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의 사랑을 약속하였다. 이 순간에 딱 두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그래도 결혼은 하지말지... 였다 ㅋㅋㅋ 정말 날이 갈수록 결혼은 영~ 아닌것 같다.

또 하나는! 그래도!!!!!! 나도 가난한 연인이 되고싶다... 였다. ㅋㅋㅋ ^^;;;;;

결혼제도에 대해선 뭐 길게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난 가난한 연인이 좋다. 물론 찢어지게 미치도록 가난한 것은 서로를 지치게 할수도 있지만..

둘 사이에 사랑과 믿음이 아닌 무언가 물질적인 조건들이 끼어드는 것은 정말 싫다.

따뜻한 봄날엔 마냥 손잡고 거리를 걸을 수 있으면 되고...

더운 여름엔 조금 사치하여 아이스크림 하나씩 들고 나무그늘에 앉아 수다를 떨고.

아침일찍 일어나 조조영화를 보고 그 뿌듯함을 마음 가득 안고 또 열심히 걷고.

겨울엔 조금 더 사치해서 오뎅국물에 호떡 하나씩 물어뜯고....

 

앗! 물론 내가 어떤 경제적 빈곤의 절대적 조건을 낭만화시키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더더욱 연극을 했던 당사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이해가 되기도 한다.^^;

 

그냥 나에게 사랑. 그리고 연애는 그렇다는거다. 나에게 돈이 있어서 그 사람에게

돈이 있어서 조건이 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거다.

 

지하철 결혼식은 나에게 그런 의미였다. '우와~ 정말 사랑과 믿음만 가졌구나..'

그래서 사실 생기가 돌았었다. 내 자신에게 뭔가 희망이 생겼었다.^^;;;

이제 좀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즐거운 연애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났었다. 으아아아악~~~~ 그랬었다. -_-;;;;;;

 

그런데.... 그.... 지하철 결혼식이 진짜가 아니었단다. 나에겐 정말 절망적이었다,

그냥 나의 희망과 꿈이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는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난 말을 잃었다.ㅋ

그리고.. 나를 비롯해 현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런 순수한 사랑을 항상 무지 동경하고 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런데 왜 자신들이 하지는 못하는걸까? (나는 왜 못하지? -_-;;)아~ 슬프다.

 

나에게.... 가난한 연인을 돌려줘라!!!!!!

 

2.

진짜!!! 진~짜 술이 마시고 싶었다. 요즘 집에서 혼자서 술을 하도 많이 마셔대서 눈치가

좀 보이길래 약속을 잡았다. 늦은 밤 반가운 사람을 만나 열심히 마시고 놀았다.

약간 알딸딸하니 취기가 올라 그 사람과 함께 새벽거리를 열심히 거닐었다.

차지않은 밤공기, 조용한 밤거리, 가로등이 그려내는 불빛그림을 감상하며 마시는 따뜻한

커피 한 잔. 느무느무 좋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었던 일들에 자꾸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용서할 수 없던 모든 일들이

눈녹듯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딱 한번!!! 울고 밤하늘에 날려버렸다.

 

3.

슬슬 동굴에서 기어나가고 있는 내 모습들이다.

무언가에 다시 감동하고 어린아이마냥 설레고 다시 웃고 있다.

천천히.. 천천히.. 시작되고 있다. ㅋㅋㅋ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평화운동일기의 시작

 

0.

언젠가부터 '글좀 써야하지 않겠어?'라는 말을 종종 듣게 된다. 뭔글을 쓰래?? -_-;;;

씨껍한 반응을 보이곤 했는데.. 평화운동을 하고자 하는 나에게 운동에 관한 기록을

남기는 일은 어쩌면 쉽게 주어지지 않는 권리이자 의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정말 무언가 본격적으로 시작해보고픈 마음에 이 곳을 열었다. 사실 블로그에 매우

적응이 안되는 것이 사실이다. 불편하기도 하다. 아직은....

 

하지만 굳이 또 이 곳을 열었던 이유는 소통의 욕심일게다.

나도 한때엔 막내 특유의 기질때문에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사람을 만들고싶어했고

인사를 안하는 사람이 있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관계가 쉬웠고 즐거웠다.

하지만 그런 쉬운 관계맺음은 생각보다 많은 아픔을 남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허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 뒤로는 그런 관계맺음의 즐거움은 그닥 즐기지 않는다.

 

사람을 만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아마도 그래서 관계는 쉽지않은 것이고

위대한 일인지도 모른다. 집중해서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야 하고 신중해야하고.

물론 모든 만남이 그런 것은 아니다. 눈빛만으로도 알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개XX 욕 한마디에도 모든 걱정과 격려의 인사를 전할 수 있는 관계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만남은 사절이다. 기력이 없다. ㅋㅋ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고 성장하는 활동가가 되는게 나의 목표였는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어딘가를 나서는게 아직은 자신이 없다. 그래서 나만의 동굴에 움크려

앉아있지만 그래도 언젠가 날개 활짝 펴고 세상속으로 날아가 사람들을 만나는 준비를

하고있는 것이다.

 

1.

얼만 전에 아주 많이 괴로운 시간이 있었다. 예전같으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누군가를

찾아 매달려 엉엉 울고 그랬을텐데.. 언젠가부터 내 안에 쌓여가는 내공으로 몇분만 견디면

진정이 되는 슬픔과 고통의 감정을 혼자 달래게 되었다. 내 자신을 괜찮다 괜찮다 다독이면

이제 정말 괜찮아진다.

 

어쨌든 내 자신을 다독이며 내 자신이 참 회색분자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난 내가 속한

공간들 속에서 잘 섞이질 못한다. 아니 어쩌면 너무 잘 섞이는데 색깔이 너무 다른 공간들

속에서 내 정체성을 상실해버렸는지도 모른다. 난 쉽게 나의 생각을 밝히지 않는다.

대부분 듣고 동의하면 그냥 그렇다하고 다른 생각이면 말을 안하고 만다. 논쟁하는게

귀찮기도 하고, 상대방의 고집이 전혀 변화의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 대부분 말하기를

포기한다. 그래서 어딜 가나 난 참 외로와진다. 정말 즐겁고 정말 힘이 되고 정말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공간과 관계들에 감사하면서도 쓸쓸해진다. 

 

담배나 다시 물어 하루종일 한숨이나 벅벅 쉬고싶어지기도 했는데 역시 그건 아니다.

(뭐 사실 여전히 내 자신을 위로할 수 있다면 딱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땅에겐 미안하겠지만. 나무에겐 미안하겠지만. 아주 잠시라도....)

 

잃어버린 나의 색깔을 다시 찾고싶어졌다.  심호흡하고 부딪힐 다짐을 하였다.

무식함이 자랑스러웠던 그때의 나로.

그래서 모든 관계와 모든 일들이 즐겁기만 했던 그 때의 나로.

 

 

2.

저 멀리 훨훨 날아가고 싶다. 하늘내음 가득 내 몸에 담고 사람들을  만나고싶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익숙해진 재판에서 울다....

2006년 2월 10일 금요일 상쾌, 맑음 

 

오랜만에 재판장에 갔다.(고동주 1심 심리) 몇 일전 오정록 재판에도 갔었지만 그 날은

선고만 있어서 사실 어떤 생각도 할 겨를이 없었다. 오늘은 고동의 재판이 있었다.

일찍 도착해서 여유롭게 커피도 한 잔 마시고 느긋하게 앉아 기다렸다. 고동이 나오고

재판이 진행되는데 오늘따라 왜 그렇게 눈물이 났던 것일까? 한 두 번 보는 재판도 아닌데

말이다. 이제 재판이 지겨워질 때도 됐는데....

 

내가 재판에서 울었던 이유는 지금까지 내 운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병역거부자들의 진심을 정말 오랜만에 만났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일매일 지겹도록 만나는 얼굴들이

병역거부자들이었지만 사실 평소에 만나는 병역거부자들은 나에게 병역거부자이기보다는

 그냥 같이 일하는 남성!!!! 활동가들에 가까웠다. 아니 그냥 일상에서 만나는 별반 다를바

없는 남성들이었다.(물론 모두가 특별한 문제를 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다들

자신들의 남성성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지 않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물론 일상에서 그들의 신념이나 진심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운동의 영역이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공유하는

관계에서는 다른 면들을 많이 보게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의 남성성에 내가 익숙해져 갈수록 난 내 운동에 많은 회의감들을 느꼈던 것이 사실이다.

 

 

병역거부자들은 원래 다 남자다. 당연한 이야기다. 새삼스레 내가 그들의 남성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나름의 기대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나만의 바람에서만

 끝날 문제가 아니라 병역거부자들이 항상 고민하고 가져야하는 마음이라고도 생각하는 것이다. 병역거부자들은 남성성의 문제에 있어 민감해야 하고 고민해야 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병역거부자들이 제각각의 이유로 병역거부를 선언하였지만 그들은 모두

스스로 이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이 되기를 자처한 사람들이다. 사회적으로 받아야하는

차별을 기꺼이 감수하고 국가의 비합리적 차별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자신들이 가질 수

있는 기득권을 자신의 신념으로 포기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인식도 못할만큼

익숙해진 남성이라는 기득권 문제에 대해서 둔감해지는 것은 항상 경계해야만 한다.

 

 

또한 더더욱 민감해야하는 이유는 그들이 군대라는 시스템을 통해 재생산되는 군사주의적,

남성중심적 문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군대에 가지 않지만 군대

못지않게 군대스러운 감옥에 다녀와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감옥에서 총은 들지않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로는 강력한 군사문화에 1년 6개월이라는 시간을 적응하고 지내야만 한다. 그런 그들이 아무리 평화적 신념이 강하다 할지라도 감옥에서 출소한 이들의 몸과 마음에는 그 문화가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병역거부자들은 성인군자도 아니고 신의 아들도 아닌 그저 평범한 남성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실 출소한 사람들의 몸과 마음에 남아있을 군대문화적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음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난 병역거부자들이 자신의 병역거부를 결정하고 다짐하는 시간들 못지않게 항상 자신들이 가진 남성성에 대해 경계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남성이고, 감옥에

다녀와야 하기 때문이다. 군대에 다녀오는 남성들은 자신들의 억압적 경험들을 조금은

과장된 그리고 많이 지나치게 썰을 풀어낸다.

 

병역거부자들의 감옥이야기도 공론화 이후의 짧은 병역거부운동의 경험과 감옥인권운동과 관련해서는 이야기되어지고 정리되어질 필요는 있지만 이것은 분명 단순 영웅담적 성격을 가져서는 안된다. 난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의 상처와 억압의 경험을 인정하고

치유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을 위해 가장 중요하고 또 군사문화에 젖어들지 않기 위한 한 가지의 노력이 될 수도 있다.

 

인정과 이해는 비슷하지만 큰 차이를 가지는 말들이다.

인정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마음이란다. 그리고 이해는 같은 높이에서 서로 섞일 수 있는

마음이란다. 내가 누군가를 인정하는게 아니고 이해할 수 있을 때 관계의 평화가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난 병역거부자들이 사회적 소수자들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여성성과 남성성을, 군사적 문화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면 좋겠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