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적인 삶

2007/01/18 04:37

어제 오늘 이어 소화가 계속 되지 않는 다는 것을 핑계로 공부를 중단하고

큰맘먹고 구입한 두권의 책을 보았다.

 

하나는 꽤 잘 쓴 일본 추리소설 '火車' 라고...- 여자작가인데 카드빚에 몰려 극단적인 삶의 방식을 택하게 된 젊은이의 얘기를 아주 섬세하게 풀어쓴 얘기였다.  이런 식의 얘기도 쓸 수 있구나. 현실에서 유리되지 않은 소재로 재밌는 추리소설을 쓸 수 있구나. 라는 희망적인 모티브를 내게 던져준 책이었다. 그리고 역시 똑같이 내 취향에 맞는 소설가라면 여성작가의 글이 나를 더 편하게 해준다는 것도 확인하게 해주었다.  내용도 문체도.

 

나머지 하나는 '프랑스적인 삶'  이란 책이었다.

 

보아하니 꽤 인지도가 없지는 않은 책인것 같은데 대형서점에서 눈에 보이는 위치에 꽂혀있었으니

더욱 그러하리라 생각된다. 거기다 우리나라사람들의 '파리'와 '프랑스' 에 대한 동경은 아직도 문화적으로 풍요롭기를 원하는 식자와 속물냄새가 뒤섞인 이들에게 남아있으니 프랑스라는 제목을 내세웠고  프랑스에서 베스트셀러였다는 이유만으로 어느정도는 팔리리라 예상됬다.

 

(사실 나도 식자는 못되지만 주변에 식자들이 좀 있고, 속물근성도 어느정도 있기 때문에 프랑스란 나라를 좀 좋아한다.  그래도 스스로를 좀 변호해보자면 우리나라처럼 사회복지가 열악하고 반공적인 역사를 가진 나라에서 이런 나라가 당연한 줄 알고 한숨쉬며 살다가 홍세화씨 '파리의 택시운전사' 로 시작된 저서들만 봐도 우리나라랑 너무 다르지 않은가.  그런점에서 그 나라를 동경한다.)

 

 아무튼 '프랑스적인 삶' 이라는 '팔릴것 같은 제목' 을 가진 이 책은 50대의 남자가 여러정권이 바뀌는 오랜 세월동안 함께 흘러온 자신의 인생을 자서전 식으로 쓴 이야기이다.  사실 평범한 이야기이다. 2차세계대전 후에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나 권위적인 사회적 배경을 가지고 있던 1950-60 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내며 성에 눈떠가고 억압적인 방법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얘기,  68혁명 전후에 대학시절을 보내며 해방적이고 전위적인 가치에 편승할뿐만 아니라 그것을 일상속에서 체화한 듯 보이지만, 정작 부르주

아적 여성과 사랑하고 결혼하여 살아가는 삶속에서는 수동적으로 아내가 가져다주는 물질적 안정을 누

리며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과의 거리에서 오는 정신적 공황을 사진찍기로 소일하며 살아가는 것,  다소 권태롭게 느껴지는 불륜얘기 등등 특별한 얘기들은 아니었다.

 

 그냥,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두개의 큰 혁명을 치른 자유스럽고 개인을 존중하는 분위기와 사회주의가 제도적으로 길게 뿌리내린 역사를 가진 프랑스니만큼, 우리나라처럼 소수를 위하여 다수가 죽어지내는 전반적인 암울함과는 다른 삶의 양식을 ' 프랑스 적인 삶' 이라는 책에서 확인할수 있지 않을까 싶은 예감에서 였던거 같다. 

 

 확실히 이 평범한(?) 프랑스인이 살아간 삶의 큰 흐름은 생노병사를 겪으며 느끼는 감정의 흐름의 면에

서 여느 한국인과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진 않다고 해도, 구체적인 부분에서  50대의 한국인과 그 살아온 삶의 모습은 많이 다르다. 

 

우리나라도 80년대가 해방을 부르짖는 시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여전히 억압적이어서 그런지, 돈 있는 집 젊은이들조차도 마리화나를 피우면서 섹스하는 파티를 즐기거나 취미로 밴드생활 하나정도는 필수적으로 하는 그런 삶을 즐기지는 못하지 않았는가? 이 프랑스인 주인공이 보낸 시대는 대학에서 강의하나 안듣고 레폿하나 제출 안해도 '사회체제에 결합하는 지식을 양산하는 체제에는 순응할 수 없다' 라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컸기때문에 교수가 암말못하고 졸업시켜줬던 시대이다.  (부... 부러워라)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일상적인 억압' 에 도전하는 학생의 목소리가 패권을 가졌던 시대가 있었던가 싶다. 

 

 일용직으로 살면서 여자친구와 둘이 사는 삶, 이것도 역시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적으로나 관습적으로나 허용되기 힘든 삶일게다.  50대에 정원사로 취업해서 살아도 자괴감 갖지않고 두사람을 부양해서 먹고 살수 있는 것도 그렇고, 주인공은 판에박힌 사회주의자 (....라기보다는 사회주의자라는 이름을 가진 지도자를 무조건 찬양하는) 어머니를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나처럼 정치에 무관심하고 남편이 찍는대로 그냥 투표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시는 어머니를 둔 사람으로서는 그 정도로 사회정의 에 대한 열의 (비록 발전하지 못하여 박제된 모습이라 할지라도) 를 가진 모습을 부모님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게 신선하다고 해야겠다.

 

 

 그냥 .... 한인간이, 것도 한 남자가 '욕심없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받은 상처와 그 삶의 한 부분 한부분들에서 나는 담담하고 소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내가 보아왔던 내 아버지 뻘의 남성상과 상당히 다르고 또 막판에 닥쳐온 삶의 고난을 묵묵히 헤쳐나가는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보는 삶의 모습과는 또 다른면이 있었다.  뭐라고 해야 될까. 한탄하거나 감내한다기보다는 그냥 느끼면서 사색하고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자기인생을 자기가 그런식으로 묘사해서 그런지 몰라도)  행복이 찾아오기를 굳이 억지로 견디면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삶, 다소 고되어도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 있는 삶이라고 해야될까. 그래서 그렇게 말년에 쪽박차도 그렇게까지 불행해보이진 않았다. 

 

 a처럼 살기도 b처럼 살기도 원하지 않고 그저 자신답게 할만한 것들로 인생을 채우고 싶은 젊은이들,  자유스러운 가치를 존중하고 구속없이 살기를 원하지만 사회경제적인 모순에 대해서는 완곡하게 주장하는 바가 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자는 아닌 이들이 읽기에, 이 책은 특별할건 없지만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딱히 열성적으로 살지 못해도 추하지는 않은 모습으로 살 수도 있구나. 괴로워하지 않고 담담하게 많은 것을 느끼면서 살수도 있구나.  나는 요즘 그렇게 감각적인 가능성을 내게 제시해주는 책들에게 흥미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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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당신의 고양이 2007/01/18 11:07

    저도 <프랑스적인 삶> 읽고 싶었는데......(그러나 읽지 않았죠-_-) 어쨌든 땡기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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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오징어땅콩 2007/01/18 14:01

    예 꼭 사보시지는 않아도 될것 같네요- 시립도서관에 들어오면 빌려보시는 것도 괜찮을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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