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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6/08/17
    [박노자칼럼] 일본의 우경화와 우리들의 우경화
    Mr.Bear
  2. 2006/08/17
    21살, 자살하다(1)
    Mr.Bear

[박노자칼럼] 일본의 우경화와 우리들의 우경화

 

내 블로그에 [거울을 마주하고 있는 양국의 극우] 라는 글을 쓰면서도 나의 모자란 글솜씨와 지식으로 답답한 마음이 한가득이었는데, 마침 오늘 한겨레에 박노자 선생이 자신의 칼럼에 이런 나의 터질듯한 답답함을 한방에 뚫어주는 좋은 글을 써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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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칼럼] 일본의 우경화와 우리들의 우경화

 

최근의 일본을 두고 우리는 상투적으로 ‘우경화’라는 말을 쓴다. 후기 자본주의의 위기에 봉착한 일본이 신자유주의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심화하는 계급갈등을 피비린내 풍기는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로 봉합하여 ‘과거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이야기다.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안으로는 이윤 저하란 위기에 빠지고 바깥으론 중국의 부상에 위기감을 느끼는 일본이 스탈린주의적 좌파의 위기를 이용하여 극우주의 일색의 정치로 가는 것은 염려스러운 사실이다. 그런데 한국 보수 논객의 입에서 “일본 우경화 걱정이네” 식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위선의 악취가 코를 찌른다.

그렇다. 일제 패망 이후에 일본의 공론마당에서 한때 우세했던 자유주의·온건좌파 담론이 지금 극우들에게 여지없이 밀린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는 좌파는커녕 제대로 된 자유주의라도 시민권을 얻은 적이 있었는가? ‘개인 존엄’을 기반으로 하는 일본 교육기본법에 여당이 ‘전통·나라에 대한 사랑’, 곧 ‘애국심’ 배양 조항을 넣기로 했다는 소식은 진보적 일본인·한국인에게 충격을 불러일으키고도 남았다. 그런데 저학년 학생을 ‘체벌’이란 미명 아래 학대한 교사를 ‘의원 면직’으로 처리해 사실상 징계를 하지 않는 반면,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일제식 전체주의를 방불케 하는 의례를 거부한 교사를 지속적으로 마녀사냥 해 온 대한민국의 교육 관료와 극우 언론들은, 개인 존엄이 안중에 있기라도 하는가? 개인 존엄에 대한 관념이라도 있었다면 일제시대를 연상케 하는 머리(두발) 제한이라는 단어는 벌써 역사용어 사전에 들어가고 말았을 것이다.

아시아 침략에 대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과 재일 조선인 등 소수자의 차별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그런데, 이라크 주둔 일본군의 철수가 개시돼도 한국군 철수의 가능성에는 굳게 입 다물고 미국의 잔혹한 중동 침략에 계속 들러리 노릇을 서고 있는 한국 정부는 과연 그런 행태를 책망할 자격이 있는가? 한편으로는 스페인 등 여러 나라들처럼 ‘불법 이민자 사면’을 벌여 직장을 갖고 있는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에게 합법적 체류자가 될 기회를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잔혹한 단속으로 피부색이 다른 민초들의 인생을 망가뜨리고, 한편으로는 유행이다 싶어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들먹이는 당국자들을 보노라면 쓴웃음이 나오다 분노의 눈물이 나올 지경이다.

대륙침략으로 횡재한 일본 재벌들한테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고약하게 느껴지지만, 미 제국의 베트남 침략으로 국외 진출과 돈벌이에 성공한 한진·현대 등의 국내 재벌들이 ‘월남 특수’로 벌어들인 돈의 일부라도 베트남 사회에 환원했다는 이야기 역시 들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일본이 전후의 자유주의에서 극우주의로 넘어가고 있지만, 우리 역시 일제말기 식의 극우주의를 벗어나려고 한때 약간의 노력을 하다가 지금 다시 우향우 하고 있는 형편이다. ‘국산’ 우경화가 가져다주는 ‘밑’의 고통에 대한 불감증의 정도로는, 대한민국이 구미지역은 물론 일본까지도 능가할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경찰들의 폭력으로 농민·노동자가 죽거나 불구자가 되고 임신부가 유산을 해도, 민중을 적군처럼 다루는 정부를 ‘주류’ 신문이나 시민단체들이 한번 규탄해 본 적이 있는가?

일본의 극우신문들이 애국심을 한국에서 배우라고 외쳐대는 것이 우연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아류, 친일 주구로부터 성장해 온 한국의 극우주의는 이미 일본 극우의 ‘모범’이 될 정도로 ‘발전’되어 우리의 미래를 버젓이 가로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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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이 게제된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댓글을 보니, 역시나 좌파라면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사람들의 짧은 욕지거리가 눈에 띈다. 이런 댓글들을 볼 때면 늘 궁금한 것이지만, 정말로 한나라당에서 알바를 고용해서 각종 인터넷 댓글들을 장악하고 있다는 게 사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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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자살하다

핸드폰이 갑자기 울린다.

수신번호를 확인해보니 비정규직 교사로 교직에 나섰던 첫해에

함께 기쁨과 슬픔을 나눴던 그 녀석들 중 아직도 연락을 하고 지내는 녀석이다.

군대가기 전 한참 알바중이라며,

"첫 월급 타면 선생님 좋아라하시는 고기 사드릴게요!" 라고 했던 녀석인데,

회사가 부도나면서 그 전부터 받지 못했던 월급까지 합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떼였다며 울분을 토하던 녀석이다.

 

'드디어 월급을 받은건가..... 오늘 간만에 소주 한잔 하게 생겼네....'

라며 구닥다리 핸드폰을 조심스레 열었다.

 

"여어~ 왠일이냐, 떼인 월급 받아냈냐?"

"쌤... 안좋은 일로 전화한 거에요......."

 

덩치가 나와 비슷해서 100kg 클럽을 만들었던 녀석이라 성격도 나와 비슷하여

왠만한 일에는 우울해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 녀석인데,

오늘은 이상하다.

 

"쌤, 우리 2학년 때 가르치셨을 때, 재윤이 기억하세요?"

"응, 당연히 기억하지. 키크고 대따 잘생기고. 왜, 뭔 일 있어?"

"오늘 새벽에 자살했어요......"

 

뭔가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워낙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라 그렇게 친했다고는 할 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떨어진 성적 올려보겠다며, 특히 자기는 영어를 잘하고 싶다며,

다른 녀석들하고 다르게 늘 수업에 굉장히 집중하며 열심이었던 녀석이었다.

그 점때문에라도 아직 그 녀석을 쉽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 다음 해에 있을 정규직 교사 공개채용을 앞두고,

학교 비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나를 두고 "빨갱이"라며 말이 많았고,

혹여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 하는 나에게

그렇게도 말이 없던 녀석이 지나가며 한마디 던졌다.

"쌤, 쌤이 영어 제일 잘 하고, 제일 잘 가르쳐요. 걱정마세요."

 

지금 듣자면 한없이 부끄럽고 부담되는 말이지만,

당시만 해도 녀석의 그런 한마디는 엄청난 자신감과 희망을 불어넣기에 충분했었다.

(결국 그 해에 교장과 그에 기생하는 몇몇 선생들이 날 학교에서 내쫓았다. 결과적으로는 비정규직 교사의 경우 특별한 경우 연속하여 계약을 하자는 조합원들의 요구로 나를 포함한 "빨갱이"로 찍혔던 비정규직 교사들과 함께 그 해 공개채용에서 떨어졌던 "교장에게 인정받은 교사들"까지 다시 2년차 비정규직으로 근무할 수 있게 됐고, 이듬해 결국 "빨갱이"로 찍혔던 우리만 공개채용을 통과하여 정규직이 되었다.)

 

"아직은 왜 자살했는지 모르겠어요."

"그래 그럼 이따 전화해줘."

 

그리고 오늘 밤 녀석이 술에 취한 목소리로 다시 전화했다.

"쌤, 나 소주 네병 마셨어....."

말이 좀 짧으면 어떠랴, 고작 열살 차이인데.

"그리고 많이 울었어요... 개새끼...."

 

여자친구 문제였단다. 헤어지자고 선언하고 자기를 멀리한 여자친구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고, 결국 양주 한병을 마신 후에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단다.

 

"개새끼... 쌤, 나 막 욕나와요... 그 새끼가 졸라 미워요... 그러면서도 너무 슬퍼요..."

 

21살의 청춘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이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왜 세상은 날 늘 억압하고 구속하려 하는지,

모든 것이 불확실하고 뒤죽박죽인 나이다.

도무지 정답을 얻을 수 없지만,

그래서, 정답이 없어서 더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그래서 더 많은 꿈을 꿀 수 있기에 아름다운 나이다.

 

하지만, 재윤이란 녀석은 결국 그 시간들을 이겨내지 못했다.

 

가끔씩 졸업생들을 만나거나, 아님 그들의 살아가는 소식을 들을 때면,

얼굴은 반가움에 함박 웃음을 짓고 있으면서도

마음 속 한 구석은 이상하게도 쓰려온다.

 

너무도 힘들어서, 그래서 너무도 많이 울었던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리며,

녀석들이 겪고 있을 그 힘든 시간의 무게들이 나에게도 전해져옴을 느껴서일까.

 

그러나 대부분은 그 시간의 통로를 잘 극복하여 진짜 어른이 된다.

하지만 하나둘씩 낙오되어 가는 이들의 소식도 전해져 온다.

그러나 문제는 갈수록

낙오된 자들의 소식이 점점 더 많아진다는 것이 아닐까.

그 낙오자들이 나의 학생들이었고, 나의 친구들이었을 때,

슬픔은 고통이 되고, 눈물은 한여름 더위를 더욱 달구는 뜨거운 소낙비가 된다.

 

"술 조금만 마시고 일찍 들어가. 산 사람은 더 열심히 살아야 해."

 

녀석들에게 영어단어 몇 개, 수능문제 풀이 기술 몇 개 더 가르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알쏭달쏭 도무지 이해를 못하게다는 녀석들 머리 속에

그 알량한 지식 몇 개 더 쑤셔넣어야먄

그게 진짜 참교사다, 라는 세간의 인식에 응하고자 나 또한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녀석들에게 그리 길지 않지만, 나름 경험해 온 삶의 무게들에 대해,

십 미터 먼저 달려온 인생의 선배로서,

삶에 관한 여러가지 단면들을 이야기해주려는 노력도 많이 했다.

해서 녀석들의 삶은 슬픔과 아픔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자유로워질 수 있길 바랬다.

 

"쌤, 보고 싶어요....."

"그래, 나도.... 너희들 많이 보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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