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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은 SF- 에덴과 창공의 상투스

 자취를 시작하고 나서 만화방에 다니게 되었다. 예전엔 느끼지 못했었는데 만화방의 매력은, 푹신한 소파에 파묻혀서 아무 거나 머리에 떠 오르는 데로 뽑아 볼 수 있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라면 한 그릇도 덤으로 들어가면 금상첨화. 새로운 즐거움을 자축하는 의미로 어제 만화방에서 재/발견한 매력적인 만화들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보자.



                                        마음에 드는 이미지 찾기가 참 힘들다. 출처는 (http://blog.naver.com/holyslayer

 에덴 1-15
 
 오랜 만에 다시 읽었다. 1권을 처음 손에 쥐었던 것이 99년 무렵이었던 것 같으니 근 8년 만에 다시 보는 셈이다. -물론 그 동안 나오던 신간은 꼬박꼬박 챙겨 보고 있었다- 8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멋진 프롤로그에 가슴이 뛴다. 싸이버 펑크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근미래 세계에서, 바이러스로 인해 모든 인간이 죽어버린 섬에서 살아가는 소년과 소녀. 이 섬의 소년과 소녀는 인류가 살아남아 있는 세계로 나가고, 본 편은 이들의 아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전개된다. 


 인류 최초의 낙원에서 소년과 소녀는 살인을 통해 세계로 나아가고, 이들의 아이들은 잔인한 세계에서 삶을 헤쳐 나간다.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이라는 모티브를 가지고, 작가는 인간의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하지만 어떤 해답을 설정하고 그에 맞춘 이야기를 전개하기 보다는 잘 짜여진 세계를 만들어 놓고 그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을 택한다. 이 점에서 엔도 히로키는 정말로 창의적인 크리에이터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그는 계급, 인종, 민족, 종교 간의 갈등과 이를 이용하는 강대국들의 이권다툼 등 현재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는 비극에 싸이버 펑크적인 의상을 탁월하게 입혀 낸다. SF 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현실감이 있는 이 세계가 에덴이 갖는 최대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그려진 세계는 철저하게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바로 그 철저함이 이 세계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 이는 인간에 대한 온갖 만행이 '현실적으로' 그려지는 세계에서, 인물들이 하는 경험에 공감할 수 있게 해준다.  그래서 부잣집 도련님으로 처음에는 그저 착하기만 했던 주인공이 이 세계에 말 그대로 '적응'해 가면서 던지는 질문들은 참 진부하지만 깊은 무게로 다가 온다. - '왜 그저 행복해 질 수는 없는지' '세계 모든 사람들이 그냥 행복할 수는 없는 건지' 


 물론 엔도 히로키는 지금의 세계에 그저 사이버 펑크를 덧붙인 것 만은 아닌데, 작가는 초기에 세계를 위기에 처하게 했던 '클로저 바이러스'를 삶에 대한 질문을 풀기 위한 나름의 실마리로써 제시하고 있다. 아직 만화가 진행 중이라 어떻게 진행될 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불안한 것은 이 클로저 바이러스라는 게, 통합을 통한 갈등의 해소, 통합으로써의 진화라고 하는 굉장히 지겨운 모티브를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엔도 히로키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고, 그래서 이렇게 커다란 주제를 들이대는 와중에도 결코 전개의 긴박감을 줄이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에반게리온 이래 너무나 진부한 모티브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앞으로도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게 될 것 같다. 엔도 히로키는 1권 날개에 "에반게리온을 봤을 때 에반게리온이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해 버렸다고 생각했다"라고 적고 있는데 그는 혹시 아직도 그 뒤를 쫓고 있는 것일까?



 여담. 엔도 히로키가 에덴을 그리기 시작한 게 거의 데뷔 때 일이라고 하는데, 대체 어떻게 그렇게 일찍 이런 원숙한 스타일을 완성해 냈는지 정말 놀랍기 그지 없다. 1권과 15권 사이에 그림체의 차이가 거의 없다니.









 창공의 상투스 1-4

 역시 꽤 괜찮은 SF. 약간의 미래에 우주에서 온 뭔가의 영향으로 인해 변화해 버린 바다를 탐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SF 라고 해봐야 무늬 뿐인 액션 만화가 많은 상황에서 꽤 괜찮은 정통파라고 생각한다. 에덴이나 문 라이트 마일과 같은 만화들이 현실 세계의 갈등을 SF 세계에 반영하는 데 비교적 충실하다면, 창공의 상투스는 이런 반영보다는 '모험심'이라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렇다고 이 만화에서 현실적인 알력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알력들을 그리는 데 힘을 쏟기 보다는, 세계의 복잡한 이해 갈등과는 상관 없이 미지의 것에 매료되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모험심'이라는 테마는 비록 현실의 두터운 벽 앞에 가려져 낭만적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진지하게 다뤄진다.

 그리고 창공의 상투스의 한 가지 큰 미덕은, 이렇게 그릴 것을 정해 놓고 그것에 전적으로 매진한다는 것이다. 창공의 상투스는 전개가 비교적 빠른 편인데, 이것은 배경 세계를 설명하거나 캐릭터의 디테일을 묘사하는 데 시간을 뺏기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요즘 많은 만화들이 서사보다는 캐릭터 포장에 더 신경을 많이 쓰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뚝심 있는 전개는 무척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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