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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커 칼럼] 9-11 이후: '1984'의 현실

9-11 이후: '1984'의 현실 이광석 / 네트워크 편집위원 9-11 동시다발 테러 이후 미 우익 매파들은 '빅브라더'로 둔갑했다. 타국민에겐 제국의 무력과 폭탄을 들이대고, 자국의 시민들에겐 온갖 감시의 제도와 기술로 옥죈다. 절차상의 민주주의를 갖추고 합리성이 통한다는 미국 사회에서 이젠 시민에 대한 국가 폭력이 일상으로 벌어진다. '경찰 국가'로서의 면모는 지난 5월말 의회에 제출된 사법부의 반테러 목적의 활동 보고서와 국방부의 감시기술에 대한 해명 보고서를 통해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9-11 이후 시민 감시를 상시화할 명분으로 만들어졌던 '애국자법'은, 4,500건의 무분별한 테러 파일들을 만들었고, 혐의만으로 50건에다 불법 체류자의 경우 762명의 물적 증거없는 강제 구금, 수백건의 영장 발부없는 압수 수색, 그리고 50여개 도서관들의 도서 대출기록 임의 조사 등에 악용됐다. 이는 사법부가 순순히 밝힌 공식 수치만 따졌을 때다. 9-11은 자본의 이권과 짝패를 맞춘 여러 감시 기술과 시스템이 국가 보안의 핵심으로 나서는 계기도 됐다. 대표적으로 국방부의 '종합 정보인지'(TIA) 체계는 미국 시민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거대 통제 기술로 아직도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패턴 인식 프로그램은 시민들 개개인의 신상 기록과 거래 내역들을 수집해 한데 모아 분석해 잠재적 위협 요인을 미리 막겠다는 야심찬 구상을 세우고 있다. 너무나 노골적인 정보 오남용과 인권 침해의 소지가 뻔히 보여서인지, 지금에 와선 '테러분자 정보인지'로 이름을 바꿔 단 채 활보하고 있다. 그 아류도 줄줄이 나온다. 바깥 세계의 '이방인'이 미국 영토를 밟으려면 여행객 감시 체계인 '비지트'(VISIT) 시스템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유학생과 교환 방문객은 미국에 체류중인 이방인들을 사찰하기 위해 만들어진 '세비스'(SEVIS) 시스템에 등록·관리 받아야 한다. TIA의 일환으로 구상중인 '사전적격심사시스템'(CAPPS II)은 비행기 탐승객들의 신원 조회용 프로그램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에 수시로 벌어지는 인터넷 감청, 위성을 이용한 무선 감청, 바이오 신원 감지 기술 등을 덧붙여 보면, 부시행정부가 원하는 시민 통제욕의 끝이 가늠조차 힘들다. 노골적인 국가의 감시와 폭력에도 군말없이 순종하는 미국 시민들의 정서는 이를 묵인하는 가장 큰 악재다. 극단의 애국주의에 취해 하루아침에 동강난 자신들의 인권을 치유하거나 수습하려는 기미란 처음부터 없다. 국가가 나서 밖으론 수시로 적을 만들어 준전시 국가관리 체제를 꾀하고, 안에선 테러에 대한 심리적 두려움과 공포를 끊임없이 유포하여 감시와 통제의 명분을 쌓은 까닭이다. 자신의 신상 정보가 국가에 의해 늘 관리되고 감시의 족쇄를 차야한다는 사실을 하루속히 깨닫거나 분노조차 못한다면, 그 사회는 조지 오웰의 '1984년'에 멈춰 있는 꼴이다. (<네트워커> 2003. 7.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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