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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질돼가는 디지털 일상문화
[한겨레]2001-01-12 04판 25면 1278자 컬럼,논단
패러디로 가득찬 (오스틴 파워)란 코미디 영화를 보면, 권력욕에 눈먼 이블 박사가 스타벅스의 기업본부에서 지구를 정복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스타벅스의 배경은 그저 웃고 넘기기에는 심각한 의미를 담고 있다. 알게 모르게 일부 미국인들에게는 스타벅스란 거대 커피 독점사에 대한 적대적 정서가 폭넓게 자리잡고 있다. 미국 시애틀에 본부를 두고 있는 스타벅스는 1971년 개점한 이래로 현재 20여개국에 4천여 점포를 갖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큰 커피 전문 체인으로 알려져 있다. 성인의 80%가 커피를 마시는 미국에서 3할 이상의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전국적인 체인의 자본력으로 지역의 영세한 커피 전문점을 무너뜨리며 성장한 스타벅스는 지역 재개발이 이뤄지는 곳에는 어김없이 들어섰다.
환경 운동가인 레베카 솔니트와 사진 작가인 수전 슈와첸버그가 최근 공동으로 펴낸 (텅빈 도시)란 책을 보면, 샌프란시스코의 영세한 구건물들이 어떻게 스타벅스에 의해 사라졌는지 그 역사적 비운의 과정을 잘 그리고 있다. 닷컴 사무실들이 들어서는 곳에 어김없이 스타벅스의 간판이 내걸리는 사정을 고려하면, 닷컴 분위기와 스타벅스의 커피는 돈독한 우애를 자랑한다. 스타벅스에 들어서면 말쑥한 닷커머들과 노트북컴퓨터를 두드리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지난주에 스타벅스는 닷컴 최대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와 제휴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미국내 스타벅스 커피점 안에서 고속의 무선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하자는 합의에 이르렀다. 스타벅스의 슐츠 회장이 언급한대로 자사 커피점을 찾는 소비자의 90%가 인터넷 사용자라면 그리 앞질러 나가는 사업 계획은 아니다. 광대역 인터넷 서비스 계약을 통해 스타벅스는 자신의 소비층을 두텁게 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쪽은 인터넷을 통한 서비스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들여다보면 길들여진 미각을 이용해 인터넷 서비스를 상업적으로 적절히 결합해보자는 동기가 깔려 있다.
이미 구경제 기업과 닷컴기업 간의 만남이 일상이 된 지 오래지만, 이 거대기업들 간의 제휴 움직임은 향후 대중의 디지털 일상문화를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가를 새삼 되짚어보게 만든다. 이들은 도시 개발의 향방을 정하고, 입맛을 길들이고,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중의 문화를 선도한다. 아쉽게도 이들 기업은 상업적 서비스의 확대라는 명목으로, 대중에게 문화적 선택의 다양한 기회들을 박탈하는 우를 범한다. 닷컴제국과 카페인제국이 합작으로 선보이는 새로운 커피맛이 쓰디쓴 것은 이 때문일까?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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