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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컴 노동자의 참담한 현실
[한겨레]2001-01-26 02판 20면 117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닷컴 회생의 처방으로 노동자들의 해고가 적극적으로 애용되고 있다. 닷컴 기업들은 질나쁜 구경제의 논법을 그대로 답습해 노동자를 한 명 해고시킬 때 기업이 얻을 수 있는 비용절감의 효과를 논한다. 언론은 연일 어떤 닷컴 기업에서 몇 명의 노동자를 잘라냈는지 그 숫자놀음에만 관심이 있다. 이제 미국민들이 신경제를 통해 이뤄지리라 믿었던 꿈같은 노동 환경은 허튼 소리로 들린다. 추락하는 스톡 옵션의 가치 또한 그나마 닷컴 기업에 기대했던 노동자들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갔다.닷컴 노동환경에 대한 노동자들의 위기감은 자연스레 노조 설립의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터넷 서점 아마존과 같은 거대 닷컴의 노조 결성 움직임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가전제품 정보 서비스 업체인 이타운(Etown.com) 노동자들도 노조가 더 이상 공장굴뚝시대의 폐기처분될 유물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이미 이타운은 병가 휴가를 이용해 1일 파업을 주도했던 두 명의 노동자를 해고했고, 노조 설립을 기도했던 다른 13명의 서비스 담당 직원도 해직 조처했다. 사업주의 이런 조처는 구경제와 다를 바 없는 신경제의 열악한 노동 윤리관를 정확히 반증한다.
대다수 닷컴 노동자들은 초과 노동에 시달려왔다. 미 산업보고서들에 따르면, 다른 직종에 비해 닷컴 노동자들이 주당 평균 10시간을 더 일한다는 공통된 조사 결과를 내놓고 있다. 닷컴 노동자들 내부의 양극화도 심각하다. 신경제의 많은 업무들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노동을 필요로 한다. 소수 전문 인력과 달리 대다수 노동자는 과잉 업무에 시달릴 뿐만 아니라 해고 위협을 받는 가장 불안한 지위에 놓여 있다. 노동자들에게 닷컴 사무실에 갖춰진 체육관, 오락시설, 간식 제공 등 집안에서처럼 자유롭고 안락한 환경 또한 더 이상 따뜻한 가족주의의 상징으로 비춰지지 않는다.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노동 연장을 위한 심리적 전술이라는 믿음이 지배적이다. 언론인인 질 프레이저는 이런 냉혹한 닷컴 노동현실을 '화이트칼라 착취공장'에 빗대기도 했다
혁신.창의성.유연성.벤처정신 등의 수사가 최대 명제로 군림하던 시절에 몸 축나는지 모르고 일했던 닷컴 노동자들 자신이 이제는 비용 항목으로 처리되는 비운을 겪고 있다. 그만큼 노동자들의 현실이 고단해질수록 신경제에 가려진 꺼풀들이 하나둘씩 벗겨지기 시작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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