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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미술 2001. 11 Special Feature | 21세기 신지식학
21세기는 디지털 영상문화의 이미지로 가득찬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바야흐로 이미지가 새로운 미의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처럼 21세기 시각문화는 ‘(디지털) 미디어’의, 미디어에 의한, 미디어를 위하여 존재할 것만 같다. 뉴미디어 비평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디지털 미디어에 폭넓은 관심을 갖고 있는 이광석 씨와 인터뷰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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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벅찬 희망을 안고 시작한 인류의 21세기는 ‘뉴욕 테러’와 그에 따른 또 다른 충돌로 인해 ‘불확실성’을 가득 품은 채 시작되었다. 21세기를 전망하기 전에 20세기를 정리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 할 수 있을 텐데, 당신은 지난 20세기를 어떻게 정리하는가? 또한 이를 바탕으로 당신이 기대하는 21세기는 무엇인가?
20세기는 과학기술에 기반한 ‘도구적 합리성’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 시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속히 발전한 기술문명은 인류 미래에 대해 선인들이 꿈꾸던 상상력을 일정 부분 현실화했다. 하지만 합리주의적 인류의 성과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일궈 나갈 공공 논의의 실종은 대체로 과학기술문명의 방향을 권력과 초국적기업 등에 의해 철저히 ‘도구화’했다. 인류문명의 선택과 방향에 대한 결정권이 소수의 힘있는 일방에 집중될 때 마찰이 발생하고 파국을 불러온다. ‘뉴욕 테러’는 그 권력 집중의 부정적 효과다.
21세기는 20세기의 이런 도구적 합리성에 기댄 강력한 권력이 아래로부터 위협받는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지구촌 곳곳에서 다양한 주장을 지닌 다양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분출할 것이다. 다양한 가치를 담은 목소리가 겉으로는 혼돈의 불확실한 미래를 보여 주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억눌린 다수의 주장이 힘을 폭넓게 발휘할 수 있는 ‘글로벌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엿보게 한다. 기술적으로 컴퓨터와 인터넷 네트워크 혁명은 20세기의 가장 큰 기술적 소득이며, 이런 작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주는 확성장치로 기능할 것이다.
= 인간은 그 지식의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는다. ‘뉴미디어 시대’로 기억될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주체)의 존재 의미를 채워줄 신지식은 과연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구체적으로 ‘신지식’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겠지만 ‘지식간 경계 허물기’의 시대가 될 것임은 확실하다. 그것이 앞으로 ‘신지식’의 모습일 것이다. 근대성의 소산인 학제간 구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징후가 현재에도 속속 진행되고 있다. 현실 관찰이나 미래 예측은 좁은 학문의 틀로는 무리임이 입증되고 있다. 외부의 바람막이로 기능하는 배타적 전공의 기득권 속에서가 아니라, 학제간의 경계를 가로질러 횡단하는 ‘유목하는(nomadic) 의식’의 다차원적 만남에서 현실에 대한 정확한 해석과 미래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 21세기는 아날로그의 시대를 지나 디지털 영상문화 시대로 기억될 것 같다. 평소 ‘디지털 미디어’에 대해 폭넓은 관심을 보인 당신은 디지털 영상문화 속의 ‘이미지’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디지털 영상은 ‘이미지’의 상상력을 극대화한다. 아날로그 시대와 달리 이 새로운 이미지의 주된 특징은 ‘변형’과 ‘잡종’에 있다. 있는 것의 끊임없는 재구성, 모르핑(morphing), 변화, 그리고 이들간의 새로운 잡종(hybrid)이 주를 이룰 것이다. 디지털 문화의 특성, 즉 빠르게 이동하고, 순식간에 변화하고, 복제되어 붙여지고, 새롭게 재구성되는 특성이 영상 이미지 속에 쉽게 전이될 것이다. ‘가벼운’빛의 이미지는 권력화한 ‘오리지널’과 고정 이미지에 대한 불신을 낳는 긍정적 측면도 지니지만, 존재하는 사실에 대한 의식적인 판단조차 흐릴 수 있는 위험성도 함께 갖고 있다.
=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멀티미디어와 인터넷, 게임, CD롬과 DVD, 케이블·위성방송·인터넷 방송 등 다양한 영상매체가 시각문화의 지형도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영상문화의 진보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라디오·TV·영화를 전공한 당신은 21세기 영상문화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시각 영상문화의 ‘진보’는 무엇을 말하는가? 다매체의 출현과 영상 표현능력의 발전이 진정 ‘진보’일까? 그것이 시작에 불과하든 이미 한참 진행되었든, 중요한 것은 영상문화는 시대의 가치와 결코 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처럼 영상문화의 가치가 상업적 인센티브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에서 새로운 시각매체의 출현은 대중을 상업적 욕망에 확실히 길들이는 프로파간다로 떨어질 확률이 높다. 물론 영상문화의 발전은 표현수단과 능력의 다양성과 신장이라는 면에서 예술에 영향을 줄 것이다. 형식적 실험의 다양성을 불러오겠지만, 여전히 예술의 ‘내용’은 디지털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고유의 질적 문제다.
= 최근 들어 영상문화를 논할 때 단지 디지털이라는 ‘매체’와 ‘기술’에 국한해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즉 ‘무엇을’보여 주고, 이야기하느냐보다 ‘어떻게’보여 주느냐가 더 중시되고 있다. 디지털에 의한 21세기 영상문화가 담아내야 할 내용은 어떤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가?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는 그릇의 차이일 뿐이다. 담을 그릇의 차이가 내용물의 차이를 일부 유도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완전히 달리하지는 않는다. 매체와 기술이 중심이 되면 곤란하다는 사실에 적극 동의한다. 문제는 아날로그이건 디지털이건 보여 주고자 하는 것을 가장 적합한 그릇으로 담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항상 ‘어떻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 ‘스타일’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고로 21세기 영상문화가 표현방식의 변화에 따라 새롭게 달라져야 할 내용은 없다고 본다.
= 이미 예술을 바라보는 학문적 패러다임은 예술의 범위를 넘어 문학·철학·커뮤니케이션·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의 혜택을 입고 있다. 이러한 학문과 장르의 ‘크로스오버’시대에서 예술이 안고 있는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크로스오버’ 시대지만 여전히 예술은 수많은 타 학문과의 ‘해석’행위와 별도로 개인 ‘창작’을 예술가적 장인의 배타적 영역으로 남겨 두려 한다. 이 문제의 일부 해결은 수용과 해석 행위를 창작에 적극 개입시키는 방식일 것이다. 디지털이 지닌 창작 주체와 수용자 간의 인터랙티브한 속성으로 일부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최근 디지털 예술가 중 수용자와 함께 최종 완성하는 퍼포먼스 실험 등은 관객을 전시공간에서 대상 작품을 수동적으로 해석하는 위치에 남겨 두지 않으려는 적극적 시도로 봐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당신의 관점에서 전공 분야 또는 시각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을 추천한다면?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비주얼 아트의 젊은 교수 레브 마노비치(Lev Manovich)가 쓴 《뉴미디어의 언어(The Language of New Media)》(MIT 2001)다. 우선 필자가 이론과 예술현장을 두루 경험한 인물이기에 뉴미디어를 말하는 데 있어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둘째, 그의 책은 이론적 측면에서 뉴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미학적 관점과 해석의 가능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셋째, 다루는 대상의 다양성이다. 영화이론·예술사·문학이론·컴퓨터공학 등의 학문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뉴미디어 해석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가 마음에 드는 이유는 현실 비판의식이다. 첨단기술의 찬사에 이끌리기 쉬운 위치에 있으면서도 뉴미디어 내면을 흐르는 권력의 신화를 하나하나 분석하여 폭로하는 비판적 관점을 잃지 않는다. (윤동희·기자 정리)
이광석 | 뉴미디어 비평가. 현재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라디오·텔레비전·영화학을 전공하고 있으며, 《한겨레신문》 칼럼(‘@디지털사회’)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사이버 문화정치》, 《디지털 패러독스-사이버공간의 정치경제학》이 있으며, 현재 칼럼집과 ‘디지털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책을 구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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