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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신성'끊는 경매 퍼포먼스
[한겨레]2001-02-16 05판 25면 1302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한 개인이 걸치거나 지닌 물건들을 보면서 우리는 그에 대한 대강의 정보를 추측하고, 쉽게 상대를 속단한다. 소비를 학습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구매된 상품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물신성에 완전히 사로잡히면 개별적 소유물들이 그 소유자를 정의하는 고약한 상황이 발생한다.몇몇의 젊은 예술가들이 이를 비꼬면서 재미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시연 장소는 인터넷 최대 경매사이트로 알려진 이베이(ebay.com)로서, 실험이 조용히 펼쳐지고 있다.
한때 인간의 장기가 경매 물건으로 올라와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는 이베이는 유무형의 주고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내다 팔고 살 수 있는 사이트로 알려져 있다. 거대한 전자시장 안에서 이들이 펼치는 시연은 이베이의 경매 규칙에 따라 자신이 소유한 물품들을 내다 파는 행위다. 내용물은 다양하다. 사용하던 향수.책.옷가지.사진.엘피음반.교정용 치아 등 잡다한 물건들이 경매 목록에 올라와 있다.
이들이 노리는 퍼포먼스의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예술가의 손길이 닿으면 잡동사니도 예술품이 되는 현실을 조롱한다. 아무것도 아닌 물건을 예술가가 만지면 그럴듯한 상품의 지위를 얻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뒤집어보자는 심사다. 물론 그 전제는 온라인 경매를 통해 이들의 물건을 사려는 구매자가 존재할 때만이 예술 작품으로서 인정된다. 구매가 없다면 이는 한낱 쓰레기에 불과하다.
또 다른 하나는 개인을 상징하는 소유물들을 경매 처분함으로써 물신의 고리를 끊는 효과를 얻는 것이다. 경매에 내다 판 물건들은 자신의 경매 아이디에 딸린 일종의 긴 목록을 만들어낸다. 예술 관람객이자 경매 소비자인 우리는 계속해서 팔려나가는 긴 물품 목록을 통해 한 개인을 형성하는 배경을 습관처럼 읽으면서도, 동시에 그 물신화한 개인을 구성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기획에 참가하고 있는 존 프레이어는 경매 목록을 자신의 웹페이지(AllMyLifeForSale.com)에도 동시에 제공하고 있는데, 마지막에는 이 페이지마저도 그와 같은 기획을 구상하는 새로운 구매자에게 팔 생각을 갖고 있다. 마이클 맨디버그도 그의 페이지(mandiberg.com)에 가격을 매겨놓은 물품 목록을 전시해놓고, 자신을 구매하라고 선전하고 있다.
하루에도 수백만명이 들락거리는 전자 경매 시장에서 이들의 시연을 직접 마주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은 상혼이 들끓는 닷컴 경매의 논리를 활용해 정반대의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는 법을 선보였다는 점에서, 그리 작은 퍼포먼스로만 비치진 않는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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