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인권'가면 쓴 미국의 두 얼굴

'인권'가면 쓴 미국의 두 얼굴 [한겨레]2001-03-02 04판 25면 125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한 사회의 통제력에 대한 지나친 욕구는 권력의 물리적 폭력으로 이끌리기 쉽다. 특히 폭력과 억압의 언저리에는 신체 고문의 유혹이 항상 도사린다. 고문은 한 시대의 기술력에 의존해 억압을 도구화하는 기술적 장치들과 공생해왔다. 문제는 디지털사회의 현실에서 이런 구시대적인 고문장치의 개발이 '돈 되는' 사업 모델로 쾌속 성장해왔다는 데 있다.고문 행위에 대한 국제적인 여론을 환기시켜온 국제사면위(amnesty.org)는 이번주 초에 '고문 무역'을 방지하기 위한 50여쪽의 관련 보고서를 내놓았다. 지난해 10월부터 벌여온 사면위의 고문 추방 캠페인의 하나로 발행한 이번 보고서는 다양한 고문 장치와 기술, 고문기술 개발업자들의 사업 동향, 이에 대응한 실천 지침 등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세계 제일의 무기수출국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미국이 고문장비 최대 수출국임을 밝히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고문장비 개발.홍보.판매를 담당하는 미국 업체만 현재 80여곳에 이른다. 미국 기업은 전세계 고문장비 생산의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고문장비 개발업자의 증가는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상대적으로 공급업자나 마케터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개인 보안서비스 업체들의 새로운 시장 수요도 우려할 만한 것으로 거론된다. 미 국무부는 매년 인권보고서를 통해 고문 방지를 포함한 전세계 인권 신장을 역설해오면서, 뒤로는 상무부가 '범죄통제장비'란 명목으로 1997년부터 업자들의 고문장비 수출을 이제까지 합법적으로 뒷받침해온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에서 개발한 고문장비의 최대 수입국들은 사우디아라비아.러시아.대만.이스라엘.이집트로 파악되고 있다. 거래되는 고문 장비로는 족쇄.수갑.엄지수갑.압박의자 등 저급한 중세적인 장비에서부터, 90년부터 지속적으로 개발돼온 첨단의 각종 전기충격 장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특히 전기충격 기술이 급속도로 확산돼 80년대에 서른 남짓했던 개발업체가 이제는 130곳을 웃돌고 있다. 이번 보고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고문 산업이 전세계적으로 성장하고 부양되는 근원을 잘 드러내고 있다. 고문으로 돈을 버는 근본적인 커넥션에 대한 개선 없이 인권에 대한 감성적이고 인본주의적인 호소만으로는 역부족임을 일깨운다. 인간의 비상식적 잔인성을 등에 업고 개발되는 고문 기술의 고도화도 우려할 측면이다. 신체에 주는 해악이 검증조차 되지도 않은 각종 '쓰레기' 고문장치들이 인간이 이뤄낸 기술적 성과의 건강성을 좀먹고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