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라디오 상업성과 인터넷 미래

라디오 상업성과 인터넷 미래 [한겨레]2001-03-16 02판 25면 131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미국 뉴욕시 브루클린구의 하원의원 메이저 오언스는 지난주 황당한 일을 겪었다. 그는 (WBAI)라는 지역 라디오방송의 한 프로그램에서 노동 현안을 다루는 전화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방송사 사장이 스튜디오에 들이닥쳐 진행자의 마이크를 꺼버리고 방송을 중단시켰다. 곧이어 오언스는 방송 책임자의 비상식적 방송 검열에 분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방송 중 마이크를 낚아채는 이런 촌극은 상업주의를 배격하며 태어났던 퍼시피카 재단 소유의 라디오 방송사에서 벌어졌다. 퍼시피카는 교육기관을 빼곤 미국 최초로 비상업적 방송의 인가를 받아, 1949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를 필두로 이제는 로스앤젤레스.뉴욕.워싱턴.휴스턴 등지에서 방송을 내보내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방송사의 예산을 정하고 편성을 자문하는 구실을 하면서, 퍼시피카는 명실공히 민주적인 조직 구조를 지닌 대안매체로 성장했다. 퍼시피카 재단은 몇년 전부터 상업적 모델에 사로잡힌 운영위원들이 등장하면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재단 운영진의 권력 집중과 이를 제어.감시하는 지역 자문위의 기능 한계로 빚어진 결과다. 반세기가 넘도록 지켜온 재단의 민주적 가치를 등지고, 이들은 사업 구상에 방해가 되는 사내 진보 인사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99년 5월 버클리 소재의 (KPFA방송) 사장.국장 및 핵심 직원 축출과 이에 반발한 직원들의 대규모 항의시위와 체포, 보안요원의 고용과 출입통제 등은 서막에 불과했다. 지난해 12월 (WBAI)에서 단행된 사장과 일부 임원들의 해고 조처는 '크리스마스 쿠데타'로 불릴 정도로 잔인하게 방송사 직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다. 오언스가 당한 수모는 이 유혈 폭풍이 몰아친 뒤 재단이 새로 앉힌 임시 사장의 지나친 프로그램 검열로 연출된 것이다. 상업적 모델을 도입하려는 운영위는 그동안 사회의 중요한 현안들을 다뤘던 프로그램과 관련 직원을 가차없이 잘라냈다. 이에 저항하는 각계 인사의 항의 서명, 언론유관 시민단체와의 연대투쟁, 안티사이트 개설(savepacifica.net), 거리집회 등으로 투쟁은 한층 격해지고 있다. 해법은 진보적인 추천인사로 운영위가 다시 구성되고, 이를 통해 애초의 설립 취지대로 비상업적 방송을 꾀하는 일이다. 이를 기약하지 않는다면 문제 해결은 당분간 요원할 듯하다. 라디오를 인터넷 못지않은 혁명적이고 민주적인 매체로 꿈꾸던 거짓말 같은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상업화와 독점의 괴물 앞에서 퍼시피카마저도 대책없이 흔들리는 절망의 시대를 넘고 있다. 라디오의 얼룩진 역사가 인터넷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 되도록 놔둬선 곤란하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