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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IN] 숫자놀음의 쇼쇼쇼!

숫자놀음의 쇼쇼쇼! (원제) - 정부 여당, 미디어법 개악 위해 수치 조작하다

 

[96호] 2009년 07월 13일 (월) 10:43:20

 

이광석

 

정부 여당, 미디어법 개악 위해 수치 조작하다 정부와 여당은 보수 우익 신문사의 신문·방송 겸영과 재벌의 방송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학자들에게 정부 용역을 주어 수치를 조작하는 일 따위는 비일비재하다.

 

숫자는 18세기 중반 유럽에서 국가 통제의 수단으로 적극 도입되기 시작했다. 통치권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어떤 분포를 보이는지 어디에서 살고 그 집의 식구가 몇인지 또 세금을 얼마나 내며 벌고 있는지 따위는 권력 유지의 필수 정보가 되었다. 권력의 힘이 숫자에서 나오면서, ‘인구통계’와 숫자의 지식은 시민을 다스리는 중요한 통치 과학으로 자리 잡는다. 현대에서는 좀 더 전문화한 통계 기법이 등장하고 각종 숫자, 그리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지표가 그 이면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끊임없이 이용된다. 숫자의 힘에 비례해 전문적으로 숫자와 지표를 생산하는 단체들, 즉 정부 전문 부처, 정부 관련 용역기관, 기업 부설 전문연구소, 독립법인의 리서치 회사 등의 구실도 더욱 커졌다.

누구보다 권력자들은 자신의 특수한 정치 목적을 위해, 이들 기관으로부터 가공된 숫자를 이용해 이른바 ‘숫자놀음’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경제성장률의 가능치를 입맛에 맞게 바꾸거나, 몇 가지 지표를 첨삭해 정치 신임도의 높낮이를 조정하거나, 경기유발 효과를 뜬금없이 뻥튀기해 늘린다거나, 과세표준 8800만원 소득자를 중산 서민층으로 분류하는 등 따지면 끝도 없다. 물론 이렇게 진실을 동반하지 않는 허구의 숫자놀음은 금방 들통나기 마련이다.

미디어법 직권 상정해 ‘개악’할 듯

 상황을 더욱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국민의 녹으로 유지되고, 그래서 더욱 독립 기구여야 할 곳들이 권력을 위한 브레인 노릇을 자처할 때다. 예를 들어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이 정부 용역으로 작성한 <언론법 경제효과 분석> 보고서가 날조된 것으로 밝혀졌다. 필자도 사이트에 들어가서 보고서를 봤다. 이 사실을 처음 발견한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의 말, 그리고 이 사건에 성명서를 낸 전국언론노동조합 이진성 정책국장의 분석을 KISDI 보고서 원본 내용과 대조해보니, 정확하게 숫자놀음의 정황이 드러났다.

문 제가 된 용역 보고서에는, 2006년 우리나라 명목 GDP를 훌쩍 늘려서 (8880억 달러에서 1조2949억 달러로) GDP 대비 방송 플랫폼 시장의 비율을 0.68%로 축소해 선진국 수준(0.75%)에 미치지 못한다고 정리했다. 즉, 보고서는 우리 GDP 수치를 조작한 후에, 선진국 수준에 맞추려면 방송시장의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결론을 냈다. 그러나 세계무역기구(WTO)나 한국은행의 한국 GDP 수준에서 보면, 우리의 “방송 플랫폼 시장의 비중은 0.98%로 선진국 평균을 크게 웃돌아 시장 포화 상태”이다.

전문가의 말대로라면, 이 수준에서는 도저히 생산유발 효과나 취업유발 효과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과당경쟁으로 마이너스가 될 가능성이 크다. KISDI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으로부터 한국 GDP 관련 원자료 구입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둥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현 상황은 친박연대조차 미디어법 개정을 무리하게 홍보하다 되레 숫자놀음에 당한 정부 여당을 비난할 정도다. 

지난해 말부터 미디어법 개악을 위해 한나라당이 벌인 비상식의 행동을 따져보면, 이번 사건이 그리 메가톤급 충격은 아니다. 그러나 수법이 발칙하고 졸렬하다. 그것도 학문하는 이들이 용역을 받아 벌인 일이어서, 정치인에 버금가는 그 비도덕성에 할 말을 잃을 뿐이다. 정부와 여당은 보수 우익 신문사의 신문·방송 겸영과 재벌의 방송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연초부터 끊임없이 그 정당성 확보의 수사학을 개발해왔다. 이번의 숫자놀음은 그 일면이지만, 나쁜 짓하다 걸린 꼴이라 체면이 말이 아니게 생겼다.

언론개혁과 방송시장의 변화와 관련해서, 사안의 중대성 때문이라도 사실상 수많은 공청회와 각계각층의 여론 수렴 방식이 선행되어야 했다. 정부와 여당은 이처럼 치부를 들켜서, 사실상 직권 상정을 통한 미디어 악법 강행 처리만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제발 합리적 민주주의의 구색이라도 갖추면서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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