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시사IN] KBS, 시사 프로그램의 무덤?

KBS, 시사 프로그램의 무덤?

 

이광석

[시사IN - 메스 미디어] [109호] 2009년 10월 12일 (월) 14:39:47

 

KBS가 지난해 가을 개편에서 그 수많은 시사 보도 프로그램을 잘라내는 것도 부족했던 듯싶다. 이병순 KBS 사장은 얼마 전 이사회에서 생방송 <시사360>까지 폐지하겠다고 했다. 지난해 개편 때 <시사360>도 KBS 간판 시사 프로그램이던 <시사투나잇>을 잘라낸 뒤 만든 후속 편성이라 말이 많았다. 비판적 정론보다는 정치적 뉴스 사안을 연성화하려는 의도가 개입됐다는 지적이 쏟아졌다. 이제는 <시사360>조차 부담스러운 시점에 이르렀다.

취 임 후 지난해 가을 개편부터 이병순 사장이 보여줬던 프로그램 개편의 험한 칼춤을 맞아 쓰러진 시사보도 프로의 참상이 바로 어제일 같다. 그런데도 또 칼춤 시늉이다. KBS <시사투나잇>과 <미디어 포커스>가 그렇게 사라졌고, <시사기획 쌈> <추적 60분> 등은 뉴스 아이템 연성화와 사실 관계 왜곡 등으로 시청자들의 원성을 산 지 오래다. 이미 지난해 가을 개편으로 KBS 내부에서 “탐사보도팀 사실상 해체”라는 얘기가 돌았던 정황을 고려하면, 이번 <시사360> 폐지 수순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라는 자조 섞인 말도 나올 법하다.

수신료 현실화 논의는 어불성설

 

문제는 KBS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국면에서, 그리고 각종 집회 현장에서 시민에게 취재조차 거부당하는 굴욕을 당하고도 공정성과 탐사보도로의 회복 의지와는 반대 길을 걷는 데 있다. 군부독재 시절에 KBS는 국영방송으로 태동했다. 저개발 독재국가가 방송 등 미디어를 국민 계몽과 정치 선전 도구로 순화하려던 무렵이었다. ‘한국방송공사’의 설립은 적어도 KBS 조직상 정치 입김을 최소화하고 방송의 정치적 독립성과 방송 공영성을 세우려는 첫걸음은 됐다. 군부독재 시절에 정치적 부침과 위기가 있었으나, KBS는 ‘국민의 방송’이기에 이름값을 위해 공영방송의 요건을 착실히 쌓아갔다.

 

예컨대, 정연주 사장 임명과 함께 2003년부터 그가 해임당할 때까지 KBS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줄곧 1위였다. 또한 MBC의 공영성 사수에도 KBS가 나름대로 든든한 맏형 노릇까지 했던 시절이 있었다. 적어도 지난해 이병순 사장 체제 전까지 KBS의 질적 성장과 약진은, 내부적으로 여러 잡음에도 불구하고 보도와 시사 부분에 힘쓰고 정부 감시 기능과 사회 약자 편에 선 방송에 힘입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KBS 신뢰도 추락을 이제 ‘수신료 현실화’라는 논쟁적 의제로 바꿀 때가 아니다.  지난 십수년간 KBS 수신 요금이 전혀 현실 반영을 못한 채 제자리였다는 점을 인정한다. 영국이나 일본의 공영방송에 비해 수신료 비율이 턱없이 낮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KBS의 ‘대한 뉘우스’로의 전락이 문제시되는 현실에서 수신료 현실화 논의는 어불성설이다. 회사 광고 수입의 주요 원천이던 KBS2를 대기업과 족벌언론에 민영화해 던져주고 나머지 자급도를 높이기 위한 심산으로 수신료를 올리려 한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수신료 인상 이전에, 이제까지 국민의 지지를 누렸던 공영방송의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관제와 국영 방송이란 오명을 짊어질 수밖에 없다.

 

KBS 위기와 관련해 필자는 온라인 뉴스 ‘미디어스’에 다시 실린, 전영일 전 KBS 수신료 팀장이 지난 1년간 KBS의 망가진 모습을 정리한 글을 최근 읽었다. KBS 사내 통신망에 올랐던 글로, 이병순 사장 1년 동안 KBS 신뢰도 위기 문제의 본질을 누구보다 정확히 잘 짚고 있었다. 사내 게시판에 그와 같은 글이 KBS 직원의 회사에 대한 충심에 의해 올라왔다는 점에서 아직도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하지만 현재 KBS 위기에 반응해 일어나야 할 변혁의 공감이 여전히 내부적으로 기민하지 못하다. 이에 이르면 아쉽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세 탓만 하고 굴종의 세월이려니 하여 그저 지나치려 마음먹기엔 앞으로 험한 날이 너무나 많지 않을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