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3D텔레비전 대신 차라리 구글TV를 내게 다오!

3차원 재현의 완벽성이 텔레비전 미래의 전부인가?

- 또 다른 하드웨어 중심주의의 신화론에 부쳐


이광석(@txmole)

최근 3차원(3D) 재현 기술에 국가가 발벗고 나서고 관련 업계가 열광하고 있다. 주도적 혹은 핵심적 IT기술의 선점과 수출 증대는 장기적으로 중요한 국내외 성장 동력임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3차원 재현 기술은 우리가 욕심을 낼 수 있는 영역이다. 하지만, 3차원 재현기술의 개발은 현재 그리고 향후 전세계 IT시장의 추이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그 맥락을 세심히 살핀 후 이뤄질 일이다. 사실상 국제적으로 최고 순위를 지켰던 한국의 정보통신 지수들이 왜 최근 위기 국면을 맞았는 지와도 잘 연계해 따져봐야 할 일이다. 


먼저 3차원 영상기술에 대한 관심과 분위기를 주도했던 사건은, 해외 영화 <아바타>의 국내 개봉이었다. 이 영화는 국내에서 최고 흥행 기록을 갱신했을 뿐만 아니라, 3차원 영화의 오락적/기술적 가능성까지도 현실화했다. 국내 일반 상영관은 물론이요, 3차원 전용 영화 상영 아이맥스관이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갔던 것은 이를 반증한다. 엄밀히 따져보면 <아바타> 흥행의 성공 요인은, 우선은 잘 짜여지고 탄탄한 스토리에다 특수컴퓨터그래픽(CG)의 효과까지 잘 앉혀있고, 이에 3차원 효과의 맛까지 적절히 가미한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영화 제작자들의 말처럼, 3차원 효과는 “<아바타>란 아이스크림 위에 살짝 얹은 체리”와 같다는 말이 예서 적절한 표현이다. 기술보다 콘텐츠의 중요성을 지적한 말이지만, 아무튼 이로 인해 3차원 기술은 한국에서 대중의 화두가 됐다.

 

입체영화에 대한 이와 같은 오락적 기대치와 함께, 삼성과  LG 등 가전업체들의 새로운 텔레비전 시장 마케팅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하고 있다. 국제 텔레비전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우위를 선점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크게, 플라즈마 티브이와 같이 벽걸이 텔레비전의 가정내 극장화나 가구화와 더불어 3차원 고화질 입체영상을 통한 이미지 재현 능력의 고도화라는 이중의 목표에 걸쳐 있다. 특히, 전자의 영역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재미를 봤던 가전사들이라, 기술적으로 후자의 영역에서 향후 큰 시장 잠재력을 본다. 그래서인지 국내 두 가전사는 3차원 입체 텔레비전 판매 전망에도 대단히 낙관적이다. 6월에 있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등의 특수에 주목하면서, 향후 스포츠나 영화, 게임, 오락 등의 영역에서 3차원 영상 구현의 가능성을 본다. 특히, 국내 ‘디지털 텔레비전’(DTV) 전환과 관련해서도, 3차원 영상 구현이 나름 적절한 연계 효과를 발휘할 것으로 본다.

 

정부 접근은 어떠한가? 3차원 입체영상 정책 로드맵이 어느 정도 구체화하고 있다. 이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가고용전략회의’에서는 올해 3차원 텔레비전 시험방송을 시작으로 2015년 입체용 고글안경 착용 없이도 시청가능한 텔레비전을 개발한다는 야심찬 산업 발전 전략을 밝힌 상태다. 2015년까지 이 분야에 8천억을 투자해 2014년까지 시장 규모 15조원에 4만여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야심찬 목표치도 설정했다. 말 그대로 ‘꿩먹고 알먹자’는 것인데, 우선 좀 뒤쳐진 우리의 국제 IT정책 지수도 회복하고 핵심기술 영역도 만들어 먹거리도 만들어보자는 복안이 깔려있다.

좋다. 늦게나마 IT 정책에 정부가 나서서 업계의 분발을 위해 3차원 핵심 기술에 대한 육성 전략을 내오는 것은 우선은 고무적이다. 우리의 IT 성장이 일정 부분 국가와 기업간 협의 구도를 통해 성공을 이뤘던 사례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러하다. 그러나, 가시적으로 흥행수표인 듯 보이는 기술들이 진정 미래까지 책임지는 핵심 동력인가를 잘 따져봐야 한다.

 

먼저, 기술적으로 현재까지 국내에서 개발한 3차원 영상 구현 기술은 아직도 많이 불완전하다. 입체 시청이 가능한 안경 없이도 3차원 화질을 완벽히 구현할 수 있는 시점이 그리 빨리 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입체 영상을 즐기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비용들을 따져보면, 시장에서 소비자들에게 그만한 비용을 감내하고라도 구입할 수 있는 오락 미디어로 자리잡을 지는 아직 미지수다.

 

둘째, 정부는 보다 근원적으로 텔레비전 기술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얼마전 구글이 ‘구글 텔레비전’을 개발한다는 뉴스가 미국의 <뉴욕타임즈>에 크게 실렸던 적이 있다. 현재 시험방송 중인 구글TV는, 구글(운영체제), 소니(수상기 제작), 인텔(스마트칩 내장) 등이 연합해 만들어내는 미래의 텔레비전 모델 중 하나다. 텔레비전 기술의 한 축이 지금의 3차원 텔레비전처럼 재현과 실사 능력을 극대화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마치 실제와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쪽으로 개발되고 있는 반면에, 구글 TV는 인터랙티브한 컴퓨터와 콘텐츠 개념을 전통의 텔레비전 개념과 ‘합치는’(convergent)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구글TV로 대표되는 후자의 텔레비전 기술 경향에 대한 고려 없이는 미래 텔레비전의 발전에 대해 반쪽짜리 진화론을 주장하는 꼴이 될 수 있다. 3차원 기술에 대한 정책 독려도 중요하지만, 후자에 대한 대응 혹은 대비 노력도 게을리해서는 곤란하다. 

 

셋째, ‘쓸만한 콘텐츠 없이는 3차원 구현 텔레비전은 무용지물이다’라는 말들이 적잖이 들려온다. 3차원 실사 구현도 중요하나 이를 채울 콘텐츠 제작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앞서 <아바타>의 성공에 콘텐츠의 탄탄함이 기본이 됐음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시청자나 소비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원할까라는 문제의식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우리 휴대전화 생산업체들이 국내 모바일 시장에서 쌓아왔던 오랜 기술과 공력이 단 한순간 애플의 아이폰과 이이패드로 인해 단 몇 개월 사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라. 기술 개발의 하드웨어적 접근은 이제 한계에 다다랐다. 기술의 고도화로 대부분이 엇비슷한 경쟁력을 가질 때 소비자가 주목하는 것은 콘텐츠의 접근성과 활용 가능성이다. 미디어 이용자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추동할 수 없는 기술들은 사실상 무용(uselessness)의 기술이 되기 십상이다. 마치 아이폰의 충격에서 처럼, 우리의 3차원 텔레비전 기술이 또 한번 구글TV와 같은 콘텐츠 중심형 텔레비전 모델에 무기력하게 당하는 일을 만들어선 곤란하지 않겠는가.

 

마지막으로, IT 혹은 미디어 생태계 발전의 방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음을 봐야 한다. 한 때 정부 주도로 혹은 기업과의 협의기구를 통해 IT 초고속망을 깔고 하드웨어 기기를 단독 개발해 선진국형 기술을 독자 생산해 성공을 구가하던 호시절이 있었다. 그로부터 고도 성장의 중흥기를 제대로 맛 보았다. 그러나, 이제 디지털 경제의 체질이 바뀌고 있음을 지각해야 한다. 마치 90년대 중반 이후 제조업 중심의 산업 구도의 한계를 파악하고 발빠르게 정보화에 들어섰던 것처럼, 지금이 바로 그 비슷한 상황이며 또 다른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상황을 요구한다. 즉, 하드웨어 중심의 IT 발전으로부터 ‘소셜 미디어’가 각광받고 ‘집단지성’과 협업의 논리가 ‘신’경제의 핵심이 되는 시기로 전환되고 있다. 이같은 도도한 흐름 속에서 텔레비전 기술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다시 풀어 말하자면, 텔레비전 기술의 미래는 실사 재현의 기술 개발도 중요하지만, 관련된 콘텐츠 기술과 이를 추동할 수 있는 기술 문화를 육성하는데 모아져야 한다.


하드웨어 기술 개발은 국가가 나서 독려하면 단기간에 일정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으나, 소프트웨어나 콘텐츠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미래 텔레비전 영상의 발전에 있어서도. 보다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자유로운 문화 생산의 토양을 만들어주는 간접 지원이 정부 정책의 주된 역할이 돼야 한다. 기업들 또한 구글TV와 같이 소프트웨어 진화적 방향으로 나아가는 텔레비전의 기술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

 

(2010. 5. 지역정보화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