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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파 디바이스’의 진화와 가족의 재탄생

‘소파 디바이스’의 진화와 가족의 재탄생

 

이광석

 

 


‘소파 디바이스’(sofa devices)란, 말 그대로 주로 가족들이 휴식을 취하는 거실 소파를 중심으로 활용되는 미디어 장치를 지칭한다. 그러다보니 이 미디어 장치들은 가족 구성원 공통의 여가 활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하다. 예전 텔레비전 시대를 떠올려 보라. 한 때 가족 성원들이 밖에 나갔다 저녁에 들어와 모이는 공간에 항상 텔레비전이란 ‘소파 디바이스’가 그 중심에 있었다. 옹기종기 가족들의 저녁밥상 머리에 혹은 다과를 나누면서 행하는 가족의 대화에 어김없이 텔레비전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가구가 배치됐고, 그 반대편엔 가족이 진을 치고 앉을 수 있는 소파의 자리가 늘 준비되었다. 이렇듯 텔레비전은 가족 공동체의 집단적 여가 활동의 적절한 대상이자 주요 매체였던 셈이다.

 

90년대 접어들면, 오래된 미디어 기기들이 ‘경박단소’하게 변하면서 대중들은 개인의 취향대로 미디어를 소비하는데 익숙해지기 시작한다. 그래서, 모두들 대중의 분중화와 파편화를 거론했다. 텔레비전의 방송뿐만 아니라 다양한 매체와 채널들을 통한 소비가 그리 만든 것이다. 이는 개성과 스타일의 부각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의 징후이기도 했지만, 정치적 혹은 사회적 공통 관심사의 축소라는 불편한 미디어 효과를 만들기도 했다. 후자의 측면에서 가족내 구성원끼리의 소통의 단절 또한 거론됐다. 한 때 거실-텔레비전-소파의 축 안에서 거행되던 공통의 가족 ‘의례’(ritual)가 점점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조차 컴퓨터로 내려받아 보거나, 가족 구성원들 각각 각자의 방에서 자신의 선호하는 미디어를 소비하는 형상으로 가고 있다. 예를 들면, 부모들은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형이나 누나는 DMB나 넷북을,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컴퓨터나 게임기를 갖고 놀면서, 전통적 ‘소파 디바이스’인 텔레비전 앞에서 맺어지는 가족간 유대가 사라져 간다.  


최근 이렇듯 점점 죽어가는 ‘소파 디바이스’의 영역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애플이 개발한 ‘아이패드’(iPad) 개발 시연에 회장 스티브 잡스가 강연대 앞에 서는 대신, 그 자리에 마련된 소파에 앉아 편안히 회심의 개발품을 두드린다. 아이패드를 통해 해체됐다고 믿었던 가족들을 다시 거실에 모을 수 있다는 얘기일까? 이도 허황된 것만은 아닌 것이, 최근 닌텐도 ‘위’(Wii) 광고를 보라. 비디오 게임도 이젠 가족이 함께 즐기는 여가 활동이다. 소통의 실마리는 간편하고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에 있다. 여기에 오락적 요소는 필수불가결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손주, 며느리 모두 모여 위 게임을 한다. 집안의 며느리는 요가를, 할아버지와 손주는 테니스를, 할머니와 아들은 권투를 즐긴다. 게임 도중에 쉬고 있는 가족들은 대개들 흐뭇한 표정으로 소파 위에 기대앉은 채 다른 가족 구성원의 게임을 지켜보거나 응원한다. 결국 이제 위 게임기가 텔레비전을 대신해 신종 ‘소파 디바이스’가 된다. 파편화되고 흩어졌던 현대 가족을 새롭게 모으는 역할을 이와 같은 신종 디지털 장비들이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본다면 위처럼 아이패드 또한 이와 같은 ‘소파 디바이스’ 부류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소파 디바이스의 초창기 모델들


잠시 좀 더 먼 과거로 돌아가보자. 사실상 소파 디바이스의 초창기 모델은 축음기였다. 태엽을 감아 돌려 소리를 듣는 돌판 축음기부터 엘피(LP) 축음기까지 초창기 소리 장치는 거실 문화의 중요한 요소였다. 워낙 가정내 문화적 향수 자체가 희소했던 시절에 축음 장치는 중요한 가족 여가 수단이었다. 이어서, 보다 본격적인 소파 디바이스는 라디오였다. 1920년대 라디오가 상업화되면서 등장했을 당시, 이는 어지간한 김치냉장고 크기만큼이나 거대했다. 손가락 마디 굵기의 진공관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당시 라디오 크기를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당시 일반 가정에서 라디오는 가족들이 함께 여가를 즐기는 중요한 매체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뿐만 아니라 라디오 극장이나 안방 뉴스 등은 가족들이 모여 즐길 수 있는 축음기 이후의 한껏 진화된 매체 형식이었다. 이후 텔레비전의 등장은 극적으로 가족의 유대를 강화했던 매체다. 한 기업 광고에서 진흙으로 만든 인형들을 이용해 근대화 시기의 한국 생활을 묘사했던 시리즈물을 떠올려 보라.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에, 김일 박치기 레슬링 경기라도 볼라치면 동네 이장네 안방이나 돈푼이나 있던 집 대청마루 앞에 몰려 가던 시절이 있었다. 텔레비전은, 적어도 한국사회에선 60년대 시골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적 여가 장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70년대로 넘어오면, 마을 단위의 공동 시청 유형에서 각 가정의 거실을 지배하는 중요 매체로 군림한다.

 

한편, 80년대 들어서면 기존 라디오는 텔레비전에 소파 디바이스의 자리를 넘겨주고, ‘개인 미디어’로써 그 자리를 잡는다. 그 시기는,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라디오 기술에 일대 혁신이 일던 때와 괘를 같이 한다. 트랜지스터의 가장 큰 이점은 덩치 큰 라디오 크기를 대폭 소형화해 휴대가 간편해진 점이다. 마치 정보국 직원들처럼, 버스에 오른 회사원들이 외짝 이어폰을 한쪽 귀에 꼽고 뉴스와 음악을 청취하던 시절은, 트랜지스터 기술이 만들어준 신문화였다. 당시 청소년은 이런 라디오를 끼고 공부방과 독서실로 향했다. 혹은 집에 돌아와 한창 사춘기 때에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이불 뒤집어쓴 채 ‘별이 빛나는 밤에(별밤)’을 들으며 밤을 지새우곤 했다. 나름 매체 소비의 가족간 변별과 단절이 존재했던 시절이다. 당시 어른들은 여전히 거실에 남아 텔레비전을 소비했고, 아이들은 개별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개별 매체의 소비를 즐겼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 90년대로 넘어오면 확연하게 매체의 개별 소비가 확대된다. 십대들은 워크맨과 노트북으로 무장한다. 오디오 청취와 이미지 소비의 공간 이동성이 실내에서 확장되어 길거리 신체 이동의 동선과 함께 하는 시대가 열린다. 2천년대 이후 아이들은 아이폰, 게임보이, 넷북 등에 의존하면서 공간 제약과 무관하게 다면적이고 개인화된 미디어 소비 단계에 들어선다. 어른들 또한 DMB 방송을 휴대전화나 네비게이션 등을 통해 시청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이젠 거실의 텔레비전이란 스펙터클한 영화를 보는 정도에 쓰이는 붙박이 미디어 장치로 전락한다.

아이패드, 가족 재탄생의 신호탄?

 

필자가 현재 사는 아파트에 3세대가 같이 산다. 이처럼 많은 가족 구성원이 같은 시간대에 함께 모일 수 있는 상황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도, 다들 모이는 때가 있다. 식사 때를 제외하곤 ‘위’ 비디오 게임을 할 때다. 이 때 거실 텔레비전은 위라는 소파 디바이스를 위해 이미지만을 투사해주는 조력자에 불과하다. 사실상 우리 가족 유대를 키우는데 위가 핵심에 서고 그것이 가족의 여가를 구성한다. 놀이방식의 격세지감이요 변화된 가족의 소통 방식이다.


마찬가지로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소파 디바이스로 이제 아이패드까지 거론된다. 아이패드의 인터페이스는 철저하게 터치형에다 대단히 감각적이기 때문에 익히기 쉽게 만들어져 있다. 노인들 또한 몇 가지 기능만 익히면 원하는 정보를 쉽게 얻거나 다른 가족 구성원들과 함께 소통을 할 정도로 조작이 수월하다. 집안의 항상 연결된 무선 인터넷 구조를 이용해 손쉽게 정보를 찾고, 아이패드용 체스를 두기도 하고, 맞춤형 잡지를 함께 보고 읽을 수도, 아이패드 게임을 하기도 하고, 간단한 영화도 함께 볼 수 있다. 또는 음식 레시피를 공유한다거나, 집안 관련 경조사나 그날 일의 메모나 스케줄을 함께 관리한다거나 중요한 수입과 지출을 기록해 놓는다거나, 쉽게 즐기는 게임을 올려두는 등의 용도로 쓸 수 있다. 아이패드형 터치스크린 기기들은 다분히 개인형 매체로 볼 수 있지만, 또한 누구든 쉽게 소파에 머물면서 함께 할 수 있는 미디어의 성격 또한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 본 것처럼, 새로운 소파 디바이스의 출현이 가족 성원들간 소통 방식에 유대와 혁신을 불러올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위나 아이패드 등 미래형 소파 디바이스란 단순히 틈새 기술이란 점을 주지해야 한다. 이미 다양하게 소비자들 혹은 가족들의 분권화와 파편화를 증대하는 신종 기술들과 문화 상황이 대세요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2010. 7. 지역정보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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