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보이지 않는 족쇄 전자감시
[한겨레]2001-08-18 06판 10면 1279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흔히들 전자감시를 개인의 사생활 침해로 좁혀 해석하곤 한다. 하지만 감시는 개인보다 집단효과를 선호하고, 동시에 권력의 문제를 끌어들인다. 현대권력은 전자적 수단을 통한 '보이지 않는' 감시 덕에 그 반경을 넓히고 억압적 속성을 숨기는 재주를 터득한다. 후기자본주의의 고도화된 신체관리 기법으로 전자감시가 적극적으로 도입된다는 얘기다.직장에서는 노동자, 시장에서는 소비자, 공공영역에서는 시민으로 등장하는 대중들에 대한 권력의 통제방식에 언제부터인가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노동자 감시가 극악한 노동통제 유형으로 군림하던 '테일러주의'를 더욱 과학화하는 것으로, 소비자 감시는 산업시대의 '표적 마케팅'을 고도로 전자화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시민들에 대한 전자감시는 억압적 국가장치의 현대적 변형으로 자리잡는다.
지금처럼 신경제의 이해가 독점하는 시대에는 다양한 경제적 감시 기법들이 앞다퉈 실험된다. 소비자 감청 기술인 '웹 버그'도 그 중 하나다. 웹 페이지에 숨겨진 이 작은 벌레는 투명한 그림파일 형식 안에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을 담고 있다. 이 벌레는 부지불식간에 방문객의 접속 주소와 움직이는 경로, 브라우저 정보, 신상정보, 접속시간, 그리고 브라우저에 기록된 이용 흔적인 쿠키 값을 파악하여 정보 수집자들에게 전달한다. 해당 기업이나 전문 마케팅 관리업체는 이렇게 입수된 정보를 통해 소비자들을 분류하고 표적화하는 작업을 행한다.
웹 버그와 같은 기술적 장치는 최근 전자감시 경향에 비하면 아주 작은 사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벌레들의 성장속도에 있다. 얼마 전 한 인터넷 정보 관리업체가 기업들의 웹 버그 이용실태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100만개의 웹페이지를 무작위로 표본조사하여 얻은 결론은 지난 3년 전에 비해 현재 기업들의 웹 버그 이용이 다섯 배나 늘었고, 특히 상위 브랜드일수록 그 이용이 높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웹 버그를 기업들이 형식적으로 내세우는 소비자 프라이버시 보호정책을 위반하는 감시기술로 평가한다. 이 작은 벌레가 소비자의 정보들을 자동적으로 제3자인 마케팅 전문업체에 넘겨 관리되도록 하기 때문이다.
재미나는 사실은 이번 보고서를 발표한 곳이 관련 시민단체도 아닌 기업 브랜드의 이미지를 관리하면서 이익을 내는 사업체라는데 있다. 감시기법에 대한 사업선전용 보고서가, 몰래 웹 버그를 사용하는 기업들의 불공정 행위를 폭로하는 문건이 된 셈이다. 의도야 어찌되었든 이번 보고서는 점점 심해지는 전자감시의 추세를 미뤄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선례로 보인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최근 댓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