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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닷컴 닷곤에 대한 향수
[한겨레]2001-08-25 04판 10면 1368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운이 다해 스러진 '닷컴'(.com)을 빗대 '닷곤'(.gone)이라고 부른다. 닷곤은 신경제의 호시절이 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개별 닷컴 기업들의 사망을 뜻하기도 한다.닷컴의 죽음들이 늘면서 어떤 사이트는 연대별로 닷컴 저승 명부를 기록하기도 한다. 한 디지털 잡지는 죽은 닷컴들의 기억을 되살리는 연재 코너를 만들었다. 이렇듯 새삼스레 닷컴 유령들을 불러들이는 까닭은 뭘까? 짐작하건대, 수없이 명멸했지만 경쟁과 도약이 가능했던 닷컴 전성시대에 대한 미련과 향수 때문일 것이다.
닷컴 거품과 함께 터져나온 닷곤 주변에 요즘 색다른 유행이 일고 있다. 최대 규모의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죽은 닷컴들의 유물들이 거래된다고 한다. 그것도 기이할 정도로 성황리에 팔린다고 하니 생전에 기 한번 제대로 못펴고 간 닷곤들의 맺힌 한이 조금은 풀릴 법도 하다.
"인터넷 비즈니스 역사상 가장 파란만장하게 살다간 닷컴 기업의 유물을 가질 수 있는 절호의 찬스!" 대강 이런 문구로 수집가들의 구매욕을 자극하는 경매 품목들은 다름아닌 죽은 닷컴의 회사 로고가 붙은 것들이다. 모자, 티셔츠, 머그잔, 가방, 마우스패드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휴지조각이 돼버린 주식 권리증명이나 연말 결산서까지 비싼 값에 거래된다. 불과 한두 해 전에 활동하다 사라진 닷컴의 유물들이 그 즉시 값나가는 골동품으로 돌변하는 것이다.
한시간 내에 무엇이든 신속히 배달하는 것을 자랑했던 코즈모(Kozmo.com), 온라인 식료 잡화점 웹밴(Webvan.com), 애완용 동물용품 판매업체 페츠(Pets.com), 장난감 공급업체 이토이즈(eToys.com) 등 그나마 좀 알려진 망자들의 유물이 더 후한 대접을 받는다. 이것으로 업을 삼는 전문 장사치도 활개친다. 언젠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예상 닷곤 후보들을 추려 캐릭터 상품까지 미리 사들이는 약삭빠른 부류도 합세한다. 속칭 닷곤 골동품의 매점꾼인 셈이다. 게다가 구매자는 차후에 더 값을 쳐 받을 수 있다는 야무진 꿈에 부푼다. 상품 물신의 전형적 모습들이다.
닷곤의 직원과 주식 소유자들이 한순간에 당한 허탈과 분노를 표현하면서 내다 팔던 것들이 돌연 닷컴의 살아있는 전설로 미화되고 있다. 그것도 쓰레기에 불과한 유물들이 수집상의 애장품 목록에 오른다. 어느 죽은 닷컴의 주식 권리증명을 어렵사리 큰 돈주고 구해 금박 두른 액자 속에 보관하는 진풍경을 앞으로는 쉽게 볼 수 있게 됐다. 허상인 가짜에서 만족과 위안을 얻으려는 소비 심리를 보통 '키치'라 한다. 닷곤 유물의 키치적 소비는 좋았던 옛시절에 대한 향수와 상대적으로 불확실한 닷컴 현실에 대한 심리적 위안에 발맞춰 조장된다. 조금 있으면 그마저도 없어질 닷곤의 싱거운 물거품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광석 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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