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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닷컴에 되치기당한 야후
[한겨레]2001-08-31 05판 10면 1351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도메인 이름이 인터넷 주소 할당 체계로만 기능하던 것은 오래전 얘기다. 컴퓨터 자판 놀림 하나로 전세계 어디든지 갈 수 있는 세상에서, 도메인 이름은 소비자의 손끝을 다스리는 주술로 돌변했다. 힘있는 기업들은 닷컴 이름 앞에 얹혀진 그럴싸한 인터넷 주소들을 처음부터 자사의 상표로 선점하고, 유사한 도메인 이름을 강제 몰수하기 바쁘다. 말 그대로 거대 기업들은 도메인 이름을 통한 상표권의 독점적 확보에 열을 올린다.전세계 거의 2억 인구의 의식을 장악한 야후도 예외는 아니다. 야후닷컴에서 `야후'란 말을 변형하여 닷컴 도메인에 등록했던 `사이비' 야후들은 그 즉시 `오리지널' 야후의 호된 철퇴를 맞았다. 상표권 위반 혐의로 소송하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방법으로 자사의 도메인을 수호하고 있다. 그런데 도메인 수호에 대한 집착과 자신감이 너무 지나쳤을까? 야후가 이번에는 '섹스닷컴'을 상표권 침해로 상대하려다 오히려 망신만 당하게 생겼다.
야후는 이른바 `와일드카드 도메인명 시스템'을 이용한 섹스닷컴이 자사의 상표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며 소송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인터넷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와일드카드 도메인명 시스템은 인터넷 이용자가 실수로 주소의 일부를 덧붙이거나 철자를 잘못 기입해도 가려던 곳에 자동으로 연결하는 '합법적 기술'로 알려져 있다. 야후가 문제삼은 것은 섹스닷컴으로 자동 연결했던 `yahoo.sex.com'의 세번째 하위 도메인 `야후'이다. 야후 이름을 무단 사용하여 섹스닷컴 사이트로 연결한 것은 야후의 공인된 사이트인 것처럼 행세하는 상표권의 도용에다, 저속한 섹스 사이트에 야후를 연결한 것도 명예훼손이라 주장한다. 이것이 야후의 선임 변호사가 섹스닷컴에 보낸 '협박' 편지의 대강이다.
그런데 이렇게 전의를 불태우던 야후가 돌연 꼬리를 내렸다. 자동연결 서비스는 상표권 침해 사유가 아님을 눈치챈 까닭이다. 오히려 상황은 역전돼 며칠 전 섹스닷컴이 야후를 고소했다. 위법 여부를 명확히 밝히고, 이 기회에 야후의 위선을 폭로하자는 의도다. 올 초에 야후가 여러 청소년 보호단체들의 압력으로 포르노물 게재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이후에도 뒤로는 이를 계속 묵인하면서, 오히려 섹스닷컴이 자사의 이미지를 훼손했다며 닦달하려는 데 대한 반감이 작용했다. 청소년의 정신을 황폐화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섹스닷컴이 자유로운 정보의 바다인 인터넷정신을 더 잘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인터넷의 유연한 기술적 특성조차 상표권의 틀에 가두려는 야후의 눈먼 욕심이 거꾸로 호되게 당할 판이다. 세계 최대의 검색 엔진보다 `음란 불건전' 사이트에서 인터넷 시대의 도덕적 교훈을 더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은 뼈아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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