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미디어에 몰아치는 시장의 폭력

미디어에 몰아치는 시장의 폭력 [한겨레]2002-04-19 02판 10면 1296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국가 기간산업의 사영화에 사활을 걸고,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을 인정사정 없이 후려치는 정부의 폭력은 시장 맹신이 신경질적으로 표출되는 경우다. 요새 기업가는 물론이고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자유방임의 시장이 최고의 우상이 되는 것은 나라 안과 밖이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미국 역시 독점 기업의 놀 자리를 마련하느라 공적 규제장치의 고삐를 슬슬 풀기 시작했다. 새삼스레 시장 자유와 탈규제의 논리를 등에 업은 공중파.유선.위성 방송 등 언론 독점체들이 다시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이미 2만5천개 이상의 매체가 단 20여개의 언론재벌에 의해 지배되는 시장 현실에서, 최근 불고 있는 탈규제 경향은 그나마 버티던 지역 영세 언론을 완전 청산하는 불길한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언론독점)이란 책에서 벤 바그디키언이 지적하듯, 미국내 언론 대기업은 이제까지 시장 경쟁의 제거, 독점 가격 형성과 더불어 보수 일변도의 목소리를 키우는 등 언론 발전에 근본적인 해악을 끼쳐왔다. 이런 독점 기업에 대한 규제론의 쇠퇴는 고양이 앞에 생선을 던져주는 꼴이 될 것이 분명하다. 공정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규제 장치를 시장 '억압'으로 몰아세우고 약육강식의 흡수와 병합 과정을 '창조적 파괴'로 등치하는 독점 옹호의 희귀한 논리가 조지 부시 행정부의 정책에 그대로 묻어난다. 무엇보다도 소유권 제한 등의 독점 규제책을 마련해야 할 연방통신위원회가 오히려 시장내 힘의 논리를 조장하는 선두에 나서고 있다. "시장이 곧 나의 종교"라는 신념을 강조해온 이 기구의 마이클 파월 위원장은 지난해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받은 이래 그나마 최소한의 방어막으로 기능하던 각종 규제책마저 없애려 하고 있다. '기업 합병광'이란 별명을 지닌 그에게는 자본 집중이야말로 기업 혁신과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촉매제다. 급기야 지난달말 수도 워싱턴에서는 정보독점을 재생산하는 언론 재벌을 반대하고 연방통신위원회의 시장 논리를 비판하는 관련 시민단체들의 집담회가 크게 열렸다. 이들은 언론 독점 반대, 공공 정책에 기반한 시장 개입의 필요성, 밀실화한 정책 결정의 공개 등을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채널은 늘어나는데도 한줌의 소유자가 정보를 관리하고 언론 자유를 막는 왜곡된 현실을 더욱 악화시킬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언론의 자본 집중에 대한 비판 여론에도 시장 맹신자들의 신념에는 일체 흔들림이 없다. 밖에서 들어오는 시장의 규제를 절대 사절하는 이들에겐 당연히 약이 되는 쓴소리도 육두문자로 들리기 마련이다. 경제 정책 입안자들마저 이런 앞뒤 꽉 막힌 시장우상에 사로잡혀 있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