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저작권 진영의 분열

저작권 진영의 분열 [한겨레]2002-05-03 02판 11면 1355자 국제·외신 컬럼,논단 할리우드와 음반업계로 대표되는 저작권자들의 공세에 진저리치는 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60여년 동안 열배 이상 강력해진 저작권법의 횡포에 응수하려는 전선이 폭넓게 형성되고 있음을 뜻한다. 저작물의 정당한 사용을 주장하는 이용자뿐만 아니라 컴퓨터.가전 등 실리콘밸리 업계와 콘텐츠 독점 소유자들 간에도 깊은 골이 패고 있다. 저작물 보호 요구에 지친 실리콘밸리는 이제부터라도 기술 혁신의 순수한 원칙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한 디지털 전문잡지는 할리우드와 실리콘밸리의 대결 양상을 거구의 미키마우스 인형이 칩 업체 인텔의 마스코트를 무참히 짓밟는 모습으로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제까지 음성.영상을 막론하고 복제를 가능하게 한 실리콘밸리의 새 기술들은 무조건 할리우드와 음반업계의 검열 대상이었다. 당연 실리콘밸리의 기술에 저작권의 강제력이 매번 개입하면서, 18개월마다 마이크로칩의 집적도가 갑절로 늘어난다는 이른바 '무어의 법칙' 또한 온전할 리가 없었다. 미키마우스의 발에 치인 실리콘밸리의 기술들은 죄다 찌그러지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실리콘밸리가 이제까지 동거를 청산하고 저작권 지상론자들과 당분간 별거하기로 마음을 굳힌 것은 당연해보인다. 더이상 저작권에 밀렸다간 기술 발전은 고사하고 시장 확보의 폭넓은 기회도 막힐 수 있다는 판단이 섰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4년 전 디지털 음악의 보안코드 개발을 목표로 음반업계와 사이좋게 만들었던 한 유력한 기술 표준화 단체에서도 실리콘밸리는 최근 손을 뗐다. 인터넷을 통해 음악 파일들을 자유롭게 내려받아 이용하고 공유하는 것을 무조건 힘으로 막으려는 무리수는 별 승산이 없다는 점을 배웠다. 실리콘밸리의 기업들은 각종 기술에 저작권 코드를 도입할수록 이용자들의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되며, 오히려 이들의 정당한 사용을 어느 정도 보장할수록 소비의 기폭제로 작용한다는 점을 쉽게 깨우쳤다. 물론 실리콘밸리와 할리우드.음반업계 진영이 영원히 갈라설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서로의 의존적 관계가 확인되면 언제든 저작권을 보호하는 변형된 기술 장치들이 슬며시 새 상품에 숨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실리콘밸리마저 저작권 지상론자들에 반기를 드는 것은 위험한 수위에 이른 저작권 남용에 제동이 걸리고 있음을 방증한다. 달리 보면 저작권에 의해 강압된 기술보다는 오히려 능동적 이용을 보장하는 기술적 대안을 고무할수록 상품 시장이 더욱 활성화할 수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얼핏보면 저작물의 해적질을 방조하는 듯한 "뽑아내서 뒤섞어 구워봐"(Rip. Mix. Burn.)란 엠피3플레이어의 광고 문구가 실리콘밸리의 한 유력 기업으로부터 나온 것도 같은 맥락에 근거한다. 이광석 뉴미디어 평론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