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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연장 ‘보이지 않는 손’
[한겨레]2003-01-22 06판 20면 1376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기업들이 직접 법을 쓰는 세상이다. 자본주의 초창기 영국 농민들을 토지에서 폭력으로 내쫓아 무산자로 만들었던 대지주들의 소위 ‘엔클로저’(종획) 운동만큼이나 기업들이 새겨놓은 저작권의 내용은 잔인하기 이를 데 없다. 둘 다 가두고 막을수록 부를 키운다는 점에서 동색이다. 그래도 현대 기업들은 나서서 인간 혼과 지식을 빼앗아 독점하는 현실이니 강제로 농민들을 농토에서 내쫓던 자본의 시초 축적 시절보다 지금이 더 교활하고 독하다 싶다.95년까지 권리연장 판결
지난주 미국 연방대법원은 1998년 할리우드업계 등 저작권 지상론자들의 로비와 압력에 굴복해 수정된 저작권 연장 법안인 일명 ‘소니 보노 연장법’의 정당성을 재차 인정했다. 기업과 의회는 저작권 수명을 고무줄처럼 20년 늘려 95년으로 만들어 “제한된 시기”만 저자의 권리를 지켜주자는 저작권 게임의 원칙마저 사그리 깼다. 지난 40년간 열한번이나 집요하게 늘리면서 미국 저작권은 어느새 만세를 누리는 반영구권이 됐다. 그야말로 사악한 엔클로저의 현대판 부활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지난해 가을 디지털운동 시민단체 쪽에서 낸 저작권 연장법 위헌 소송의 실망스런 결과물이다. 이는 지식과 정보의 확대 재생산을 막는 악법에 맞서 싸우던 정보운동 진영에 큰 패배감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기업은 그저 앉아서 수백억 달러를 더 벌어들일 기회를 얻었지만 무엇보다 걱정거리는 장차 이번 판결이 지식과 정보 시장 전반에 끼칠 부정적 파장이다. 엔클로저식으로 그어놓은 자본의 금을 밟을까 가뜩이나 움치고 뛰는 데 주춤거렸던 이들에게 한결 더 부자유스런 제동이 걸릴 것이 분명하다.
이번 판결은 현대 저작권 틀에서 시민들이 함께 누릴 어떤 공공의 철학이란 찾아볼 수 없음을 확증하는 계기가 됐다. 형식상 저작권은 일정 기간 저자의 창작 의욕을 돕고 바로 저작물을 시민들의 공적 영역에 두어 좀 더 제3자의 창작을 독려해 인간 과학의 진보를 이루자는 취지로 제안됐다. 하지만 저작권은 저자의 권리를 대신해 등장한 자본의 부를 축적하는 재산권으로 돌변한 지 오래다. 이것이 저자의 권리 보호가 거짓 선전되면서 공유해야할 무형의 자산에 철통 같은 자물쇠가 채워진 까닭이다.
공유자산 자본이 봉쇄
아무리 그래도 저작권은 사유 재산권의 보루가 아니다. 이는 정부, 시민, 기업이 함께 만나는 공공의 국가 정책이다. 정책이란 언제나 힘없는 시민의 공적 영역을 기본으로 삼고 출발한다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안다. 이 근본을 허투루 하지 않았어도 미 의회와 대법원이 함부로 기업들의 손을 들어주는 한심한 일은 막았을 터이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를 탄다면 혹시 아는가, 앞으로 저작물 보호기간도 아예 귀찮아 떼어버린 ‘영구 저작권’이 나올런지. 진짜 저작권 만만세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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