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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권력의 시녀’ 안되려면

정보가 ‘권력의 시녀’ 안되려면 [한겨레]2003-01-08 02판 20면 1299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인터넷 시대의 개방성과 투명성에 비춰보면 전혀 짝패가 맞지 않는 고루하고 폐쇄적인 현실이 계속해 연출되고 있다. 여기저기 흘러야 할 정보를 혼자 움켜쥐고 뒤흔들고, 개인 정보를 샅샅이 훑어 모아 기록·분류하고, 입맛에 따라 각종 정보를 은폐·왜곡하는 등 정보를 잘 주물러야 권력 집단이 불사할 수 있는 세상이다. 정보 독점이 권력의 사활로 직결된다.9·11 동시테러 이후 미국 통치집단은 확실히 정보를 통해 국제적 패권과 자국내 권력을 유지하는 단계로 넘어섰다. 미국 정부 22개 부처의 가공할 정보 능력을 함께 동원할 국토안보부 신설, 정보 권력을 세우는 데 눈엣가시인 해커 소탕용 ‘사이버안보 강화 법안’, 전자공간에서 개인의 모든 정보를 추적하는 국방부의 ‘종합정보인지’ 체계, 전세계 여론 조작을 꿈꿨던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전략영향국’ 구상과 무산 등 신종 거대 정보기구의 출현에서 정보 권력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다. 정보를 가공해 힘을 행사하는 능력이 남다르면 그 권력은 공공의 정보 접근을 막는 데도 탁월하다. 국익·보안·비밀·업무지장 등 모호하고 추상적인 이유를 들어 알 권리를 묵살하고 정보의 접근을 막는 정보 비공개가 그것이다. 재임 뒤 열두해가 지나면 대통령 통치 관련 기록물을 무조건 공개해야 한다는 1978년 ‘대통령통치사료법안’은 조지 부시 대통령에 이르러 무용지물이 됐다. 그는 이미 텍사스 주지사 퇴임 시절에도 사설 경호원을 삼엄하게 세워 자신의 공문서에 대한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던 전력이 있다. 사태가 이쯤 되니 문서관리사·역사가·법률인·시민단체를 비롯해 일반인 모두가 좀 민감한 국가 정보의 공개 청구를 하려면 법정에 설 각오를 해야 할 판이다. 구린 데가 많은 권력일수록 정보의 폐쇄와 은폐를 자신의 목숨처럼 여긴다. 실제 정보량이 폭발하는데도 권력 집단의 정보 비공개는 점점 늘어난다. 미국처럼 우리의 현실도 그 쪽이다. 98년에 비해 지난해 정부 부처들의 정보청구 비공개율이 두배 증가했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참여연대의 논평 자료를 보면, 정부기록보존소에 확인한 4년 간의 청와대 통치관련 기록물 목록이 고작 1300여건에 불과하고 목록조차 접근이 불가능했다고 적고 있다. 인터넷으로 정부에 대한 정보 공개를 청구하는 전자정부 시대가 열렸다고 시끄럽다. 정보 목록이나 내용은 갈수록 철통인데, 청구 서식을 온라인으로 내려받고 수수료까지 납부할 수 있는 전자 시대가 왔다고 호들갑이다. 체계화한 정부기록의 보존과 개방이 전제돼야 인터넷도 제값을 한다. 그걸 모르면 값싼 정보 이용으로 국민을 농락하는 권력이기 쉽다. 이광석/뉴미디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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