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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위세에 맞서는 이동식 디지털도서관

저작권 위세에 맞서는 이동식 디지털도서관 [한겨레]2002-12-04 01판 24면 1282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요즘 미국에서는 ‘북 모바일’이라 불리는 이동도서관의 모습이 크게 변하고 있다. 철 지난 책을 가득 싣고 산간벽지를 순회하는 ‘그때 그 시절’의 용달차를 떠올린다면 큰 착각이다. 두세 평 남짓한 공간에 먼지 뒤집어쓴 책들 대신 지금은 위성 안테나와 컴퓨터 서버, 프린터, 제본기 등 첨단 시설을 싣고 폼나게 전국을 누빈다.용도도 바뀌고 있다. 국공립 도서관의 손발 노릇을 넘어서 누구나 자신의 목소리를 차에 싣고 다니며 알리는 발 달린 유목형 매체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뛰어난 기동성에다 마을 사람과의 직접 대면이 쉽게 이뤄지는 터라 적잖이 관심을 유도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디지털 도서관의 공공성 신장을 위해 일해온 ‘인터넷 아카이브’(archive.org)는 이런 첨단 인터넷 이동도서관의 원조격이다. 아카이브는 저작권으로부터 면제된 100만권의 전자책을 모아 대중에게 보급하는 사업을 벌였고 이제 이를 초고속 인터넷으로 무장한 이동도서관에 고스란히 옮겨 담고 있다. 공공의 지식을 모아 저장하고 보관하는 사업에 더해 인터넷 이동도서관이라는 광대역의 날쌘 발을 단 셈이다. 가난한 동네 아이들은 이동도서관을 방문해 〈오즈의 마법사〉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저작권이 소멸된 공공의 자산을 그 자리에서 클릭해 내려받고 인쇄해 바로 제본을 거쳐 저렴한 가격에 복사본을 손에 쥘 수 있다. 이는 공공의 지식에 대한 보편적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순간 학습으로 체험하는 효과를 거둔다. 또한 지식을 잘 축적하면 얼마나 큰 나눔의 자산이 되는지도 깨우쳐준다. 그러다보니 이동도서관은 지식의 공적 영역을 사방에서 갉아먹으려는 저작권의 횡포와 자주 부닥친다. 이동도서관은 지난 10월 저작권법을 20년이나 연장하려는 월트디즈니에 맞서 순회 저항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비영리 단체가 흔히 직면하는 열악한 재정 상황도 아카이브를 가로막는 악재다. 그래서 이동도서관의 절제된 예산 운영은 여러 교육 단체나 기관에 중요한 교훈이 될 듯하다. 국공립 도서관은 자체 운영되는 이동도서관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혁신을 꾀하고, 각급 학교는 공공의 지식을 활용해 도서 예산 압박의 짐을 덜고, 정부는 이동도서관의 정보화 사업 지원까지 돌볼 수 있는 길을 고민하는 계기가 된다. 앞으로 저작권의 위세에 눌려 공유 감각을 잊어버린 미국내 국공립 교육 기관의 관성을 영세한 이동도서관이 조금씩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도서관의 외부 접근권까지 가차없이 막는 우리 현실에 견주어보면 낡은 중고 승합차에 담아 나르는 정보 공유의 작은 꿈이 부럽기만 하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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