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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적 해커의 ‘옥중 수고’ 알고보니 사상 전향서?

전설적 해커의 ‘옥중 수고’ 알고보니 사상 전향서? [한겨레]2002-10-23 02판 20면 1314자 정보통신·과학 컬럼,논단 한 거물 해커가 4년여 옥살이를 하면서 책을 집필해 화제다. 그를 잡으려고 죽도록 고생했지만 가둔 뒤에도 공중전화를 통해 핵 미사일을 쏘아올릴까 전전긍긍했다는 미국 연방수사국의 웃지 못할 고백도 전해진다. 신의 경지에 이른 해킹 실력이다 보니 컴퓨터와 인터넷은 당연히 금지 품목이고 대신 타자기와 연필로 책을 집필해 모양새는 ‘미래형 전사의 옥중수고’가 된 꼴이다. 이 말많은 해커의 이름은 케빈 미트닉이다.전설적 해커가 쓴 책이란 기대감을 갖고 출간에 맞춰 동네 서점을 이잡듯 뒤져 책을 찾아냈지만 예상이 크게 벗어났다. 미트닉 스스로 〈손자병법〉에 영향을 받아서 썼다는 책 제목은 〈사기술〉(the Art of Deception)이다. 한마디로 상대를 꾀어 거짓 신뢰를 얻은 뒤 사악한 목적에 그 신뢰를 악용하는 해커·스파이·사기꾼 등의 행위, 이른바 ‘사회공작’을 벌이는 이들의 술수를 막으려는 보안 지침서다. 생존을 위해 스스로 해커 생활을 청산하고 은퇴하는 우리식 ‘이념 전향의 서약서’ 냄새가 짙다. 거의 십여년간 기업 컴퓨터를 안방 드나들듯 하는 데 쓰였고 결국 연방정부가 압류한 그의 486급 도시바 노트북 컴퓨터 2대가 온라인 경매사이트 이베이에 오른 것도 마치 조폭이 연장을 버리듯 결연한 과거청산 의지로 읽힌다. 벌써 그의 고물 컴퓨터에 2천만원 정도의 경매가가 매겨지고 그의 정보 보안회사인 ‘방어적 사고’ 개업에 맞춰 대대적인 책 출판 홍보가 이뤄지는 모습이 그리 산뜻해 보이진 않는다. 그래도 미트닉은 책에서 200쪽 넘게 사기술의 가상 시나리오를 연출하면서, 기술적 보안장치를 강조하는 여느 보안 서적과 달리 인간적 측면을 보안상 가장 큰 허점으로 다뤄 그의 이름값이 헛것은 아님을 보여줬다. 그저 최고의 기술만 받쳐준다면 보안은 철통이라는 상식을 깨고, 그 기술을 부리는 인간의 약점을 이용해 공략하면 어떤 보안 기술도 무용지물임을 깨우쳐준다. 이것이 그가 ‘기술’보다 ‘사회공작’이란 용어를 택한 까닭으로 보인다. 당연히 과도한 보안 기술 투자보다 기업·정부·개개인의 보안 교육이 급선무임을 올바르게 지적한다. 아직 가석방 중인데다 요주의 사찰 대상인 그를 실눈 뜨고 바라볼 까닭은 없다. 다만 인터넷의 완전한 정보 자유를 외치던 그의 옛모습이 그리워지고, 그 자신의 별칭이었던 ‘해커’란 용어를 삼류 사기꾼 패거리로 전락시키는 그의 단호함에 아연해진다. 그는 보안의 인적 요인을 강조하며 “기술은 쉽게 변하나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연약한 인간론’을 피력한다. 하지만 너무나 다르게 변한 그를 쳐다보면 사람도 그리 고정된 상대가 아니라는 생각에 울적해진다. 이광석/뉴미디어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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