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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의 국제주의, 탈국가적 상상력 ③

III.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대안세계화, 그리고 국제주의

 

1. 냉전 이후의 세계와 국제주의의 새로운 소생

 

  냉전의 종식과 금융세계화의 추동, 그리고 신자유주의 압력의 전지구적 확산은 분명 기존의 사회운동의 위기이자 대중의 삶의 조건에 대한 전면적인 위협이지만, 동시에 이전까지 국제주의적 연대를 억압해온 조건들이 완화되고 새로운 연대의 조건이 만들어 질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다. 그것은 중심-주변을 나누던 분명한 분할선들이 약화되고 중심부 내의 주변부적 특성의 증가, 주변부 내의 일부 소수 지역에서 부의 집중에 따라 중심부적 특징의 등장 등이 나타나며, 또한 냉전 시기 정치적 이유하에 추진되어 온 발전주의가 중단되면서 국가의 역할의 균열과 동요가 발생하고, 코포라티즘적 보호의 틀이 무너지는 일들이 진행되고 있다.
  EU의 등장처럼 새로운 지역주의의 등장, 그리고 전쟁의 형태 변화 등에 따라 과거의 쟁점의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중요해지고 있다.
  변화된 조건 하에서 국제주의의 소생 가능성은 역설적으로 문제의 지형이 20세기를 우회해 다시 19세기적 조건 속에서 초민족적 연대의 형성가능성이라는 형태로 제기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20세기를 거치면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라기보다 사회주의 국가들사이의 국제적 연대(그런 점에서 어떤 경우에는 매우 보수적 함의의 국제관계의 외양을 띠기도 한)였던 한계를 넘어서 다시 노동자계급을 분할시키는 경계들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이야기 하는 것이기도 하다.

 

2. 동일성의 위기

 

  그렇지만 이런 변화가 그 자체 새로운 국제주의를 형성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로 새로운 국제주의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 각종 인종주의, 배타주의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 그 하나의 표지이다.
  이는 한편에서 이전에 사회적인 동일성을 형성하게 만든 유사-동일한 공통지반들이 붕괴해 가면서 사회적 동일성의 조건들은 취약해지는 반면, 국가적 동일성의 취약화에 대한 반사물로서 동일성 형성의 요구는 오히려 강해지는 역설 속에서도 관찰된다. 국가적 동일성의 불가능성이 커지는 속에서 다른 동일성에 대한 욕구는 강화된다는 점은, 역설적으로 국가를 넘어서 초민족적 동일성으로 나아가기보다는 오히려 그 이하적인 배타적인 동일성의 형성으로 나아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3. 대안세계화운동

 

(1) 대안세계화 운동의 등장

 

  2000년대 들어서면 사회운동의 위기를 넘어서서 이전과는 다른 전지구적 범위를 아우르는 사회운동이 등장하게 되고, 여기에 스스로 대안세계화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그 가장 두드러진 계기는 2001년 2월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이었다. 이 세계사회포럼은 정당조직을 배제하고 중앙집중성을 배제한다는 새로운 조직구도를 보여주었으며,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기존의 모든 운동 유형들을 결합하여, 지방, 지역, 국가, 초국가적 형태의 다양한 조직을 포괄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조직들의 기반은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나타난 사회적 재난과 맞서 싸운다는 공동의 목적과, 서로에게 닥친 우선과제들을 서로 공히 존중하는 것이었으며, 특히 중요한 점은 남(제3세계)과 북(선진국)의 운동을 하나의 단일한 틀 속에서 결합되었다는 것이었다. 세계사회포럼 결성을 주도한 비아캄페시나와 아탁이 남과 북의 운동을 각각 대표하고 있었다는 점도 이를 잘 보여준다.
  세계사회포럼은 다음과 같은 측면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회운동과 접근방식을 달리 하고 있다. ①세계화에 대한 이론 분석  ②이행과정의 구도를 전지구적 사고하는 국제주의를 강조한다는 점 ③대중 창의성과 주도성 중심의 연합적 사고를 보인다는 점 ④소유의 문제를 수단으로 파악한다는 점 ⑤집권의 문제를 전술적으로 파악한다는 점 ⑥대중 구성의 변화에 주목한다는 점 ⑦정파/현장을 넘어서는 연합적 조직틀을 제시한다는 점 ⑧경제/정치/사회 혁명의 구분을 지양한다는 점 등이다.
  2006년에 다중심적 형태로 전개된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체계적 선언문의 발표와 네트워크의 확산이라는 새로운 움직임들이 관찰되었다. 선언문 중 대표적인 것은 “민중의 반둥회의”라는 이름 하에 반둥회의 50주년 기념으로 말리의 바마코에서 개최된 세계사회포럼에서 사미르 아민의 주도로 80여명의 대안세계화 활동가와 이론가들이 발표한 ‘바마코 호소’였다.
  이 바마코 호소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담았다. ① 경쟁이 아닌 연대를 바탕으로 한다. ② 시민권과 양성의 평등을 전적으로 옹호한다. ③ 모든 다양한 구성원에게 창조적인 발전의 가능성을 제공하는 보편적인 문명을 구축한다. ④ 민주주의를 통한 생산과 재생산의 사회화 ⑤ 자연·자원 및 농지의 시장화를 거부한다 ⑥문화적 산물, 과학적 지식, 교육, 의료의 상품화를 저지한다 ⑦ 제한 없는 민주주의, 사회진보, 각 나라와 개인의 자율성을 포함하는 정책을 촉진한다 ⑧ 반-제국주의에 기초한 국제주의와 남-북반구 민중의 연대를 강화한다.
  물론 대안세계화 운동에는 단일한 세력만 참여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질적인 세력들이 끼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안세계화포럼을 주도하고 있는 사미르 아민은 현재 대안세계화운동에 결합해 있는 세력들에는 크게 네가지 상이한 세력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문제가 되는 세 가지는, 첫 번째 부유한 사회의 무기력 대안세계화 운동, 둘째 가난한 사회의 무기력한 대안세계화 운동, 셋째는 중산층의 대안세계화 운동이다(이는 자본주의에 비판적이기는 하지만 저소득층에 대한 고민 없은 없고, 남반구에 대한 고민도 크게 없는 세력이지만, 상대적으로 부유하기 때문에 세계사회포럼에는 가장 많이 참석하며, 향후 운동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세력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대립되는 네 번째 세력은 진보적 대안세계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2) 방향을 둘러싼 새로운 모색

  대안세계화 운동의 출현과 더불어 기존의 사회운동 내에도 새로운 모색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존의 사회운동의 한계를 넘어서, 대안세계화운동의 방향으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중요한 점은 이런 변화가 사회주의에 대한 표상의 변화와 당의 위상에 대한 재검토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러한 변화중 하나는 프랑스 내의 제4인터내셔널계의 트로츠키 조직인 혁명적 공산주의자 동맹(LCR)이다. 다니엘 벤사이드가 주도하는 이 조직은 가장 두드러진 유럽 내 대안세계화운동 세력인 이탈리아의 공산주의재건당(PRC)이나 프랑스에서 등장한 아탁 등과도 긴밀한 관계에 있다. LCR의 변신 방향은 전위정당에서 사회운동적 정당으로 전환 노력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2006년 이 조직의 기관지 "공산주의적 비판"에서는 ‘전략’ 논쟁이 전개되었다(Artous, Durand, Sitel, Callinicos 등이 개입). 주요 논지를 담은 벤사이드의 글은 기관지인 공산주의 비판에 게재되었는데, 그 번역본이 사회주의노동당 계열 기관지인 IS에 게재되었고, 제4인터내셔널 기관지인 International Viewpoint에 그대로 다시 게재되었다.
  벤사이드의 주장이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전략논쟁이라는 구도 하에서 진행되었다는 점인데, 벤사이드는 전지구적 전략과 특정 지역내 권력장악과 관련된 ‘제한된 전략’을 구분해서 보고 있다. 즉 전지구적인 정세와 지역적 정세를 구분하는 동시에 결합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 전략이란 복제하고 따라야 하는 ‘모델’이 아니라, 과거 경험에서 나오지만 새로운 경험과 의외의 상황에 개방되고 수정될 수 있는 ‘전략적 가정들’로서 일종의 가이드라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여기서 나아가 벤사이드의 논의가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은 대중의 주도권을 평의회적 전통을 통해 복원시키려 하는 것이다. 벤사이드는 대중적 주도권을 확장할 수 있는 계기들을 중시하여, 니카라과 혁명에서 ‘국가 평의회’ 억압 비판하고, 포르토 알레그레에서 예산 확정 위한 시정부기구(선거로 선출)과 참여위원회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 중시하는 등의 논지를 제기한다. 이행적 요구들에 대한 강조 또한 그것이 도구적 위상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벤사이드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용어의 언어의 물신주의 벗어날 필요 있음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는 정치체계의 근본적 단절과 차이를 강조(특히 꼬뮨적 형태에 의한)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용어가 낡았기 때문에 이를 꼬뮨, 소비에트, 평의회, 자주관리로 이해하여 본래의 정신을 강화할 것을 주장한다.
  다음으로 벤사이드의 논의에서 중시되는 것은 당의 역할이다. 벤사이드는 당이 국가에 포섭된다는 점을 살펴볼 때, 그 동형성이 자본의 구조와 거기에 종속된 노동자 운동의 구조 사이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임금 투쟁과 고용의 권리는 자본/노동 관계에 종속된 투쟁인데, 정치적 영역에서 당 또한 이런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렇 관점에서 벤사이드는 전위당의 관점을 벗어나서, PT, 공산주의 재건당, 포트투갈의 좌파 블록의 강조한다. 이런 당의 조직 형태는 미리 정해져있지 않으며, 대중적 조직 내에서 활동하는 요소들로서, 정세에 따라 조직형태가 달라질 수 있다. 동맹이 누구이며 동맹의 동학이 어떻게 변화되는가에 따라 조직의 존재 형태가 조정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네트워크로 조직된 유동적 조직형태와 친화성을 갖는 집단의 논리(헤게모니 논리에 대한 반대로서)를 수용하는 것은 아닌데, 이런 종류의 유동성은 현대 컴퓨터화한 자본, 유연적 작업, ‘유동성 사회’의 완벽한 동형성일 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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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국제주의를 새로운 형태로 보편성의 재구축의 기획으로 이해한다면,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전히 존재하는 계급분할의 선을 넘어서 새로운 보편성의 지평 속에서 이 분할의 선을 극복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중심과 주변 사이의 공간적 분할, 그리고 성차, 인종, 지식의 분할선이 핵심이 될 것이고, 그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가 문제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국가는 다시 이런 분할의 재생산의 중심축에 놓여있다.
이 때 특히 강조할 점은 이는 새로운 동일성의 형성, 또는 동일성의 다차원성을 통해 문제를 풀려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공동체 내의 ‘관계’의 전화에 초점을 맞추려 한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접근을 제기하려 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이를테면 노동자운동의 페미니즘적 개조). 다시 말해 어떤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내려는 것이 아니라, 잠재적으로 공동체 일반을 변혁하려는 것이다(에티엔 발리바르, "대중의 공포", 542쪽) 


4. 동아시아

 

동아시아는 국제주의의 연계를 막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의 국제주의의 논의의 출발점이 될 수 밖에 없는 조건이다. 동아시아에서 민중적 국제주의의 논의가 봉착한 난점은 대립적 역사, 그리고 국가규모의 상이성, 그리고 위계적 경제구조 등의 이유 때문에 수평적 논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는데, 여기서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 보면, 동아시아 내에서는 이주노동과 신자유주의라는 현재적 쟁점에서부터 출발해, 장차 20세기초 역사적 경험으로 나아가는 구도 속에서 함의를 키워갈 수 있는 영역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5. 장기 21세기와 국제주의

 

새로운 세기에 들어선 세계에서 국제주의는 지금까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지녀온 자본주의 역사와 변혁에 대한 지배적 형상의 재구성에서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지배적 형상의 교체는 고민의 무대를 세계로 확대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이렇게 고민의 무대가 세계로 확대되면 우리는 장기21세기라는 이행의 시대라는 관점에 서게 된다. 이는 마치 자본주의로의 이행의 시기를 전지구적 차원에서 200여년에 걸쳐 형성된 유럽세계경제의 형성과정으로 보는 관점과도 유사한 관점이 된다. 이럴 경우, 국제주의 또한 좀 더 넓어진 전지구적 차원에서 사고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런 장기21세기라는 사고는 첫째로, 이행이 장기간의 세계적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둘째로, 이 이행은 사전에 예정된 필연적 경로를 거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통과점과 부정적 통과점으로 분화될 수 있으며, 그 긍정적 통과점을 향해 가도록 하는 것이 운동의 과제임을 강조하게 된다. 셋째로, 기존의 이행의 역사에서 그 세계적 확장은 전체 동시적 변화 아니라 헤게모니 지역으로부터 파급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는데, 지금 또한 세계적 변화가 세계의 동시적 변혁으로 반드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중시할 수 있다. 넷째로, 국가가 이행에서는 문제가 되고 있는데,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국가를 통해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공고화하고, 그것이 자본주의적 생산관계 형성에서 매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면, 21세기의 이행은 그 반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다섯 번째는 현재의 이행의 시대에 나타나는 구조적 위기가 자본주의 자체 내의 쇄신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이유를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여섯째는 이행에서 소유제의 문제는 부차적이라는 점, 일곱째는 이행의 시대에는 삼중의 위기가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은 수취구조의 위기, 국가의 위기(또는 통치의 위기), 그리고 지배적 이데올로기의 위기이다.
장기 21세기는 지금까지 정세적으로 계급을 계급으로 일시적으로 통일시켜온 다양한 동일성들 자체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로부터 새로운 동일성의 형성, 그리고 새로운 보편성의 형성을 통해 평등-자유의 권리가 보편적으로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사고를 확장해 가야할 필요성이 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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