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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12/17
    산행
    지수
  2. 2008/12/03
    아버지와 딸
    지수
  3. 2008/10/12
    탱고(Tango)에 빠지다
    지수
  4. 2008/09/11
    9.11 35주년
    지수
  5. 2008/08/21
    신에게 오직 바라네(메르세데스 소사 )
    지수
  6. 2008/08/21
    생에 감사해(메르세데스 소사)
    지수
  7. 2008/08/19
    En Argentina-Enregistrement En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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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08/08/09
    Brassed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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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8/08/09
    사랑의 아랑후에스
    지수
  10. 2008/08/08
    귀가
    지수

산행

열번을 말하면 겨우 한번을 갈까 말까 한 산행을

우연찮게 북한산과 관악산을 며칠 상간으로 올랐다. 

북한산은 펑커난 일정인 줄도 모르고 갔다가 혼자 올랐고,  관악산은 후배와 함께 올랐다.

산도 좋지만 막걸리가 있어서 더 즐거웠던 산행!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대동문을 코스를 탔다. 중간에 막걸리 한잔 하는 시간 포함해서 2시간남짓 걸린듯.

내려올 때쯤 비가 오는 바람에 다 내려와서 파전에 막걸리 생각으로

몇번을 시간을 확인하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10.25) 

 

 

 

첫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눈은 오지 않았다.

멀리서 찍은 연주암과 연주암 입구에서 발갛게 익은 열매를 보고.

 

 

 

연주암에 있는 탑과 서울의 풍경, 그리고 한강!

산에서 먹을 욕심으로 막걸리 두병에다 과일까지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는데,

정상에 동동주와 막걸리, 컵라면, 김치까지 있을 줄이야 - -::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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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딸

사의 찬미로 잘 알려진 "다뉴브강의 잔물결"이라는 음악을 듣다

문득 조금 더 알고 싶어 검색을 했더니 다양한 관련 정보가 올라온다. 

그 중 하나가 '다뉴브강의 잔물결'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아버지와 딸'이라는

단편 애니메이션 소개가 있다. 

의자 위에 다리를 모으고 올라앉아 여러 번을 반복해서 봤다.

대사 한 마디 없는 짧은 애니메이션의 긴 여운 때문에 한 동안이나 가슴이 아렸다.

 

 

 

 

 

1.

 

픽사의 3D애니메이션 이후로 애니메이션계는 '2D시장은 죽었다.'
하면서 3D애니메이션계로 몸을 돌렸다.

그 이후 픽사를 필두로 20세기 폭스 등 많은 헐리웃 메이져 회사들은 3D 애니메이션의 부흥을 이끌었다.
그렇게 3D애니메이션이 범람하는 가운데, 2D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는 장인들도 있었다.
그  작가들 중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작가는 바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미카엘(마이클) 두독 드빗(Micheal Dudok De wit)'이다.

 
<수도승과 물고기>, <청소부 톰> 이 그의 작품들이다.
 

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 알겠지만, 간단한 그림에, 여백의 미가 중시되어있고,
유머러스해 잠깐이지만 충분히 즐길 수도 있으며, 마치 동양화를 보는 듯 해 정겨운 이미지를 준다.(위의 두 작품으로 세계 4대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을 접수했다)

2000년 한창 밀레니엄이다 뭐다 하야 위에서도 언급하였듯이 3D 애니메이션이 범람하던 이 때에, 목탄으로 만든 2D 애니메이션 하나를 발표하게 된다.

 

그 작품이 바로 <아버지와 딸>.

오리지날 아날로그 감성을 충분히 적셔주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아카데미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상, 안시 페스티벌 관객상, 그랑프리를 안겨주었다.


[출처] http://blog.naver.com/chelzzang/20051693754

 

 

2.

 

감독 자신이 만든 그림책이 같은 이름으로 국내에도 출판되어 있다.

 

미카엘 듀독 데 위트 (지은이), 노경실 (옮긴이) | 새터

 

작가 소개
저자 | 미카엘 듀독 데 위트
1953년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영국의 미술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인터뷰(7분)」를 졸업 작품으로 제작하였다.
바르셀로나에서 1년간 활동한 후 런던으로 가서 텔레비전 CM, 영화감독, 애니메이션 제작 등을 하였다.
주요 단편 애니메이션 작품으로「Tom Sweep(3분)」(1992),「스님과 물고기(7분)」(1994) 등이 있으며 지금은 애니메이션 제작 외에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그리는 등 애니메이션을 가르치는 활동을 하고 있다. 

 

3.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다뉴브강의 잔물결"은 루마니아의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명곡이다.

1880년에 쓴 작푼이라고 전해져오지만 정확하지는 않다. 당시 루마니아가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시절이기 때문에 곡의 구성은 발트토이펠의 작품과 아주 비슷한다. 작곡가 특유의 애수로 가득한 선율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았고, 우리나라에서도 '사의 찬미'란 제목으로 불려지기도 했었다.

작은 왈츠가 네개 있는데 그것들은 대조적으로 리듬을 살린 8분음표가 주체가 된 두 개 부분으로 되어 있다.

 

* 출처 : 어린이 클래식 음악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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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Tango)에 빠지다

문화예술적 '재능'이나 '감수성'은 커녕 보통사람의 그것에도 크게 미치지 못함을 늘 아쉬워해왔다.어릴적 문화예술과 관련된 엇비슷한 경험이 있었다면 라디오를 통해 듣는 음악프로그램이 전부였고, 이종환이 진행하는 '별이빛나는 밤에'라는 프로그램이 내가 즐겨들었던 거의 유일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런 나에게도 어쩌다 마음을 흔들어 놓던 문화예술적 감흥이 있었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잠깐 상경했다가 우연히 학교 앞에 있던 서점에서 노찾사 2집 앨범을 구입, 귀향했다. 라디오카세트를 통해 들었던 노찾사는 내가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새내기새로배움터 가는 길, 관광차 안에서 선배들이 가려켜주던 '포장마차'나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같은 노래들은 또 다른 재미를 주었다.

 

운동권이었던 덕분에 그나마 민중가요라도 열심히 들었고, 불렀다. 기타 반주가 유일했던, 지하 연습실에서 녹음했음직한 테이프부터 시작해서 민중가요 테이프라면 모조리 사서 모으기도 했었다. 매일 이어지던 뒷풀이 자리에서의 노래가 큰 즐거움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노래가사를 다 외워서 부를 줄 아는 노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입대 후 첫 휴가를 나와서는 정태춘, 박은옥의 '92 장마 종로에서'만 듣다 들어갔다.
운동도 썰물이었고, 사람들도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제대하고 나오면 내가 아는 이들이 몇이나 남아 있을 것인지, 또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이들과 앞으로도 함께 할 수 있을 지 알 수 없었다. '92 장마 종로에서'는 그런 내 심정을 너무 잘 표현해주었다. 왜 그리 가슴이 아팠든지..  그리곤 한동안 뜸했다.


'브래스트 오프'나 '와이키키 브라더스'와 같은 음악영화들이 인상에 남았을 뿐이다. 

평생에 누릴 호사를 다 누리고 있는 것 같은 요즈음 음악을 즐겨 듣고 있다.
이것 저것 찾아서 듣기도 하고, 음악 CD며 관련 책들도 몇권씩 구입해서 읽고 있다.
물론 그래봤자 내 빈약한 감수성으로 내가 찾고 듣는 노래는 거기서 거기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칠레나 아르헨티나,그리스 판 저항음악이라든가 '안데스 음악'이나
'파두'같은 월드뮤직으로 분류되는 지지리궁상스러운 음악들이다.
아이한테 좋다며 들려주는 클래식 음악도 가끔식 듣는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다.

 

그러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탱고'에 빠지고 말았다.

"조선소, 도살장, 피혁 공장이 늘어서 있는 강가에 모여 북적대며 일상의 삶을 보내는 사람들에게는
태양이 서쪽 지평선에 사라진 후에야 하루의 걱정을 놓을 수 있는 휴식이 찾아든다.
꼰훈또(Conjunto 소편성 악단)의 애드리브가 흥에 겨우 햇빛에 그을린 투박한 손으로 늘씬한 여인들의 허리를 잡는 남자들, 보카의 어두침침한 거리를 배경으로 그것에서 생활하는 가난한사람들의 감정이 얽히고설켜서 우러나오는 4분의 2박자의 격한 리듬감, 악센트를 듣고 있노라면 무엇인가 강렬하게 호소해 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탱고는 차라리 음악이라기보다 한 가닥 하소연일 수도 있다. 이룰 수 없는 사랑, 자기를 버린 여인의 배신, 여인을 빼앗아 간 무정한 친구, 고향을 떠난 서글픔, 세상을 성실하게 살아가려 하지만 좌절하는 밤거리 여인의 울부짓음... . 탱고는 이렇듯 온같 종류의 슬픔과 그 고독이 드라마틱하게 노래되고 있는 것이다."

- 월드뮤직 중에서

 

탱고와 관련된 영화들도 제법 있는데, 그 중에서도 탱고연습(The tango lesson)의 OST는 나를 탱고에 빠지게 한 주범중 하나이다.
"감독인 샐리포터(SALLY POTTER)의 자전적인 영화이기도 한 '탱고연습'에서 그녀는 각본과 연출, 또 주연을 맡았으며, 실제 탱고 무용수인 파블로 베론이 샐리 포터의 파트너로 출연해 그녀와 함께 탱고를, 그리고 사랑을 나눈다. 또한 그녀는 몇개의 영화음악 작곡에다 영화의 엔딩에 흐르는 I Am You라는 주제곡을 직접 부르기까지 했다.  다재다능하다는 표현으로도 모자랄 만큼 재능이 출중한 감독이다."
아쉽게도 비디오 태잎이나 DVD를 구할 수가 없다.

 

 

 

"영화에 쓰였던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를 리메이크했다. 첼로리스트 요요마의 연주, 네스토르 마르코니의 반도네온 연주, 안토니오 아그리의 바이올린, 레오나르도 마르코니의피아노, 호라시와 말비시노의기타연주,그리고 프레드 퍼쓰까지 참여해 탱고음악의 혁명가인 이 위대한 뮤지션, 피아졸라를 햔해 애정을 토로한다. 요요마의 뮤직비디오는 이 영화 <탱고 레슨>의 이미지를 사용해 감독 샐리 포터가 직접 연출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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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치노의 연기가 일품인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en)또한 탱고가 있어 감동적인 영화다.
영화에서 알 파치노는 춤추기를 망설이며 머뭇거리는 여인에게 이렇게 말한다. "탱고는 인생과는 달리 아주 단순해요. 그래서 탱고에는 실수란 있을 수 없죠. 왜냐하면 스탭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니까요..."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en)중에서.

탱고장면도 명장면이지만, 마지막 알파치노의 연설 장면 또한 영화의 '백미'다.

 

 

영화 "탱고레슨"의 스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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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35주년

1973년 9월 11일 칠레 공군기 두 대가 대통령 궁 모네다를 폭격했다.

인민연합의 대통령이었던 아옌데는 쿠데타 군의 망명 제안을 거부하고 카스트로가 선물한 총을 들고 마지막까지 쿠테타 군에 맞섰다. 그리고 그 총으로 인민에 대한 마지막 충성을 다했다.

 

"쿠테타가 일어나가 전날 밤 늦게까지 아옌데는 연설문을 손질했다. 다음날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연설을 할 예정이었던 그는, 연설문에 국민투표에서 지면 사임하겠다는 비장한 각오까지 담았다. 밤 1시 반에야 작업이 끝나 충분히 잠을 잘 수 없었던 아옌데는 새벽 6시 40분에 청천벽력 같은 전화를 받았다. 마침내 소문만 무성하던 쿠데타가 일어난 것이다. 사저에서 소식을 들은 아옌데는 대통령궁으로 출근을 감행한다. 사태는 시시각각 악화되었다. 아옌데는 포탄과 총알이 난무하는 와중에 아직 쿠데타 군이 접수하지 못한 라디어 방송국을 통해 몇  차례 대국민 연설을 했다. 그러던 중 무조건 항복하면 망명을 허락하겠다는 쿠데타군의 제안을 받는다. 아옌데를 비행기에 태운 뒤 요격하는 것이 그들의 계획이었지만 아옌데는 제안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리고 평가 말해왔듯이 '내 목숨으로 민중의 충성에 보답하겠노라고' 선언한다." 

 

-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에서

 

 

"나는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이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여 민중들이 보여준 충섬심에 생명으로 보답하렵니다. 나는 그들에게 확실하게 말했습니다. 수많은 칠레인들의 고귀한 가슴에 뿌려진 씨앗이 결정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다고. 그들은 무력을 갖고 있으니 우리들에게 굴레를 쒸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악과 무력으로는 사회의 흐름을 장악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 들의 편에 서 있으며 그것은 민중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  조국의 노동자들이여. 나는 조국 칠레와 그 운명에 대해 믿습니다. 배반이 횡행하는 어둡고 암울한 이 순간을 다른 사람들이 극복해나갈 것입니다. 머지않아 다시금 자유인들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큰 길을 열 것이라느 ㄴ점을 마음에 새겨둡시다. 칠레 만세! 민중만세! 노동자 만세!  이말은 나의 마지막 유언입니다. 나의 희생이 허무하게 끝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합니다."  

 

 -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 때에서

 

 

민중연합의 상징으로 대선기간 내내 울려퍼졌던 노래 [우리 승리하리라](Venceremos)

 

 

 

 

조국의 깊은 용광로에서

민중의 외침이 일어나네.

이미 새로운 여명이 밝아오니

칠레 전체가 노래하기 시작하네

 

우리는 불멸의 인물이 될

용감한 전사를 기억하며

앞장서서 죽음과 맞서리라.

결코 조국을 배신하지 않으리.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천 개의 사슬을 끊고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

 

 

'우리 승리하리라'가 민중연합의 서막을 장식했다면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는 그 마지막을 장식했다.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단결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

 

조국은 단결을 담금질하네.

북쪽에서 남쪽까지 동참하리라.

투쟁과 노동으로 단결해

뜨거운 소금평원과 광산에서

남쪽의 울창한 숲까지 행진하여 조국을 뒤덮으리라

그들의 발걸음이 미래를 예고하네.

 

반혁명군의 쿠데타 과정에서 살해당한 칠레 혁명의 또 다른 주인공 빅토르 하라!

아옌데 정권의 처음과 끝을 함께했다.

 

 

선언(Manifiesto)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나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네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나는 노래를 부른다네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비둘기의 날개를 가지고 있다네

마치 성수( 聖水)와 같아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지

여기서 내 노래는 고귀해진다네!

비올레타가 말한 것처럼

봄의 향기를 품고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내 기타는 돈 많은 자들의 기타도 아니고

그것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어

내 노래는 저 별에 닿는 발판이 되고 싶어

의미를 지닌 노래는

고동치는 핏줄 속에 흐르지

참다운 진실을 노래하면서

죽어 갈 자의 혈관 속에서

내 노래는 덧없는 칭찬이나

국제적인 명성이 필요 없다네

내 노래는 한 마리 종달새의 노래

이 땅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지

 

여기 모든 것이 스러지고 모든 것들이 시작되네

용감했던 노래는 언제나 새로운 노래일 것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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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오직 바라네(메르세데스 소사 )

메르세데스 소사 : Solo Le Pido A Dios

 

 

신에게 오직 바라네

 

신에게 오직  바라네.

고통에 둔감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이룬 것 없이 삭막한 죽음과

홀로 공허하게 마주치지 않기를.

 

신에게 오직 바라네.

불의에 둔감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이런 행운을 할퀴고 난 후

내 또다른 뺨을 때리지 말아주기를.

 

신에게 오직 바라네.

전쟁에 둔감한 사람이 되지 않기를.

전쟁이라는 커다란 괴물은

사람들의 가련한 순수함을 짓밟지.

 

* 출처 :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 우석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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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에 감사해(메르세데스 소사)

 

 
아르헨티나 가슴을 후빈, 아 1982년!

 

 

음악 메르세데스 소사 귀국 공연 음반으로

 

 목숨을 건 귀국이었다. 1982년, 군사정권이 종말로 치달으며 마지막 광기를 뿜어댈 때 메르세데스 소사는 망명 생활을 접고 3년 만에 아르헨티나로 돌아왔다. 귀국 뒤 소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연이었다. 역사적 명반 〈메르세데스 소사 엔 아르헨티나〉(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는 그렇게 태어났다.

‘대륙의 목소리’ 또는 ‘아르헨티나의 영혼’으로 추앙받는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아르헨티나 북부 투쿠만에서 태어났다. 아르헨티나에서도 안데스 색채가 가장 짙은 전통음악 중심지 투쿠만에서 태어난 것은 음악이 소사의 운명이란 사실을 암시하는 듯하다. 원주민 혈통을 이어받은 소사는 이미 10대에 출중한 음악 재능을 선보였다. 1963년, 소사는 아르만도 테하다 고메스 같은 음악인들과 함께 ‘새로운 노래’란 뜻의 음악운동 ‘누에바 칸시오네로(최근에는 통합해서 ‘누에바 칸시온’으로 분류) 성명’을 발표한다. 이 선언은 조금 뒤에 등장하는 칠레의 ‘누에바 칸시온’, 쿠바의 ‘누에바 트로바’와 함께 이름처럼 남아메리카 음악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 가혹한 식민지 시대가 끝났어도 경제 몰락, 그리고 군사쿠데타 독재정권의 학살이 되풀이되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사는 우리와 참으로 비슷해서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질 정도다. 이런 혼란 속에서 전통음악에 뿌리를 둔 이 ‘새로운 노래운동’은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 권리의 소중함을 전달했다.

 

군부탄압 맞서다 공연장서 체포
망명 3년뒤 돌아와 28일간 공연
국민가수 목멘 노래 콧날 시큰

 

소사의 음악은 숙명적으로 군부 치하에서 처절하게 빛을 발했다. 아르헨티나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어진 군사정권 시절 동안 무려 3만명 이상이 죽거나 실종되었을 만큼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요주의 인물로 감시 대상이었던 소사는 1979년 공연에서 가난한 소작농들의 처참한 현실과 대지주들의 착취를 비판하는 노래를 불렀다가 관객 350명과 함께 공연장에서 체포됐다. 이후 소사는 스페인으로 망명을 떠난다. 남편마저 잃고 홀로 조국을 등진 소사는 평생 지병인 심장병을 얻는다. 2003년 예정됐던 내한공연이 취소된 것도 평생 소사를 괴롭힌 이 병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 음반은 이 소사가 귀국해 1982년 2월18일부터 28일 동안 연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담았다. 공연은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했다. 군부의 폭압 속에 숨조차 크게 못 쉬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돌아온 소사를 환호로 맞이했고, 소사는 영혼의 목소리로 관객들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조국으로 돌아온 소사의 감격, 그를 다시 맞는 관객들의 열광, 그리고 40대의 농익은 가창력이 삼위일체를 이루며 이 음반을 역사적 명반으로 이끌었다.

음반에는 ‘누에바 칸시온의 어머니’ 비올레타 파라, 쿠바의 국민가수인 실비오 로드리게스와 파블로 밀라네스까지 라틴아메리카 음악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걸작들로 가득하다. 수록곡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그라시아스 아 라 비다’(삶에 감사합니다)를 부르며 노래 중간 목이 메는 소사의 모습에선 듣는 이의 콧날이 절로 시큰해진다.

소사는 곡을 쓸 줄 모르기에 평생을 남의 노래만 해 왔다. 그러나 원작자보다 더 뛰어난 노래를 들려줬고, 어둠의 시대에 희망의 빛을 던졌다. 우리가 소사의 노래에서 감동을 느끼는 이유는 가사를 다 이해해서가 아니다. 그의 영혼에서 우러난 감동을 마음으로 느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이 평범한 인디오 외모의 노가수에게 추앙의 헌사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의 메르세데스 소사〉 음반에는 한 사람의 위대한 의지가 세상을 정의롭게 바꿀 수 있다는 진리와, 국적과 인종, 종교를 초월한 감동이 담겼다. ‘시공을 초월한 명반’이란 말은 바로 이 음반을 두고 하는 말이다.

 

송기철/음악평론가, 사진 유니버설뮤직 제공  * 출처 : 한겨레 신문

 

 

메르세데스 소사  : Gracias a la vida

 

 

생에 감사해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샛별 같은 눈동자를 주어

흑백을 온전히 구분하고,

창공을 수놓은 별을 보고,

무수한 사람들 틈에서 내 님을 찾을 수 있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청각을 주어 밤낮으로 귀 기울여

귀뚜라미, 카나리아, 망치 소리, 물레방아, 소나기,

개 짖는 소리, 그리고 사무치게 사랑하는 임의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를 새기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소리와 문자를 주어

'어머니, 친구, 형제자매,

애모하는 영혼의 편력, 길을 비추는 빛' 같은

말ㄷ르을 떠올리고 표현할 수 있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내 지친 발을 이끌어주어

도시와 시골길,

해변과 사막, 산맥과 평원,

그대 집과 거리와 정원을 순례하였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인류의 지성이 낳은 창조물을 볼 때,

악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선인을 볼 때,

그대 맑은 눈을 깊숙이 들여다볼 때마다

요동치는 심장을 주었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주었어.

웃음을 주고 울음도 주니

 내 노래와 당신들의 노래 재료인

즐거움과 고통을 구분할 수 있네.

당신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이고

모든 이의 노래가 바로 나으 ㅣ노래라네.

 

생에 감사해, 내게 너무 많은 걸 주었어.

 

[생에 감사해] 작사, 작곡 : 비올레타 파라

 

 * 출처 : 바람의 노래 혁명의 노래(우석균)

 

비올레타 파라가 부른   Gracias a la vida

 

 

 

 

 

 

생에 감사합니다.  * 다른 번역본

 

 

개짖는 소리, 소나기 소리 그리고 내 사랑하는
사람의 부드러운 목소리 이런 소리들을 밤낮으로
어느 곳에서나 들을 수 있는 귀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어머니, 친구, 형제
그리고 내 사랑하는 영혼의 길을 비춰주는 빛
이런 것들을 생각하고 말하는 단어의 소리와
문자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가사합니다.

 

도시와 웅덩이, 해변과 사막, 산과 평원
그리고 너의 집과 너의 길, 너의 정원을 걸었던
그 피곤한 나의 다리로 행진을 하게 한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인간의 지식에서 나온 열매를 볼 때
악에서 아주 멀리있는 선을 볼때
너의 맑은 두 눈의 깊이를 볼 때
그것을 알고 떨리는 심장
그 많은 것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합니다.

 

행운과 불행을 구별할 수 있게 한
웃음과 눈물을 나에게 준 삶에 감사드립니다.
웃음과 눈물로 나의 노래는 만들어졌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모두 같은 노래이고
모든 이들의 노래는 바로 나의 노래입니다.

 

* 출처 : http://blog.naver.com/allabio/110022202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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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 Argentina-Enregistrement En Pub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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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만에 국내에 정식 공개되는 공연 실황 명반
MERCEDES SOSA / EN ARGENTINE- Enregistrement en Public (1982)

굳이 월드뮤직 애호가들이 아니더라도, 메르세데스 소사(Mercedes Sosa)라는 이름의 무게감은 월드뮤직 분야뿐만 아니라 세계 음악 역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위대한 가수이다. 단지 노래를 잘 하기 때문이 아니라, 메르세데스 소사가 부르는 노래 속에는 단순히 예술의 순수한 아름다움 이외에 아르헨티나 현대사를 비롯한 인간의 역사, 그리고 인종과 민족, 국가와 언어를 초월하는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메르세세드 소사의 목소리와 그 노래 속에는 인생의 드라마가 함께 담겨 있다.

'라 아메리카 속의 유럽'이 불리는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듯 소사의 외모는 라틴 아메리카 원주민이지만 그 속에는 원주민의 피와 유럽인의 피가 함께 흐르고 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아르헨티나의 흥망성쇠를 몸소 체험하고 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전설이자 상징이 바로 메르세데스 소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소사의 인생 자체가 한 편의 드라마이다. 40여 년 동안 펼쳐 보인 음악 인생 가운데에는 군사 독재 정부의 탄압과 망명, 그리고 목숨을 건 귀향이라는 숨가쁜 드라마가 있었고, 이 드라마가 끝난 이후에는 '건강'이라는 또다른 난관과 싸워야 하는 새로운 드라마가 있다. 그래서 지구 반대편(정확하게 지구 중심을 기준으로 반대편이다)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조차 메르세데스 소사라는 이름에 경의를 표하고 그의 예술에 감동한다.

우리나라에서 메르세데스 소사의 이름이 대중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90년대 초반부터였을것이다. 당시 음반 'Gracias a la vida(삶에 대한 감사)'가 라이선스로 정식 발매되면서 일부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격찬을 들었고, 이후 90년대 말에 프란시스 카브렐(Francis Cabrel)과의 듀오곡 'Yo vengo a ofrecer mi corazon(당신께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왔어요)가 우리나라 영화 '정사'에 삽입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이 곡이 수록된 베스트 음반이 'Best of Mercedes Sosa'라는 이름으로 공개되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메르세데스 소사가 세계적으로 얻었던 지명도를 놓고 볼 때 지금까지도 국내에 소개된 음반들은 수입 음반으로 간간이 소개된 일부 타이틀과, 2000년에 발매된 '미사 끄리올라(Misa Criolla; 미싸 끄리오야로도 불리며, 현지에서는 1999년 말에 발매)', 2003년에 공개된 'Acustico Ao Vivo(어쿠스틱 공연 실황, 현지 발매는 2002년), 그리고 2005년 초에 공개된 'Interpreta Atahualpa Yupanqui(아타왈빠 유빵끼 작품집, 1977), 그리고 마지막으로 올해 가을 오랜만에 선보이는 스튜디오 레코딩 음반 'Coraz? Libre(자유로운 마음) 정도일 것이다.

물론 해외에서도 메르세데스 소사가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음반을 완벽하게 정리, 발표한 곳은 매우 드물며, 심지어 아르헨티나에서도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 전부를 구하기란 매우 어렵다. 물론 메르세데스 소사의 공식 홈페이지(http://www.mercedessosa.com.ar)에 존재하는 디스코그라피는 공신력과 함께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수없이 존재하는 베스트 음반과 미공개 라이브 음원이 누락되어 있다. 또한 1982년 '아르헨티나 공연(En Argentina) 음반을 기준으로 이전 음반은 현재 입수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하지만 1982년 이후 발매된 음반들과 1982년 이전 음반들 가운데 CD로 공개된 몇몇 음반들을 통해 메르세데스 소사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하는 데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르세데스 소사의 음반과 예술을 이야기할 때 왜 1982년이 기준이 되는 것일까? 바로 이 해가 역사적인 공연인 메르세데스 소사의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 공연이 있던 해이자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담은 명반 'En Argentina'가 발매된 해이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생애와 예술
메르세데스 소사는 1935년 7월 9일, 아르헨티나 북부 뚜꾸만(Tucuman)에 있는 도시 산 미겔(San Miguel)에서 태어났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조부는 께추아(Quechua) 사람이었고, 조모는 프랑스 사람이었다. 흔히 아르헨티나를'라 아메리카 속의 유럽'이라 부르지만, 뚜꾸만은 1812년 아르헨티나가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인 지명이며 현재까지 라틴 아메리카에서안데스 문화가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지리적으로는 아르헨티나 북서부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안데스 산맥으로 보자면 맨 아래에 자리잡은 아르헨티나 전통문화의 중심지가 뚜꾸만인데, 이 곳에서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월드뮤직을 대표하는 두 명의 거장 - 음유시인 '아따왈빠 유빵끼(Atahualpan Yupanqui)' 메르세데스 소사가 태어났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로 넘기기엔 그 의미가 크다(1977년, 메르세데스 소사는 백인이면서 안데스 문화에 동화되어 평생을 안데스 전통 음악에 헌신한 이 거장의 작품을 새롭게 해석해 음반 'Interpreta Atahualpa Yupanqui'로 담아냈다).

메르세데스 소사의 데뷔는 1965년 민속 음악 축제에서였다. 전통 의상을 입고 전통 타악기 봄보(Bombo)를 연주하며 노래하던 소사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했고, 결국 메르세데스 소사는 필립스(Philips) 사와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다. 이후 1967년부터 세계 순회 공연을 통해 세계 음악 애호가들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이 순회 공연이 이루어지는 동안 메르세데스 소사는 조국 아르헨티나의 암울한 정치 상황을 맞게 되고, 이것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일생을 완전히 바꿔놓는 전환점이 된다.

아르헨티나의 군부 독재는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어졌다.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집권 기간동안 대외적으로는 '아르헨티나 영토를 되찾는다' 명분 아래 영국을 상대로 '포클랜드 전쟁' 일으켰다. 물론 이 전쟁은 군사정권의 정통성 확보라는 시급한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전쟁이었는데, 라틴 아메리카 여러 국가들은 구조적 모순을 가지고 있는 추악한 전쟁이었음에도 아르헨티나의 영유권을 인정하며 '말비나TM 전쟁(포클랜드 전쟁을 라틴 아메리카에서 부르는 이름. 포클랜드 제도의 원래 이름이 말비나스 제도이다)' 심정적으로 동조했다. 그러나 이런 지지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패배한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결국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국민들은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정치, 경제, 그리고 심리적으로 참담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메르세데스 소사는 당시 해외 공연을 통해 아르헨티나 정치와 인권 상황을 해외에 알리고 있었는데, 이 사실을 안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1979년, 결국 국내 공연 중이었던 메르세데스 소사를 관객들과 함께 체포한 뒤 영구 추방했고, 이후 메르세데스 소사는 스페인과 프랑스를 거점으로 더욱 활발한 무대 활동을 펼쳤다. 이 과정에서 메르세데스 소사는 남편을 잃었고 건강에도 심각한 적신호가 켜지면서 세계 음악 애호가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1982년 2월, 결국 메르세데스 소사는 조국의 민중을 위해 노래할 것을 결심하고 목숨을 건 귀국 길에 올랐고,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에서 전설적인 공연을 갖게 된다. 이 공연은 단순한 대중 음악인의 공연 차원을 넘어, 전쟁을 통해 커다란 상실감을 가지고 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잠재해 있었던 군사 정부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

결국 1983년 아르헨티나 군사 정부는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 이후 예고된 최후를 맞았고, 이후 메르세데스 소사는 보다 활발한 음반 활동과 세계 순회 공연을 통해 진정한 예술의 참된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있다. 음악적 동지였던 레온 히에코(Leon Gieco),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 등과 함께 아르헨티나 순회 공연을 가지는가 하면, 존 바에스(Joan Baez)와 함께 남북 아메리카 대륙을 순회하면서 한 무대에 함께 올라 'Garcias a la Vida(생에 대한 감사)'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망명 생활부터 고질병으로 안고 있던 심장 질환은 메르세데스 소사의 예술 활동을 가로막았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1997년과 2003년에 있었던 입원 사태였는데, 2003년의 경우는 9월 4일로 예정되어 있던 첫 서울 공연을 취소시킬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 와중에도 메르세데스 소사는 1998년 음반 'Al Despertar(잠에서 깨어나)' 발표하는가 하면, 숙제로 남아있던 아리엘 라미레스(Ariel Ramirez)의 작품 '미사 크리올라' 발표하면서 세계 음악 애호가들을 열광시켰다. 이후 2002년 실황 음반 'Acustico en Vivo' 통해 음악에 대한 식지 않은 열정을 세계에 알리고 있지만, 지금도 건강상의 이유로 장거리 비행이나 무리한 순회 공연은 자제하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2004년 9월로 예정되었던 내한 공연과 사상 최초의 아시아 순회 공연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취소되었지만,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우려를 뒤로 하고 2005년 여름 새 음반 'Coraz n Libre(자유로운 마음)' 발표하기도 했다.

음반 'En Argentina(아르헨티나 공연 실황)'
'En Argentina'로 불리는 이 음반은 스페인 망명 생활을 하던 메르세데스 소사가 아르헨티나로 귀국하여, 1982년 2월 18일부터 28일 사이에 가진 브에노스 아이레스 오페라 극장 공연 중 하이라이트를 발췌한 것이다. 1982년에 더블 라이브 LP로 프랑스에서 먼저 정식 발매되었으며, 총 20곡을 담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당시 군부 독재 치하의 아르헨티나에서는 발매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프랑스 필립스에서 'En Argentine(LP번호 6636 351)'이라 프랑스어 제목을 달고 출시되었다. 프랑스 LP 버전 이외에도 이 음반은 다양한 버전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현재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이 되는 폴리그램 라티노(PolyGram Latino)의 72분 짜리 타이틀(314 510 499 2)이 있으며, 이번 라이선스 음반의 음원이다.

아쉬운 것은 당시 수록 시간의 한계 때문에 오리지널 LP 레코딩에 수록된 'Soy pan, soy mas'와 'El Cosechero'가 누락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 트로피칼(Tropical) 레이블에서 내수용으로 발매한 타이틀 'Live in Argentinien(발매 번호 680.916)'에는 오히려 이 두 트랙이 수록되어 있지만 'Alfonsina y el mar(알폰시나와 바다)를 비롯한 다른 네 곡이 삭제되면서 역시 한 장의 CD로 발매되었다. 이처럼 세계 곳곳에서 발매된 음반들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폴리그램 라티노에서 발매된 타이틀이 CD 시대의 공식 음반으로 인정받고 있다. 단, 국내에서 발매되는 이번 라이선스 음반은, 세계 최초로 발매된 프랑스 LP 발매반의 표지 그림과 공연 사진을 사용해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깝게 발매되는 세계 최초의 CD이기도 하다.

음반 수록곡의 원작자들을 살펴보면,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권에서 정평이 나 있는 작곡가와 가수들의 곡이 거의 망라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실비오 로드리게스(Silvio Rodriguez), 비올레타 파라(Violetta Para), 레온 히에코(Leon Gieco), 아타왈빠 유빵끼(Atahualpa Yupanqui), 아리엘 라미레스(Ariel Ramirez), 찰리 가르시아(Charly Garcia) 등, 모두 열거하기에도 힘들 정도로 지명도 있는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강렬하고 힘있는 특유의 목소리로 풀어내고 있다.

이 음반의 최고 백미는 side 2 첫 번째에 담겨 있으면서 가장 많이 알려지기도 한 [인생에 대한 감사(Gracias a la Vida)]일 것이다. 국내 라이센스에 소개된 음반 타이틀이기도 하며, 이 곡을 작곡한 비올레타 파라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바로 직전 마지막으로 남긴 곡이라는 점에서 아이러니컬하기도 하다. 곡목이 '인생에 대한 감사'이기 때문일까. 물론 소사에게는 더더욱 남다른 감회가 있을 것이다. 군부독재를 피해 스페인 망명생활을 하다가 다시 밟은 고국 땅에서 부르는 '인생에 대한 감사'. "그래서 나는 삶에 대해 감사하고 또 이렇게 여기서 노래를 부릅니다"라 후반부 가사가 흐를 즈음이면 소사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고, 관중들을 박수를 치기 시작한다. 박수소리는 점점 커지고 소사의 목소리는 점점 흐느끼면서 진실로 삶에 대한 감사의 노래를 부른다... 비올레타 파라의 원곡에서도 느끼기 힘든, 존 바에즈 또는 마리아 파란두리(Maria Farandouri)가 부른 라틴 리듬의 곡이나 그라시엘라 수잔나(Graciella Suzanna)의 버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맛이 소사의 목소리에 담겨 있다.

여류 시인 알폰시나 스트로니(Alfonsina Stroni)의 이야기를 담은 펠릭스 루나(Felix Luna) 작사, 아리엘 라미레스 작곡의 '알폰시나와 바다(Alfonsina y el Mar)' 역시 이 음반에서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작품이다. 라미레스-루나 콤비는 '미사 크리올라(Missa Criolla)' 비롯해 '남미 칸타타(Cantata Sudamericana)' 등으로 이어지면서 메르세데스 소사와 함께 운명적인 예술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아따왈빠 유빵끼의 '자매들(Los Hermanos)', 아르헨티나 포크와 록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레온 히에코의 'Solo le pido a dios(신에게 단지 원하는 것은)'에서는, 원작자 레온 히에코가 기타 반주와 하모니카를 맡아 연주하고 있다. 물론 곡 중간에 레온 히에코의 목소리와 함께 소사의 감사 인사를 생생한 실황으로 들을 수 있다. 이외에도 찰리 가르시아 역시 직접 출연하여 피아노 연주를 들려주는데, 이처럼 화려한 라인업과 함께 최고의 연주를 들려주는 것이 바로 역사적인 명반 '아르헨티나 공연 실황'이다.

월드뮤직 애호가들에게는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역사적인 명반으로 평가받는 '아르헨티나 실황 공연'이지만, 글쓴이에게는 개인적으로 여러 추억이 담긴 음반이기도 하다. 글쓴이가 이 음반, 특히 이 음반의 표지로 사용된 프랑스 LP를 구했던 겨울은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엄청나게 쏟아지는 눈을 맞으면서 술에 취해 흥얼거리며 집으로 돌아오면서 몇 번이고 미끄러지면서도 행여 이 LP 음반이 깨어질세라 꼬옥 끌어안고 오던 기억이 새롭다. 술에 취해 미끄러졌는지, 길거리에 쌓이는 눈 때문에 미끄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른 집으로 들어가 들어보고 싶은 마음에 길에 미끄러지면서도 발걸음을 재촉했던 기억... 집에 돌아와 턴테이블에 '인생에 대한 감사' - 'Gracias a la Vida' 걸어놓는 순간 이상하게도 눈물이 났던 것은, 분명 소사와 같은 시대에 살면서 소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데에 대한 필자 나름대로의 '삶에 대한 감사'가 아니었나 싶다.

(글: 황우창)

 

앨범 수록곡

1. Drume Negrita
2. Sueno Con Serpientes

3. Maria Va

4. Al Jardin De La Republica

5. Gracias A La Vida

6. Alfonsina Y El Mar

7. Como La Cigarra

8. Solo Le Pido A Dios

9. Flor Azul

10. Hermanos

11. Arenosa

12. Anos

13. Mareados

14. Cuando Ya Me Empiece A Quedar Solo

15. Volover A Los 17

16. Fuego En Anymana

17. Polleritas : Pollerita Colorada / Carnavalito Del Duende/Pollerita

18. Cancion Con Tod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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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ssed off

브래스트 오프

 

    

Brassed off(1996)

 

Brassed off 는 우리말로 하면 열받는, 뚜껑 열린같은 속어이다.

무엇이 그들을 열받게 했을까?

 

1979년 보수당의 승리고 마거릿 대처수상이집권을 시작했다.

그녀는 민간의 자율적인 경제활동을 중요성에 입각해 경제개혁을 추진하기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효율성이 나지 않는 탄광을 닫는 일.

 

작품의 가상의 탄광촌 주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힘든 일 속에서도 '그림리' 밴드를 결성해 정기적으로 연주를 하던 탄광 주민들은

앞으로 닥칠 현실 때문에 자신들의 밴드에 열정을 잃게 된다.

 

하지만  남자들만 득실대던 밴드에 금발의 글로리아가 들어오면서 분위기가 역전된다.

하지만 밴드의 리더 대니의 진폐증으로 다시 위기를 겪는다.

하지만 대니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밴드의 멤버들을 감동시키게 되고

결국 런던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서 승리를 거머쥐게 된다.

[출처] http://blog.naver.com/lcsj104/10031647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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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마크 허먼
출연 이완 맥그리거 (앤디 역) 타라 피츠제랄드 (글로리아 역)
음악 트레버 존스 (Trevor Jones)

줄거리 : 1992년 북부 요크셔의 작은 탄광촌, 보수당 정부가 전격적인 폐광 정책을 준비하고 있을 때, 그 지방의 탄광 밴드는 다가오는 전국 대회를 위해 연습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엔 언제나 밴드가 있고, 특히 밴드 리더인 대니(Danny: 피트 포슬쓰웨이트 분)의 밴드에 대한 애정은 각별하다. 대니에게 있어 음악이란 탄광이 정신을 구현해 주는 것이며 그 마을 사람들의 생명력을 대변하는 것이다. 그러나 폐광으로 인해 실업이 널리 확산됨에 따라 그의 동료들은 밴드에 대한 열정을 잃게 된다.

 그러던 중 금발의 글로리아(Gloria: 타라 피츠 제랄드 분)가 탄광촌에 도착, 밴드에 가담하자 그들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된다. 사실 그녀는 그 밴드의 전설적인 지휘자였던 아더 멀린즈의 아름다운 손녀이자 밴드의 전설적인 지휘자였던 아더 멀린즈의 아름다운 손녀이자 밴드 멤버 앤디(Andy: 이완 맥그리거 분)의 어린 시절 연인으로, 밴드가 아니라 직업 때문에 10년 만에 고향을 찾은 것이다. 글로리아의 재능과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순회 경연대회가 시작될 무렵 밴드에는 새로운 열정이 물결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열기는 글로리아가 영국 광산 협회가 경제성 조사를 위해 파견한 감정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급격히 식어버리고, 앤디와 글로리아의 관계 역시 위태로와 진다.

 이런 긴장 속에서도 그림리 브라스 밴드는 전국 준결승전에서 우승을 하고 마을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들 앞에 펼쳐진 것은 폐광이 결정된 충격으로 열패감에 쌀에 움츠러든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었으며, 그러한 상황에서 평생을 탄광에서 일한 대니는 진폐증으로 쓰러져 건강이 위대롭게 되고, 1984년 광부들의 파업으로 수감됐던 그의 아들 필(Phil: 스티븐 톰킨슨 분)은 가족, 가정, 일, 살아겠다는 의지 등 거의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러나 진폐증으로 급격히 무너져 가는 대니를 바라보는 단원들은 그로인해 음악을 계속할 자극을 받게되고 반항정신을 회복한다. 게다가 뜻밖의 후원자의 도움을 얻게 된 광부들은 대니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런던에서 열리는 전국대회에 참가하가로 하고 다시 모인다. 마
침내 그들은 마을을 대표하는 대서로서 자신들의 사정을 대외에 알릴 승리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Brassed Off - Rodrigo's Concierto de Aranjuez

 

 

William Tell Overture from "Brassed O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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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아랑후에스

Joaquin Rodrigo (1901-1999)

Aranjuez Con Tu Amor(사랑의 아랑후에스)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스페인의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인 호아킨 로드리고의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작품 개요 & 배경

1939년 로드리고는 <아랑후에스 협주곡>을 썼다.
이 곡은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 중 하나가 됐다.
로드리고가 기타협주곡을 써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친구인 에스파냐의 거장급 기타리스트
레히노 사인스 데 라 마사(1897-1982) 때문이다.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협주곡>은 사인스 데 라 마사의 기타 독주로 1940년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됐다. 오케스트라와 기타의 협연시 발생하는 문제 때문에 처음에는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청중과 비평가로부터 찬사가 쏟아졌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 남방 72km 정도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이다.
그 궁전은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다.
'마하스(젊은 여인들)와 투우사, 그리고 중남미의 선율로 특징지을 수 있는', 나폴레옹 이전의 마지막 두 왕들이 살던 시대를 '아랑후에스'의 생명 속에 다시 불러들이고자 한 것이 이 곡의 의도다.
<아랑후에스협주곡>이 지닌 최대 강점은 에스파냐라는 나라와 에스파냐의 민족유산을 음악으로 멋지게 그려냈다는데 있다.
에스파니아 민속악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타를 사용해 지중해 생활의 색깔, 분위기, 멜로디, 그리고 발랄함이 커다란 슬픔으로 돌변하는 역설을 용케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로드리고의 기타 협주곡 "아랑훼즈"를 작곡자 자신이 하프 협주곡으로 편곡한 것입니다.
로드리고는 작곡을 하면서 꿈 속에서 하프를 날개로 달고 피아노를 꼬리로 하며 기타를 혼으로 간직한 환상적인 악기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의 친구인 명 하프 연주자인 자바레타를 위하여 편곡한 이 곡이 바로 이 환상적인 악기의 날개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작품해설

<아랑후에스협주곡>은 현악기, 목관악기, 금관악기 (트럼펫과 호른)를 위한 곡으로 음색이
다양하고 매우 아름답다.

제1악장 : 알레그로 콘 스피리토Allegro con spirito
소나타의 전통적인 형식을 갖춘 이 악장은 중부 에스파냐의 명랑한 구애의 민속춤 판당고를
연상시킨다. 제1악장은 기타가 잔잔한 저음을 배경으로 깔면서 시작된다.
첫 악절에서는 그 악장 전체를 흐르는 리듬을 제시한다.
6개의 8분음표가 3박 2개(이 악장의 기본 박자인 6/8박자)나 2박 3개(아래 두번째 마디에서 보이듯이 3/4박자)로 나뉜다
.

 

 



제2악장 : 아다지오Adagio
작곡가의 아내인 카르미는 이를 가리켜 ‘허니문의 행복을 담은 사랑의 노래’라고 했으며,
로드리고 자신은 ‘기타와 잉글리시 호른이 나누는 애수의 대화’라고 칭했다.
잉글리시 호른의 애잔한 선율이 그리움과 우수로 가득찬 향수를 자아낸다.
프랑스어 가사를 붙여 나나 무스쿠리가 부른 '사랑의 아랑후에스 (Aranjuez Mon Amour)' 등이 유명하다.

제3악장 : 알레그로 젠틸레 Allegro gentile
마지막 이 악장에는 궁정의 우아한 분위기가 흐른다.
B장조로 시작되는 기타독주가 힘찬 2부 대위법으로 즉각 론도주제를 제시한다.
이어 2/4박자와 3/4박자의 마디들이 불규칙하게 번갈아 나오면서 세기와 박자를 변형시켜,
제1악장의 당김음 리듬으로 되돌아가게 한다.
오케스트라가 이 주제를 신속히 재현하는데 이때는 D장조를 취한다.

아랑후에스는 마드리드의 남쪽 72km에 있는 18세기 부르봉왕가의 여름궁전인데,
고원의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여 스페인 굴지의 유명한 정원으로 알려진 곳으로
로드리고가 좋아하는 시대의 한 상징이었다.

1938년 로드리고가 아랑후에스의 별궁을 방문했을 때 부근에 거주하는 집시들의
생활 환경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다.

현악기와 목관악기, 금관악기(트럼펫·호른)를 위해 만든 곡으로
음색이 다양하고 전체적으로 흐르는 선율이 무척 아름답다. 1940년 말에 완성되었고,
그 해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되었다.

오케스트라와 기타를 협연하는 데 문제가 따를 것으로 우려되어 처음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예상과는 달리 연주회는 크게 성공하여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이 되었다.
또한 음량이 작아 소품연주에만 쓰이던 기타의 영역을 넓혀 주요 협주악기의 하나로 자리잡게
하는 데도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작품이 되었다.

전 3악장(1악장:알레그로 콘 스피리토,2악장:아다지오, 3악장:알레그로 젠틸레)으로,
스페인의 대표적인 민속악기인 기타를사용하여 지중해 생활의 색깔·분위기·멜로디를 멋들어지게
그려냈고, 4대의 기타를위한 《안달루시아 협주곡 Concierto andaluz》과 함께 로드리고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힌다.

전체적으로 기타라는 악기의 특성을 잘 살려 스페인 무곡적인 리듬의 기타독주가 오케스트라의
여린 지속음에 받쳐져, 유명한 아랑후에스 별궁의 아름다움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특히 잉글리시호른의 애수 띤 향수에 젖은 테마가나타나는 제2악장은 유명하여
단독으로 자주 연주되며, 또《사랑의 아랑후에스》라는 제목의 팝 음악으로도 편곡되었다 .


      로드리고 - 사랑의 아랑후에스(En Aranjuez Con Tu Amor)
      Aranjuez, un lugar de ensueños y de amor Donde un rumor de fuentes de cristal En el jardin parece hablar En voz baja a las rosas Aranjuez, hoy las hojas secas sin color Que barre el viento Son recuerdos del romance que una vez Juntos empezamos tu y yo Y sin razón olvidamos Quizá ese amor escondido esté En un atardecer En la brisa o en la flor esperando tu regreso Aranjuez, hoy las hojas secas sin color Que barre el viento Son recuerdos del romance que una vez Juntos empezamos tu y yo Y sin razón olvidamos En Aranjuez, amor Tu y yo
    아랑후에즈, 사랑과 꿈의 장소 정원에서 놀고 있는 크리스털 분수가 장미에게 낮게 속삭이는 곳 아랑후에즈, 바싹 마르고 색 바랜 잎사귀들이 이제 바람에 휩쓸려 나간 그대와 내개 한때 시작한 후 아무 이유없이 잊혀진 로망스의 기억이다 아마도 그 사랑은 여명의 그늘에 산들 바람에 혹은 꽃 속에 그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숨어 있나보다 아랑후에즈, 바싹 마르고 색 바랜 잎사귀들이 아랑후에즈, 내사랑 그대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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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가

누군가의 구두발이 저렁이 한 마리를 밟고 지나갔다.

 

그 발은 뚜벅뚜벅 걸어가

 

그들만의 단란한 식탁에서 환히 웃고 있으리라

 

지렁이 한 마리가 포도에서 으깨어진 머리를 들어

 

간신히 집 쪽을 바라보는 동안

 

 

 

          - 이시영, [귀가]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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