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레닌과 트로츠키, 볼셰비즘 다시 보기] 2. 트로츠키, 누가 혁명을 배반했는가

[아트앤스터디 강의]

 

페레스트로이카 당시 트로츠키의 군사인위원 당시 가혹성이 폭로되면서 러시아 지식인 사이에 '혁명적 사디스트'라는 분위기.

 

1917년 10월 혁명당시  카메니프, 스탈린 등 고참 볼셰비끼는 혁명에 반대. 서유럽의 정당들처럼 의석 확보 등 안정적인 당활동이 가능하도록 하길 바람. 마치 1968년 혁명 당시 공산당처럼. 레닌과 트로츠키의 주도로 진행.

 

1917년 혁명 이후 독일강화가 이루어지자 볼셰비키는 다른 혁명세력들과 적대적으로 변하게 된다. 볼셰비키는 이에 자신들을 제외한 혁명세력에 대한 탄압을 시작한다. 이 점에서 트로츠키의 독일강화 반대 주장은 옳은 판단이었다.

 

독일과의 전쟁에서 민병대가 패배하는 것을 보고 트로츠키는 과거 발칸 전쟁의 경험을 살려 1918년부터 징병제 도입, 장교제도 도입, 구 군대출신의 기술자들 도입. 명령을 어기거나 이탈하는 자에 대한 총살 등이 이루어짐. 엄격한 과거 국가의 군대를 다시 도입. 병사에 대한 장교의 구타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고르바초프 당시.

국가는 도구라는 판단. 무산계급이 갖게 된다면 선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필요악이 아니라.  노조의 국가화. 노동의 군사화. 국가에 대한 순진할 정도의 신뢰. 노동자의 생산통제의 경우 혁명의 과도기에는 필요하지만 혁명 성공 이후 국가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는 국가의 통제로 이뤄지면 된다고 판단.

권력장악을 하지 못한 국가에서 공산당에 대한 민주주의 등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은 지배계급을 이롭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

스탈린 집권 이후에도 당내민주주의의 회복에 대해 주장했지만, 당외 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 소련 국가에 대한 맹신.

암살당하기 전 핀란드에 대한 스탈린의 침략을 지지. 핀란드에서는 공산당을 제외한 사회세력이 모두 반대하고 있었고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스탈린에 적대적이었음에도. 노동자국가가 우월한 체제이기 때문에.

근대주의적 정치인의 특징인 특정 이데올로기 정당을 "역사의 논리를 전개시키는 주체" 거의 헤겔의 "신의 의지의 실행자"로 보는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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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8/19 22:16 2011/08/19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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