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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소탈한 노무현 前 대통령

 

장애 아동들을 실내로 초대해 무릎까지 내주시며 사진촬영에 응하시고

 

 

 

 

초등학생들과 똑 같은 높이로 앉으셔서 자연학습도 경청하시고...

 

 

 

불쑥 뛰어든 소녀에게도 웃음을 잃지 않으셨고...

 

 

 

 

어린 유치원생들에게도 머리숙여 인사를 나누시고...

 

 

 

 

마을을 방문하신 장애 노인에게 기꺼이 다가가 사진촬영을 함께 하시고...

 

 

 

 

마지막 가신 그 봉화산 뒷길을 등산하시다 식사 중인 부부의 김밥까지 뺏아드시고...

 

 

 

 

친환경 농작물 재배 교육에 농민들과 똑 같은 자리에 앉아 교육도 받으시고... 

 

 

 

 

 

주민이 내민 음료수를 덥석받아 시원하게 들이키시고...

 

 

 

급조된 초라한 술상조차 감격해 하시며 받아드시고...

 

 

 

 

어린 여고생들에게도 허리를 깊숙히 숙여 인사하시고 ...

 

 

 

 

관광지 휴게소에서 시민이 내민 강냉이 튀김을 천진하게 받아드시고 ...

 

 

 

 

연로하신 할머니를 발견하시고 몸을 낮춰 안부를 물으셨고 ...

 

 

 

대통령 전용 버스조차 마을 사람들의 나들이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으시고 ...

 

 

 

초라한 시골 식당의 소박한 밥상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시고 ...

 

 

 

 

길건너다 마주친 군밤장수 아저씨에게도 해맑은 웃음을 선사하시고 ...

 

 

 

 

 자신을 낮춰  얼굴이 가려지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고...

 

 

 

사저 경비 전경들의 인사에도 고개숙여 답례해 주셨습니다.

 

  

 

그분께서 평소 밝히셨듯이

대통령 중에도 국민과 눈높이가 똑 같은 사람 한 명은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는 애초부터 권위라곤 없는 사람입니다.

나와 인사할 때 허리를 깊숙히 숙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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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박종태 동지를 기리며...

나무에 매달려 펄럭이는 플랑을 마주하니

심장이 벌렁거린다.

일면식도 없는 그 사람의 얼굴이

나에게 덤벼든다.무섭게 덤벼든다.

..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숨어

건물 앞에서 줄줄이 딸려가는 동지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그 사람은 그 자리에 서서

더러운 대한통운자본을 얼마나 쏘아보았을까.

..

 

땅에다 설움을 짓이겨 밟고

하늘에다 가족의 얼굴은 뿌렸더라도

 

전지전능한 신보다, 운명보다

더 꿈쩍안하는 회사 앞에서

악마보다 더 잔인한 탄압들이

얼마나 그의 몸과 마음을 옮아맸을까.

 

그 사람은 이미 죽었지.

투쟁 속에서, 민중들 속에서

외치고 부르짖고 싸우던 그가

수배의 사슬에 걸려 사무실에서

나대신 이것 좀 해주세요 라고

부탁할 수 밖에 없는 신세라면

그는 이미 팔다리가 잘린거고

철 없이 개처럼 광분하는 경찰들을 쏘아붙이고

자본에 눈이 먼 새끼들의 정강이를 걷어찰 수 없고

그들을 무릎 꿇리는 데 자신의 몸 하나 던져낼 수 없었다면

그는 이미 죽었지.

 

박스당 30원이 아까워서

이리매고 저리 들고 뛰어다니면서 어깨 한 번 제대로 피지 않는

택배노동자들이

고개도 들지 않고 일을 하니

그게 차라리 죽여달라는 겸손한 노예의 인사로 보였던가.

 

일을 하면 기업이 돈을 벌고 흑자를 내는데

노동자는 일할 수록 빼앗긴다고 땅을 치는가.

..

 

5월 5일 어린이날에 하늘을 높고 푸르러도

엄마는 죽음의 상복을 입고 아이들을 안지 못햇고.

5월8일 이번 어버이날

누가 나쁘다고 손가락질도 못할 어린 애들은

카네이션을 매달을 아버지 가슴이 없다.

그 애들은 국화를 들고

아버지를 보내는 노래를 해야한다.

 

 

애꿎은 노래야.

너는 왜 자꾸 아흔 아홉 번 패배해도 단 한 번 승리하자고 하는 거냐.

아흔 아홉번 넘어지는 사이에

노동자들이 가슴에 묻어야 되는 동지가 몇인지.

단 아홉번도 싫다.

단 한 번 싸움.

그리고 승리.

 

<사족>

이글은 청년회 후배의 글을 퍼온것이다.

아무것도 할수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집회주변을 서성거리는것뿐!

그리곤 어제 박종태 열사의 영정이 있는 대화동 근로자복지회관에 들러 향을 피우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왔다....

 

그리곤 연극연습을 끝내고 이른새벽..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밤새 마시는 술에도 허기를 달래지 못해... 가슴이 허한 그런 이른 아침에..

후배의 홈피에 들렀다가 이글을 발견했다. ㅋ

 

글을 읽어 내려 가는중에 울컥!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것이 있어..눈물이 주르르 흐른다.

 

난 아직도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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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 <박쥐>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 <박쥐>
글 : 문석 | 2009.04.29
 

synopsis
수도원에서 절망적인 환자들을 돌보던 신부 상현(송강호)은 치명적인 바이러스 이브를 퇴치하기 위한 연구에 동참한다. 스스로 이브에 감염돼 사망을 선고받은 그는 뱀파이어 유전자가 들어 있는 피를 수혈받고 기적처럼 살아난다. 사람들은 그를 ‘붕대감은 성자’라 부르며 추앙하고, 이 와중에 상현은 어릴 적 친구인 강우(신하균)를 치유하게 된다. 그는 강우의 아내 태주(김옥빈)가 강우와 강우의 어머니 라 여사(김해숙)에게 오랫동안 학대받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느새 태주에게 애정을 품게 된 상현은 강우를 살해하겠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박쥐>는 만만한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 안에는 뱀파이어 이야기와 종교의 근본 문제와 격정적인 러브 스토리 또는 치정극의 요소가 포함돼 있고, 전통적인 가치와 서구적인 가치의 충돌 또한 존재한다. 장르적으로도 스릴러, 멜로, 범죄영화, 호러 같은 키워드를 가로지르고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같은 박찬욱 감독의 전작 또한 어렴풋이 녹아들어 있다. 어쩌면 <박쥐>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두터운 층으로 이뤄진 영화인지도 모른다.

이 복잡한 요소 혹은 모순들이 한데 엉킨 공간이 태주가 깃들어 사는 ‘행복한복집’이다. 이곳은 일본식 구조의 적산가옥이지만 한국 전통옷을 팔고, 사람들이 보드카(러시아)를 마셔대며 마작(중국)을 두는 탈국적적인 공간이다. 뱀파이어 또한 모순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데, 상현의 경우 신부이자 뱀파이어로서 살아가야 하는 탓에 피를 갈망하되 살인을 하진 않는다는 역설에 빠져 있다. 상현과 태주의 사랑 또한 아이러니하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관계가 붕괴로 향한다. 이처럼 <박쥐>는 모순되고 역설적인 요소들을 시종 충돌시킴으로써 기존의 장르를 뒤틀고 새로운 경지를 만들어낸다.

<박쥐>는 ‘복수 3부작’에서 다뤄온 복수와 구원의 세계에서 박찬욱 감독이 빠져나갔음을 보여주지만,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그의 고민이 한층 깊어졌음을 알려주기도 한다. 이 영화 속 격렬한 정사장면도 인간 본질에 관한 그의 질문이 한층 격렬해졌음을 드러낸다. 촬영 전부터 널리 퍼졌던 ‘그 영화 너무너무 야하다며?’라는 소문만큼은 야하지 않다는 게 아쉽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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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9일 대한통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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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가기 전 오천항에 가야하는 이유

5월이 가기 전 오천항에 가야하는 이유

연합뉴스 | 입력 2009.05.11 09:09  

 

진한 갈색의 껍데기 속에 담긴 하얀 속살은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게 한다. 충남 보령의 오천항에 가면 입 안에 한가득 향긋한 바다 내음을 전해주는 키조개가 다양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봄의 정취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면 서해안에 들러 바다를 품은 키조개 요리를 맛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면 바다는 풍요로워진다. 겨우내 차가운 바다 속에서 튼실하게 살집이 오른 생물들이 어선을 하나 가득 채우고도 넘쳐난다. 봄에 바닷가를 가면 도다리쑥국에서부터 매생이국, 우럭젓국, 굴 구이, 주꾸미 요리 등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바다로 떠나는 봄날의 여행이 행복해지는 이유이다.

봄날에 꼭 맛봐야 할 해산물 중에서 단연 키조개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어디서든 사계절 언제라도 먹을 수 있지만 4~5월이 가장 크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지금 충남 보령의 오천항에 가면 커다란 껍데기에 하얀 관자를 품고 있는 키조개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봄날 오후의 오천항에는 작은 고깃배들이 따스한 햇살 아래서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어선들을 넘나들며 무언가를 나르는 어부들의 움직임이 없다면,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되어 화폭에 담긴 풍경화를 연상시켰다.

항구와 나란히 달리는 도로 한쪽에 트럭이 서더니 키조개를 하나 가득 바닥에 부려놓는다. 돌연 키조개를 손질하는 아주머니의 손이 분주해졌다. 한 손으로 키조개를 붙잡고, 껍데기 틈으로 날카로운 칼을 집어넣자 이내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은색 껍데기 안쪽에서 하얗고 동그란 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껍데기를 까는 것이 쉬워 보여도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잘 열리지도 않고, 손만 상하게 되죠. 키조개의 관자는 오천항 것이 전국에서 가장 커요. 껍데기 크기는 비슷해 보여도 막상 까보면 이곳 관자만큼 실한 것이 없어요."

키조개는 실제 보령의 청정 해역뿐만 아니라 전북 군산, 충남 장항ㆍ서천ㆍ서산, 인천 옹진군, 전남 고흥과 장흥 등 서해안과 남해안 연근해에서 많이 잡히고 있다. 그러나 남해안보다는 서해안에서 잡히는 것이 관자가 더 크고, 그중에서도 보령 해역의 키조개를 최고로 친다. 보령 해역의 키조개가 절반 이상이나 일본으로 수출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생긴 모양이 곡식의 검불을 골라내는'키'와 비슷하다하여 키조개라는 이름이 붙었고 다른 조개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향긋하며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키조개는 흔히 조개구이를 먹을 때 함께 나와 고추장, 양파, 고추 등의 갖은 양념과 함께 냄비에 조려 내거나 풋고추와 마늘, 초고추장을 이용해 오븐에 구워낸다. 그러나 오천항에서는 구이는 물론 회, 샤부샤부, 꼬치, 전골, 탕, 죽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맛볼 수 있다.

회는 큼지막한 키조개 3~4개를 잡아 내장을 도려낸 후 관자를 두툼하게 썰고, 외투막과 동물의 생식기에 해당하는 입ㆍ출수관을 분리해 접시에 함께 담아낸다. 겨자를 섞은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관자는 부드럽게 씹히고, 외투막은 쫄깃하며, 입ㆍ출수관은 아삭거릴 정도로 씹는 맛이 일품이다. 오래도록 씹다 보면 바다의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우며 행복감에 젖게 한다.

샤부샤부는 넓은 냄비에 미나리, 무, 대파, 팽이버섯, 양파를 넣고 국물이 우러나오면 회로 나온 키조개를 집어넣어 익혀 먹는다. 관자는 회로 먹을 때보다 쫄깃한 맛이 더해져 좋지만 나머지 부위는 샤부샤부로 먹으면 너무 딱딱해져 회로 먹는 것이 낫다.

평평한 철판에 버섯, 대파, 양파와 함께 고추장, 깨 등 갖은 양념을 넣고 굽는 철판 양념구이도 있다. 적당히 익으면 관자를 야채와 함께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 되는데 부드러운 관자가 야채, 매운 양념과 어우러지며 미각을 한껏 자극한다. 키조개 본래의 향과 맛은 느낄 수 없지만 입 안에 감도는 부드러움과 매운 맛은 적당히 뒤섞이며 침을 한껏 고이게 한다.

키조개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때는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키조개 맛에 매료돼 젓가락을 계속 들이밀다 보면 이내 포만감으로 배를 두드리게 된다. 키조개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요량이라면 회, 샤부샤부, 철판구이 등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부터 차례대로 양을 조절해가며 맛을 보는 것이 좋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임동근 기자(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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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니 모든게 우연이었다.

맨밥을 입속으로 밀어넣듯 세상을 살고있다.

누구나 그러하듯 그동안 몇개의 상처를 몸에 새겼고

그 상처의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내가 이길에 서게 된것도...

내가 그녀를 만나게 된것도...

 

돌아보니 모든 것은 우연이었다.

 

나비의 날개짓이 봄꽃에 내려 앉듯,

우연이라는 행복한 바람에 실려 두둥실 떠있는 느낌!

 

요즘의 내가 그렇다.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런 느낌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격렬한 삶의 한 가운데서 희미한 여행을 꿈꾸는 나는..

오늘도 정거장 주위를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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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휴가내내 비는 내리고...

휴가같지 않은 휴가를 보낸거 같다.

 

그래도 대전이라는 곳을 떠나

2박 3일 강원도 오대산, 평창군일대를 다녔지만

비내리는 폼이 무서워서 밖으로 다니지도 못하고 방콕 신세를 면하지는 못했다. 쩝!

 

지난주 비가 그리 싫더니...

오늘 부터 폭염이 시작되었다.덥다더워...

다시 비가 그리워진다.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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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축제 2007 Marx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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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힘을 믿는가?

오늘은 6월 항쟁 20주년이 되는 날이다.

1987년 내가 중학교 1학년때이다.

 

그당시 기억을 떠올려보려 하지만 난 친구들과 학교갔다가 웃고 떠들던 기억밖에 없다. ㅋ

뉴스 같은곳에서 혹 방송되지 않았을까? 기억하려해도 별로 기억나는건 없다.

 

아마 대학교에 들어와서 518광주의 진실과 6월 항쟁의 감동을 느꼈던거 같다. ^^

(아~~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엠비씨 9시뉴스에서 데모하던 사람들과 629선언으로 찻집무료라는 광고등...)

 

그리고 난 대학 새내기때부터 아무런 거부감없이 소위 말하는데모를 시작했다.

등록금투쟁부터 부패무능정권에 저항하는 데모를 시작했던것이다.

 

데모를 하면서도 학교 강의를 듣지못하는 아쉬움과 힘든 생활이 나를 이 대열에서 벗어나도록 유혹하였으나.... 결국 아직도 난 그 대열에서 벗어났다고 정확히 얘기하지 못한다.

 

물론 예전만큼 치열하게 살진 않는다. 나름대로 직장 생활을 주로 하고 틈틈히 실천행동도 하고, 토론회, 여러모임등을 통해 아직도 나는 끈을 놓지 않고 살고있다고 자족하며 산다. ㅋ

 

오늘(6월 10일) 케이비에스에서 하는 6월항쟁 2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지는 그날의 기억들...

아마 김동원씨의 다큐멘터리 '명동성당 그 6일의 기억'을 참고해서 케이비에스에서 제작한듯한 프로그램이다.

그 치열한 현장에서 당시 왜? 집으로 가지않고 명동성당에 남아있었는가? 라고 농성대에게 묻는 질문에.. '내가 여기서 나가면 남아있는 사람들은 잡혀가거나 고생할거 같아서였다.' 고 말한다.

 

이념적인것보다도 정치적인것보다도 사람의 신뢰였으리라.

 

나의 삶도 돌아보건데.. 그 힘들던 데모현장에서도 도망가지 않았던, 아직까지 여러사람들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지금까지도 이 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윗 선배의 말과 다르지 않다.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해서...함께하는 동지를 위해서..

(사실 내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지 부끄럽다. 동지! 동지..난 아마 동지를 생각하지못한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87년 명동성당앞 종로..을지로까지 가득 메웠던 그사람들..그

리고 전국 각지에서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쳐던 수많은 국민들 ...

 

그들은 이제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보이지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삶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고 있을것이다. 그들에게 그땐 열심히 살더니 지금은 투쟁의 현장에서 멀어졌다고 누가 돌을 던지겠는가?

 

그렇다. 지금 나름 단체에서 사회개혁, 변혁, 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물론 그들의 헌신과 열정을 높이산다. 그들만큼 이 사회에 물들지 않고 순수하고 좋은 사람이 있겠냐만은 간곡히 부탁한다.

 

그래도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시민단체활동가는 시민들 앞에 겸손할것이며,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통일단체 활동가들은 민중앞에 겸손해야할것이다. 우리는 민중들의 전폭적인 신뢰를 얻어야 만이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수 있다.

 

아니면 위정자가 더 철처하게 무능하고 독재적으로 변하길 바래야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사회는 예전처럼 독재사회도 아니다. 이제 민중들은 단체 실무자보다도 더 앞서서 사회문제를 토로하고 성토하고 있다.

 

민중들 앞에 겸손하라

정말 우리 사는 세상이 살기좋은 세상으로 변하길 바란다면 민중을 객체로 만들지 말고 주인으로 내세우도록 노력하라. 그것을 잊지 않고 일한다면 결국 민중들의 신뢰가 가장 기본적이며 결정적인 힘이라는걸 알게될것이다. 더불어 그것을 망각하지 않는 한 깃발은 절대 내려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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