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갈색의 껍데기 속에 담긴 하얀 속살은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게 한다. 충남 보령의 오천항에 가면 입 안에 한가득 향긋한 바다 내음을 전해주는
키조개가 다양한 맛으로 미각을 자극한다. 봄의 정취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면 서해안에 들러 바다를 품은 키조개 요리를 맛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봄바람이 살랑거리면 바다는 풍요로워진다. 겨우내 차가운 바다 속에서 튼실하게 살집이 오른 생물들이 어선을 하나 가득 채우고도 넘쳐난다. 봄에 바닷가를 가면
도다리쑥국에서부터 매생이국,
우럭젓국, 굴 구이, 주꾸미 요리 등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바다로 떠나는 봄날의 여행이 행복해지는 이유이다.
봄날에 꼭 맛봐야 할 해산물 중에서 단연 키조개를 빼놓을 수 없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어디서든 사계절 언제라도 먹을 수 있지만 4~5월이 가장 크고, 맛도 좋기 때문이다. 지금 충남 보령의 오천항에 가면 커다란 껍데기에 하얀 관자를 품고 있는 키조개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기다리고 있다.
봄날 오후의 오천항에는 작은 고깃배들이 따스한 햇살 아래서 오수를 즐기고 있었다. 어선들을 넘나들며 무언가를 나르는 어부들의 움직임이 없다면,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되어 화폭에 담긴 풍경화를 연상시켰다.
항구와 나란히 달리는 도로 한쪽에 트럭이 서더니 키조개를 하나 가득 바닥에 부려놓는다. 돌연 키조개를 손질하는 아주머니의 손이 분주해졌다. 한 손으로 키조개를 붙잡고, 껍데기 틈으로 날카로운 칼을 집어넣자 이내 반짝반짝 윤이 나는 검은색 껍데기 안쪽에서 하얗고 동그란 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껍데기를 까는 것이 쉬워 보여도 보통 사람의 힘으로는 잘 열리지도 않고, 손만 상하게 되죠. 키조개의 관자는 오천항 것이 전국에서 가장 커요. 껍데기 크기는 비슷해 보여도 막상 까보면 이곳 관자만큼 실한 것이 없어요."
키조개는 실제 보령의 청정 해역뿐만 아니라 전북 군산, 충남 장항ㆍ서천ㆍ서산, 인천 옹진군, 전남 고흥과 장흥 등 서해안과 남해안 연근해에서 많이 잡히고 있다. 그러나 남해안보다는 서해안에서 잡히는 것이 관자가 더 크고, 그중에서도 보령 해역의 키조개를 최고로 친다. 보령 해역의 키조개가 절반 이상이나 일본으로 수출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생긴 모양이 곡식의 검불을 골라내는'키'와 비슷하다하여 키조개라는 이름이 붙었고 다른 조개보다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하고, 향긋하며 달짝지근한 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키조개는 흔히 조개구이를 먹을 때 함께 나와 고추장, 양파, 고추 등의 갖은 양념과 함께 냄비에 조려 내거나 풋고추와 마늘, 초고추장을 이용해 오븐에 구워낸다. 그러나 오천항에서는 구이는 물론 회, 샤부샤부, 꼬치, 전골, 탕, 죽 등 다양한 조리법으로 맛볼 수 있다.
회는 큼지막한 키조개 3~4개를 잡아 내장을 도려낸 후 관자를 두툼하게 썰고, 외투막과 동물의 생식기에 해당하는 입ㆍ출수관을 분리해 접시에 함께 담아낸다. 겨자를 섞은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데 관자는 부드럽게 씹히고, 외투막은 쫄깃하며, 입ㆍ출수관은 아삭거릴 정도로 씹는 맛이 일품이다. 오래도록 씹다 보면 바다의 향기가 입 안을 가득 채우며 행복감에 젖게 한다.
샤부샤부는 넓은 냄비에 미나리, 무, 대파,
팽이버섯, 양파를 넣고 국물이 우러나오면 회로 나온 키조개를 집어넣어 익혀 먹는다. 관자는 회로 먹을 때보다 쫄깃한 맛이 더해져 좋지만 나머지 부위는 샤부샤부로 먹으면 너무 딱딱해져 회로 먹는 것이 낫다.
평평한 철판에 버섯, 대파, 양파와 함께 고추장, 깨 등 갖은 양념을 넣고 굽는 철판 양념구이도 있다. 적당히 익으면 관자를 야채와 함께 젓가락으로 집어 먹으면 되는데 부드러운 관자가 야채, 매운 양념과 어우러지며 미각을 한껏 자극한다. 키조개 본래의 향과 맛은 느낄 수 없지만 입 안에 감도는 부드러움과 매운 맛은 적당히 뒤섞이며 침을 한껏 고이게 한다.
키조개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때는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키조개 맛에 매료돼 젓가락을 계속 들이밀다 보면 이내 포만감으로 배를 두드리게 된다. 키조개 요리를 다양하게 맛볼 요량이라면 회, 샤부샤부, 철판구이 등 자극적이지 않은 음식부터 차례대로 양을 조절해가며 맛을 보는 것이 좋다.
사진/이진욱 기자(cityboy@yna.co.kr)ㆍ글/임동근 기자(dkl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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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입장과 이해관계를 벗어나 애도를 표합니다. 경건하게 장례식을 치르고 나서 새정치 민주화를 위해 제2의 촛불을 들어야 할것입니다.부가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