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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성이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unikorea
상가집에 갔다 돌아오는 길.. 날 참 춥구나..
집에와 잠이 오지 않는 긴긴밤 시집한권 들어 훑어 내렸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1960~89)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거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 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스스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면,
스스로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스스로를 사랑했다면 질투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질투는 너의 힘이었으리라.
스스로를 사랑해야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
또, 누군가를 사랑해야만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
집에 들어올때만 해도 아무렇지 않았는데..
진국형이 눈맞으며 걷고 있다고 전화가왔다.
새벽 1시가 넘어 나갔다.
정말 오랜만이다. 이런 함박 눈..
술한잔 하자고 했지만 진국형은 더 먹으면 안될거 같아..
만류했다. 사실 나도 한잔 하고 싶었는데..말이다. ㅋㅋ
한참을 걷다가 형이 집에 갈려나 보다.
눈이 많이 내려서 택시잡기는 쉽지 않았지만 ..결국 빠이~~~~.
가는 길. 몇번의 문자메세지를 교환했다.
'퍼붓는 눈길 애굿게 불렀다'
'혼자 맞았으면 서운했을텐데 함께 맞아줘서 고마워요'
'그려. 함께 맞는게 중요하지'
'제가 형에게 힘이되어줄수 있을까요? 항상 받기만 해서요'
'고맙다'
집으로 오는 길. 눈내리는 겨울밤에 춥게만 느껴지지는 않았다.
요즘 몸이 좋지 않습니다
젊은 녀석이 몸을 어떻게 굴렸기에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지...
일도 휴직하고 공기 좋은 곳에서 지내긴 하는데 스트레스때문인지
병은 나을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몸이 나아야 다시 일도 하고 보고픈 사람들도 만날터인데...
마음만 급하지 진작 내 병 다스리기엔 소홀했나봅니다.
좀 나았나 했더니 재발... 얼마 안있다가 다시 재발...
밤마다 찾아오는 통증때문에 잠을 설치기 일쑤지만
다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내 열정을 쏟아 부을 일들을 생각하며
잘 견텨내고 있답니다.
이번에 재발한 병도 빨리 나아야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 아버지를 뵐수 있는데...
아버지가 저때문에 걱정을 하실거 같아 건강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몸이 않좋으니 정신도 혼미해집니다. 정신차려야 지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매년 생각나는 정월 대보름 음식들...
여기에 더불어 어머니가 찹살로 새알심을 빚어 만들어주신 동지 팥죽도 그립다.
웹서핑하다가 생각이나서... 맛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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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늦가을 참 열심히도 호박을 말렸다. 늙고 노란 호박이 아니다. 한 번으로도 모자라 두 번, 세 번에 걸쳐서 말렸다. 그렇다고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두 번째까지는 궂은 날씨가 반복되어 마를라치면 눅눅해지고, 괜찮다 싶어 뒤집어보면 뒤쪽은 곰팡이가 탱탱 슬어 결국 썩히고 말았다. 아까웠지만 밭에 다시 버려야 하는 수고도 감수했다. '어어, 이러다 올 가을 정말 호박쪼가리는 날 샜나 보네'하며 거의 포기할 즈음 콩대를 베러 갔더니 호박이 대여섯 개나 슬며시 정체를 드러내는 게 아닌가. 기뻤다. 요, 이쁜 놈들을 조심히 싸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날이 더 선선해지고 하루 바짝 햇볕이 들자 쪼글쪼글 부각처럼 빠득 말랐다. 그걸 긁어모아 담는데 어찌나 맑고 고운 자연의 소리가 들리는지 소음에 찌든 귀가 고향의 소리를 들은 듯 즐겁다 했다. 여기서 내가 말렸던 호박은 기다란 마디애호박도 아니고 그렇다고 쇠어서 익기 직전 늙은호박도 아니다. 서리만 맞았다 하면 곯듯 얼음을 잔뜩 머금고 푹 떨어질 가장 늦가을에 열린 여리고 둥근 애호박이었다.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은 내 주먹덩이만 하다.
예전 어머니와 나는 동구 밖 마당바위를 소쿠리에 호박을 썰어서는 무던히도 오갔다. 일년 중 딱 하루를 위해서 보통 공력을 들이지 않았다. 어머니와 내가 연애하듯 호박쪼가리를 빌미삼아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때 여동생은 아직 어렸다. 그 아이가 벌써 서른하고도 다섯인데 호박 말릴 때는 절대 뒤집지 말아야 한다고 뭔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훈수를 두지만 들은 척도 안했다. 제까짓 게 뭘 안다고 함부로 오빠에게 아는 체를 하는가 말이다. 단 한 가지 비법도 아닌 비밀은 날 좋은 아침 일찍 얄팍하게 썰어서 말리고 날이 궂지 않을 성 싶으면 밤이슬을 맞혀야 더 쫄깃하고 가을 향기를 가득 품게 된다는 사실 뿐이다. 들기름과 들깨국물에 자작자작 조린 둘도 없는 나물 요리 아, 아쉬운 설도 지났다. 물리게 먹었건만 기름진 것 투성이었으니 이젠 정말로 속을 달랠 때다. 어루만져주고 다독여 보해주면 제들도 잇속 차린다고 뭔가 보답은 하지 않겠는가.
이에 보드랍고 살살 녹는 두어 가지가 있으매 한 가지는 두부와 쌀뜨물만 넣고 끓인 돼지고기요, 또 하나는 무채를 썰어 매한가지로 자작자작 물 잡아 끓여 숨죽인 하얀 나물반찬이다. 이도 아쉬우니 이제 본격 호박고지, 호박쪼가리로 어릴 적 어깨 너머로 흘깃흘깃 훔쳐보았던 기억을 더듬어 복잡다단하게 요리조리 할 것 없이 간단한 몇 번의 과정을 밟아 오늘의 주인공을 빛내고 내 살아 있는 미각을 일깨우고 싶다. 호박고지를 뜨뜻미지근한 물에 불려 놓으면 서서히 풀어진다. 곧 쪼글쪼글 잔주름을 펴면서 부풀어 오른다. 파르란 기운이 되살고 하얀 속살을 드러낸다. 덜 익은 호박씨도 야들야들해지니 굳이 떼어낼 필요가 없다. 느긋하게 제들끼리 변화무쌍한 변신을 하면 물을 따라버리고 꾹 짜둔다. 묵나물에 잘 어울리는 들기름과 멸치국물, 다진 마늘을 넣고 집 간장으로 간하여 지글지글 볶아놓는다. 이제 진짜 국물을 준비해야 한다.
들깨국물을 넉넉하게 잡고 볶아놓은 호박쪼가리를 넣고 맘껏 끓여주자. 속이 부글부글 끓듯 다갈다갈 끓는 모습을 한번 보라. 과장된 영화장면에서나 본 듯하다. 방구들이 지진 영향을 받아 들썩인다. 용암이 거품을 뽀글뽀글 뱉어내듯 얇실하고 넓게 뜬 수제비처럼 기지개를 한껏 켜고 양이 더 늘어만 간다. 여긴 흰 국물과 하얗고 포롬한 연둣빛이 다소 섞여 있을 뿐이다. 고춧가루는 애당초 쓸 명분이 없다. 국물 한 번만 떠먹어보고는 더 이상 퍼지지 않게 뚜껑을 열어 차가운 곳에 놔두자. 아직 오곡찰밥과 갖가지 나물이 대령하기엔 이를 뿐 아니라 호박나물은 시원하게, 가능한 차갑게 먹어야 진가가 발휘되니 "참아야 하느니라"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풋풋하고 달보드레하고 감칠맛 나고 쫄깃한 감동 식혀서 쌀쌀한 바깥에 두면 더 좋으련만. 상에 차릴 것 다 차려지는 동안 속에 부담되지 않은 것부터 한 수저 떠먹는 시식 시간이 잠깐 있으면 좋으리라. 그 중에서도 맨 먼저 내 손을 움직이게 하는 음식은 여태 만들어놓았던 호박고지나물이다. 다시 한기를 머금어 금세 약간은 쪼그라들었다.
손이 바빠진다. 고루 잘 퍼진 찐 찰밥이 당도하여 찹쌀과 팥이 으깨지면서 진득한 끈기로 풍악을 울리니 마침내 나는 자작한 국물과 건더기가 있는 호박나물을 떠 넣는다. 목멜 듯하다가 이내 정상을 되찾았다. 오랜 가뭄 끝 단비라고나 할까. 질겅질겅 씹힌다. 쫄깃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보드라운 입감에 질기지 않는 쫄깃함까지 곁들여졌다. 호박씨마저 볼가져 나와 이가 심심할 새도 없다. 달보드레하고 감칠맛이 난다는 건 이럴 때라야 정확한 표현이겠다. 하찮은 호박쪼가리가 내게 이런 근사한 감동을 선사하다니!
한참을 정신없이 먹고 있노라면 옆에 있던 사람이 불쑥 한마디 던지는 게 일상이었다. "너 혼자 다 먹을라고 그러냐?" "바깥에 많으니까 또 갖다먹으면 되잖녀." 미안한 마음에 부엌을 들락거렸다. 이게 볶음이던가. 조림일까. 에라 모르겠다. 볶다가 졸였으니 알아서 이름 짓자. 호박고지, 호박쪼가리 나물은 맞지 않은가. 나는 아직도 30년 전 어머니가 대충 만들어줬던 지독한 사랑, 그 맛을 잊지 못하여 오늘 오후를 어찌 보낼지가 명확해졌다. 오늘같이 좋은 날 어디 있는가. 아이와 아내를 위한 밸런타인데이에 작은 설 대보름까지 겹쳐 있으니 한번 부지런히 움직여도 아깝지 않은 날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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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다던 둘이 참 오랜만에 얼굴봤다.
전교조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윤희샘과 함께 봤다.
지강헌(영화인물 지강혁)이 마지막 외쳤던 여덟글자를 이전부터 알고있던 나로선 이 영화가 제작된다는 말을 듣고 기대했었다.
영화관에 불이 꺼지고..스크린에 하얀 화면이 나타났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태권도 공연의 송판처럼 무기력하게 무너지던 서울의 한 판자촌..
힘없이 자기의 집으로 들어가던 할아버지를 삼킨 무자비한 포크레인의 갈퀴는 내 가슴 속 한 가운데 긋은 선명한 핏자국 같았다..
외국인들에게 서울올림픽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판자촌에 사는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쓰레기(극중 표현)일 뿐이었다.
30만원을 훔치고 징역 7년 형에 보호감호 10년을 받고, 수십억을 횡령하고도 징역 3년 형을 받는 현실 속에서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저울을 든 법의 여신은 불행하게도 정의 구현하겠다고 자기 눈을 가린 헝겁에 의해 칼(공권력 - 경찰, 법원)이 저울(평등)을 내리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대접 받지 못하고, 사회에 불평등하고 비합리적인 법을 고발하고자 한 그들에게는 강도, 살인 등의 각종 범죄적 수식어가 붙었다.
1988년 10월에 실제로 일어난 인질범일당의 이야기를 가지고 관객들에게 '스톡홀름 증후군'을 유발시켰던 '홀리데이'를 보면서, 2시간동안 느꼈던 울분과 분노 그리고 오열.. 이는 어쩌면 범죄를 저지른 고위관직자가 1심 7년, 2심 3년이라는 뉴스를 보고 욕하는 영화속 인질의 모습이 우리의 본모습이고, '유전무죄 무전유죄' 를 외치면서 법의 부당함을 호소하던 지강혁에게 '특종' 거리의 스포트라이트를 키던 기자들이 지강혁일당이 소탕된 후, 경찰에게 박수를 치는 아이러니하고 야누스적인 영화 속 배경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자화상이여서 그런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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