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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문자전담원

나는 전화로 이야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은 아니어서 꼭 필요한 경우엔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사용하기는 하지만 웬만하면 문자나 메일을 선호하는 편이다. 왜 그럴까?


전화통화는 '리얼타임 소통'이다. 대화의 내용을 즉시 파악해서 지체없이 대응해야 한다. 머리회전이 그다지 빠르지 않은 나 같은 이들의 전화통화는 보통사람들의 그것보다 진의로부터 더 멀어질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통화의 내용외적인 부분에서의 어려움도 있다. 내가 지금 전화통화하기 적합한 상황인지 고려해주지 않고 전화벨은 울린다(혹은 떤다). 보통사람들이라면 간단한 설명으로 '본' 통화를 미루는 데 어려움이 없어보이지만 나 처럼 소심한 이는 그것이 쉽지 않다. 더 싫은 것은 반대의 상황, 즉 지금 나의 통화시도가 상대방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더구나 상대방이 나보다 더 소심한 분이라면 어쩔 것인지 등을 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리얼타임이라도 얼굴을 맞대고 하는 대화는 전화통화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 머리가 둔한 나라도 음성언어 이외의 정보들, 예를 들어 상대방의 행색, 표정, 몸짓, 그리고 그 옆에서 당사자 몰래 내게 어떤 신호를 보내주는 제삼자의 도움 등등을 활용하여 그 사람의 진의를 더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 내 의사를 피력할 때도 마찬가지의 도구들을 다 활용할 수 있어서 좋다. 이 경우, 내 진의를 왜곡할지 모르는 사각지대의 제삼자가 있는지 끊임없이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어려움은 충분히 감수할 만한 것이다.


어쨌든, 그런 고로 나는 문자나 메일을 선호한다. 역시 가장 좋은 것은 메일이다. 물론 이메일을 말하는 것이다. 총린지 먼지하는 작자가 말하는 재래식 편지는 싫다. 나는 소심한 것 이상으로 게으르기 때문에 방안에서 손가락 몇 번 움직여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쓰고 접고 넣고 봉하고 또 쓰고 칠하고 붙이고 들고 나가고 걷고 찾고 넣고 다시 돌아오는 수고를 감수하면서까지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메일이 짱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살다보면 내 편한대로만 할 수는 없기에 문자 주고받기라는 '준' 리얼타임 소통도 좀 해줘야 한다. 아무리 문자질에 능한 사람이라도 전화통화 만큼 빠르게 소통할 수는 없을 것이고 자타가 공인하는 느림보인 나같은 사람도 그럭저럭 충분한 대응시간을 확보할 수 있어서 좋다. 설사 송수신의 인터벌이 통상의 경우보다 더 길어진다고 해도 그리 곤란해할 건 없다. 어떤 기술적 장애가 일어났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신의 메시지가 내 단말기에 도착하는데 얼마 만큼의 지연이 있었는지 확신을 갖고 나를 추궁할 정도로 매정한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기 때문이다(...그래, 그래, 너는 빼고...미안하다 미안해~).


그러나 그렇게 '괜찮은' 수단인 문자질에도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 있다. 문자를 주고 받다보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내가 '가장 마지막 문자'를 쓰게 되더라는 것이다. 단순한 사무적인 내용의 경우에도 가급적이면 내가 마지막 문자를 써서 대화가 완료되었슴을 확인해 주곤하는데, 상대방이 이 문자를 제대로 수신했는지 못내 궁금해하는 쪽이 차라리 나인 편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속편하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적인 문자질에서는 더더욱 내가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인간적 관계를 지속-발전하고픈 상대방에게는 특히 더 예외없이 내가 최종문자를 보내게 되는데, 원체 별볼일 없는 사교 자원의 소유자인 내 입장에서 내가 얼마나 당신과의 대화를 소중하게 여기는지 티를 낼 수 있는 이 정도의 성의표시 마저 소홀히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 힘들다.


물론, 최종문자의 내용은 "네~^^", "잘 알겠습니다...:-)", "그래!!!", "ㅋㅋㅋ~" 등등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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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북이눈은 거기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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