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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4/08/26
    "한국, 아이 안 낳으려는 최악의 사회"
    free-vahn
  2. 2004/08/26
    [말도로르의 노래] 소개
    free-vahn

"한국, 아이 안 낳으려는 최악의 사회"

갈 수록 나라에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IMF 때 우리도 아르헨티나 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조금씩 징후가 보이고 있습니다.

더 두려운 건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답게 살기'란 단순히 웰빙이라던가 높은 문화환경 같은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마약, 타인의 선호도를 나무랄 자격이 없지만 '잘 먹고 잘 살겠다'는 확실히 '사람답게 살기'와 상호 배타적인 듯 합니다. 문장해석적으로는 전혀 그렇지도 않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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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이 안 낳으려는 최악의 사회"  
  출산률 세계최저, 부부가 1.19명밖에 안낳아 한국미래 암울

  2004-08-25 오후 2:16:46    

출처 : 관점이 있는 신문 프레시안 (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40825132620&s_menu=경제 )
  
  우리나라의 신생아 출산숫자가 지난해 사상최저 수치를 기록하는 등 신생아 출산률이 선진국 가운데 최저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이를 낳기를 포기하는 여성도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아이를 낳아 제대로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전세계에서 가장 아이 낳기를 두려워하는 나라, 한국
  
  25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3년 출생.사망통계 결과'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태어난 총 출생아 수는 49만3천5백명으로 전년보다 1천1백명이 줄어 지난 1970년 통계 집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1일 평균 출생아 수도 가임여성이 감소하면서 1천3백52명으로 전년의 1천3백55명보다 3명 줄었다.
  
  여성 1명이 가임기간동안 낳는 평균 출생아 수(출산률)는 1.19명으로 전년보다 0.02명 증가해 증가세로 돌아섰으나, 이는 지난해 가임여성 감소폭이 출생아 수 감소폭보다 컸던 데 따른 '일시적 착시' 현상으로 해석된다. 요컨대 아예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 여성들이 급증한 데 따른 착시현상이지, 출산률이 증가세로 반전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우리나라의 출산 감소현상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출산률이 1.19명인 데 반해, 한때 우리나라보다 출산감소 현상이 심각해 '국가문제화'됐던 일본의 지난해 출산률은 1.29명으로 우리나라보다 높았다. 서구의 경우도 한결같이 우리나라보다 출산률이 높았다. 미국이 2.01명(2002년)으로 가장 높았고 프랑스 1.88명(2002년), 영국 1.73명, 스웨덴 1.65명, 독일 1.40명, 이탈리아 1.26명, 스페인 1.25명, 그리스 1.25명 등이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각각 1.75명과 1.95명을 기록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93년 1.67명이던 출산률이 그후 급격히 낮아져, 지난 2002년에는 1.17명까지 급락했다.
  
  이처럼 출산률이 급감함에 따라 총출생자에서 총사망자를 뺀 자연인구증가 숫자도 24만7천명으로, 사상최저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여기에다가 최근 급증세를 보이고 있는 해외이민 등까지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절대인구가 줄어드는 날도 멀지 않은 분위기다.
  
  후대에게 짐만 지우는 사회
  
  이같은 출산률 급감은 여성들이 나날이 악화되는 교육환경, 취업환경, 경제환경 등을 고려해 출산을 기피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맞벌이를 해야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경제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는 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조사결과, 출산모의 평균 연령은 초혼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 29.8세로 10년 전보다 2.2세 높아졌다.
  
  또한 결혼후 2년이 되기 전에 첫 아이를 낳는 비율은 72.6%로 10년 전의 82.8%에 비해 10.2%나 낮아져 결혼후 첫째 아기 출산에 걸리는 기간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이는 아이를 낳기 전에 최소한 안전한 경제환경을 꾸리기 위해 출산을 늦추고 한푼이라도 저축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같은 상황은 최근 3년여동안 아파트값이 폭등, 신혼부부의 집장만이 한층 어려워지면서 한층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
  
  이같은 출산률 격감은 절대인구 감소라는 위기뿐 아니라, 이들 아이가 자라나 성인이 됐을 때 이들이 떠맡아야 할 고령층 부양 등을 위한 경제적 부담의 급증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앞으로 한국경제에 치명적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고령층 증가율이 세계최고여서, 이들 후대에게 전가될 부담이 대단히 높을 전망이다.
  
  아이 낳기를 두렵게 만드는 사회경제환경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얼마 뒤 한국은 회생불능의 침몰을 목격해야 할 판이다. 아파트값 거품을 빼고 세계최고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지도층이 매진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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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로르의 노래] 소개

"독자는 앞으로 읽게 될 내용처럼 대담하고 또 일시적으로 사나워져서, 음산하고 독으로 가득 찬 이 작품의 황폐한 늪 가운데서, 방향을 잃지 말고 가파르고 황량한 자신의 길을 찾아내기 바란다." 로 친절하게 시의 목적을 설명해주면서 이 시는 시작합니다.
류시화와 이외수를 만난 뒤로 제법 시와 친해졌다고 생각했고, 시를 많이 읽었다고 할 순 없지만 시를 통해 시인과의 공감대를 즐겼던 20살때 내겐 좀 충격적이었습니다. - 참고로 그때 꿈은 시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쑥스러움~~)

도무지 시의 첫 귀절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시작... [말도로르의 노래]는 서사시적인 성격을 띄고 있어 시 하나가 시집 한권입니다. 운과 율이 있지도 않으므로 산문으로도 볼 수 있는 시이지만, 시의 최고의 특징인 '모든 형식의 초월'을 무기로 시로 분류되고 있는 듯 합니다.
불어를 알지 못 해서 여음 형식을 띄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리고 곧바로 뒤통수를 쳐버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뒤따라올 다음 페이지들을 읽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만 몇몇 사람만이 이 씁쓸한 열매를 위험없이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소심한 자여, 너는 이런 미답의 황야에 더 멀리 들어가기 전에 너의 발길을 앞으로가 아니고 뒤로 돌려라. 내가 네게 말하는 것을 잘 들어라. 너의 발길을 앞으로가 아니고 뒤로 돌려라."
아무나 읽는 시가 아니라는 의밉니다. 분명 로뜨 레아몽은 호기심을 자극하려는게 아니고 진심으로 위험한 장난에 동참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사실 지금부터 말하고 싶은 부분이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은데 얼마전 부터 타인들의 세계에 편입할 요량으로 타인들의 습성과 습속을 따라하려 노력하다 도무지 맞지 않아 포기하던 시기에 이 시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구절입니다.

"좁은 어깨를 가진 사람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수 많은 어리석은 짓을 행하고, 그들의 동류를 바보로 만들고, 모든 수단을 써서 영혼을 타락시키는 것을 나는 일생 동안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의 동기를 영예라고 부른다. 그런 광경을 보고 나는 타인들처럼 웃고자 했다. 그러나 괴상한 모방인 그 짓은 불가능 했다. 나는 예리한 칼날이 달린 주머니칼을 들어 두 입술이 합해지는 지점의 살을 쨌다. 한순간 나는 나의 목적이 달성된 것으로 믿었다. 나는 거울 속에서 나 자신의 의지로 상처입은 그 입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오산이었다! 두 상처에서 철철 흘러내리는 피 때문에 진정으로 그것이 타인들의 웃음과 같은 것인지를 구별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얼마 동안 비교해 본 다음, 나의 웃음은 사람들의 웃음과 닮지 않다는 것, 즉 나는 웃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잘 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웃음을 모방하고 싶어서 자신의 양 입 끝을 찢었지만(마치 [베트맨]에서의 조커처럼..) 그래도 타인의 그것들과 다른 자신의 얼굴.. 그때 제 심정이 바로 이래서였습니다.
남들 다 좋아한다는 효리, 전지현, 파리의 연인.. 대중음악... TV프로그램.. 화제 ... 등을 좋아해 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남들과 다른, 악수하지 못 하는 나를 체념해해 할때였었습니다.

어디에도 정박하지 못 하는 나, 부평초 처럼 남들과 화제를 공유하지 못 하고 이상을 공유하지 못 하고 삶의 태도를 공유하지 못 하고...

여하튼 [말도로르의 노래]는 꽤 과격하고 잔인하고 난폭합니다. 제가 [말도로르의 노래]를 읽게 된 계기도 보들레르와 함께 악마주의, 난폭한 시인이라는 문구를 봤기 때문입니다.

시의 내용 중 몇 가지 사례를 표현하려고 했지만 곧 지워버렸습니다. 너무 난폭해서..
공포영화광이라면 devil doll의 음악을 틀어놓고 습한 지하방에서 읽으시면 이 시의 효과는 극대화 됩니다.. ^^;;

또 하나의 연상작용은 요즘 말이 많던 증오범죄(hate crime)에 대한 소식을 접했을 듯 합니다.
참고로 전 [seven]이란 영화를 보고 악역을 맡은 연쇄 살인자의 논리에 '약간'은 동의했었습니다. 신곡의 일곱가지 범죄를 행하는 사람들을 처형한다면 사회정의는 실현될 수 있겠다던... (물론 동참하고 싶진 않습니다.. ^^;; )

여하튼.. 지금 다시 [말도로르의 노래]를 보고 있습니다. 가끔 로뜨 레아몽의 고독을 느끼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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