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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기토 명제의 도출 과정에 대한 문제제기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도 코기토 명제의 도출 과정에 대해 의문점들을 좀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 몇가지는 아래 학생의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대답을 읽은 뒤에 어느 정도 해결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의심가는 것이 있어 이렇게 질문 드립니다. 회의를 중요한 철학적 방법으로 설정한 데카르트인 만큼, 그의 명제에 대한 제 의심에 대해서도 그가 기특하게 생각해 주길 바라면서 말입니다. ^^

 

먼저 데카르트 자신은, "나는 사유한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이끌어낼 때 사용한 논증 구조에 대해 별다른 부연을 하지 않은 듯 합니다. 이 논증은 "어떤 것이 사유한다는 사실은 바로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함축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를 좀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어떤 것이 사유한다는 사실은 어떤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제한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것이 사유한다"는 말은, "어떤 것이 [이미] 존재하며, 그렇기에 그것은 사유한다[고 말해질 수 있다]"는 명제로의 확장에 의해서 그 사유 행위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유 행위의 증명으로부터 존재의 증명으로 이어지는 추론 과정은, 그 두 증명의 엄격한 선후관계에 기반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는 사유한다"는 명제에 대해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가 후행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앞의 명제로부터 뒤의 명제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논리적인 것이든, 직관적인 것이든, 혹은 하나의 절대적인 흐름이든 간에,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다고 가정된 이 세계에서, 심지어 악령의 가설을 통해 수학적 사실마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이 상황에서는, 그러한 '과정'에서 어떤 왜곡, 어떤 방향 전환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유한다"는 명제에 대해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선후관계상 앞선 것으로 생각할 경우에만 우리는, "나는 사유한다"의 확실성을 인정하는 동시에 "나는 존재한다"의 절대적 필연성을 선취된 것으로서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추론과정은 다음과 같은 명제를 암묵적으로 도입하고 있다고 생각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행위자가 사유한다는 것은 그 행위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명제에 엄격히 따르자면, 어떤 행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이미 증명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즉 전제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그 행위자가 사유한다는 것 역시 말해질 수 없습니다. 데카르트의 경우, 그는 "내가 의심한다"는 그 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는 확고한 것으로 규정하고 그것으로부터 의심하는 "나"의 존재를 증명합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 그는, 의심하는 행위의 행위자인 "나"의 존재가 아직 증명되지 않았으므로 "나는 의심한다"라는 명제 역시 참으로 간주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듯 합니다. "프랑스 왕"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의 여부를 미리 증명하지 않은 채로 "프랑스 왕은 대머리다"라는 명제의 참/거짓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존재하지도 않는 프랑스 왕에 대해서 그가 대머리다, 혹은 아니다라고 얘기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나는 의심한다"는 명제는, 어떤 특별한 이유, 이를테면 그것은 의식 외부의 대상과 관계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의식의 내부로부터 알려진다는 사실 등에 의해서, 위에서 우리가 논증 과정 속에 암묵적으로 들어와 있는 것으로 동의했던 명제─행위자의 사유는 그 행위자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명제─의 도움 없이도 증명이 가능하다고 가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제의 도움 없이는 어떤 행위자가 사유한다는 사실로부터 그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로써 여전히 "나"의 존재여부는 불투명한 것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행위자가 사유한다는 것은 그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명제에 동의할 경우, 우리는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 없이 "나는 사유한다"는 것을 참으로 간주하지 못할 것이며, 그 명제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나는 사유한다"는 사실로부터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이끌어내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저의 생각입니다. 나름대로 하나의 완결된 사고과정 속에서 도출한 결론인 만큼, 그 과정 바깥에서 바라볼 경우 쉽게 오류가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저로서는 그곳이 어디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읽고 지적해 주세요.

 

그럼 다음 수업시간에 뵙겠습니다.

 

덧) 지난 수업에 몸이 좋지 않아서 가지 못했거든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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