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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는 왜 저렇게 무섭게 생겼을까? 다리도 길고 그걸 살짝 꺾어서 사방으로 뻗은 채로 쭉쭉 나아가는 모습을 무심결에 고개를 들다가 모니터 위쪽 벽에서 발견해버렸다. 소름이 확 돋아서 어떡할까 하고 백 번쯤 고민하다가, 홈X파(모기약)를 뿌렸다. 그런데 효과가 거의 없었다. 아마도 살충액이 분사되어 나오는 힘에 살짝 놀란 듯, 다시 성큼성큼 천장쪽으로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아니, 이렇게 자세하게 묘사할 생각은 아니고, 어쨌든 그 뒤로도 또다시 이백 번은 고민하다가 결국 휴지를 많이 뭉쳐서 눌러 죽이고 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렸다. 근데 요새 부쩍 드는 생각이, 이렇게 죄책감이 심하게 들 수가 없다. 죄책감뿐만 아니라, 나한테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인데, 왜 그런 애들이랑 같이 살 수 없을까?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런 애들을 보면 몸서리를 치고 몸이 뻗뻗하게 굳어버려야만 할까? 누가 나한테 저 녀석이 무섭다고 가르쳤을까? 혹은, 원래 무서운 동물인 것일까? 그게 진실일까, 저 거미라는 녀석은?!
우리 집에는 여러 가지 곤충들이, 다행히도 가끔 출몰하는데, 내가 무서워하는 녀석들은 그리마(돈벌레)와 거미다. 이 두 종류가 특히 무섭다. 바퀴벌레도 싫지만 얘는 우리집 근처에는 안 사나 보다. 나방 종류도 무섭지만 얘도 다행히 찾아오지 않는다.
그리마도 아주 어린 녀석을 휴지로 눌러서 죽인 적이 있다. 살겠다고 줄행랑을 치는 걸 굳이 죽여서 버린 이유는, 저 놈이 크게 자라서 다시 찾아올까봐 두려워서였다. 그런데 커 봤자 엄지손가락만한 녀석을(역시 상상만해도 불쾌하지만서도) 도대체 왜 두려워하고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것일까?
갑갑하다.
우리 집에는 그리마와 거미 말고도 개미들이 아주 많이 산다. 지붕과 벽이 연결되는 부분 틈새 어딘가에 아마도 큰 집이 있나보다. 쉴 새 없이 줄줄이 내려와서 어딘가 갔다가, 또 쉴 새 없이 집으로 향한다. 아주 가느다랗게 한 줄로 가기 때문에, 내려오던 녀석과 올라가던 녀석이 예외 없이 맞부딪친다. 그러면 더듬이끼리 마주대고 아마도 서로 무슨 신호를 주고받는 모양이다. 그렇게 만나는 친구들마다 더듬이로 인사를 하는지, 아니면 먹이가 있는 곳의 정보를 얻는지 어쩌는지는 몰라도 어쨌든 그렇게 스킨쉽을 꼭 하고 지나간다. 얘네들은 보고 있으면 아주 귀여워 죽겠다. 요새는 에어컨 위쪽에 무슨 먹을거리가 있다고 그 쪽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서 또 줄줄이 간다. 가끔은 넋을 놓고 바닥에 앉아서 애들이 지나다니는 걸 구경한다.
하여간 중요한 건, 개미는 안 무서운데 왜 거미와 그리마는 무섭냐는 것이다. 아, 이것만 해결되면 애들과 같이 살 수도 있고, 따라서 불필요한 살생도 막을 수 있을 텐데. 어찌해야 할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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