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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오늘 새터책 회의에 들어가서, "우리의 존재 자체가 죄악일 수도 있다"고 얘기했다가, 납득이 안 간다는 대답을 들었다. 나도 안다, 전략적인 과장이었다. '고민하는 척' 하는 게 제일 싫어서 그랬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는 과장이 아니기도 하다.

 

권력은 최대한으로 버려야 한다. 물론 생존법으로서의 권력은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의 수혜를 입고 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에게 그 말은 유효하지 않다. 그 사람은 바로 '남자'다.

 

여기서 물론 '남자'는 여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성적 소수자도, 장애인도 아니며, 학벌이 좋으면 설상가상이요, 결과적으로 재산도 있고 성격도 좋으니 첩첩산중인 인간의 종류를 말한다. 버려야 할 권력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이 중에 한 가지 권력을 완전히 버릴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지만, 문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문제는 이 다종다기한 권력들의 '한 곳으로 모이려는 경향성'이다.

 

이 권력의 결집체를 나는 그냥 '남자'라고 부른다. 기독교 신교(개신교)중에 대한예수교 장로회 합동측을 그냥 '기독교'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물론 이건 나의 어법일 수도 있지만, 이들이 스스로를 나머지의 '대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권력은 또 다른 권력을 찾아 모여드니 그 이름(이를테면 남자)으로 보통 지칭되는 영역 내에서 실제로 차지하는 비율도 가장 높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일리는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남자'의 경우, 모든 권력들이 그의 어깨 위로, 혹은 발 밑으로 집중되어 있다. 그는 움직이는 권력덩어리다. 많은 사람들의 그의 존재만으로 불쾌감을 느끼는 건 억지로 둘째치더라도, 세상에서 벌어지는 온갖 악행들이 바로 자기가 서 있는 사회적 기반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나는 말한다. "'남자'는 존재 자체가 해악이다."

 

그래서 '남자'는 '권력을 어떻게 버려야 하나' 하는 질문에 앞서 다음을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왜 살아야 하나.' 좀 다른 맥락이긴 하지만 까뮈가 "진정으로 철학적인 문제는 단 하나뿐이며, 그것은 자살"이라고 했을 때 그는 제대로 짚은 것이다. 단 하나뿐인지는 모르겠으나, 거기가 출발점(혹은 도착점)은 맞다.

 

무기력하다. 나도 안다. 그러나 그 무기력을 곧장 딛고 일어서는 '남자'들에게 나는 '충분하지 않다'고 이야기하겠다. 자신의 어깨 위에 얹혀진 사회적 책임의 무게는 알량한 두 개의 다리 근육으로 버텨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 잘못이 있으면 내가 무언가를 해서 그걸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하지 않음으로써 바꾸어지는 부분이 꽤 크다는 걸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권력의 자신감은 정말 메스껍다.

 

덧) 조금 고민하다가, 이것 역시 일부분이라는 걸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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