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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꿈 _ 2005년 구정 연휴의 기억 1

"...

  수많은 것들의 물컹물컹한 무게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생각해 보면 죽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해온 듯한 느낌이 든다.
  어릴 때부터. 태어나기 전부터.
  그것을 알아버린 듯한 느낌이 든다.
  그걸 앞으로도 계속해 갈 듯한 느낌이 든다.
  싫더라도. 죽을 때까지. 죽고나서도.
  하지만 지금은 휴식할 때가 왔고, 많은 일들이 오래 끌기도 했고 피곤해서 이제 졸리다. 오늘 하루가 끝난다. 다음에 눈뜨면 아침 해가 눈부시게 비치며 또 새로운 자신이 시작된다.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본 적도 없는 하루가 생겨난다. 어릴 때 시험이 끝난 방과후나, 특별활동 대회가 있었던 날 밤에는 언제나 이런 느낌이 들었다. 새로운 바람 같은 것이 체내를 떠돌아다니고 틀림없이 내일 아침에는 어제까지의 일이 전부 말끔히 제거되어 있을 게다. 그리고 자신은 가장 근원적인, 진주와도 같은 빛과 더불어 완전히 눈을 뜨겠지. 항상 기도하듯이 그렇게 생각했다. 그 당시와 비슷한 정도로 단순하고 순수하게 그렇게 믿을 수가 있었다."

 

요시모토 바나나, 단편집 [도마뱀] 中 '김치꿈'에서...



나도 언젠가 이런 느낌을 가지고 싶다. 아니, 아마도 가지게 되지 않을까, 이런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직접적으로 와닿았다. 하지만, 아직은 아닌 것 같아. 조금 더 무게를 견디며 어디까진가 가겠지. 많이, 정말 많이 피곤해질 때 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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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깅이라...

이번 연휴에 하고싶었던 일이 많이 있었는데, 결국 먹고 노는 것 만은 충실히 된 것인가?

하고싶은 일 중엔 지난 여행 사진을 정리한다거나 블로그를 제대로 시작해보는 일도 들어있었는데, 결국 출근 시간을 불과 몇시간 앞두고 미련이 남아서 접속해버렸다.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싸이에 애써 지어놓은 집과 뭐가 다를까

나는 왜 블로그를 만들려고 하는걸까

쓰기 편하고 트랙백 걸고 스크랩 하기 편하다는 점이 있긴 하지만, 남의 포스트도 잘 안읽는 주제에...

그래도, 진보넷에서 블로그를 만들면서 꿈꿨을, 사이버상에서의 대안적 공동체, 뭐 그런 공간이 의미있다고 믿기 때문일까

한 때 언니네에 자방에서 느꼈던 편하고도 비밀스런, 그런 느낌을 원하는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면서, 블로깅에 돌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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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족자

[인도네시아] 족자 - 크라톤, 워터캐슬

연주와 노래 소리로 밖이 아주 씨끄럽다. 덕분에 알람도 울리기 전에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요일. 잘 들어 보니 이 노래소리 속에 "예수"라던지 "할렐루야" 같은 말들이 섞여있다. 무슬림 국가에서 교회 예배보는 소리라... 특이했지만, 씨끄러우니 빨리 방을 빠져나가는 수 밖에.
아침을 먹으러 내려가니, 위층으로 올라가란다. 알고고니 이 숙소엔 옥상정원 같은 게 있었던 것이다. 아침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내가 주문했지만 후회스러운 나시고랭(볶음밥)을 먹고 커피를 두 잔 얻어마셨다. 얼른 방에 가서 선크림을 최대한 바른 후 편한 T셔츠와 무릎 까지 오는 얇은 치마 차림으로 나선다.

오늘은 족자 시내에 있는 크라톤 구경. 크라톤은 술탄 팰리스를 중심으로 한 이 도시의 오랜 도시 구역인 것 같은데, 낮엔 무료로 전통 무용 공연도 하고 타만 사리(워터캐슬)이라 불리는 곳의 유적과 박물관도 있다고 한다. 노점상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한참 걸어 도착하긴 했는데, 입구가 어딘지 한참 헷갈린다. 횡한 벌판 같은 곳을 뚫고 갈 때만 해도 정면에 입구가 있겠거니 했는데, 아니고, 주변에 있는 각종 탈것 기사들이 서로 자기꺼 타라고 우기는 가운데 겨우 제대로 입구를 찾아서 들어갔다. 한숨 돌리고 입장권 사고 내부 구경. 단체로 온 서양 여행객들이 꽤 많다. 궁전은, 언제 지었는지 잘 모르겠고 지금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호화로워 보이긴 했으나 사실 나의 관심사는 아니었다. 곳곳에 실내 전시장들이 있었는데, 역시 역대 술탄들이 쓰던 바틱, 물건, 각종 공예품 등을 전시해서 여전히 별로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도자기 몇 점을 보면서 역시 느낀 건, 이번 여행 초기 대만에서 궁정박물관에 다녀온 뒤로 눈을 버렸다는 것이다. 중국의 긴 역사에서 태어난 수준급의 도자기들을 다 보고 와버렸으니, 이제 무슨 도자기를 봐도 시시해 보이는 것. 게다가, 한국 역시 한 도자기 하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어릴 때 부터 재미 없는 수학여행 등으로 방문했던 박물관들에서도 많은 도자기를 봐왔다. 게다가 전공이 전공인지라, 조는 와중에라도 강의실에서 한중일의 유수한 도자기는 한번 쯤 곁눈질을 할 수 있으니 (그러고 보니, '동양도자사'라는 수업도 들었었는데... 뭐가 남았는지는 모르겠다. 쩝), 동남아에 있는 도자기가 눈에 차겠는가 말이다.

그저 그런 궁전 구경과 달리, 한 시간 쯤 진행된 무용 공연은 무척 흥미로웠다. 연주는 베테랑 할아버지들이, 춤은 새ㅏ란 무용학교 학생들이 추는 듯 했는데, 세 가지 종류의 공연을 보여주어 자바 공연예술의 맛배기로는 충분했달까. 담배피고 차마시면서 여유 작작 악기를 두드리고 노래하고 추임새도 넣으시는 할아버지들의 연주도 인상적이었고, 무용수들이 두르고 나온 전통적인 소품, 가면, 가발, 분장, 의상 등도 볼만했다.

이제 그만 술탄팰리스 구역에서 나가볼까 하는데 어떤 사람이 따라와 가죽 꼭두각시 인형 만드는 데는 가봤나고 한다. 나는 또 내가 놓친 박물관이 있나 하고 얼른 따라나섰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이곳 직원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걸어 나를 데려다 준 곳은, 영 수상한 가게 같은 곳. 아, 또다! 이전 바틱 전시들과 같은 상황이 재연된다. 이런 식으로 관광객을 꼬셔서 데려와서 판매하는 것이 이 동네 관습(?)임이 분명하다. 이 집의경우 조상대대로 가죽 인형을 만들어왔다고, 만드는 법 등도 설명을 해준다. 과연 하나 만드는 데 3주씩 걸리는 정교한 예술 맞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인형극도 보고싶기는 하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를 위해 이걸 제작하지만 원하면 파리도 한다."는 말이 나온 순간, 나는 대충 인사하고 돌아서서 나왔다. 역시나, "왜, 관심 없냐?"는 질문이다. 사실 이 질문은 지역 문화, 전통 예술 같은 이야기들에 껌뻑 죽는 여행자들을 향해 날리는 이들의 마지막 승부수임이 분명하다. 관심이 없긴 왜 없나, 그러니까 삐끼한테 낚여서 여기까지 왔지. 물론, 그 바틱 페인팅이나 이 가죽 인형이나 예술 맞다. 아름답고 가치있다. 게다가 이번 가죽 인형은 길거리에 널린 바틱 페인팅과 비교하기 좀 미안할 만큼 진짜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자신들의 전통문화를 이런 식으로 팔아먹는 건, 게다가 좀 솔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팔아먹는 건 정말 별로다. 이들이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식으로 여행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음성적인 특수 시장이 형성되는 것 보다는 시장질서로부터 자유로운 공공적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아니, 적어도 반둥의 사웅 앙쿨룽 우조 처럼 어느 정도의 자부심과 체계와 재생산 시스템 정도는 갖추어지면 좋겠다.

여하간에 고맙다고 하고 그 공간을 나섰다. 이런 경우 내가 화가 나는 건 장사하시는 분들이 아니라 삐끼들이다. 순간이나마 그들이 보여준 호의에 대해 신뢰를 보낸 것이 이런 식으로 배신당한다는 게 마음에 걸려서이다. 하지만, 지금 쯤은 익숙해져 버려서, 별 말 없이 타만 사리 가는 길을 물어보고 더 이상의 친절을 사뿐히 거절해주는 정도. 가는 길에 배가 고파지길래 길가 작은 식당 구역(?)에 들러서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한 잔 시켜 기차에서 받았던 빵과 함께 먹었다. 이걸로 점심은 끝! 아무도 영어를 할 줄 모르지만 모두 관심을 가지고 잘 해주려고 최선을 다하는 정겨운 모습들이 좋았다.

골목을 구비구비 들어가자 타만 사리라고 생각되는 유적들이 나왔는데, 인상적인 건 딱히 복원의 흔적도 없이, 18세기 중엽'술탄의 특별한 즐거움'을 위해 어떤 포르투갈 건축가가 만들었다는 그 건물과 수로와 목욕탕의 잔해들 사이에서 여전히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물론 가장 큰 건물의 잔해는 거대하게 남아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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