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의 해방을 위해서

-<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에 대한 비평

 

쥬리(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한지희 선생님께서 저술하신 <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에서는 20세기와 21세기 한국의 대중문화에서 소녀가 어떤 존재로 재현되어왔는가를 계보학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소녀를 남성중심적 판타지에 부응하는 ‘순진열렬’한 존재로 재현하는 대중문화에 비판적 입장을 취하면서, 한국의 소녀들이 가지게 되는 여성의 육체와 성애에 대한 지식과 양태가 자기 이해와 배려에 기반한 것이 아닌 대중매체를 통해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주어진 양상들을 모방하는 형태로 형성된다고 본 저서는 지적하고 있다. 본 저서는 한국 대중문화에서 주류적으로 재현된 소녀의 표상의 허구성과 남성중심성을 밝혀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본 저서에 대해 첨언하고 싶은 부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본 토론에서는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이십대 초반의 여성으로서, 그리고 청소년기부터 청소년운동에 몸담아온 활동가로서, 특히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에서 여성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주제로 활동해온 사람으로서 <우리시대 대중문화와 소녀의 계보학>을 비평하고자 한다.

 

0. 소녀, 누구인가?

 

본 저서에서는 전반적으로 ‘소녀’를 십대 여성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소녀라는 용어가 현대 시기에 이르러서는 9세 이상 19세 미만 여성을 이르는 것으로 법률적으로는 규정되었으나 초중고대학생 여성을 아우르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하고, 연령과 상관없이 소녀적 특성을 가진 여성에게 소녀라는 명칭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고 서두에 밝힌 부분이 있으나, 전반적으로 본 저서에서 소녀의 주체성이 필요함을 역설할 때 이는 십대 여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대중문화에서 어떤 소녀상이 재현되어왔는가에 대해 서술한 부분들에서는 그 소녀가 십대 여성만을 의미하는지, 혹은 보다 광범위한 범주인 젊은 여성을 의미하는지, 혹은 여성 재현 전반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인지 모호한 부분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대중문화 속 걸그룹 비평에서 현아가 청소년기본법상 24세 이하이므로 청소년에 해당된다고 소녀의 범주로 놓는데, 만약 소녀를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한 미성년의 여성으로 정의하는 경우 현아는 소녀에 해당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의 범위에 대한 고민이 있어왔지만 나이를 이유로 정치적, 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하는 계층인 청소년의 인권을 주장한다는 측면에서 20세 이상, 만 19세 이상의 권리를 청소년운동의 의제로 놓기는 어렵다는 쪽으로 합의되고 있다(24세 이하 20대가 청소년으로 명명되는 때는 권리를 제약당할 때가 아니라 할인 혜택이나 복지 수혜의 순간인 경우가 많다). 소녀시대 또한 본 저서에서 비평한 <Oh!> 활동 당시와 그 이후에는 전 멤버가 20대였으니 청소년은 아니었던 셈이다. 이효리의 경우도 <10 minutes> 활동 당시 20대 중반이었다.

물론 대중문화에서 걸그룹 표상은 해당 인물의 나이와 상관없이 소녀의 재현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십대를 포함한 대중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으므로 무조건 분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소녀의 범위를 보다 명확히 정의하고 일관된 용어사용이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은 있다. 미성년자로 취급되는 사람과 성년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받는 대접에는 심각한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십대에서 2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어린 여자로 비슷하게 받는 취급이 존재하지만, 그러한 맥락에서 분석하더라도 그들 집단을 어떻게 명명할지에 일관성이 필요할 것이다.

나이가 십대인 여성 연예인들이 재현되는 방식이 아니라 ‘소녀성’ 혹은 여성 청소년에 대한 관념이 주류 대중문화에서 재현되는 방식을 분석하는 것도 유의미한 작업이다(본 저서에서도 드라마와 영화에 대해서는 후자의 분석이었다). 20대인 걸그룹들도 청소년의 상징인 교복을 입고 공연을 하거나 뮤직비디오를 찍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이 성인임에도 교복을 입게 되는 이유, 교복을 입은-십대인 척 하는-걸그룹이 대중과 이른바 삼촌팬에게 어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우리 사회에서 십대 여성들이 어떤 존재로 취급받고 있는가와 연관 지어 분석해도 좋을 듯했다. 이효리의 경우 <10 minutes>이나 <유고걸> 보다는 자신을 억압하는 부모에게 복수하고 붉은 립스틱을 아무렇게나 바른 채 카메라를 노려보는 여자 어린이와, 학생을 체벌하고 추행하는 교사를 골탕 먹이고 학생들을 선동해서 교실을 난동과 파티의 장으로 만드는 여학생이 등장하는 <Bad girls> 뮤직비디오를 분석하는 것이 대중문화 속 대안적 십대 여성상의 표상으로 해석하는 데 적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1. 소녀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청소년에 대한 분석도 필요하다

 

다중적 소수자 집단이 모두 그렇겠지만, 여성 청소년의 문제는 여성문제, 혹은 청소년문제 중 하나로 환원될 수 없다. 여성 청소년은 ‘청소년’인 여성이기에 이 사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을 극대화된 형태로 경험하기도 하고, ‘여성’인 청소년이기에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차별을 극대화된 형태로 경험하기도 한다. 여성 청소년이 겪는 문제는 비청소년 여성이 겪는 것과도 다르고 남성 청소년이 겪는 것과도 다른 지점들이 있다.

 

여성 청소년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의 변천을 살피기 위해서는 이 사회가 청소년을 어떤 존재로 대우하고 재현해왔는지, 그 속에서 청소년의 실천들은 무엇이 있었는지에 대한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소년을 민족해방을 위한 주체로 여기는 민족주의자들의 시선은 유효성을 잃었고 오히려 황국신민으로 길러내고 우량아를 선발하고 아동을 보호/애호하자고 외쳤던 일제의 시선을 근대 남한은 계승하였다. 근대 국가의 청소년에 대한 관념과 정책에서 기본적으로 남성 청소년을 전제한 것은 명확하지만, 소녀 서사도 이러한 청소년 전반의 문제와 분리되지 않고 동시에 연관되어 변화해온 것이다. 오늘날 청소년은 미디어와 언론에서 위험한 존재로-무서운 십대들, 병적인 존재로-사춘기, 중2병, 게임중독자 등, 미성숙하고 무능력한 존재로 재현되고 있다. 청소년의 지위와 재현의 연관성 속에서 여성 청소년의 문제를 논의하지 않으면 간과하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2. 실제 소녀들은 어떻게 사는가?

 

많은 여성주의자들이 성 상품화와 외모지상주의를, 특히 청소년이 접하는 성 상품화와 외모지상주의를 우려하고 있다. 교복 광고에 걸그룹을 모델로 삼는 것이라든지, 화장품 광고를 십대 여성을 타겟으로 하는 일 등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사안은 한 가지 관점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첫 번째로 여성에게 특정한 외모를 갖출 것을 요구하고 외모지상주의를 조장하는 문화의 측면에서 볼 수 있고, 두 번째로 자본주의 하에서 청소년 소비자에게 팔 수 있는 상품을 생산하고 청소년을 타겟으로 광고가 이루어지는 측면에서도 분석할 수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학생다운’ 용의를 강요하는 학교와 청소년의 외모 꾸미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비판하는 관점으로도 접근해야 한다. 이 가운데서 여성 청소년들은 특정한 외모를 갖고 싶은 욕망을 가진, 또 여자라면 외모가 어떠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을 받는 여성으로 성장한다. 그러면서도 외모를 꾸미고 싶은 욕망을 억압하는 학교를 다녀야 하고, 외모를 꾸민다는 이유로 어른의 얼굴을 한 사회의 눈초리를 견뎌야 한다. 용돈과 알바비를 모아 화장품을 샀는데 화장을 한다는 이유로 학교에선 벌점을 받고 화장품을 뺏기는 상황, 알바를 하거나 친구들과 만날 때는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듣는 상황이 여성 청소년의 상황이다. 그렇기에 여성 청소년의 외모 꾸미기는 성인 여성의 그것과 똑같은 관점으로 분석해서는 안 된다. 여성 청소년에게 외모 꾸미기란 순응이면서도 저항이고, 개인적인 취향의 실천이면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 행위다.

 

문화적으로 표상되는 상과 실제 사람들의 삶 내지는 실천을 뒤섞어서 동일시하는 경우 놓치는 부분들이 생기기 쉽다. 가령 본 저서에서는 주류적 대중문화에서 소녀가 어떻게 표상, 생산, 소비되는지를 보여주지만, 실제로 촛불집회 등 여타 정치적 순간에 ‘소녀’라고 할 수 있는 여성-유청년들의 실천이나 행동은 구체적으로 다루어지지 않고 주류 대중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처럼 묘사가 되는데, 과연 그러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본 저서에서 다룬 최근의 대중문화는 주류 드라마와 영화, 대중가요에 해당하는데, 자본에 의해 의도적으로 기획되고 생산되는 대중문화는 아니지만 대중에게 통용되는 문화까지 포함하여 대중문화를 정의한다면 보다 다룰 수 있는 범위가 넓어진다. 이를테면 각종 집회시위와 정치의 장에 등장하는 여성 청소년들은 어떤 요구를 하고 있으며 그들을 언론과 미디어는 어떻게 재현하는가, 그리고 대중은 그들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는가에 대해 분석할 수 있다. 현재 많은 여성 청소년들이 읽고 쓰는 팬픽을 대중문화의 한 부분으로 다룬다면, 남녀 간, 남성 간, 여성 간 로맨스와 섹스에 대해 그들이 어떤 관념과 환상을 공유하고 생산해내는지를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 ‘여덕’들의 존재에 초점을 맞춘다면 자본이 각계각층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어떤 측면에서는 획일적이면서도 또한 다양한 대중문화 상품을 생산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남/녀 아이돌 그룹에 대한 그들의 열정과 다양한 팬 활동에서 드러나는 일종의 성적 주체성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f(x), 레드벨벳 등은 여덕이 많은 대표적인 걸그룹이다. 그들 걸그룹도 대체로 가부장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고 남성중심적인 이상적 소녀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기도 하지만, 여성 청소년을 포함한 여성들이 그녀들에 열광하는 것은 단지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이상적 소녀상을 주입 당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3. 대안적 소녀문화의 장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결국 소녀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 여성 청소년 개개인이 신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고 정신적·심리적으로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미래를 준비(그녀들은 이미 여성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나는 준비라는 단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본 저서는 제시하고 있다. 여성 청소년들이 롤모델로 삼기에 바람직한 대중문화의 소녀 재현(분노하는 소녀)의 등장이 필요함을 역설하고 있기도 하다. 그 필요성에 반대하는 것은 전혀 아니나, 여성 청소년들이 무력화되고 주류 대중문화가 남성중심적인 소녀상을 제시하는 것은 현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 그리고 그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여성 청소년이 개인의 자질로써 주체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청소년의 실천과 투쟁이 필요함을 이야기하고 싶다.

가령 본 저서에서 대안적인 소녀 재현의 예로 이야기하고 있는 이효리의 경우, 이효리는 가장 해방적으로 자신을 재현하는 순간에도 결국 자유주의적인 개인으로 자신을 묘사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어느 아이콘이 대중적 움직임을 불러일으키는데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여성 청소년들이 어떤 정도로든 조직화된 힘으로 목소리를 내고 변화를 만들어낼 힘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떠한 아이콘이 등장하더라도 유의미한 대중적 움직임을 만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본에 의해 주류 대중문화 상품이 기획되고 생산되는 이상, 그리고 청소년이 경제적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부모와 국가의 부양과 호의에 기대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주류 대중문화가 여성 청소년 친화적으로 변화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 저서에서 서론과 결론에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은 여성 청소년의 자율적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 강화인데, 자율적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이란 결국 개인의 역량이라기보다는 사회구조가 누구에게 시민됨을 허용하고 있는가에 달린 문제이다. 그렇기에 여성 청소년들은 자율적 민주시민의 역량을 가지기 이전에 먼저 뭉치고 연대하고 투쟁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청소년운동을 하는 활동가의 입장에서는, 여성 청소년 개개인을 자유주의적 주체로 교육시키는 기획이나 주류 대중문화에서의 대안적 롤모델 제시보다 청소년을 경제적/정치적 무능력자의 위치에 놓이게 하고 여성 청소년의 몸과 성을 억압하는 학교와 사회를 조직화된 청소년의 힘으로 바꾸어내기 위한 정치적 전망을 만들어내고 싶은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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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7 19:26 2016/08/07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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