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positive, positive, positive

 

햇살 내리쬐는 한낮에 케이티 페리의 firework 뮤비를 보다 눈물이 주룩주룩-

-하는 걸 느끼면서 내가 지금 마음이 약해져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호르몬 탓이죠.

 

 

 

.

트위터로 리트윗하기

변화

 


서울대 동성 애자 동아리 큐이즈의 '게이가 어때서? 레즈가 어때서?' 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에 '생명이 어떻게 태어 나는지 아느냐' 라는 스탬프를 찍고 다닌 건 어떤 미대생의 졸업전시회 작품의 일환이었다고 합니다. 미친 놈.

Dec 03 via Twitter for iPhoneFavoriteRetweetReply
 

 


왠 미친 미대생이 졸업작품이랍시고 퀴어동아리 포스터에 how could your life be created? 란 도장을 찍어대곤 졸 업작품으로 전시도 한댄다 ㅋㅋㅋㅋㅋ '이성애 권고 동성애 반대 캠페인'이라나? 이런 천하의 미친놈/년이 ㅋㅋㅋ

Dec 02 via webFavoriteRetweetReply
 

 

 
superlover666윤지현 Christina
 
in reply to @superlover666


@superlover666 아무리 그래도 캠퍼스 내 호모포빅 행위의 갑은 이화여대였죠. 중앙동아리가 금수같은 행위를 용인하냐느니 하는 성토를 하고 레 즈비언 행사 포스터에 상습적 테러를 가했던 개신교인들 ㅎㅎㅎ

Dec 03 via webFavoriteRetweetReply
 

 

 
nightstreetsnnnnnnnn
 
in reply to @nightstreets

@nightstreets 같은 과 다니는 애 얘기를 들어보니까 유명한 개신교도라 하더군요.
Dec 03 via Tweetbot for iPhoneFavoriteRetweetReply

 
15년 전에 대학 다녔다.
그 강산이 한 번 반을 변하기 전인 시절에도 당연한 줄 알고 살았던 별것도 아닌 PC함이
철없는 이상론, 귀찮은 과민함, 들어본 적도 없는 외계어 취급을 받는다는 걸
나이 다 먹은 다음에 느꼈다.
난 그게 내가 처했던 환경이 사회 평균보다 너무 리버럴하고 먹물틱했어서 그런가보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10 여 년이 흐른 뒤,
내가 다녔던 그 학교, 내가 속했던 그 단과대, 내가 활동했던 그 동아리가 얽힌 사건 얘기를 듣고는
그게 내가 처했던 이 환경 저 환경같은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의식 수준이 시대를 지나
그렇게 정말로 '변한' 걸지 모르겠단 생각을 비로소 했다.
 
학생이었던 시절,
적어도  미대 안에선 성정체성을 굳이 애써 감추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나 동성 좋아해'가 '나 짬뽕 좋아해'나 비슷한 수준으로 친우들로부터 망각되기 일쑤였다.
설사 꼴마초적 생각을 가졌더라도, 그걸 공공연히 드러냈다간 비웃음이나 살 것이므로
의도적으로 당당하게 표출하는 사람도 없었다.
기독교 동아리들도, 당시에도 비신자인 애들이 이해할 수 없어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멍청한 짓을 잘났다고 벌이고 다니진 않았다.
 
근데,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그런 놈이 이젠 나올 수 있었던 거다.
 
사회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개방적이고 유연해지기만 하는 줄 알았던 적도 있다.
얼마든지 반동과 역류가 일어난단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근데.. 뭐 아무리 시시한 짓이었을 지언정,
그 반동이 실제로 내가 살았던 장소에서 현현한 것을 보니 느낌이 다르다.
 
요즘 젊은 애들은-이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만 해도 이전 선배들에게서 받고 누렸던 자산을
후배들에겐 온전히 전해주지 못한 괴로운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
사회-경제학적 해석이야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 내가 더 보탤 필요도 없을거고.
안철수씨는 심지어 앞세대 대표로 젊은 세대에게 사과도 했다.
그만큼 우리들이 살아온 인생 자체에 일정분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현재는 현재고.. 문제는 타개해야 할 미래다.
특정 장소가 아니라 정말로 세상이 변한 거라면.. 어떻게 다시 방향을 잡게 만들어야 하나?
 
 
그런데 한편..
 
 
lgbtaction동성애자인권연대
 
in reply to @lgbtaction


@lgbtaction 서울대는 장애인이나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전시도 표현의 자유라고 할판이군요.

Dec 05 via Twitter for iPadFavoriteRetweetReply
 

 

 
파인로
LapizVerde파인로
 
 
Troll
hnbtqTroll
 
in reply to @hnbtq


@hnbtq@LapizVerde 미국은 스펙트럼에서 극단에 있는 나라이긴 합니다만, 예로 드신 것들은 다 표현의 자유로 보호됩니다. 유 럽쪽에서 종종 나치/유태인 관련해서 난리치는 건 그 사람들의 역사가 좀 험했고 실제로도 전범이었기 때 문이죠.

Dec 03 via webFavoriteRetweetReply
 

 

 
 
Troll
hnbtqTroll
 
in reply to @hnbtq


@hnbtq@LapizVerde 당연히 명예훼손이나 중상이 인정되는 경우는 있지만, 저 포스터처럼 불특정 집단에 대한 발언이 인정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과 사적 영역에서 불이익은 인정되지만 대부분은 표현의 자 유가 우선됩니다.

Dec 03 via webFavoriteRetweetReply
 

 


방금 리 트윗한 지점에서 이 일로 '피해'를 입은 건 '서울대 퀴어들'이란 관점에도 동의할 수가 없다. (@GimikoQ) 포스터 문구 자체가 도발적이었던 것으로 본다면 저 ' 작품'이야말로 고대했던 몰상식한 반응 아닌가.저녁에 회의 가기로 해놓고선 그냥 착잡하다. 나는 '우리' 가 무슨 '피해'를 입었다는 건지 잘 모르겠는데.

Dec 04 via EchofonFavoriteRetweetReply
 

 


"이에 QIS는 미술대학 디자인학부에 (1) 해당 작품의 전시를 철수하고, (2) 반인권적이고 차별적인 작품으로 주어진 졸 업자격을 박탈할 것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Dec 04 via webFavoriteRetweetReply
 

 


"이에 대해 디자인학부의 한 교수는 "미적 수준이 너무 낮지만 않으면 통과시킨다. 지금은 (작품이) 수정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고 본다"며 "심사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해명했다." 정답.

Dec 05 via webFavoriteRetweetReply
 

 


포스터에 도 장찍어 상처받았다는 분들은 G7 포스터가 훼손당했을 때 세훈찡의 마음도 헤아려주셨을까.

Dec 05 via twiccaFavoriteRetweetReply
 

 


<QIS에 대한 공식적 사과문> 이라는 제목으로 스누라이프에 올라온 글입니다. #SNU 안녕하세요 이번에 미술대학에서 졸업전시를 하게 되었던 맹성규 학생입니다. 과대표님을 통해 연락을 해 오신 분과 또... http://t.co/J3nYmvJm

Dec 05 via twtkrFavoriteRetweetReply
 

 


예술가 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는 사회. 그것도 고작 저런 방식으로. 아..... 우울하다.

Dec 05 via Twitter for iPhoneFavoriteRetweetReply
 

 


QIS에서 '도장찍기'를 '명백한 차별, 테러, 폭력행위'로 규정해준 덕에 맹성규씨 입장에선 이해도 쉽고 사 과하기도 간편해졌다.

Dec 05 via webFavoriteRetweetReply
 



 


S대 맹모 학생의 작품도 아무튼 예술작품이라고 할 수는 있을 듯. 레니 리펜슈탈의 <의지의 승리>와 <올림 피아>처럼 의도가 쓰레기인..

Dec 05 via webFavoriteRetweetReply
 




"의도가 쓰 레기"
Dec 05 via webFavoriteRetweetReply


 
 
제이슨의 트위터에서 보듯, 말할 자유에 방점을 찍는 것도 불가피하단 측면이 있다.
제이슨이 언급한 '미국적' 상황처럼
말은 말대로 얼마든지 씨부리되 그로 인한 비난이나 불이익을 감수한다-
라는 것이 이론적으론 맞는 얘기란 거다.
문제는 여기가 그렇게 불이익이 날아올 만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란 거지.
일전에 피임 문제로 페미니스트들과 제이슨 측의 부딪힘이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성 쪽에서 피임약을 복용하는 게 주체척 성행위일진대 어째서 상대방이 콘돔 안써준다고 징징대냐-는 건
양쪽이 정말로 동등한 상황일 때에라야 흠결없는 인식이 될 거다.
불평등한 성인식과 잘못된 성교육이 기본 전제인 상황에서는
어느쪽이 피임을 하느냐가 그저 서로의 형편을 고려한 합의 도출이기 어렵다.
 
이론적으로야 제이슨이 옳은 얘길 하고 있느니만큼
그는 여자애들이 왜 저런 한물 간 시대착오적 히스테리를 고집하는지 갑갑해한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개개별별의 두려움과 위험은 그는 실감을 해볼래야 해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원래는 가지지 말았어야 한 공포이더라도 말이다.
'남자애들도 좀 콘돔을 써줘, 피임약 먹는 게 니들 생각처럼 그저 만만한 일이 아냐'
라는 여자애들의 목소리는
원래 자리해야 할 그 '원칙'으로 가는 데에 필요한 절실한 부탁이다.
 
물론, 그때 설전 벌였던 대다수의 여자애들도
당장의 위험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니깐
제이슨이 마초 꼰대질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원칙을 얘기하고 있는 거란 걸 인지하지 못했다.
뭐, 못했는지 아님 알고도 무시했는지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는 예전보다, 약자쪽이 가지는 공포감이 더 강해졌다.
정말로 달라진 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사회가 전혀 돌봐주지 않은 채 취직 못할 거라는 공포가 젊은 애들을 순응하는 가축으로 만들었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후퇴한 채 고착되어가는 젠더의식이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경색된 예민함을 갖게 하듯.
점점 더 꼴통이 되어가는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이 인권운동가들로 하여금 긴장에 찬 방어의식을 갖게 하듯.
90년대~2000년대를 거치며 일정 성과를 이루며 수면 위로 올라온 것들이,
이후 별다른 진보를 이루지 못한 채 '가시적 타겟' 노릇만 하는 것 같단 느낌도 있다.
 
 
 
 
이래저래 '변화'란 것에 대해생각하다 보면...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그거다.
누군가가 기어이 길바닥에다 피를 쏟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진정으로 변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그게 인간사의 원칙인 게 아닐까,
무혈혁명이란 게 정말로 실현 가능한 것이기나 할까...
그런 생각으로 귀결되는.
 
제이슨의 트위터에서 보고 생각이 들었듯, <br>
말할 자유에 방점을 찍는 것도 불가피하단 측면이 있다.
제이슨이 언급한 '미국적' 상황처럼
말은 말대로 얼마든지 씨부리되 그로 인한 비난이나 불이익을 감수한다-
라는 것이 이론적으론 맞는 얘기란 거다.
문제는 여기가 그렇게 불이익이 날아올 만한 사회적 공감대가 이루어지지 않은 곳이란 거지.
일전에 피임 문제로 페미니스트들과 제이슨 패거리들간의 부딪힘이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성 쪽에서 피임약을 복용하는 게 주체척 성행위일진대 어째서 상대방이 콘돔 안써준다고 징징대냐-는 건
양쪽이 정말로 동등한 상황일 때에라야 흠결없는 인식이 될 거다.
불평등한 성인식과 잘못된 성교육이 기본 전제인 상황에서는
어느쪽이 피임을 하느냐가 그저 서로의 기호를 고려한 합의 도출이기 어렵다.
 
이론적으로야 제이슨이 옳은 얘길 하고 있느니만큼
그는 여자애들이 왜 저런 한물 간 시대착오적 히스테리를 고집하는지 갑갑해한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개개별별의 두려움과 위험은 그는 실감을 해볼래야 해볼 수도 없을 것이다.
그게 아무리 원래는 가지지 말았어야 한 공포이더라도 말이다.
'남자애들도 좀 콘돔을 써줘, 피임약 먹는 게 니들 생각처럼 그저 만만한 일이 아냐'
라는 여자애들의 목소리는
원래 자리해야 할 그 '원칙'으로 가는 데에 필요한 절실한 부탁이다.
 
물론, 그때 설전 벌였던 대다수의 여자애들도
당장의 위험에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으니깐
제이슨이 마초 꼰대질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원칙을 얘기하고 있는 거란 걸 인지하지 못했다.
뭐, 못했는지 아님 알고도 무시했는지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는 예전보다, 약자쪽이 가지는 공포감이 더 강해졌다.
정말로 달라진 건 바로 그것이 아닐까.
사회가 전혀 돌봐주지 않은 채 취직 못할 거라는 공포가 젊은 애들을 순응하는 가축으로 만들었듯.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오히려 후퇴한 채 고착되어가는 젠더의식이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경색된 예민함을 갖게 하듯.
점점 더 꼴통이 되어가는 근본주의 기독교도들이 인권운동가들로 하여금 긴장에 찬 방어의식을 갖게 하듯.
90년대~2000년대를 거치며 일정 성과를 이루며 수면 위로 올라온 것들이,
이후 별다른 진보를 이루지 못한 채 '가시적 타겟' 노릇만 하는 것 같단 느낌도 있다.
 
 
 
 
이래저래 생각하다 보면... 정말로 두려운 것은 그거다.
누군가가 기어이 길바닥에다 피를 쏟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진정으로 변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닐까,
그게 인간사의 원칙인 게 아닐까,
무혈혁명이란 게 정말로 실현 가능한 것이기나 할까...
그런 생각으로 귀결되는.
 
한편..15년 전에 대학 다녔다.
그 강산이 한 번 반을 변하기 전인 시절에도 당연한 줄 알고 살았던 별것도 아닌 PC함이
철없는 이상론, 귀찮은 과민함, 들어본 적도 없는 외계어 취급을 받는다는 걸
나이 다 먹은 다음에 느꼈다.
난 그게 내가 처했던 환경이 사회 평균보다 너무 리버럴하고 먹물틱했어서 그런가보다고 해석했다.
 
그런데 10 여 년이 흐른 뒤,
내가 다녔던 그 학교, 내가 속했던 바로 그 단과대, 내가 활동했던 바로 그 동아리가 얽힌 사건 얘기를 듣
 
고는
그게 내가 처했던 이 환경 저 환경같은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성원의 의식 수준이 시대를 지나
그렇게 정말로 '변한' 걸지 모르겠단 생각을 비로소 했다.
 
학생이었던 시절,
적어도  미대 안에선 성정체성을 굳이 애써 감추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거나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나 동성 좋아해'가 '나 짬뽕 좋아해'나 비슷한 수준으로 친우들로부터 망각되기 일쑤였다.
설사 꼴마초적 생각을 가졌더라도, 그걸 공공연히 드러냈다간 비웃음이나 살 것이므로
의도적으로 당당하게 표출하는 사람도 없었다.
기독교 동아리들도, 당시에도 비신자인 애들이 이해할 수 없어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저렇게까지 멍청한 짓을 잘났다고 벌이고 다니진 않았다.
 
근데, 불가능하리라 여겼던 그런 놈이 이젠 나올 수 있었던 거다.
 
사회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개방적이고 유연해지기만 하는 줄 알았던 적도 있다.
얼마든지 반동과 역류가 일어난단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근데.. 뭐 아무리 시시한 짓이었을 지언정,
그 반동이 실제로 내가 살았던 장소에서 현현한 것을 보니 느낌이 다르다.
 
요즘 젊은 애들은-이라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나만 해도 이전 선배들에게서 받고 누렸던 자산을
후배들에겐 온전히 전해주지 못한 괴로운 부채 의식을 갖고 있다.
사회-경제학적 해석이야 끊임없이 나오고 있으니 내가 더 보탤 필요도 없을거고.
안철수씨는 심지어 앞세대 대표로 젊은 세대에게 사과도 했다.
그만큼 우리들이 살아온 인생 자체에 일정분의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된 현재는 현재고.. 문제는 타개해야 할 미래다.
특정 장소가 아니라 정말로 세상이 변한 거라면.. 어떻게 다시 방향을 잡게 만들어야 하나?
 
 
 
한편..

,

트위터로 리트윗하기

회복

 

스스로 돌볼 수 없어지고 있는 상태인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늘 있다.
 
발 디딘 육체에서,
모르는 새에 혼은 날아간다.
흔한 농담처럼, 정말 혼이 날아간다.
 
 
 
하지만 그래도,
난 반박의 여지 없이 많이 회복했다.
 
술을 마실 수 있다.
다시 두려움 없이 음주욕을 느낄 수 있고.
마시면 다시 술이 맛있게 느껴지고.
술기운이 숨막힐 듯한 고통과 공포가 아니라 다시 알딸딸한 즐거움으로 느껴지고.
 
다시 영화관엘 가고 카페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외출이 가능하다.
이젠 큰맘먹고 심호흡 하고 두려움을 이겨내지 않고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낙서도 할 수 있다.
의무감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예전만큼 일상적인 행위로 돌아오진 못했다.
그래도 이젠, 그리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자괴감이나 울고 싶어지는 불안감 없이도 그릴 수가 있는 것이다.
펜을 손에 잡지조차 못했던 나날들에 비하면야.
 
김PD와 만나던 날,
그애가 '한 대 피운다고 죽진 않죠'라며 물려준 담배에서
1년 만에 그 연기를 들이마시며
'내가 낫긴 나았나보다'라 말했던 것처럼.
 
 
 
난 확실히 많이 나아졌어.
더 나아질 수도 있을거야.
.
스스로 돌볼 수 없어지고 있는 상태인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늘 있다.
 
발 디딘 육체에서,
모르는 새에 혼은 날아간다.
흔한 농담처럼, 정말 혼이 날아간다.
 
 
 
하지만 그래도,
난 반박의 여지 없이 많이 회복했다.
 
술을 마실 수 있다.
다시 두려움 없이 음주욕을 느낄 수 있고.
마시면 다시 술이 맛있게 느껴지고.
술기운이 숨막힐 듯한 고통과 공포가 아니라 다시 알딸딸한 즐거움으로 느껴지고.
 
다시 영화관엘 가고 카페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외출이 가능하다.
이젠 큰맘먹고 심호흡 하고 두려움과 싸우지 않고도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
 
낙서도 할 수 있다.
의무감이 아니라 하고 싶어서.
예전만큼 일상적인 행위로 돌아오진 못했다.
그래도 이젠, 그리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자괴감이나 울고 싶어지는 불안감 없이도 그릴 수가 있는 것이다.
펜을 손에 잡지조차 못했던 나날들에 비하면야.
 
김PD와 만나던 날,
그녀가 '한 대 피운다고 죽진 않죠'라며 물려준 담배에서
1년 만에 그 연기를 들이마시며
'내가 낫긴 나았나보다'라 말했던 것처럼.
 
 
 
난 확실히 많이 나아졌어.
더 나아질 수도 있을거야.
 
.
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