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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

 

엊그제 만화가 김지은씨가 돌아가신 걸 알게 되었다.
웹질 중 여느때처럼 들어가본 그 사람의 블로그.
안그래도 최근 들어서는
'아.. 이 분, 이젠 힘든건가'란 느낌을 죄책감과 함께 갖게 했을 만큼
상태가 많이 안좋아 보였는데,
바로 6월 2일에 겨우 올린 듯한 짤막한 한 줄 남짓한 포스팅에
더 이상 약은 무용지물이며 부모님 계신 본가에 내려와 있다-고..
그 글을 보고도 맘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는데.
다음날 댓글이 엄청 달렸길래 그저 격려의 글들이려니 하고 펼쳤다가,
바로 전날 밤에 돌아가셨노라고 제자인 오은지씨가 소식을 전한 것을 본 것이었다.
 
허망하고 안타깝고 슬펐다.
엄청난 팬까진 아니었어도, 내 십대 시절 그분의 데뷔부터 늘 봐왔던 작가다.
그간 출간된 책들의 8할은 다 책장에 꽂혀 있을 정도로는.
 
게다가 그분 암 투병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생을 향해, 작업을 향해, 저돌적일 정도로 포지티브하게
있는 힘을 다해 노력하던 터였다.
남의 불행을 상대적으로 이용하고 싶지 않다는 윤리적 차원의 미안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힘들 때 종종 그 작가의 블로그를 찾곤 했었다.
치열하리만치 열심히 사는 모습은 경외감을 지닐 만한 것이었고
난 '이렇게 힘든 사람도 이렇게 사력을 다해 사는데'라는 기분을 거기서 얻고 싶어 했었다.
 
그 투지도 그림도 생활도 자잘한 취향도 사념들도..
하루 사이에 사라진 것이다.
어제와 오늘이 그토록이나 돌이킬 수 없이 다른 것이다.
 
그 블로그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는
장염이라고만 생각하고 고생하다가, 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고..하는
일련의 지난 글들을 다시 보았다.
진단 받은 것이 2009년 9월이더라.
재작년 늦여름만 해도
원고해야 되는데 왜 이렇게 장염이 안 나아~라 불평하고 있었을 뿐인데,
그 후 2년을 못 채우고 유명을 달리한 것이다.
인간이란 이런 것이다.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기에, 하물며 운명은 영영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육체는, 또 거기에 얽힌 정신은, 이렇게나 유약하고 불안하다.
'산다는 것'이.. 얼마나 있는 힘을 다해 부여잡아야 하는 것인지 다시금 느낀다.
갖춰지고 주어진 조건이란 게 과연 우리에게 있을까.
관성적으로 흘려버려도 될 것이 과연 존재는 하는 것일까.
그저 살아 존재하는 것조차 얼마나 힘이 드는 것인지
나 또한 고작 이 정도 병으로도 뼈저리게 겪었다.
 
고해의 생을 사는 인간이란 존재에게 예의와 도리를 다하기 위해선
정말로.. 살기 위해 사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슬픈 가운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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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자취

 

1주일 뒤면 마지막 술자리를 한 지 1년이 된다.
마지막 담배 개피를 문 지도 이미 반년이 넘었다.
의식적으로 애써 참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금주나 금연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 않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오랜동안 늘 너무 당연하게 내 구성 성분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걸
이번에 치료하는 과정을 거치며 여러 모로 많이 겪었다.
모든 게 조각조각 해체되어 부서졌다가,
이제는 조각들을 새삼 일일이 들여다본 뒤에 재조립하는 느낌이다.
 
습관은 기억에 남아있다.
셀 수도 없는 술자리에 가졌던 감흥들,
담배를 태워 무는 손과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들.
기억에 남아있는 그 느낌들을 다시 마주하게 될까-
-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어쩐지 생경하다.
분명히 내가 겪어 알고 있는 감각들임에도 마치 남의 일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평생 누군가와 술자리를 하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 인생 역시 남의 일처럼 느껴지긴 마찬가지다.
습관의 기억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다.
아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마시게는 될 거라 생각한다.
다만 이젠, 음주가 다시는 그저 익숙한 행위이진 못할 것이다.
 
 
2010년 6월 7일 뉴욕 JFK, 두려움과 화와 외로움이 범벅이 되어 반쯤 취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2010년 11월 25일 미금역 할리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워 문 담배는 무슨 맛인지 알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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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1월 25일 미금역 할리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워 문 담배는 무슨 맛인지 알 수도 없었다.1주일 뒤면 마지막 술자리를 한 지 1년이 된다.
마지막 담배 개피를 문 지도 이미 반년이 넘었다.
의식적으로 애써 참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금주나 금연을 하고 있다고도 생각 않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오랜동안 늘 너무 당연하게 내 구성 성분인 줄 알았던 것들이 낯설어지는 걸
이번에 치료하는 과정을 거치며 여러 모로 많이 겪었다.
모든 게 조각조각 해체되어 부서졌다가,
이제는 조각들을 새삼 일일이 들여다본 뒤에 재조립하는 느낌이다.
 
습관은 기억에 남아있다.
셀 수도 없는 술자리에 가졌던 감흥들,
담배를 태워 무는 손과 입술에 느껴지는 감촉들.
기억에 남아있는 그 느낌들을 다시 마주하게 될까-
-라고 생각해보는 것이, 어쩐지 생경하다.
분명히 내가 겪어 알고 있는 감각들임에도 마치 남의 일인 것 같다.
그렇다고 내가 앞으로 평생 누군가와 술자리를 하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할 수 없다.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 인생 역시 남의 일처럼 느껴지긴 마찬가지다.
습관의 기억이, 그렇게 느끼도록 만든다.
아마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 마시게는 될 거라 생각한다.
다만 이젠, 음주가 다시는 그저 익숙한 행위이진 못할 것이다.
 
2010년 6월 7일 뉴욕 JFK, 두려움과 화와 외로움이 범벅이 되어 반쯤 취한 채 비행기에 올랐다.
2010년 11월 25일 미금역 할리스,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피워 문 담배는 무슨 맛인지 알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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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 매일 & 종일 삽니다.

 

 

 

그러노라면 지겹고 그러니까.

일전에 G모님 블로그를 보니 그분은 일하다 빡치면 화장을 쳐발쳐발 하신다고.

나도 빡치니깐, 뭔가 벡터가 비슷한 짓을 하게 되는데.

작년 여름 이후로 계속 처박혀 있던 하이힐을 한밤중에 느닷없이 꺼내 방안에서 신고 있는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에 걸친 의복 상태는 요가 팬츠에 보풀 잔뜩 일어난 면티.)

 

물론 난 저거 신고 5미터 이상 걷지도, 3분 이상 서 있지도 못함미다.

근데도 저런걸 꺼내서 발에다 꿰고 있더라고.

 

 

 

신고 나갈 일도 없을 신발을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혼자 방구석에서 신는 것처럼,

세상 어느 구석의 어느 누군가들이 혼자 남들 안보는 데에서

뭔 짓들을 하며 목숨 붙은 나날들을 버텨내고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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