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아침

오랜만에 시원하게 혹은 눅눅하게 비가 왔다.

 

자다가 서늘해서 깨기를 여러번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고

 

적당이 식을때를 맞추기 위해

 

그다음 순서 ..... 씻는 거다 잠을 깨기 위해

 

수건으로 얼굴을 비빌 때면 완전히 현실 세계에 돌아온다.

 

왜이리 잠 깨는 것이 어려운 것인지..

 

꿈을 많이 꿔서 그런걸까.

 

가끔은 생각도 나지 않는 꿈들때문에

 

아침에 한참을 헤맨다.

 

여기가 어딜까.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내려다 본다.

 

보통은 아래보다 위를 보기를 좋아 하지만

 

워낙에 높다 보니 하늘 조차도 눈높이가 비슷해 지는듯 하다.

 

그렇게 한참을 창밖을 내려다 보고 있노라니

 

갑자기 이상함을 느낀다.

 

누가 보고 있는 듯한.

 

신기 하다.

 

그럴리가 없건 만을

 

사실 그러 하여도 안된다.

 

자고 일어난 후라 적당이 걸친 옷들이 남들이 보기에는 부족함이 많기에

 

그래도 이상하다.

 

담배연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연기가 사라지는 곳

 

헉 !

 

정말 나를 지켜 보고 있다.

 

너무나 놀라 또 가슴이 아프다.

 

안그래도 요새 가슴이 많이 아픈데

 

작은 수리 한마리가 나와 같은 처마 밑에 정확히 무슨 배관 끝자락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미동도 없이

 

놀라움고 신기함 그러면서 우리는 서로를 응시한다.

 

미동도 없이

 

그러다 보니 슬퍼진다.

 

넌 왜 거기 그러고 있니

 

난 또 왜 이러고 있는 거니

 

내가 먼저 자리를 피했다.

 

 

 

 

출근해야 하기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우개

잊어 버리고 싶어서

 

혹은

 

무디어져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때

 

치열하게 살다보면 그럼 사는데 열중 하다 보면

 

아무 생각도 못할 만치 무뎌 질것 같은데

 

먹지 않고 눈뜨지 않고 생각 하지 않고

 

간신히 움직이고

 

간신히 숨쉬고

 

그러고 보니 참 건강하단 생각이 든다.

 

후훗

 

거울속에 비친 내 모습이 마치 시체 같다.

 

창백하고 초췌하고

 

거울 속에 모르는 사람이 서 있다.

 

 

 

그 중에

 

어찌 해야 하나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간다.

 

그 결론이라는 것이

 

우습고 유치 하기 짝이 없다.

 

 

아무렇게나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에 두번째 받은 청혼

 

결혼 (3월의 신부는 이쁠까)

 

너무나 미안하지만

 

살기 위해서 너무 아파서 살기위해 혹은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도피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지독함

지독하게 혹은 치열하게 삶을 이어 가고 있다.

의무적으로 혹은 습관적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 가고 있는 것이다

거창한 꿈을 상실한지 아주 오랜전이고 어릴적의 특별함이나 순수함을 잃은지도 한참이 되었다.

 

어릴적엔 특별한 줄 알았다.

 

나는 특별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삶이 계속되어 오면서

 

나는 아주 작은 조각에 어쩌면 너무나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 간다.

 

나와 스친 사람들 어딘가에서 나를 기억 하고 있을지 못 할지도 모를 일이다.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수십억명이 살아 가고 있는 지구라는 별에서 나를 스치고 간 사람들은 어마어마한

 

확률을 뚫고 나와 스친것이고 그것이 인연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 엄청난 확률을 소중히 할 만한 가치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 까닭은 그저 스칠 뿐이기 때문이다.

 

그저 스쳐 간 사람들은 과거에는 얼마나 중요했을지는 모르나 현재나 미래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그런 인연이기 때문이다.

 

거창한 말을 하지 않겠다.

 

거창함이란 때론 내 속마음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상한 말을 하지 않을것이다 사실 고상을 떨기에 무척이나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된것은 오래 전이기 때문이다.

 

쉽게 세치 혀로 얘기 하기 보다 가슴으로 얘기 하고 싶다.

 

눈빛으로 얘기하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고 나의 그런 이야기를 들어 줄 누군가는 어딘가에

 

있겠지 하는 희망을 걸어 본다.

 

 

 

성급한 판단의 오류와 일반화의 오류를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오늘도 하루를 보냈다/.

오늘도 하루가 저물었다.

 

아주 호랑 방탕하게

 

주식을 적당이 보고

 

적당이 일하고

 

적당이.. 힘든척하고

 

적당이 씩씩한척하고

 

내 속의 모든 감정과 기분과 컨디션을 모조리 숨기고

 

아무일 없는 것처럼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적당이.. 남을 배려하고 그러면서도 오빠를 만나고

 

거참 시간이 지날 수록 뻔뻔함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너무 너무 뻔뻔하다.

 

내일은 정말 지각을 하지 말아야 겠다.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다.

 

김부장님 결근이시다.

 

눈길이 떠나지 않는다.

 

이크..

 

또 한명이 가는 구나.

 

나도 떠나야할 때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되던간에..

 

나도 떠나고 싶다.

 

떠나자 떠날 준비를 하자.

 

이제는.

 

모든것을 잊고

 

혼자. 부딪혀 보자.

 

한 2년만 부딪히고

 

이제는 당당이 독립하리라.

 

멋지게..

 

혼자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우둔

우둔

 

우월

 

명석

 

자아도취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cosmos

코스모스라는 책을 읽고 있다.

 

잔뜩 버려 놓은 인용구와 짜증나리만큼 넘쳐나는 비유와 묘사.

 

간단 명료한 문체를 원했건만..

 

주절 주절.

 

천문학 예찬론으로 일관된 그림책

 

책만 하드커버라 열나 무겁고

 

겁나 비싸고.

 

후회가 무지 무지 밀려드는 그런책.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담 스미스

기형적으로 생긴

시조.

 

하늘에서 뚝 떨어진 혹은

 

땅에서 솟은.

 

경제학의 시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아는지 모르는지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이 있다.

 

아는지 모르는지

 

착한척 위선을 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너무너무 싫다.

 

귀찬고 짜증나고..

 

나도 사생활이라는 것이 있는데

 

불쑥불쑥 날라오는 문자와 메일.

 

언제나 천사표이고 싶은 내 또다른 면이 아닌지 모르겠다.

 

싫으면 싫다고 해야한다.

 

짜증난다고 귀찬다고 말해야 할 용기가 필요하다.

 

언제나 천사표일수는 없는 게지..

 

내일은 용기를 내 보리라.

 

싫다고. 짜증난다고...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퍼옴]케인즈 화폐이론에 대한 비판적 소고

케인즈 화폐이론에 대한 비판적 소고


한 영 빈(베를린자유 대학 정치학박사, 2000/7/22)



1. 들어가는 말


이 글의 주제는 케인즈(J.M. Keynes, 1883-1946)에 대한 비판이다. 그러나 이것이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물결 속에서 일방적으로 매도되고 있는 것처럼 케인즈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오히려 케인즈를 현대적 맥락 속에서 재조명하여 그 의의를 보려고 하고 있으며 이 현대적인 의미를 맑스적인 시각 틀에서 비판적으로 흡수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 속에서 쓰여지고 있다.


이 글에서 굳이 1970년대 중반 이후 무너져버린 케인즈를 다시 다루는 것은 그의 논의가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 특히 1970년대 중반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와 함께 급속하게 완성된 금융세계경제를 보다 폭 넓게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글은 케인즈를 현대적 의미에서 재조명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를 과거와 같이 단순히 고용이론가로 보는 것을 지양하고 화폐이론가로 바라본다는 것을 의미한다.1) 이와 같은 시각은 기본적으로 후기 케인즈주의자들의 입장을 따르는 것인데 이들은 주로 1970년대 말부터 기존의 케인즈주의에 대한 자기 비판적인 재해석을 통해 케인즈의 현대적 의미를 그의 화폐 및 이자론으로 찾고자 하는 자들이다.2)


필자가 이들의 주장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크게 2가지 이유에서이다. 첫째, 이들은 기존의 케인즈 해석과 이론적인 단절을 시도하고 있는데 이것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대한 이해를 위해 최소한 통화주의자들보다 일 진보한 면이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바로 화폐의 비중립성 테제이며 이에 기초한 그들의 주장, 즉 자본주의 경제가 자기 조절적인 시장 메커니즘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어 안정적이라는 단순한 경제적 논리를 현대적 감각에서 반박하고 있다는 점이다.3) 이들에게 있어 자본주의적 세계금융경제는 화폐의 존재로 인해 오히려 근본적으로 불안정하기에 정치적이고 제도적인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세계금융경제는 위기를 맞이할 수 있다는 함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자본주의 경제 내의 자체적인 문제를 위기 가능성을 통해 이론적으로 현실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들의 화폐 비중립성 및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불안정성 테제는 맑스의 금융가치론(monetare Werttheorie)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4) 케인즈나 맑스 모두 화폐의 비중립성 테제를 가지고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모순 및 위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련의 학자들에 의해 양자를 대립적인 구도로 보기 보다는 일반균형 이론적인 틀을 거부하는 공통된 이론적 줄기에서 바라보려는 시각이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을 어떠한 형태로 증류해내야 하는지는 아직은 맹아적 단계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후기 케인즈주의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맑스의 화폐론을 비판하고 있다. 이것은 케인즈의 화폐론이 기본적으로 이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는 반면 맑스에 있어서는 노동 및 이윤 개념을 기반으로 전개되고 있는데 기인한다. 특히 이들의 비판은 오늘날 1970년대 중반까지 유지된 전통적인 의미의 이자-이윤과의 관계가 붕괴되고 이자의 중요성이 증대된 신용경제사회에서 상당한 타당성이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따라서 아직 이론적 완성도가 상대적으로 미비한 맑스의 이론 내에서 이들의 비판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의미가 있게 된다.


이 글은 맑스적 시각을 기반으로 하여 케인즈의 화폐이론을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여기서 특히 초점을 두는 것은 케인즈 화폐 도출의 문제와 이에 기초한 이들의 자본주의 위기 접근방식의 문제이다.5)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유도되는 함축적인 결론은 케인즈의 화폐이론이 현대적 의미에서 어느 정도 현실적 타당성이 있으나 그의 위기 관리 방식은 다른 이론적 차원에서 보완되어져야 된다는 것이다.




2. 화폐론자로서의 케인즈 그리고 그의 화폐 도출



케인즈를 새롭게 보려고 하는 일련의 학자들은 그들의 분석을 케인즈의 대표작 '일반이론(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1936)'에 한정시키지 않고 전체적인 그의 저작의 흐름을 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흐름 속에서 케인즈가 그의 화폐론을 형성시키는 과정을 발견하고 있는데 먼저 그의 박사학위 논문 'A Treatise on Probability (1921)'를 중시한다.6) 그 이유는 이 논문에서 기존의 케인즈 해석과 인식론적 단절을 할 수 있는 점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는 경험주의, 물질주의, 지식에 대한 수학적 접근 방식 등 다양한 이론적 줄기를 비판하고 있는데 이 논의 속에서 케인즈 경제이론의 철학적 기초를 발견하려 한다. 그리고 이에 착안하여 케인즈의 화폐이론에서는 주류 경제학에서 기초가 되는 미래 시장의 예측성 및 개인주의적 합리성이 거부되고 대신 미래의 불확실성과 개인의 비합리성이 이론 형성의 초기조건으로 주어지게 된다. 즉 미래 시장의 불확실성 강조는 케인즈 화폐이론의 중요한 기초가 된다(Davidson 1991).


다음으로 중요시하는 것은 1930년에 쓰여진 'A Treatise on Money I, II'인데 이것은 그가 화폐이론가로 나아가는데 중요한 첫발을 내딛는 저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박사 학위를 받은 후 실무적인 일을 하던 케인즈가 기존의 전통적인 경제이론이 화폐이론 영역에서 심오한 결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경험한 후, 즉 기존의 경제 모델은 화폐의 역할을 무시하는 단순 자연경제 모델인 반면 현실적인 자본주의에서 화폐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인식한 이래, 화폐를 포함하는 경제이론 저술을 위한 첫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케인즈는 화폐의 본질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그는 화폐를 기본적으로 물질적인 관계에서 도출해 내는 것이 아니라 국가가 중앙은행과 같은 제도를 통해 명목적으로 부여하는 가치로 보고 있다(Keynes 1930, 3-12). 즉 케인즈에 있어서 화폐의 가치는 구매력에 있는데 이를 권위를 갖는 국가가 부여한다는 명목론적인 입장에 서 있다. 이 책을 저술할 때만 해도 케인즈는 경제이론적으로 전통적인 흐름에 얽매여 있었으나 1933년의 글에서는 그가 자본주의 사회를 화폐경제사회로 정립시키려는 시도가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1933년의 글은 아이러니칼 하게도 맑스의 공식을 이용하여 자신의 논지를 전개 시키고 있다. 여기서 그는 협업경제(cooperative economy 또는 real-wage economy, C-M-C), 중립경제(neutral economy) 그리고 화폐임금경제(money-wage/entrepreneur economy, M-C-M')를 구분하고 자본주의 경제는 화폐임금경제라고 구분 짓는다(Keynes 1933, 76-78). 그리고 여기서 화폐는 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화폐에 대한 사고 형성 과정은 '일반이론(1936)'에서 완성된다. 이 '일반이론'은 기존 케인즈 해석에서는 3장, 즉 유효수요론이 강조되어 졌지만 케인즈를 화폐론자로 재해석하는 학자들은 17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 장은 케인즈의 이자론을 다룬 장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에 케인즈 화폐이론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장을 보면 화폐에 대한 케인즈의 이해가 이자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먼저 그는 맑스와 같이 모든 생산물은 노동에 의해 생산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Keynes 1936, 213). 그러나 생산물의 가치에 대한 논의는 맑스와 상이하게 나아간다. 각각의 노동 생산물은 먼저 그 자체적으로 볼 때 동질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생산물에 대한 단일한 가치척도를 제공할 수 없다고 본다(Keynes 1936, 214). 즉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주는 가치척도가 될 수 없다. 케인즈에 있어서 이러한 가치척도, 즉 이질적인 것을 동질화시켜 서로 비교 가능하게 하고 측정 가능하게 해주는 단위는 화폐이다. 그리하여 케인즈에 있어 가치표준(Wertstandard)은 노동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화폐에 있다.


케인즈에 있어 화폐는 단순히 신고전파학처럼 양적인 계산수단이라기 보다는 추상적인 사회적 부 또는 가치가 체화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7) 그렇다면 그는 사회적 관계를 표출하는 화폐를 어떻게 도출해 내고 있는가? 즉 과연 그는 화폐를 현실적인 관계에 기초하여 도출하고 있는 가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이를 추론해 낼 수 있는 것이 '일반이론' 17장에서 발견된다고 할 수 있다.


17장은 케인즈 가치 및 화폐이론의 핵심을 구성하는 장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여기서 그는 모든 생산물을 자산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 자산과의 연관성 속에서 중요한 것은 "기대(expectation)" 개념인데 케인즈의 관심은 자산을 소유한 자들이 기대적 수익을 원하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면서 논의를 진행한다. 그리고 이 기대수익이라는 것에 따라 자연적으로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적 개념이 연계된다. 결론적으로 먼저 얘기하면 가치 및 그 운동은 현재와 미래를 연계시켜 주는 기대수익에 연관된 것이고 그 매개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이다.


자산을 통한 기대수익은 그러나 신고전학파와 같이 미래시장의 확실성이 존재하지 않기에 사전적으로 양적인 계산에 의해 도출 불가능하다. 이런 미래 시장의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케인즈가 중요하게 도입하는 것은 "이자" 개념이다. 케인즈는 모든 자산은 그 자체 고유의 이자율을 갖는다고 한다. 이 이자의 크기는 q-c+l 로 표기되고 있다.8) 이 크기 또는 자산가치의 크기는 미래시장 불확실성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게 된다. 개별적 인간들은 불확실한 미래에서 자신의 자산가치를 가장 확실하게 보전 내지 증식시켜 줄 수 있는 것으로 집중되는 경향이 있는데 케인즈에 있어 이것은 바로 화폐이다. 즉 화폐도 케인즈에 있어서는 자산이며 그 자체 고유의 이자율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다른 어떠한 자산보다도 미래의 가치를 가장 안전하게 보존 내지 증식시켜 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9) 그리하여 현실적인 시장관계는 이런 화폐관계를 통해 작동하게 되며 이로써 우리가 자본주의 경제라고 할 때 이는 다름아닌 화폐경제를 의미한다. 즉 화폐관계를 통하지 않은 관계는 개별적이고 비사회적인 자연경제라고 밖에 할 수 없으며 현실적인 사회관계는 화폐관계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함을 보여준다.


화폐가치 크기는 오로지 l 로 구성된다(Keynes 1936, 230-234). 이것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비물리적인 척도이며 이 비물리적인 유동성 프레미엄이 가치 운동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리고 이로써 실물적 관계보다는 화폐 또는 금융적 관계가 자본제 시장의 역동성을 지배한다. 즉 화폐경제는 실물적 관계보다는 금융적 관계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위와 같은 화폐 도출과 이해에서 더 나아가 케인즈는 전통적인 이론과 결별을 시도하는데 그것은 바로 화폐의 비중립성 테제를 통해 균형이론적 시각, 즉 자본주의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원리에 의한 시장의 자동적인 조절 메커니즘을 기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지난 200년간 이상 자본제 시장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것으로 바라보려는 일련의 시각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특히 이러한 그의 노력은 오늘날 통화주의자 및 신자유주의적 논리아래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장 만능원리 그리고 이에 따른 세계화 물결에 이론적으로 정면 반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화폐관계를 통해 시장에서는 불균형 그것도 영속적인 불균형이 형성될 수 있다. 특히 화폐와 연관되어 볼 때 화폐 보유라는 단순한 사실에서 균형 개념은 기각된다. 이 때 기존 경제이론은 이 화폐 보유(저축)가 궁극적으로 미래에 지출, 소비되는 것이며 또한 결과적으로 투자로 연결되어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보았다.10) 그러나 케인즈는 이들이 이런 균형을 가능케 한다고 본 매개 변수, 즉 그들의 이자 개념의 비판을 통해 이런 자동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 하였다. 그리고 이런 화폐이론적 시각을 그의 유효수요이론을 통해서 보여 준 것이다.11)


케인즈에 있어 화폐를 매개로 하여 나타나는 현실적인 자본주의적 시장관계에서는 아담 스미스(A.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 또는 왈라스(L. Walras)의 경매자(auctioneer)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이로써 균형으로 귀결되어 안정적인 시장관계가 보장된다는 것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현실적인 시장관계는 무엇에 의해 작동되는가? 케인즈에 있어 그것은 개인들의 합리성이 아니라 맑스가 자본론 속에서 "태초에 행위가 있었다"라고 했듯이 경제 관계는 먼저 신념에 의한 행동에 의해 이루어 진다. 그리고 케인즈에 있어 이 신념의 상태에 대해선 선험적으로 무어라 말 할 수 없다고 한다(Keynes 1936, 149). 즉 선험적인 분석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오직 역사적인 조건에 의해 주어지며 변화한다.




3. 케인즈적인 화폐 및 신용이론의 난점들



1) 화폐 도출의 현실적 타당성 문제



일반이론에서 케인즈는 모든 생산물이 먼저 자산이라고 하였다. 이 다양한 자산들은 그 자체 동질적이지 않다. 따라서 직접적인 비교 또는 가치크기 측정은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모든 자산은 고유의 이자율을 갖는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자라는 공통의 분모를 통해 가치비교 내지 측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자산가치를 표현하는 이자율(q-c+l) 역시 자체적인 기준에 의해 개별적으로 측정되었기에 일반적 이자율을 측정하는 척도가 될 수 없다. 즉 개별적인 이자율을 측정할 수 있는 단일한 사회적 척도를 도출해 내는 것이 케인즈의 노력이어야 했다.


이를 위해 케인즈는 화폐를 도입하였다. 그에 의하면 화폐도 자산이며 그 자체 고유의 이자율을 가진다고 했다. 그리고 다양한 이자율을 가진 자산 가운데 화폐가 사회적 관계를 나타내는 가치척도로 등장하는 이유를 들었다. 그 근거는 화폐가 다른 자산보다 이자율 하락에 있어 견고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Keynes 1936, 229).12) 이것은 미래 시장의 불확실성과 연관하여 미래의 가치 보존 및 증식에 관한 한 화폐가 다른 자산보다 보다 낳은 가치크기 확보를 해준다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데 화폐의 이런 속성을 보여주는 그 자신의 고유한 이자율 크기는 케인즈에 있어 오직 l, 즉 유동성프레미엄(liquidity-premium)에 의해 주어진다. 따라서 그 근거는 개인들의 유동성 프레미엄의 연관성 속에서 도출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이 근거를 이런 관계를 통해 도출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화폐가 다른 자산보다 이자율의 하락이 더딘 속성을 갖는 것은 (중앙은행이란 제도를 통한) 국가적인 권력이 보장해 주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화폐는 사적이며 개별적인 다른 자산들과 동일한 레벨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자산들을 지배하는 것이다. 즉 화폐는 케인즈처럼 이론 형성 초기에 동등하게 있는 것이 아니며 이미 국가의 권위에 의해서 자산가치 보존 수단 또는 지불수단의 기능이 사회적으로 보장되어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그의 화폐 개념은 처음부터 다른 자산을 지배하고 나타나는 사회적인 개념인 것이다. 즉 화폐의 속성이 개별적이고 사적인 개인들의 관계 과정 속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외적으로 주어진 화폐의 속성이 어떻게 개별적이고 사적인 인간들의 관계를 지배하게 되는 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폐와 다른 자산과의 위계성은 내적으로 도출되었다고 하기보다는 외적으로 주어진 것에 불과하다. 이것은 가치관계의 인과관계를 거꾸로 전도 시켜 놓은 격이 된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전도된 이해는 단순히 화폐 도출의 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자본제 시장을 지배하는 원리 및 그 위기의 해결 방안 등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케인즈의 화폐이해는 케인즈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학자들의 화폐 이해에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다.13) 그러나 이들의 화폐 및 가치 이해는 잘못되어 있다. 이들과 같이 가치란 시장관계 형성 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즉 사전적 가치는 설정될 수 없으며 오히려 가치란 시장관계 형성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2) 행위 이론적 접근의 문제



자산의 기대수익을 매개로 한 시장관계 설정은 케인즈에게 화폐경제의 역동성을 행위 이론적인 측면에서 구성하게 만들었다.(Kruger, 1984) 그의 이론 구성에 따르면 시장의 구조는 미래의 불확실한 사회에서 행위하는 인간들에 의해 구조화 내지 형성된다. 이 행위관계는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사회에서는 오로지 화폐 그리고 그 (화폐보유 포기에 대한 대가) 가격인 이자를 통해 매개되어 나타난다. 여기서 화폐는 과거-현재-미래를 연결시키는 가치보존 및 가치 증식 수단으로 기능 한다. 경제 주체들은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들의 기대들을 화폐를 매개로 의사소통하며 이로써 화폐관계는 시장관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러한 행위 이론적인 구성은 오늘날의 케인즈주의자들에 의해 그대로 전승되었다.14) 이들에 의하면 경제의 작동원리는 경제 주체들의 자산보존과 자산증식이라는 양자간의 선택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이다(Herr 1992, 13). 다른 말로 표현하면 화폐를 이자의 논리를 따라 보전할 것인가(자산보호) 아니면 투자할 것인가(자산증식)에 따라 시장 및 생산관계를 규명하려고 하고 있다. 특히 헤어(Herr)는 이런 행위론적인 설명이 화폐경제사회를 설명하는데 보다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며 구조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려는 맑스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맑스가 경제 주체들의 행위에 대한 이론적인 작업을 등한시함으로써 현실적인 자본주의 시장관계 및 그 역동성을 설명하는 실패하고 있다는 것이다(Herr 1986).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행위론적인 분석 틀은 케인즈와 후기 케인즈주의자들의 아킬레스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화폐경제의 역동성이 경제 주체들의 선택행위에 의해 매개되고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행위만을 가지고 화폐경제의 내적인 역동성을 규명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행위 이론이 사회적인 개관성 또는 사회적 강제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론은 아니다.(Bader, 1987, 106-107) 따라서 개인들의 의도들이 항상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즉 개인들의 주관적 의도만을 가지고 사회를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접근법은 특정한 사회 현상을 궁극적으로 합리적인 행위로 귀결시켜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은 사회화(Vergesellschaftung)란 현상을 모든 참여자들이 합목적적으로 동의하는 사회적 행위를 통해 도출해낼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Bader 1987, 108-109) 이런 사회화 현상 중 문제가 되는 것은 케인즈가 자신의 이론적인 틀을 가지고 불균형 및 자본주의 경제의 위기를 화폐행위를 가지고 설명하려고 시도할 때이다. 즉 케인즈적인 이론 틀은 자본제의 위기를 통한 사회화 현상에 대한 설명을 어렵게 한다.


그에 의하면 위기는 단순한 이자의 오름과 내림이 아니라 갑자기 자본의 한계효율성이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Keynes 1936, 315). 그런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논리에 의하면 이것은 현재의 실물적 척도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기대치 및 미래수익에 대한 기업가들 신념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의미한다. 따라서 위기는 단순한 현재의 실물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믿음에 대한 붕괴에서 오고 있다. 문제는 케인즈가 이런 미래 믿음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논리적으로 도출해 내고 있지 못하다는 데에 있다. 이런 믿음의 갑작스러운 붕괴 그리고 이로 인한 지금까지 유지되어져 왔던 시장관계의 균형이 왜 화폐행위 속에서 갑자기 붕괴되는지 설명을 하지 못하는 한 그의 위기에 대한 원인 분석은 무의미해지게 된다. 이 점에서 맑스의 위기론은 최소한이나마 케인즈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 있다. 즉 맑스는 케인즈가 등한시한 물질적 관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킴으로써 자본주의적인 화폐경제에 실물적 관계와 금융적인 관계의 연관성을 잃지 않고 이 연속선상에서 위기의 문제를 다룸으로써 케인즈보다 진일보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신념의 붕괴란 단순히 개별 인간들의 신념 붕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회적이며 역사적으로 주어진 관습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붕괴는 사회적으로 변화된 조건들을 반영하고 있다. 개별적인 인간들은 이런 변화의 조건을 선험적으로 계산할 수 없기에 오직 사후적으로만 기존의 자신의 기대치가 통용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다. 이런 것은 화폐행위를 통해서 조건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이 화폐 행위들은 변화된 조건에 의해서 재조건화 되어질 뿐이다. 즉 화폐행위의 변환 사회적 조건 및 그 신념의 상태에 적응하여야만 하는 것이다.




3) 위기 극복 대안의 문제



케인즈는 자신의 화폐 및 신용이론에서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가 안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자본주의적인 화폐경제가 자동적으로 붕괴될 것이라고도 믿지는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이런 위기가 방지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였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범주는 투자였다. 즉 지속적인 투자를 통하여 소비와 소득간의 유효수요 부족 분을 메워주는 것이었다. 이로써 자본주의 화폐경제는 위기를 피하고 자신의 재생산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이 투자는 단순히 물리적인 측면을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투자행위가 긍정적인 기대치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즉 투자영역에서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기대치를 생성 및 유지시켜줄 수 있는 정책을 펼치는 것이었다.


문제를 이런 것을 어떻게 유지시킬 것 인가이다. 그러나 장기적 기대를 다루고 있는 일반이론의 12장에서 케인즈는 경제-이론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한계를 지닌다. 여기서 그는 단지 장기적인 기대가 단순한 수학적 계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오히려 신념과 관습에 기초하는 것이라고만 말하고 있다(Keynes 1936, 147-164). 즉 장기적 기대는 단지 개념적으로 정초되어 있으며 이런 장기적 기대가 어떻게 만들어 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일반이론의 논리를 따라 추론한다면 다음과 같이 이해될 수 있다. 케인즈는 '일반이론'에서 화폐경제의 역동성을 규정하는 2가지의 독립변수를 도입했다: 자본의 한계효율성과 이자율. 이 두 변수로부터의 지속적인 투자는 자본의 한계능력 ≥ 이자율 관계인 한에서만 가능하다(Keynes 1936, 228).16) 즉 장기적 기대의 확보는 이 조건 하에서만 현실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케인즈는 생산의 증가와 함께 자본의 한계능력은 감소한다고 가정하였기에 투자의 지속성을 위해선 이자율도 이와 상응하여 하락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자율의 하락이라는 것은 곧 화폐의 가치하락을 의미한다. 즉 케인즈의 위기 방지는 인플레이션을 받아들이는 논리적 귀결을 내포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의 파괴적 작용은 화폐 기능의 부식으로 나타난다. 즉 화폐는 이자율의 하락과 함께 자신의 가치보존 및 증식수단이 부식 당하게 되며 그 결과 가치표준척도의 기능도 잠식당하게 된다. 또한 이것은 결과적으로 경제 주체들이 인플레 된 화폐를 가지고 경제 행위를 하는 것을 거부하게 만든다. 이에 대신하여 자산 소유자들이 자신의 자산을 화폐로 보유하려는 것을 피하고 물질적 또는 실질적 가치로 확보하려는 경향을 증가시킨다.17) 이런 일탈과정은 투자 및 생산 과정을 방해하는 것인데 왜냐하면 경제 주체들이 이제 더 이상 자신의 화폐를 생산영역에 투자를 하여 생산과정을 촉진시키지 않고, 토지, 금 등과 같은 실물가치로 자신의 미래 자산 가치를 확보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화폐는 화폐경제에서 가치형성 및 가치 증식 과정의 기조기능을 상실하고 케인즈의 논의도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케인즈의 이런 문제는 이미 1970년대 중반 자본주의 시스템의 구조적 위기 속에서 인플레이션과 생산의 정체 결합이라는 스테그플레이션 현상 돌출과 함께 나타났듯이 붕괴되어질 운명을 자체 내에 이론적으로 담지 하고 있었다. 케인즈의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날의 후기 케인즈주의자들, 특히 독일 베를린 대학 경제학과 교수 리제(H. Riese)를 중심으로 하는 금융케인즈주의자들은 다른 맥락에서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의 위기 방지 정책을 제시하고 있다. 이 기본 축은 화폐를 희소하게 유지시킴으로써 화폐경제의 안정화를 시도한다는 것이다(Herr 1986, 11). 화폐의 희소성이라는 것은 화폐가 가치있게 인플레 및 디플레를 방지하는 수준에서 유지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은 화폐의 가치보존기능을 강화시키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논의의 기본적인 이해는 그 정책의 주안점을 화폐소유자에게 두는 것이며 이때 중요한 것은 화폐에 대한 수요보다는 화폐공급에 치중한다는 것이다.18) 관심 영역이 화폐공급 측면으로 전환됨과 더불어 자산소유자 또는 금융자본가가 주요한 경제의 주체로 들어서는 이론 틀은 이들에게 있어서 다음과 같이 출발된다. 먼저 경제 과정은 자산 및 화폐소유자가 자신의 자산(화폐)을 신용의 형태로 기업가에게 대여함으로써 시작된다. 기업가는 그 대가로 이자를 지불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산소유자는 채권자가 되고 기업가는 채무자가 된다는 것이다. 이 신용관계에서 균형 및 안정성은 실물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신용공급과 신용수요라는 금융적 접점에 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화폐공급을 좌우하는 근거이다. 리제는 채권자인 자산소유자가 자신의 자산을 가치증식을 위해서 대여를 해주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의 자산가치의 손실을 두려워하여 대출을 해준다는 것이다(Riese 1983, 107). 그리고 이때 이자를 통하여 자산의 회귀성을 확보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들의 기대는 기업가들의 화폐수요와 독립되어 규정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독자적으로 움직이는 자산 및 화폐소유자의 유동성프레미엄이 신용관계의 균형점을 규정하는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들의 유동성프레미엄 변화에 따라 이에 상응하여 나타나는 투자에 대한 화폐공급의 증가 또는 감소 크기가 실물생산 경제의 한계선을 규정하며 이 선에서 화폐경제의 균형 또는 안정성이 존재하게 된다. 따라서 화폐경제의 역동성은 과거와 같이 더 이상 산업자본가 내지 기업가가 중심이 되는 경제가 아니라 자산보유자 또는 화폐소유자가가 핵심으로 들어서는 틀을 가지고 있다. 이 틀 안에서 화폐수요 측면은 공급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이론적 필연성을 담지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화폐경제의 조건이 충족될 수 있도록 중앙은행은 화폐의 희소성 유지 또는 다른 말로 표현하여 강성화폐 정책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국가는 이러한 조건들이 충족될 수 있도록 사회적 조건을 강제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논의는 케인즈의 수요론적 측면이 가지는 한계를 공급론적인 측면에서 극복하고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에서의 신용의 관계에 대한 분석이 일 진보한 면이 있으나 이들의 논의는 실물경제를 너무 도외시하는 측면을 보이고 있는 한계를 가진다. 무엇 보다도 이들의 정책이 일반적으로 높은 이자율 정책을 내포하기에 기업가들은 높은 이자를 갚기 위해 더 높은 이윤 창출 압박에 처하게 된다.19) 더구나 이런 상황은 신용경제에서 채무자, 즉 기업가가 일정 기간 내에 이런 힘든 채무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게 더욱 더 가속화시키게 된다. 따라서 강성 화폐정책 또는 고 이자율 정책은 기업가의 지불불능이라는 위험부담 속에서 좌초될 수 있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현실적으로 볼 때 이들의 화폐경제 안정화 논리, 또는 시장 균형조건은 다음과 같은 조건 속에서만 가능할 수 있다: 즉 외적으로(중앙은행 정책에 의해) 주어지는 높은 이자율은 오로지 내적으로(생산적인 측면에서) 지불될 수 있는 능력의 한계 범위에 적응할 때만 실질적인 균형점이 도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신용사회에서 균형점이란 이자가 이윤기대치에 적응할때만 가능하다. 따라서 케인즈뿐만 아니라 후기케인즈주의적인 논의도 위기 방지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게 된다.




4. 결론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Globalization) 과정을 겪고 있으며 또한 이 과정 속에서 금융 중심적인 자본주의 경제의 강화, 즉 단일한 금융세계시장 형성 및 그 완성을 경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변화된 자본주의 상을 논의하고 있으나 그 작동 원리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화는 미약하다고 본다.


케인즈를 화폐이론가로 해석하는 것은 1970년대 중반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이후 변화된 자본주의 경제상, 특히 금융가치를 실물가치에 종속시켜 자본의 운동을 통제하려던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 후 급격히 진행된 금융부문의 실물경제로부터의 자립화 현상, 또는 금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는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상을 보다 더 이론적으로 정교하게 이해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그의 이론은 이자를 중심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이것이 비록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에 내재적인 위기의 문제를 포착하여 작금의 통화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인 시장논리보다는 어느 정도 현실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그 자체 또한 많은 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화폐 또는 사회적 가치 형태에 대한 도출의 문제점은 그의 전반적인 이론 틀을 불안정하게 하고 있는데 이 난점은 다른 이론적인 줄기에서 보충 내지 보완되어져야 할 것이다.



<미 주>


1) 양자 간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상대적으로 실물 경제적인 측면을 중심으로 진행되며, 후자는 금융경제 중심적인 시각을 가지고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데 있다.


2) 호프만(Hoffmann)에 따르면 후기 케인즈주의는 크게 세 가지 줄기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금융 분석에 중점을 두는 케인즈적 전통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Weintraub, Davidson, Shackle, Kregel 그리고 Minsky를 들 수 있다. 또한 독일 쪽에서는 Riese와 그 제자들(Herr, Betz, Staadermann, Dragendorf, Hannig, Jahnsen-Gutierrez, Lohman, Lucken-Klaßen 그리고 Spahn)을 들 수 있다. 두 번째 줄기는 실물경제 분석을 중심으로 하는 전통이다. 여기에는 Kaldor, Kahn, Harcourt, Eichner등을 들 수 있다. 세 번째 줄기는 스라파에 연향을 받은 신리카르도학파 전통이다. 여기에는 Garegnani와 Pasinetti등을 들 수 있다(Hoffmann 1987, 25).


3) 이론적인 맥락에서 볼 때 이것은 경제학의 주된 흐름인 일반균형이론(allgemeine Gleichgewichstheorie)에 대한 근본적인 반박이다. 후기 케인즈주의자들은 과거 케인즈의 해석(대표적으로 IS-LM 모델)은 케인즈의 화폐에 대한 이해를 잘못했다는 것이고 이들의 해석이 주장하는 바는 케인즈의 화폐 개념은 일반이론 틀에 통합될 수 없으며 역으로 화폐가 경제모델에 도입될 때 균형이 도달되기 보다는 균형 파괴적인 것을 보여 준 것이 케인즈의 혁명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자동적인 균형으로의 복귀라는 시장 메커니즘은 존재하지 않는다.


4) 여기서 금융가치론이라 하는 것은 하인리히(M. Heinrich, 1991)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다. 맑스를 금융가치론자 또는 화폐론자로 해석하게될 때 여러 가지 난점들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한 간단한 정리는 하인(E. Hein 1997)을 보시오.


5) 화폐 도출은 맑스에 있어서 사회적 관계를 표현하는 가치형태 도출과 연관되어 있다. 케인즈의 화폐 개념도 이러한 시각에서 분석될 필요가 있다. 즉 개별적이고 사적인 (가치)관계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사회적 표준 척도인 화폐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가가 문제의 초점이다.


6) 이 책에 대한 작업은 M. Carabelli(1982), R. O'Donnel(1982), F. Vicarelli(1983) 및 R. Skidelsky(1983)등에 의해 이루어 졌다. 특히 카라벨리는 이 책과 '일반이론'과의 이론적 연관성을 가지며 케인즈의 화폐 및 신용이론 형성에 중요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Carabelli 1988, 7).


7) 이러한 주장은 헤어(H. Herr 1986, 54) 그리고 베츠(K. Betz 1988, 112)등과 같은 금융케인즈주의자들에 의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8) 여기서 q 는 산출된 가치, c 는 시간 경과와 함께 나타나는 마멸비용, l 은 유동성 프레미엄을 뜻하는데 크뤼거(Kruger)에 의하면 q-c는 맑스의 이자낳는 자본(das zinstragende Kapital)에 해당된다(Kruger 1984, 34)


9) 그 근거는 화폐가 다른 자산들 보다 이자율 하락이 가장 적다는 데 있다(Keynes 1936, 229).


10) 이것은 화폐가 최소한 장기적으로 실물경제 흐름에 중립적이라는 신고전학파 또는 통화주의자들의 입장을 표현하는 것이다. 즉 화폐 보유로 인한 일시적인 시장의 불균형은 장기적으로 다시 정상화된다는 낙관론적인 견해로 이것은 그들의 화폐수량설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11) 유효수요론에서 중요한 것은 투자 부문이다. 한 경제의 재생산은 케인즈식의 유효수요이론을 따르면 소득과 소비의 격차 부분을 투자가 계속적으로 메꿰주는 한 유지될 수 있다.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유효수요의 부족이 발생하고 경제는 침체되게 된다. 그런데 이 투자의 크기는 자본의 한계효율성과 이자율에 의해 결정된다. 이때 이자율은 케인즈에 있어 중요한 데 이 이자의 속성이 양적인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며 결과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자동적으로 균등화되기 어려움을 보여 주고자 하였다(Keynes 1936).


12) 그 근거로 케인즈는 3 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첫째, 그 생산 탄력성이 장기적으로 거의 0 에 가깝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화폐는 노동과 같은 것을 통해 임의적으로 생산되어 질 수 없다는 점이다. 둘째, 화폐는 다른 매개체에 의해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대체 탄력성이 거의 0 에 가깝다. 셋째, 화폐가 갖은 유동성 프레미엄이라는 속성은 물리적이며 양적 변동에 민감한 다른 자산과 달리 이에 대해 무관한 속성을 갖는다(Keynes 1936, 230-234).


13) 하이손/스타이거(Heinsohn/Steiger)를 보면 케인즈의 자산 개념은 교환이 이루어지는 것과 무관하게 이미 가치를 가치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 가치는 생산 또는 물질적 관계와 상관이 없는 비물질적인 크기로만 이해되고 있다(Heinsohn/Steiger 1988, 334).


14) 이런 시각은 데이비슨(P. Davidson)과 헤어(Herr)에서 확연히 나타난다.


15) 그러나 하인리히의 논리를 따르면 맑스가 행위론적인 측면을 결코 등한시하였다고 볼 수 없는데 그에 의하면 자본론의 제 2장은 제 1장의 연속이 아니라 새로운 이론적 틀을 여는 장인데 여기서 맑스는 교환을 하려는 상품소유자들의 행위문제에 대한 논리적 구조를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Heinrich 1991, 175-187).


16) 이와 함께 케인즈에서 나타나는 결론은 높은 이자율이 아니라 낮은 이자율이 경제 성장 및 재생산의 지속성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다(Keynes 1936, 322).


17) 이런 실물적 관계와 금융적 관계의 상호 연관성은 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를 이해하기 위해 매우 중요한데 케인즈 경우 실물적 관계와의 연계적 분석이 미약하게 나타나는 한계를 가진다. 이런 분석은 오히려 맑스적 시각에서 더욱 더 구체적으로 분석되고 있다.


18) 여기서 케인즈와 리제와의 구분이 분명해 진다. 케인즈는 일반적으로 수요의 측면에서 자신의 이론을 전개시켜 나갔으며 이로써 산업 자본가들의 화폐에 대한 수요 및 이와 연관된 이자를 논의하였다면 리제의 경우 화폐공급의 측면을 강조하는 것은 금융자본가로 경제의 역동성을 이전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산업자본가는 부차적인 위치로 전락하고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화폐소유자 또는 금융자본가로 귀결되며 이들과 연관된 이자가 중요한 변수로 들어선다. 따라서 스테더만에 의하면 리제의 결정적인 전환은 화폐수요이론에서 화폐공급이론으로 전환시켰다는 점이다(Stadermann/Steiger 1993, 4).


19) 후기 케인즈주의적인 이론 틀은 금융경제의 안정성을 위해 실물경제의 희생을 답보로 하는 것이다. 이들에게 금융경제의 안정성이 최우선이 되기에 실물경제의 침체 및 대량실업의 양산이 이론적으로 내포되어 있다. 또한 이런 금융경제의 안정성을 위해 그 비용을 산업 자본가들에 돌리고 있는데 이는 다시 산업 자본가들이 그 비용을 노동자들에 강제하는 효과를 보이고 있다. 즉 보다 더 높은 노동 착취의 강도를 통해 그들의 높아진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문제가 케인즈적 논의에서는 도외시되고 있는데 반해 맑스에 있어서는 자본주의적 화폐경제에서 어떻게 노동이 화폐를 매개로 사회화되어 지고 있는 가를 최소한 논리 정연하게 밝히고 있는 장점을 갖는다.



》참고 문헌 《



Bader, V-M., u.a.(1987): Einfuhrung in die Gesellschaftstheorie. Gesellschaft, Wirtschaft und Staat bei Marx und Weber, Frankfurt/Main: Campus.


Betz, K. (1988): Kapital und Geldkeynesianismus, in: PROKLA. Zeitschrift fur politische Okonomie und sozialistische Politik, Heft 72, 18 Jg, Nr. 3, pp. 93-116.


Carabelli, A.M. (1988): On Keynes's Method, London: Macmillan..


Davidson, P. (1991): Controversies in Post Keynesian Economics, Aldershot: Edward Elgar.


Hein, E. (1997): Geld, effective nachfrage und Kapitalakkumulation: eine Betrachtung aus Marxscher, Keynsscher und post-keynesianischer Perspektive, Berlin: Duncker & Humblot.


Heinrich, M. (1991): Die Wissenschaft vom Wert. Die Marxsche Kritik der politischen konomie zwischen wissenschaftlicher Revolution und klassischer Tradition, Hamburg: VSA.


Heinsohn, G./Steiger, O. (1988): Warum Zins? Keynes und die Grundlage einer monetaren Werttheorie, in: H. Hagemann, O. Steiger (Hrsg.): Keynes' General Theory nach funfzig Jahren, Berlin.


Herr, H. (1986): Geld, Kredit und okonomische Dynamik in marktvermittelten Okonomien - die Vision einer Geldwirtschaft, Munchen: Florenz.


Herr, H. (1992): Geld, Wahrungswettbewerb und Wahrungssysteme, Frankfurt/New York: Campus.


Hoffmann, H. (1987): Postkeynesianische Okonomie - Ubersicht und Orientierung, in: K. Dietrich, u.a. (Hrsg.), Postkeynesianismus: okonomische Theorie in der Tradition von Keynes, Kalecki und Sraffa, Marburg: Metropolis, pp. 9-36.


Keynes, J.M. (1921): A Treatise on Probability, in: CWK, Vol. VIII, London: Macmillan, 1973.


_________. (1930): A Treatise on Money I & II, in: CWK Vol. V & VI, London: Macmillan, 1973.


_________. (1933): The General Theory and After: A Supplement, in: CWK, Vol. XXIX, London: Macmillan, 1979.


_________. (1936) The General Theory of Employment, Interest and Money, in: CWK Vol. VII, London: Macmillan, 1973.


Kruger, S. u.a. (1984): Keynes contra Marx? Darstellung und Kritik der General Theory, Hamburg: VSA.


Riese, H. (1983): Geldokonomie, Keynes und die Anderen. Kritik der monetaren Grundlagen der Orthodoxie, in: Okonomie und Gesellschaft, Jahrbuch 1, Frankfurt/New York: Campus, pp.103-159.


Stadermann, H-J./Steiger, O. (1993): Hajo Riese als Geldtheoretiker und die Aufgaben der Geldforschung, in: H-J. Stadermann/O. Steiger (Hrsg.), Der Stand und die nachste Zukunft der Geldforschung: Festschrift fur Hajo Riese zum 60 Geburtstag, Berlin: Duncker & Humblot, pp. 1-30.


토론 정리 보기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49%의 그리움과 51%의 기다림


49%의 그리움과 51%의 기다림
당신으로 향하는 내마음이
진정한 사랑이기에

그리움보다 더한 기다림이란 색깔로
온통 제마음을 물들이겠습니다.

조금 모자란
그리움이면 어떠하겠습니까?

기다림이 숙성되어
언제까지나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는 사랑이라면

당신이 가진 그리움마져도
내몫으로 알고
이보다 더한 그리움도
한없이 기다리겠습니다.

하지만
아주 가끔은
소리없이 당신을 만나고픈
제마음의
희망만은 져버리지 말아주세요.

언젠가 우리의 사랑이
49%의 그리움과 51%의 기다림으로
100%라는
단 하나의 사랑으로 잉태하는
그날이오면

그땐 내전부로
당신을 마음껏 사랑하겠습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