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여사남편

분류없음 2015/07/16 12:03

 

어린 꽃개가 엄청나게 좋아했던 소유진 여사. 소여사의 남편인 백종원 선생께서 메인을 맡고 계신 어떤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이것은 정말로 신의 은총이다. 80년대, 뽀뽀뽀 뒤에 하던 '오늘의 요리'보다 실용적이다. '노희지의 꼬마요리사'보다 더더욱 쉽다. 신동엽과 성시경이 이빨까는 것보다 한참 더 알차다. 그만큼 인간적이고 이해하기 "쉽다".

 

 

아주 옛날. 집에 놀러온 동아리 후배들과 먹고 마시며 떠들다가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고스톱을 쳤다. 당첨된 남자후배가 산더미같은 설겆이를 하게 됐는데 정말로 그 친구는 그릇"만" 씻었다. 싱크대에 고스란히 남은 고추가루와 음식 쓰레기를 보고 "이건 왜 안 치웠냐"고 했더니 "그게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대답을 듣고 기함을 토했던 기억이 난다. 설겆이를 하면서 정말로 이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진짜진짜 눈에 뜨이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는 그릇만 씻기로 한 게 아니었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순간 그 대답의 진실성을 의심했지만 그 눈은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 이십이 넘게 살면서 설겆이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인생을 산 사람과 이십은커녕 열 살이 넘어서면서부터 설겆이는 물론이고 밥을 차리고 해 먹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의 시야는 서로 이렇게 다르구나, 그 때 깨달았던 것 같다.

 

 

요즘 (한국) 남자들은 어떤지 잘 모르지만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밥을 하고 밥을 먹고 그릇을 치우는 일조차 과거의 한국 남자들은 잘 하지 못하였다-못하였던 것 같다. 꽃개의 아버지는 물론이었고 80-90년대 운동권 남자선배들/동료들도 의당 그런 일은 아내나, 누이나, 여성동지들이 해내는 일로 여기기 일쑤였다. 물론 일부 운동권 남자선배들/동료들 가운데 그런 일을 잘 해내는 사람들도 있기는 있었지만 거의 가뭄에 콩나는 확률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된 데에는 그런 일을 여성들의 일로 치부하는 전통적 젠더롤과 본인 스스로 그러한 젠더롤을 뼈속깊이 받아들이는 탓도 있었지만 대부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탓이 컸다. 모르는 데 어떻게 하랴?

 

 

소여사의 남편인 백종원 선생께서 이끄시는 이 프로그램을 접하면 그 무지는 더 이상 사회적인 익스큐스가 될 수 없다는 일단의 "징조"를 보여준다. 일단 음식을 어떻게 할 것인지, 식재료를 어떻게 고를 것인지, 하나하나 차분히 가르쳐주므로 더 이상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라는 개 풀 뜯어먹는 소리는 통용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구나 늘 깨끗한 소여사의 남편, 백선생의 싱크대를 보면서 느끼는 것도 있을 것이다. 느끼는 것이 없다면 그이는 세렝게티의 하이에나일까?

 

 

 

이빨 까는 요리 프로그램, 맛집 탐방보다 소여사의 남편, 백선생이 이끄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더더욱 더많이 나와줬으면 좋겠다. 널린 게 티비 프로그램인데 그런데도 모르겠다, 면 답은 뻔하지 않나? 제발 너 혼자 사세요. 그러니까 안 생겨요.

 

 

 

덧.

후배님이 설겆이한 그 그릇들은 후배님이 가신 뒤 꽃개가 고스란히 다시 설겆이를 하였다.

 

 

 

 

 

 

2015/07/16 12:03 2015/07/16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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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앙겔부처 2015/07/16 13:36 Modify/Delete Reply

    저도 소유진 엄청 좋아했었어요 홍대 길거리에서 한 번 봄 실물이 더 예쁨
    뭔가 위 얘기 공감이 가네요 저는 이걸 받아들이는 태도의 문제인 것 같은데요. 저도 손에 물한방울 안 묻히고 자랐지만 그래서 여전히 잘못하지만 싱크대 정리하거든요. 그런데 우리 신랑은 물론이고 긴 결혼생활 동안 성실하게 설겆이해 온 어떤 남성분도 싱크대 정리를 안 하더라고요. 뭔가 딱 설겆이 그것만 태스크로 주어진 거라 그것만 해결한달까.. 태도의 문제라고 썼는데 뭔 태도라고 할지 잘 모르겠네여-ㅅ-

  2. 꽃개 2015/07/17 13:57 Modify/Delete Reply

    소여사를 좋아하셨다니...아웅...부끄럽... 음, 태도라...뭔 태도일까요...아마 자기 일로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남의 일을 잠시 떠맡는 것으로 받아들이는지 그런 태도일까요...뭘까요. 생각해보면 여성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자라도 인생의 어느 순간이나 국면에서 부엌일 같은 지불받지 못하는 노동을 하게끔 기대되는 그런 게 있는 거 같은데 남성은 금수저든 나무젓가락이든 출생신분과 무관하게 그런 포인트가 없거나 희미하지 않나 싶어요. 인간 개개인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또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한국사회에서 서로 다른 이성 둘이 만나 결혼하여 애를 낳거나 키워도 남여 각자에게 기대하는 바가 확연히 다르니까 그 남자 여자 각자가 받아들이는 스트레스도 수준이 아예 다르고... 이건 조금 다른 얘긴데 소여사남편백선생 프로그램을 보면서 감동이었던 건, 출연자들이 자기 혀의 쓰임새를 알아간다는 거였어요. 오로지 자기만을 위한 자기 자신의 혀. 지금까지는 말하거나 키스하거나 뭘 뱉고 삼키는 데에 필요한 정도로만 썼을 것 같은 그들 자신의 혀를 자기자신이 좋아하는 취향과 맛을 찾아가는 데에 쓰면서 스스로 궁극의 기쁨 (pleasure) 을 알아간다는 거. 그게 참 경이로웠어요. 한편으론 김구라 말대로 "눈만 높아져서" 또 다시 주변의 여인네들을 들들 볶게 되는 건 아닐까 기우아닌 기우를 잠시... 한국의 아저씨들이 모두 자기 혀 (맛) 를 이해하고 깨우치면 난리날 거 같아요. 아줌마들이 더더욱 불행해질 것 같다는 불손한 상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하는데 이게 잘 안되....어요.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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