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것

분류없음 2016/03/25 06:54

 

아프지 말자 

 

파트너가 일하는 곳에 인플루엔자 A 가 퍼져서 (outbreak) 일주일동안 근무를 중단한 것이 지난주였나. 며칠 아프면서 신경이 쓰였다. 단지 생리전 증후군 (PMS) 인가 하다가 오늘 세탁실에서 건물 관리인을 만났는데 아픈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란다. 말도 마 얘, 내 컨트랙터 (contractors, 청소나 기타 관리업무를 용역받아 일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부른다) 들도 세 명이나 아프다고 해서 약속을 취소했고 우리 아파트 사람들도 많이 아프대. 열나고 쑤시고 그런다더라. 얘기를 듣고보니 내 증세랑 비슷하다. 내가 아프면 나도 고생이지만 신경을 쓰는 파트너도 고생이다. 올해는 뱅쇼도 못 만들어먹였는데, 라면서 레몬+파뿌리+계피+꿀차를 만들어주셨다. 파뿌리 때문에 냄새가 고약하다고 칭얼거렸었다. 화요일 밤근무 때 출근해서 간식통을 열어봤더니 레몬을 저며 꿀에 넣은 게 들어있다. 같이 일한 친구가 네 파트너 너무 스윗하다, 며 격찬을 했다. 미안하고 감사하다. 아프지 말아야지.

 

 

움직이자구

 

기운이 조금 나서 빨래를 하고 동네 데니쉬 빵집에 들러 빵을 몇 개 사고, 연휴에 먹을 과일을 사러 중국인 채소가게에 들렀다. 내일은 굿프라이데이 (Good Friday) 라서 휴일이다. 너 내일 일해? 응. 그럼 너 두 배로 페이받겠네? 뭐 그런 셈이지. 좋겠다. 너는 사장이잖아. 근데 때론 나도 회사에 나가고 싶어. … 뭔 소리야. 사장님께서. 처음엔 진짜 한국인이냐 (남한에서 온 사람이냐) 가짜 한국인이냐 (북조선이나 중국 연변 지방에서 온 한인) 성분 파악성 질문을 하는 바람에 뜨악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농담도 하고 많이 친해졌다. 같은 중국인들도 어느 동네에서 장사하느냐에 따라 손님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다. 중국인마을, 차이나타운에 있는 사람들은 백인이나 관광객들을 아무리 많이 대해도 대단히 뜨악스럽게 무표정하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불친절"하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 장사하는 중국인들은 대부분 잘 웃고 밝은 편이다. 아무래도 동유럽, 그리스 사람들 (그러니까 백인들) 을 상대하다보니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은데 처음에 던진 진짜/가짜 한국인 질문 때문에 한동안 꺼렸던 것도 사실이다. 

 

 

번진 생각들 

 

아파트 난방 시스템을 업그레이드한다고 했는데 그게 잘 됐는지 물어본다는 걸 깜빡 했다. 얼마전 밤에 소음이 심하다고 리포트를 했는데 관리인 왈, 모터를 미국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린다고 했다. 얼마나 대단한 모터를 들여오길래 국경 밖에서 사오나 싶었는데 잘 생각해보니 많은 물자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게 캐나다의 현실이다. 가령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열쇠, 페브리즈나 세탁세제 같은 일부 가정 용품들, 커피, 쌀 등도 라벨만 영어/프랑스어를 붙여서 대부분 미국에서 온다. 물론 캐나다에서 생산하는 물건 (특히 공산품 혹은 가공식품) 이 없는 것은 아니나 가격, 유통과정에서 경쟁력을 얻지 못한다. 이러다가 미국이 국경을 폐쇄하기라도 하면 캐나다가 얼어죽는 것은 시간문제겠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다. 샅샅이 조사해보진 않았지만 인구 사천 만이 채 되지 않는 이 넓은 땅덩어리의 나라는 미국경제 의존율이 상당히 높은 편인 것 같다. 예전에 북미자유무역협정 NAFTA 에서 이제 TPP (Trans-Pacific Strategic Economic Partnership) 시대로 간다는데 갈수록 이 의존력은 높아질 것이다.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시장법칙에는 노동력도 당연히 포함된다. 문제는 이 노동(력)이 인간의 것이란 것을 사상하는 자본의 성질. 즉 자본과 노동의 힘에 달렸다는 말. 아파트 관리인과 얘기를 하다가 문득 TPP 까지 생각이 번졌다는 그런 얘기.

 

 

허리띠

 

한국을 떠나기 전에 파트너께서 사주신 벨트가 무척 낡았다. (이 시점에서 짝에게 감사감사. 내 인생에서 나에게 처음으로 벨트를 하사하신 인물!) 새 벨트를 사야 하는데 사이즈 문제로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같으면 매장에서 사이즈를 조절해달라고 하거나, 실력좋은 동네 구둣방/세탁소에 가져가서 의뢰하면 돈 만 원이면 될 일이 여기에선 불가능하거나 최소한 오만 원은 줘야 한다. 이잡듯이 찾아보면 이런 일을 아주 잘 해내는 이민자들이 있을 것 같기는 한데 또 그걸 찾자니 영 내키지 않는다. 얼마전에 들른 할인점에서 사십 달러짜리 스위스기어 벨트를 십오 달러에 샀다. 집에 있는 가위 같은 부실한 연장으로 충분히 길이를 조절해서 내 허리에 맞춰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가위 다리를 이용해 버클을 열다가 뭐가 똑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마침 출근을 앞두고 있어서 더 세심히 살펴보진 못하고 엉엉 울면서 출근. 아, 아까운 내 돈 십오 달러. 출근길에 뭐가 문제였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뭔가 재생할 방법이 있을 거야, 긍정의 기운을 불어넣으며 퇴근. 집에 돌아와 다음 날 다시 시도했으나 사망. 벨트 끈은 천연가죽으로 아주 좋은 건데 버클 부분이 영 조잡스럽다. 아 띄발 메이드인촤이나가 다 그렇지 괜시리 탓을 해보지만 돌이킬 수 없다. 한국에 있을 적에 매우 편안하게 아무 불편없이 누렸던 호사들이 떠오른다. 계속 한국땅에 살았다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고마움이다. 아 내 돈 십오 달러. 저 가죽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2016/03/25 06:54 2016/03/25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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