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식민의길2

분류없음 2018/09/02 04:18

꽃개님의 [탈식민의길 1] 에 관련된 글

 

새로 시작한 업무 가운데 두 시간 동안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일이 있다. 업무사항에 그렇게 하도록 지시되어 있는 것은 아닌데 현장에서 업무를 그런 식으로 고정해 버렸다. 나는 풀타임도 아니고 그 회사에 처음으로 새롭게 고용된만큼 사단을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적응하는 게 낫다. 그냥 하라는대로 하는 게 좋은 거다. 어쨌든 클라이언트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들을 "감시 (?)" 하는 일이다. 4명의 스탭이 돌아가면서 커버를 하니 꽃개 또한 꼼짝없이 두 시간을 그렇게 있어야 한다. 

 

본의 아니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지난 주에 읽은 프란츠 파농 (Frantz Fanon) 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Les Damnés de la Terre, The Wretched of the Earth, 1961) 이야기를 쓸까 한다. 원래 이 책 이야기를 쓰려고 포스팅을 한 건데 사연이 길어져 1 과 2 로 나누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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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의 (Jean-Paul Sartre) 초판 서문은 유럽인을 대상으로 썼다. 그러니까 식민자들을 대상으로 썼다. 이 책은 피식민자들을 독자로 상정하는 게 일견 맞아보이는데 제1의 독자와 다르지 않았던 사르트르조차 유럽인을 대상으로 서문을 썼다. 책을 읽다보면 나도 헷갈린다. 식민자의 시선, 피식민자의 시선. 어느 것이 나의 스탠스인지 헷갈린다.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00년 초반이었던 것 같다. 중간에 출판사에서 일할 적에 다시 한번 읽었고 그 뒤로 잊고 지내다가 캐나다에 온 뒤 탈식민주의 경향에 심취해 한국어 책을 주문해놓았다가 손을 대지 않은 채 몇 년을 보내다가 이번에 다시 읽게 된 것. 

 

주지하다시피 "1장 폭력" 편이 가장 술술 읽힌다. 2장, 3장을 읽을 적엔 이질감, 이물감 따위를 느낀다. 아마도 낯선 문화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지 싶다. 4장, 5장은 흥미로운데 특히 5장은 꽃개의 일과 연관이 있어 특히 더 재미있다. 1장부터 4장까지 일어났거나 있을 법한 일을 경험한 한 개인을 상정했을 때 그 개인이 5장에서 서술하는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다. 과장하자면 일제식민기와 한국전쟁을 경험한 평범한 한 개인이 정신적으로 매우 건강하다면 - 그 둘을 경험하지 못한 식민자 유럽인에 비해 더 건강하다면- 그게 더 유별나고 특별한 일일 것 같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눈에 들어온 것은 "1장 폭력에 관하여" 부분이다. 특히 작금의 젠더해방 운동이 활발히 타오르고 있는 한국 상황을 염두에 두니 더더욱 술술 읽힌다. 파농이 책에서 언급한 "식민주의 이주민"을 "남성" 으로 "원주민"을 "여성" 으로 도치하여 읽어도 전혀 문제 없다. 맥락이 다 통한다. 때론 "식민주의"를 "가부장제"로 혹은 "불평등한 관계" 내지 "상대적 힘의 차이가 현격한 두 집단이 공존하는 상태" 로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 이렇게 말하면 여-남 갈등을 부추기는거냐며 투덜거리는 집단 (혹은 개인, 주로 남초집단이거나 남성 개인일 수 있겠다) 이 있을 수도 있는데 그 투덜거림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식민주의 (가부장제) 는 생각하는 기계도 아니고 추론 기능을 지닌 신체로 아닌 자연 상태의 폭력이므로 더 큰 폭력에 의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p. 73

* 괄호는 꽃개가 넣음

당장엔 갈등으로 보일 수 있는 대립이 궁극적으로는 힘 권력의 부정합을 파괴하고 평편한 질서를 불러오는 해방을 위한 갈등, 폭력이기 때문이다. 한동안 메갈페미들이 너무 폭력적인 거 아닌가 싶어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가 다시 이 책을 읽고 그런 무쓸모한 걱정을 할 필요가 전혀 없겠다는 결론에 도달. 

 

"우리는 폭력이 성숙되어 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고삐들이 폭력을 통제하며 다른 출구로 끌고가는 것을 보았다. 식민지 체제 (가부장 체제) 는 부족이나 지역 간의 분쟁과 같은 방식으로 폭력에 여러 가지 변형을 가하지만 (호주제 폐지나 남녀고용평등법 같은 변형을 가하지만), 그 폭력은 결국 원래의 갈 길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원주민 (여성) 은 자신의 적을 알아내고, 자신의 불운을 인식하며, 증오와 분노에서 비롯된 모든 힘을 이 새로운 배출구로 떠뜨린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폭력의 분위기를 실제의 폭력적 행동으로 전화시킬 수 있을까? 그 도화선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폭력적인 사태 전개가 이주민 (남성) 의 행복한 삶을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원주민 (여성) 을 '이해' 하는 이주민 (남성) 은 상황이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기미를 알아차린다. '착한' 원주민 (여성)이 점차 드물어지고, 억압자 (남성) 가 다가가면 모두 침묵한다. 안색이 어두워 보이기도 하고, 대하는 태도나 말투가 노골적으로 공격적이 되기도 한다. ("아니 씨벌, 잠재적 아군까지 적으로 돌리다니. 이젠 너희들을 도와주지 않겠어") ...... 자기 땅 (남초 커뮤니티 혹은 남성성이 강한 어떤 집단) 에서 고립되어 사는 이주민 (남성) 들이 맨 먼저 경보가 울리는 것을 듣는다. 그들은 강력한 조치를 요구한다. (청와대 청원을 하거나 여자들도 군대가라며 역차별을 들고 나온다)......" p. 83

*괄호는 꽃개가 넣음.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레퍼토리 아닌가. 

 

"그들은 (이주민, 식민주의자들은; 남성들은) 늘 원주민 (여성)이 알아듣는 유일한 언어는 무력의 언어라고 말을 했는데, 이제  그 (원주민이, 피식민인지; 여성들이)가 무력을 통해  발언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실 이주민 (남성)은 원주민 (여성) 이 자유를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원주민 (여성) 이 택한 논거는 이주민 (남성; 혹은 기존의 가부장체제) 이 제공한 것이었으나, 공교롭게도 이제는 상황이 역전되어 식민주의자 (남성) 가 오로지 무력만 알아듣는다고 말하는 측은 원주민 (여성) 이다." p.96 

* 괄호는 꽃개가 넣음. 

좋게 말할 때 듣지 못하거나 듣지 않았던 쪽이 어디였는지 잘 생각해보자. 인간적으로, 합리적으로 말할 때 경청하지 않다가 그들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했을 때 반응하기 시작한 게 언제쯤이었는지 차분히 돌아보자. 아마도 메르스갤러리, 소라넷폐쇄 운동 즈음이 아니었난 싶은데 내 기억이 틀렸나... 이 정도 되면 서프러제트 운동 (suffragette) 가들이 한 말 "폭력과 전쟁이 남자들이 들어주는 유일한 언어 (War is the only language men listen to)" 도 틀린 말이 아니지 싶다. 오히려 그들이 먼저 알고 있었다. 여성들만 가입할 수 있도록 제한한 여성정치연맹은 영국에서 1903년에 창립됐고 그들의 구호는 "말보다 행동" 이었다. 

 

궁금한 것은 파농이 이 책을 쓴 게 1960년 경인데 파농의 머리를 지배한 식민-피식민/ 백인-흑인/ 유럽-비유럽 대립항 말고 남성-여성은 있었을까 없었을까 하는 것. 아마도 없었거나 있었다 하더라도 간과했을 가능성이 높다. 피식민지에서 태어난 비유럽 흑인이었던 파농은 "남성"이었다. 그 또한 또다른 식민지를 지니고 있었다. 

 

 

* 출판사에 다닐 적에 읽었던 책은 그린비에서 나온 초판이었고 이번에 다시 읽은 책은 역시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2판 (2012년) 이었다.

 

 

 

 

 

2018/09/02 04:18 2018/09/02 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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