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축복

분류없음 2018/09/16 02:59

꽃개의 파트너는 손빨래를 즐겨하고 가공하지 않은 식재료 (unprocessed food) 와 채식을 선호한다. 항상 손빨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가공음식을 아예 안 먹거나 육식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그렇게 살기 위해 애쓰는 편이다. 덕분에 꽃개의 삶도 변했거나 변하거나 파트너의 삶에 맞추는 편이다. 그게 편하고 나름대로 좋기 때문이다. 꽃개도 원래 육식을 즐기는 편이 아니었고 가공식품이야 편리해서 먹는 거지 즐기는 편도 아니었으므로 크게 이견이 없었다. 손빨래는 조금 버겁지만 손수건이나 내의 따위는 되도록 손빨래를 하려고 애를 쓴다. 사실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파트너의 의견을 구하고 따르는 게 거의 대부분 (90% 이상) 옳다. 손해보는 일이 없다. 결혼 했거나 안했거나 현명한 파트너와 함께 사는 사람들 대부분 아마도 꽃개처럼 살지 않을까 싶다. 

 

캐나다에는 베리 (berries) 류 과일이 흔하다. 블루베리, 스트로베리, 블랙베리, 라즈베리..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는 로컬 베리를 구할 수 있고 날이 선선해지면 남미나 미국에서 들여온 것들이 흔해 또한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다. (베리 수확에 참여하는 이주노동자들에게 감사를). 베리를 사랑하는 캐나다인들. 오죽하면 캐나다 셀폰 브랜드가 블랙베리일까. 여름이면 파트너는 온갖 베리류로 잼을 만든다. 로컬 베리와 역시 캐나다에서 나는 메이플설탕을 넣어 한참을 졸인다. 식으면 작은 유리병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아침식사나 간식으로 빵에 발라 먹는다. 이탈리아나 동유럽 사람들이 즐기는 브레드스틱에 찍어 먹어도 좋다. 간혹 플레인요거트에 넣어 향미를 더하기도 한다. 꽃개는 블루베리를 좋아하는 편이고 파트너는 딱히 고집스럽게 선호하는 것이 없다. 두루두루 무난하게 즐긴다. 아마도 꽃개는 고집과 편벽이 있는 성격이고 파트너는 새로운 것을 탐구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은 성격이라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식당엘 가도 꽃개는 먹던 것만 주문하는 편이라면 파트너는 전혀 새로운 음식을 주문하는 일을 망설임 없이 즐기는 편이다. 

 

파트너는 콩국수의 메인재료인 콩국 (콩물) 도 직접 만든다. 대두 (soy beans) 를 직접 사다가 물에 불린 뒤 삶은 뒤 껍집을 까고 블렌더에 갈아 내린다. 국물은 마시거나 병에 넣어 보관하고 콩비지는 가끔 찌개에 넣어 끓이거나 수저로 떠먹는다. 일전에는 묵은총각김치를 송송 썰어 토마토를 약간 넣은 비지 찌개를 끓이셨다. 너무 맛이 있어서 두고두고 보관해서 먹었더니 웃으시면서 또 해주신다고 하셨다. 옛날에는 몰랐는데 찌개에 토마토를 넣으면 풍미가 거듭 살아난다. 맛있다. 

 

몇 주 전, 역시 콩국을 만들기 위해 사온 대두를 물에 불린 뒤 그 가운데 서너 알을 화분에 심었다. 국민학교 시절에 했던 탐구생활 관찰일지 생각도 나고 아이 설마 저게 싹을 틔우겠어, 그냥 심심풀이로 한 일이었는데 네 알 가운데 두 알이 싹을 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썩어 버렸고 한 녀석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처음엔 쌍떡잎이 굳건히 솟아나왔지만 흔치 않게 진한 녹색이 거북해서 영 미덥지 않았다. 이거 뭐야, 혹시 유전자조작식품인 거야 왜 이렇게 작위적인 녹색인 거야... 무럭무럭 자라난 콩이 잎을 냈다. 내 살이 닿으면 뜨거울 것 같아 직접 만져보진 않았지만 솜털이 보송보송해서 참으로 부드러워 보였다. 꽃개 대학시절 포항 인근에서 유학온 후배 녀석을 통해 처음으로 맛본 "콩잎" 이란 음식이 생각나서 파트너에게 "제가 콩잎 해드릴께요" 했더니 콩잎은 저런 이파리로 하는 게 아니라고, 거의 낙엽처럼 누렇게 뜬 것으로 - 그러니까 그들 인생의 마지막 단계에 다다른 것으로 - 하는 거라고 알려주셨다. 캐나다에도 경상도 사람들이 많이 살기 때문에 한국인 마트에 가면 콩잎 반찬을 종종 구할 수 있다. 음식으로서 최초의 콩잎은 내겐 최악의 음식이었지만 나중에 캐나다에 와서 다시 먹어보니 제법 먹을만한 반찬이기도 했다. 

 

오늘 드디어 하얗고 작은 꽃잎을 냈다. 너무 작고 아담한 그 하얀 봉우리들. 마치 현세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그 작은 아이들이 화분에서 빛을 내니 송구스럽기 그지 없다. 너희들 어쩌다가 내게로 왔니, 대견하고 고맙고 그리고 또 황송하다. dslr 을 꺼내 초근접 접사 촬영을 해서라도 찍어볼까 하다가 마음을 접었다. 그저 내 눈 한 가운데에, 마음 한 켠에 담아두기로 했다. 이렇게 소중한 축복의 순간을 허락해 준 (유전자조작) 대두 씨앗에 감사를. 햇볕과 물, 잊지않고 끊임없는 생활 속 작은 대화를 이어준 파트너에게 감사를. 

 

2018/09/16 02:59 2018/09/16 0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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